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감 능력에 대하여
공감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위대한 능력 중 하나다. 만약 사피엔스에게 공감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빛나는 문명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사실 공감은 대단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약자의 생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약육강식의 자연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공감 능력을 키웠을 것이다.
사피엔스가 사자처럼 강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거나, 치타처럼 빨리 달리거나, 하다못해 원숭이처럼 능숙하게 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면 굳이 공감 능력 따위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하찮을 수도 있는 그 능력이 인류를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공감에 대한 필요는 인간의 얼굴을 진화시켰다. 애덤 윌킨스(Adam S. Wilkins)는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통해 인간의 얼굴에 숨겨져 있는 진화의 비밀을 추적했다.

*출처: 픽사베이
인간의 얼굴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행동”, 즉 움직임과 표현력 면에서도 다른 포유류와 확연히 다르다. 인간과 침팬지, 여우가 각각 자신들의 동료(동종)와 소통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세 동물 모두에서 얼굴의 표정 변화가 나타나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얼굴 표정이 여우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인간의 표정이 침팬지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얼굴 표정 변화는 대화를 할 때 특히 더 두드러진다. 두 사람이 일대일로, 다시 말해 문자 그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때 여우와 침팬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윌킨스, 2018.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을유문화사).
진화의 결과로 존재하는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처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진화는 생존에 보다 최적화된 종(種)이 그렇지 않은 종을 멸종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는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물리적으로 더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시켰고, 약 7만 년 전 있었던 인지 혁명은 분절화된 언어를 사용하게 된 돌연변이 인류가 그렇지 못한 인류를 멸종시킨 결과였다.
"더 나은 상태로 변하여 바뀐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진화’는 한마디로 결핍을 보완하는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필요가 있을까? 가끔 필자는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곤 한다. 완벽한 신이 만든 세상이 이따위라면, 그리하여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여지가 전혀 없다면, 인간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신보다 더 완벽한 존재일지 모른다.
지금도 인류는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진화의 과정은 생존이 아닌 이익에 최적화되어 있는 듯하다. 공감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특성이었을 수도 있고, 공감 능력 또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분화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대익은 공감을 내(內)집단 편애로 향하는 정서적 공감과 외(外)집단 포용으로 나아가는 인지적 공감으로 구분해 소개했다.

*출처: 저자 제공
인간 세계에는 잔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는 대개 그 수많은 전쟁의 막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공감과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닌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내집단인 ‘우리’에 대해서만 강한 정서적 공감이 일어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은 공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집단보다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일지 모른다(장대익, 2022.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생존의 필요에서 비롯된 사피엔스의 공감 능력은 현재 인간 사회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공감은 더 이상 결핍의 산물이 아니며, 이익과 그 이익을 축적해 쌓아 올린 권력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카르텔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공감, 그중에서도 인지적 공감 능력의 퇴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부쩍 자주 접하게 되었다.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인해 떠오르기 시작한 소위 “갑질”은 이익의 카르텔 안에서 정서적 공감만 진화시켜 온 재벌이 그렇지 않은 대상에게 인지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인지적 공감의 심각한 결여는 자신이 아닌 모든 대상에게 폭행을 가하는 “묻지마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 교육과 공감의 상관관계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교육은 공감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뇌신경 심리학자이자 <승자의 뇌>의 저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권력은 아무리 사소한 권력일지라도 뇌의 공감 능력을 쇠퇴시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바 있다. 안타깝게도 학력이 곧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에서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공감 능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즉, 교육의 의도와 무관하게 교육과 공감, 그중에서도 특히 인지적 공감 능력은 서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교육의 관심은 공감 능력이 아니라 학력을 통해 아이들을 수직적 계급 관계로 구조화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예전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위권 학생들이 상위권과 하위권 사이에서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균형추 역할을 했지만, 중간이 사라지고 상위권과 하위권만 존재하는 현재 학교에선 두 공감 능력 사이의 균형이 완벽히 무너져 내린 것 같다. BTS와 함께 한류 문화콘텐츠의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린 <오징어 게임>에 비견할 만하다는 <피라미드 게임>에는 학력이라는 권력이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기득권층의 열망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이 사라진 학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우리집 운전 기사 딸X 주제에 붙여 주니까 우정 같냐?
주체 파악해. 니가 왜 친구인 척이야, 너 그냥 내 시다바리야!
