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남 어머니학교가 문해교육에 주는 시사

2022-11-28

[칼럼] 채희태 편집위원




“희태야, 거버넌스가 뭐니?”




어느날 막내 아들이 쓴 석사 논문을 두 번이나 읽으신 어머니로부터 받은 질문이다. 전쟁 통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치신 어머니는 막내 아들이 쓴 글을 읽기는 하셨지만 이해하지는 못하셨던 것이다. 아들이 쓴 글이 궁금하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어머니는 자신의 삶과 무관한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이 크게 답답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어머니가 던진 이 질문은 나에게 “문해”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은 사대주의에 빠져 중국만 바라보고 있는 사대부들을 건너뛰고 조선의 백성들과 직접 소통을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계급사회인 동시에 관료사회였던 조선시대, 최만리를 비롯한 사대부들이 훈민정음 반포를 반대했던 이유는 쉬운 한글을 통해 자신들이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어리석은 백성들과 공유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도 만들고 싶었던 정도전의 조카 정기준1)은 훈민정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물론 정기준이라는 인물은 드라마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지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의 장체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묘사해 2012년 제7회 서울드라마어워즈 대상, 제48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수상했다.


네 놈도 모르는 것이냐? 개팔이와 연두가 단 이틀만에 글자를 익혔을 때, 네 놈은 어찌 그리 놀랬느냐? 아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칠 때, 어찌하여 천자문을 먼저 떼게 하고, 그 다음으로 소학과 명심보감까지 떼게 한 후 작문을 가르치느냐? 소양이 없는 자가 글을 써선 안되기 때문이야. 글자는 무기니까. 소양을 갖추지 못한 자들 이 함부로 글을 쓰게 되면 어찌 되겠느냐? 글로 사람을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게 되는 것이야. 글자란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헌데, 이도가 만든 이 글자는 소양이 없는 자라도 단 이틀이면 배울 수 있다. 그래, 네 놈은 개팔이와 연두를 보며 본능적으로 그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이도는 그런 어마어마한 것을 세상에 내 놓으려는 것이야. 헌데, 이 사대부라는 놈들은 어찌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_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중 정기준의 대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 나오는 정기준의 대사에서 우리가 간과하면 안 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위에서도 언급했듯 글자, 나아가 정보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다른 하나는 쉬워도 너무 쉬운 한글로 인해 파생된 역설이다. 정기준의 말대로 한글은 특별한 지적 능력을 가지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읽는 행위와 이해하는 행위를 분리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신이 이해한 것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을 한다는 것이다. 글의 시작에서 소개한 어머니의 질문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거버넌스라는 말은 민도 관도, 진보도 보수도,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도,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하신 어르신도 읽고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거버넌스라는 단어를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을까? 모두 쉽게 읽을 수 있다는 기대와,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간극이 우리가 하고 있는 거버넌스를 궁지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해文解의 사전적 정의 안에는 글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이해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쉬운 한글이 만든 역설로 인해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문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결코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과 하는 대화와 달리 글을 읽는 것은 상호작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글을 통해 얻게 된 지식이나 생각은 별다른 검증의 과정 없이 한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요소가 된다.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즉 세계관에 대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집단의 목표를 위한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빠른 시대변화로 인해 전근대와 근대, 그리고 탈근대가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며, 각각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의 차이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세대 갈등과 이념 갈등을 겪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대변한다는 정치인들이 정치라는 플랫폼을 공유하면서도 싸움만 반복하는 이유는 바로 서로의 세계관에 접점이 없기 때문이다. 


인구의 도시 집중으로 인해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농촌의 소멸은 2000년 초반 FTA로 인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행히 충북 옥천군 안남면은 2000년대 초반부터 중년층을 중심으로 농촌 살리기의 방법으로 공동체 운동을 추진하고 있었다.2) 농촌의 생존권 문제를 행정의 지원에만 기댈 수 없었던 안남면의 활동가들이 직접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것이다. 늑대가 이동을 할땐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가 앞이 아닌 뒤를 쫓는다. 늑대는 오랜 시행착오를 통해 그것이 무리를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름지기 공동체 운동을 위해선 가장 우월한 사람이 아닌 가장 소외된 사람에게 주목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안남면의 활동가들은 가장 먼저 어르신들에게 지역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이 누군인지를 물었다. 송윤섭 전 어머니학교 교장은 아무도 그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2) 2022년 제11회 공주대 사범대학-규슈대학 교육학부 Field Research 송윤섭 전 어머니학교 교장의 설명 중



안남면 주민들은 지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인 여성노인들이 간절히 바라고 가장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으로 ‘한글교육’을 생각했다. 어머니학교 참여주체 연령대는 60대부터 90대까지 고루 분포하는데, 이 세대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배움의 기회가 남성보다 적었다. 안남면사무소 2층에서 운영을 시작했고, 입학 당시 학생수는 50여명 이었다. 처음에는 안남면 주민자치 프로그램의 하나로 시작했고, 3~4년 후에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최하는 공모사업을 통해 운영했다. 기본 운영경비는 외부 지원을 통해 마련했지만, 교사 등 핵심 운영인력은 지역 주민들의 자원봉사로 유지돼 왔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20여명의 학생이 꾸준히 다니고 있으며, 교실도 지역 돌봄 체계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될 안남면복지회관으로 옮겨 운영하고 있다.

_옥천현장조사 설명자료 중



어머니들이 글을 모르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나 게으름이 아닌, 농촌이라는 지역과 시대가 가지고 있는 구조의 문제였다. 보통은 교육이라는 것이 지식을 쌓는 것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도시로부터 선발되어 농촌이라는 개천을 떠나는 것이었지만, 가부장제 속에서 살아왔던 농촌의 어머니들에게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사람 대접을 받는 것이었다. 송윤섭 전 어머니학교 교장은 한글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학교를 다님으로 해서 누릴 수 있는 다양한 주변 활동들을 통해 어머니들이 결핍되어 왔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느날 사춘기 아이로부터 폐드립 3종 셋트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지금까지 자기한테 해 준 게 도대체 뭐냐는 도발적 질문이었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당황스러워서 말문이 막히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 질문에 대한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부모로서 지금까지 자식한테 베푼 사랑은 자식이 원한 것이 아니었기에 내가 주었다고 쌩색을 내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정작 단 한 번도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송윤섭 전 어머니학교 교장은 어미니학교에 대한 설명을 마치며 “지역활동가들이 가장 지양해야 할 행동은 본인의 추측을 바탕으로 실천을 하는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대학교 때 얼핏 들었던 지도와 대중의 결합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도의 방향과 대중의 욕망이 서로 어긋나면 운동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공동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안에서 대중들의 구체적인 요구가 무엇인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 마을공동체란,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완벽하게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을지라도 비슷한 곳을 향할 때 의미를 갖는다. 쉬운 한글의 역설을 극복하기 위한 문해적 방법은 자신이 만지고 있는 코끼리의 한 부분이 전체가 아님을 인지하는 것이며, 나아가 다른 사람이 만진 코끼리에 대해 묻는 것이다. 비록 나이가 다르고, 경험이 다르고, 지식이 다르고, 성이 다르고, 또 신념이 다른 사람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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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희태 

평생학습e음  편집위원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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