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보며 느낀 대한민국 교육에 관한 단상
[칼럼] 채희태 편집위원
최근에 볼만한 드라마가 없었나? 아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재벌집 막내아들>를 보며 송중기의 달달한 외모에 빠졌었고, <환혼 2>을 보며 고윤정 입덕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IP로 계정 공유를 통제하겠다는 넷플릭스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 다음 연재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드라마를 주제로 글을 안 썼던 것 같다. 드라마는 재밌게 봤지만, 드라마를 보며 글감을 떠올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의 해방일지>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드라마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강박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공사가 다망해 시기를 놓쳤다. 심지어 얼마 전 조카와 봤던 <슬램 덩크>를 주제로 글을 쓰면 조회수가 제법 올라갈 거라는 MZ세대의 충고도 받았지만, 귀찮아서 눙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필자의 손가락에 발동이 걸렸다. 필자의 손가락에 발동을 건 드라마는 바로 전도연과 정경호, 그리고 고딩 전문 배우, 노윤서가 등장하는 <일타 스캔들>이다.

일타 스캔들 포스터(출처 : tvN 홈페이지)
교육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그 대단한 영향력이 선한 결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교육은 사람을 괴물로, 그리고 사회를 지옥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교육을 통해 생존을 넘어, 이익을 확대하려는 학원 업자들이 포진해 있다. 그저 드라마적 설정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일타 스캔들>에는 대형 학원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하신 학부모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와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까지 주무르는 학부모들을 통해 교육은 마침내 돌고 돌아 지옥으로 향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한다. 작년, 필자는 모 교육청에서 주관한 “학부모 교육 지원 방안 연구”에 참여하며 학부모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① 현실에 관해선 아이들보다 모르고,
②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실질적 책임이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③ 현재 교육과 관련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존재!
<우리들의 해방일지>에서 평범은 해방이나 추앙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같은 욕망을 갖는 것이라고 일갈했던 손석구의 말처럼, 우리는 입시라는 욕망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평범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평범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거 세대의 관성이 권력이 되어 비범한 다음 세대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마치 현재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586들이 케케묵은 자신의 진보를 기준으로 20대를 보수로 규정한 후 “이대남, 이대녀”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교육은 드라마 흥행을 위해 빠져서는 안 되는 감초가 되었다.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멜랑꼴리아>가 교육 중에서도 입시를 전진 배치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라면, <라켓 소년단>,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은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정조준하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대 간의 이견을 비중 있게 다뤘다. 교육 드라마의 원조는 2010년 KBS에서 방영된 <공부의 신>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공신>은 입시를 중심으로 한 교육 문제를 매우 과장스럽게 표현했다. 내가 <공신>을 다시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그 과장을 혹시라도 그리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교육의 책임에서 공교육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학교가 입시 선발이라는 장단에 맞춰 칼춤만 추지 않았어도 교육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갈수록 옅어져 가는 학교의 사회적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초, 중, 고 12년간의 교육 과정은 오로지 입시라는 단 하나의 결과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 고등학교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목적을 잃은 좀비들의 공간이 된다.
어지간하면 필자는 글을 쓰며 결론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해법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뭐라도 ‘합의’를 하기 위해선 객관적 진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미래를 위해 의무를 떠안는 ‘합의’야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합의’라는 걸 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아무튼 무시될 것이 뻔하지만 감히 평생교육 관점으로 교육을 위해 제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입시는 교육의 모든 것이 아니라, one of them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학력이나 학벌의 차이에 따른 사회적 보상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셋째, 선발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성장의 결과가 선발로 이어져야 한다.