< 피라미드 게임 7화 중, 다연의 대사>

*출처: 피라미드 게임 드라마 포스터
흔히 직업 군인들이 사는 아파트에서는 군인의 계급에 따라 그 배우자나 아이들의 서열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로지 입시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는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교육을 통해 대물림하려는 수성전과 지금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는 공성전이 한창이다. 근대 초기, 교육을 통한 공성전의 대상은 실력과 무관하게 혈통을 통해 지위를 물려받는 귀족들이었다. 하지만 혈통 지위가 사라진 지금, 후천적 노력이 지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근대교육의 정신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서로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공감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을 계급을 둘러싼 수정전과 공성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다. 사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 무슨 계급이 있고, 권력이 있겠는가?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부모의 지위는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누리는 지위이다. 그래서 학교 이사장의 손녀인 백아린(장다아 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에서 게임을 진두지휘한다.
3. 평생교육의 반경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육은 곧 학령기 교육이다. 그래서 만화는 애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과 더불어, 공부 또한 학생들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학령기 교육의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평생교육이 학령기 교육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학령기 교육의 작동 원리가 그대로 평생교육에 적용되기도 한다. 입시에 최적화된 학령기 교육은 사회의 보편적 성장 보다 개인의 성공에 몰두하게 만든다. 교육을 성공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박할 수 있다. 동의한다. 개천에서 용을 만드는 교육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교육의 새로운 기능 중 하나이다. 공감이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듯, 교육 또한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성장에 기여할 때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정치고, 공무원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정이라면 누가 투표를 하고 법을 지키겠는가!
나라마다 평생교육이 시작된 여러 배경과 이유가 있겠지만, 선발 중심의 학령기 교육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은 시대마다 다른 쓸모를 가진다. 인류가 축적해 온 문명의 지식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학령기 교육은 이제 그 쓸모를 다했다. 학령기 교육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새로운 쓸모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공감에도 자아를 향하는 정서적 공감과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인지적 공감이 있듯이, 학령기 교육이 개인의 성장이라는 구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평생교육은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원심력을 발휘해 교육의 반경을 더욱 넓혀야 하지 않을까?
ㅡ
글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공감은 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위대한 능력 중 하나다. 만약 사피엔스에게 공감 능력이 없었다면 인류가 오늘날과 같은 빛나는 문명을 성취할 수 있었을까?
사실 공감은 대단한 능력이라기보다는 약자의 생존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사피엔스는 약육강식의 자연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에게 의지하며 공감 능력을 키웠을 것이다.
사피엔스가 사자처럼 강하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었거나, 치타처럼 빨리 달리거나, 하다못해 원숭이처럼 능숙하게 나무에 오를 수 있었다면 굳이 공감 능력 따위를 필요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하찮을 수도 있는 그 능력이 인류를 지구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공감에 대한 필요는 인간의 얼굴을 진화시켰다. 애덤 윌킨스(Adam S. Wilkins)는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를 통해 인간의 얼굴에 숨겨져 있는 진화의 비밀을 추적했다.
*출처: 픽사베이
인간의 얼굴은 생김새뿐만 아니라 “행동”, 즉 움직임과 표현력 면에서도 다른 포유류와 확연히 다르다. 인간과 침팬지, 여우가 각각 자신들의 동료(동종)와 소통하는 모습을 관찰해 보면 세 동물 모두에서 얼굴의 표정 변화가 나타나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얼굴 표정이 여우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인간의 표정이 침팬지보다 더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얼굴 표정 변화는 대화를 할 때 특히 더 두드러진다. 두 사람이 일대일로, 다시 말해 문자 그대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때 여우와 침팬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얼굴 표정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발생한다(윌킨스, 2018.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을유문화사).
진화의 결과로 존재하는 우리는 진화의 과정에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처절했을 가능성이 높다. 진화는 생존에 보다 최적화된 종(種)이 그렇지 않은 종을 멸종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피엔스는 특유의 공감 능력을 발휘해 물리적으로 더 강했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시켰고, 약 7만 년 전 있었던 인지 혁명은 분절화된 언어를 사용하게 된 돌연변이 인류가 그렇지 못한 인류를 멸종시킨 결과였다.
"더 나은 상태로 변하여 바뀐다"라는 사전적 의미가 있는 ‘진화’는 한마디로 결핍을 보완하는 과정이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굳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필요가 있을까? 가끔 필자는 인간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안도하곤 한다. 완벽한 신이 만든 세상이 이따위라면, 그리하여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여지가 전혀 없다면, 인간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인간은 부족하기 때문에 신보다 더 완벽한 존재일지 모른다.
