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한다는 건…

2023-01-30

[칼럼] 채희태 편집위원




살아가면서 부딪히고 싶지 않지만, 가장 많이 부딪히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공부" 아닐까? 어렸을 적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에게서 지긋지긋하게 들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내뱉고 있거나, 차마 내뱉지 못한 채 머금고 있는 단어... 가끔 매우 익숙했던 단어가 불현듯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공부"라는 단어가 그렇다. 공부란 무엇이며, 공부를 왜 해야 하며, 그렇다면 도대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평소 글을 쓰는 방식과 다르게 이례적으로 두괄식으로 정의를 내리자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 지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에서 "지울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은 지구"라고 주장했다. 아렌트가 말하는 지구는 물리적 개념인 동시에 은유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가 물리적으로 지구와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을 존재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은유할 수 있는 건 - 현재로선 - 인간뿐이다. 지도와 지구가 물리적 쌍이라면, 생각은 은유와 심리적 쌍을 이룬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자신만의 “생각 지도”를 가지고 지구 안에서 복작거리며 살아간다. 


나는 오늘 저녁,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직접 운전을 하고 가느냐,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냐에 따라 내 생각 지도는 다르게 그려질 것이다. 운전을 하고 간다면 내 생각 지도는 내비게이션의 통제를 받을 것이고, 어느 도로를 만나느냐, 언제 차선을 바꾸느냐, 어떤 차들이 지나치느냐 등에 따라 각각 다른 생각 지도가 그려질 것이다. 만약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내 생각 지도에 영향을 미치는 대상이 차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면서 전혀 다른 생각 지도를 그려낼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적인 경험 또한 앞에서 언급했던 대로 "생각 지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므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의식적으로 생각 지도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나는 지금 학술지 게재를 목표로 논문 한 편을 준비하고 있다. 논문의 주제는 ‘프레이리(Paulo Freire)’가 1968년에 쓴 『페다고지』의 현재적 의미를 고찰하는 것이다. 교육을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프레이리를 입에 올리지만, 프레이리는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 지도에 따라 해체되기도 하고 재해석되기도 한다. 프레이리는 교육을 주제로 제법 멋진 생각 지도를 그려낸 사람이다. 하지만 반세기가 훌쩍 지나며 어느덧 프레이리의 생각 지도도 낡고 허름해졌다. 프레이리는 『페다고지』에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를 더 명확하게 이해하고, 미래를 더 지혜롭게 건설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충고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확실한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보다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못마땅함을 해소하기 위해 프레이리의 생각 지도를 만지작거린다. 교육을 “대화”로 표현하기도 했던 프레이리는 '일방적인 대화'로 이루어진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상대방을 길들이는 행위라고 비판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 지도를 자신의 생각 지도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프레이리의 생각 지도를 들이민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또한 끊임없이 내 생각 지도 안에서 프레이리를 해체해 그럴듯하게 재구성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논문을 쓰기 위해 『페다고지』를 읽으며 프레이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인 "프락시스"를 만났다. 그리고 "프락시스"를 통해 '플라톤'을 만나고, '아리스토텔레스'를 만나고, '헤겔', '마르크스',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 급기야 난해하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하이데거'와 한때 그의 연인이자 제자였던 '아렌트'까지 만나게 되었다. 내가 글의 처음에서 불현듯 "공부"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진 이유, 그리고 공부를 "자신만의 생각 지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터넷 서점에서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 전자책을 무려 18,900원에 결제하며 ‘프레이리’로 시작했던 내 생각 지도가 돌고 돌아 ‘아렌트’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2023년 계묘년이 밝았다.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 새로운 결심 몇 개쯤은 하기 마련이다. 새해 결심이 대놓고 공부는 아니더라도, “생각 지도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곧 공부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새해의 모든 결심은 곧 공부가 될 수 있다. 운동을 하면서도, 게임을 하면서도, 심지어 잠을 자면서도 인간의 생각 지도는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된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던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처럼, 지금, 이 시간 아렌트가 지울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했던 지구는 어제의 지구도, 내일의 지구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지도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변화의 수레바퀴 위에서 지구와 함께 굴러갈 수밖에 없다. 입시를 준비하는 것이 공부라는 이상한 공식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평생, 부담 없이 공부를 가까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공부는 곧 평생학습이다. 검은 토끼의 해, 나는 어떤 생각 지도를 그려나갈지 한 번쯤 낯설게 ‘의식’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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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희태 

평생학습e음  편집위원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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