아직 종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전도연과 정경호 커플이 이끌어 가는 <일타 스캔들>은 이야기를 막장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제목을 보면 빼박 교육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교육을 위한, 교육에 의한, 교육만의 드라마라면 막장 전개를 피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일타 스캔들>에서 교육은 전도연과 정경호 커플을 이어 주는 보조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역할은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교육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사회적 합의’를 거드는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교육은 지금보다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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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희태
평생학습e음 편집위원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보며 느낀 대한민국 교육에 관한 단상
[칼럼] 채희태 편집위원
최근에 볼만한 드라마가 없었나? 아니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 필자는 <재벌집 막내아들>를 보며 송중기의 달달한 외모에 빠졌었고, <환혼 2>을 보며 고윤정 입덕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IP로 계정 공유를 통제하겠다는 넷플릭스의 폭거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 다음 연재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꽤 오랫동안 드라마를 주제로 글을 안 썼던 것 같다. 드라마는 재밌게 봤지만, 드라마를 보며 글감을 떠올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나의 해방일지>나 <우리들의 블루스>를 보며 “드라마 글쓰기”를 해야겠다는 강박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공사가 다망해 시기를 놓쳤다. 심지어 얼마 전 조카와 봤던 <슬램 덩크>를 주제로 글을 쓰면 조회수가 제법 올라갈 거라는 MZ세대의 충고도 받았지만, 귀찮아서 눙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필자의 손가락에 발동이 걸렸다. 필자의 손가락에 발동을 건 드라마는 바로 전도연과 정경호, 그리고 고딩 전문 배우, 노윤서가 등장하는 <일타 스캔들>이다.
일타 스캔들 포스터(출처 : tvN 홈페이지)
교육의 영향력이 정말 대단하기는 한 것 같다. 그 대단한 영향력이 선한 결과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교육은 사람을 괴물로, 그리고 사회를 지옥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교육을 통해 생존을 넘어, 이익을 확대하려는 학원 업자들이 포진해 있다. 그저 드라마적 설정인지, 아니면 진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일타 스캔들>에는 대형 학원을 좌지우지하는 대단하신 학부모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아이와 학교뿐만 아니라 학원까지 주무르는 학부모들을 통해 교육은 마침내 돌고 돌아 지옥으로 향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완성한다. 작년, 필자는 모 교육청에서 주관한 “학부모 교육 지원 방안 연구”에 참여하며 학부모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바 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에서 평범은 해방이나 추앙 따위를 하는 게 아니라 남들과 같은 욕망을 갖는 것이라고 일갈했던 손석구의 말처럼, 우리는 입시라는 욕망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평범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평범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과거 세대의 관성이 권력이 되어 비범한 다음 세대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마치 현재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586들이 케케묵은 자신의 진보를 기준으로 20대를 보수로 규정한 후 “이대남, 이대녀”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언젠가부터 교육은 드라마 흥행을 위해 빠져서는 안 되는 감초가 되었다. <스카이캐슬>, <펜트하우스>, <멜랑꼴리아>가 교육 중에서도 입시를 전진 배치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라면, <라켓 소년단>, <스물다섯, 스물하나> 등은 입시와 사교육 문제를 정조준하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세대 간의 이견을 비중 있게 다뤘다. 교육 드라마의 원조는 2010년 KBS에서 방영된 <공부의 신>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공신>은 입시를 중심으로 한 교육 문제를 매우 과장스럽게 표현했다. 내가 <공신>을 다시 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당시의 그 과장을 혹시라도 그리워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는 교육의 책임에서 공교육이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학교가 입시 선발이라는 장단에 맞춰 칼춤만 추지 않았어도 교육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갈수록 옅어져 가는 학교의 사회적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수도 있다. 초, 중, 고 12년간의 교육 과정은 오로지 입시라는 단 하나의 결과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 고등학교는 기말고사가 끝나고 나면 목적을 잃은 좀비들의 공간이 된다.
어지간하면 필자는 글을 쓰며 결론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거냐고… 필자가 글을 쓰는 이유는 해법을 제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뭐라도 ‘합의’를 하기 위해선 객관적 진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스스로 미래를 위해 의무를 떠안는 ‘합의’야말로 인간이 가져야 할 중요한 역량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필자는 불이익을 감수하고라도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해 ‘합의’라는 걸 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자신이 없다. 아무튼 무시될 것이 뻔하지만 감히 평생교육 관점으로 교육을 위해 제언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직 종결이 되지는 않았지만 전도연과 정경호 커플이 이끌어 가는 <일타 스캔들>은 이야기를 막장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제목을 보면 빼박 교육 드라마처럼 보이지만, 그리고 교육을 위한, 교육에 의한, 교육만의 드라마라면 막장 전개를 피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일타 스캔들>에서 교육은 전도연과 정경호 커플을 이어 주는 보조재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역할은 딱 그 정도가 적당하다. 교육이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사회적 합의’를 거드는 역할만 할 수 있다면, 우리를 고통으로 내몰고 있는 교육은 지금보다 조금은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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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희태
평생학습e음 편집위원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