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때’가 있을까?

2023-04-01




[칼럼] 나이 들어 공부하는 것이 화제가 되지 않는 사회로


편집위원 채희태





 지난 2019년, 교육의 성지 핀란드에 정책 연수를 다녀왔던 적이 있다. PISA가 인정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토록 부러워하는 핀란드는 어떻게 세계적인 교육 선진국이 되었을까? 겨우 5일 정도 머무르며 보고 느낀 것만으로 핀란드 교육의 모든 것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핀란드 교육에 대한 생경함을 이야기하다 보면 그 답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가 핀란드 교육 정책 연수 과정에서 느꼈던 바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요약해 보았다.


   첫째, 공정한 사회를 위한 핀란드의 노력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는 땅덩어리는 넓지만, 척박한 기후로 인해 인구가 많지 않다. 핀란드 역시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넓은 국토에 고작 우리나라 인구의 10분의 1 정도인 552만 명(2021년 기준)이 살고 있다. 혹자는 북유럽의 복지가 적은 인구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핀란드 사람에게 그 말은 배부른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경제적 관점으로 보자면 적절한 생산과 소비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충분한 인구는 선진국이 되기 위한 매우 기본적인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아리랑이 한민족의 한을 담고 있는 것처럼,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운동을 배경으로 작곡된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를 듣고 있으면 장엄했던 핀란드 국민의 처절했던 노력이 느껴진다. 혁신은 풍요의 결과가 아닌 결핍의 결과이다. 배부른데 누가 혁신을 주장할 것이며, 등 따신데 누가 혁신의 주장에 동참하겠는가! 필자는 핀란드가 척박한 기후와 넓은 땅덩어리, 그리고 부족한 인구라는 결핍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 사람도 국가의 문제로부터 소외되지 않는 ‘공정’을 선택했고, 핀란드의 교육은 그러한 국가와 시민들의 노력을 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가지고 있는 구조의 결핍을 오로지 인서울이라는 개인의 풍요를 위해 해결하려고 하는 우리의 교육과는 다르게…


ⓒ fauxels 


   둘째, 교육은 그저 거들 뿐…

핀란드 국민에게 교육은 사회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교육에게 일방적으로 사회 문제를 위임하지도, 그 답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핀란드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시민들이 참여하여 교육의 문제를 함께 고민할 뿐이다. 교육의 큰 방향을 중앙정부나 교육전문가들이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 협회, 나아가 학생들 협회(통역자의 표현) 등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단체가 참여해 결정한다. 연수단이 방문했던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관계자는 조금 늦게 가더라도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핀란드 교육이라고 설명했다. 

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의 설명을 들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 시민들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고, 그 노력의 결과를 지속가능하게 유지시키기 위해 교육은 단지 ”거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손가락)은 보다 공정하고 평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핀란드(달)를 가리키고 있는데, 우리는 핀란드를 가리키고 있는 교육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회가 권위적이면 교육도 권위적이 되고, 사회가 불공정하면 교육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 몰입한다. 혹시, 우리는 대한민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와 불공정의 문제를 가리기 위해 그 책임을 교육에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셋째, 핀란드의 교육은 곧 평생 교육…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학령기 교육을 떠올린다. 하지만 핀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에서 말하는 교육은 시민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 즉 평생교육이다. ‘배우는 건 다 때가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태도이다. 우리는 학령기 때, 오로지 선발을 목표로 공부에 매달린다. 이는 두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첫째는 학령기가 지나고 나면 공부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는 것이고, 둘째는 선발이라는 목표에서 벗어나고 나면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이 교복을 찢거나, 교과서를 불태우는 화형식을 거행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지긋지긋한 공부는 하지 않겠다는 선언 아닐까?


다음은 필자가 정책 연수 과정에서 핀란드 국가교육위원회로부터 받은 핀란드 교육 체계도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는 화살표는 서로 다른 교육 안의 체계가 있지만, 그 다양한 체계 안에서의 이동이 자유롭게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몇 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필요하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직업 고등학교 과정에 다시 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핀란드 교육 체계도

   

   이스라엘의 교육자 야콥 헥트(Yaacov Hecht)는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학령기 교육이 왜 다양한 세대가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회의 모습과 다르게 존재해야 하는지 물었다. 어린 시절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만학도의 때늦은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것은 불우했던 시절, 경제적 문제로 학업을 포기했거나, 오로지 자녀의 공부를 위해서만 헌신했던 대한민국 교육의 우울한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 열정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는 동시에, 나이를 들어 공부를 하는 것이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 평생교육, 평생 학습의 시대가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도 도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거꾸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그 변화를 뭉개며 꼰대처럼 살아가는 어른들이 더 큰 화젯거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글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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