지금도 인류는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에 놓여 있다. 하지만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진화의 과정은 생존이 아닌 이익에 최적화되어 있는 듯하다. 공감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특성이었을 수도 있고, 공감 능력 또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분화한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대익은 공감을 내(內)집단 편애로 향하는 정서적 공감과 외(外)집단 포용으로 나아가는 인지적 공감으로 구분해 소개했다.
*출처: 저자 제공
인간 세계에는 잔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평화는 대개 그 수많은 전쟁의 막간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도 공감과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지닌다.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내집단인 ‘우리’에 대해서만 강한 정서적 공감이 일어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쟁은 공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집단보다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일지 모른다(장대익, 2022. <공감의 반경>. 바다출판사).
생존의 필요에서 비롯된 사피엔스의 공감 능력은 현재 인간 사회에서 더 많은 이익을 챙기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공감은 더 이상 결핍의 산물이 아니며, 이익과 그 이익을 축적해 쌓아 올린 권력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카르텔이 되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공감, 그중에서도 인지적 공감 능력의 퇴화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 사고들을 부쩍 자주 접하게 되었다.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사건"으로 인해 떠오르기 시작한 소위 “갑질”은 이익의 카르텔 안에서 정서적 공감만 진화시켜 온 재벌이 그렇지 않은 대상에게 인지적으로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인지적 공감의 심각한 결여는 자신이 아닌 모든 대상에게 폭행을 가하는 “묻지마 범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교육은 공감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뇌신경 심리학자이자 <승자의 뇌>의 저자인 이안 로버트슨(Ian Robertson)은 권력은 아무리 사소한 권력일지라도 뇌의 공감 능력을 쇠퇴시킨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바 있다. 안타깝게도 학력이 곧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상에서 교육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갈수록 공감 능력은 퇴화할 수밖에 없다. 즉, 교육의 의도와 무관하게 교육과 공감, 그중에서도 특히 인지적 공감 능력은 서로 반비례의 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어쩌면 교육의 관심은 공감 능력이 아니라 학력을 통해 아이들을 수직적 계급 관계로 구조화하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에 적응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더 할 말은 없다. 예전에는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중위권 학생들이 상위권과 하위권 사이에서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의 균형추 역할을 했지만, 중간이 사라지고 상위권과 하위권만 존재하는 현재 학교에선 두 공감 능력 사이의 균형이 완벽히 무너져 내린 것 같다. BTS와 함께 한류 문화콘텐츠의 위력을 전 세계에 알린 <오징어 게임>에 비견할 만하다는 <피라미드 게임>에는 학력이라는 권력이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기득권층의 열망이 잘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지적 공감이 사라진 학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우리집 운전 기사 딸X 주제에 붙여 주니까 우정 같냐?
주체 파악해. 니가 왜 친구인 척이야, 너 그냥 내 시다바리야!
< 피라미드 게임 7화 중, 다연의 대사>
*출처: 피라미드 게임 드라마 포스터
흔히 직업 군인들이 사는 아파트에서는 군인의 계급에 따라 그 배우자나 아이들의 서열이 정해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오로지 입시를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는 교육 현장에서는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지위를, 교육을 통해 대물림하려는 수성전과 지금보다 더 높은 지위에 오르려고 하는 공성전이 한창이다. 근대 초기, 교육을 통한 공성전의 대상은 실력과 무관하게 혈통을 통해 지위를 물려받는 귀족들이었다. 하지만 혈통 지위가 사라진 지금, 후천적 노력이 지위를 결정해야 한다는 근대교육의 정신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을까? 서로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며 공감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할 아이들의 공감 능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을 계급을 둘러싼 수정전과 공성전으로 인식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다. 사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 무슨 계급이 있고, 권력이 있겠는가? 드라마 <피라미드 게임>에서 부모의 지위는 곧 아이들이 학교에서 누리는 지위이다. 그래서 학교 이사장의 손녀인 백아린(장다아 분)은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피라미드의 꼭짓점에서 게임을 진두지휘한다.
대한민국에서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교육은 곧 학령기 교육이다. 그래서 만화는 애들만 보는 것이라는 편견과 더불어, 공부 또한 학생들만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학령기 교육의 영향력이 워낙 압도적이다 보니 평생교육이 학령기 교육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학령기 교육의 작동 원리가 그대로 평생교육에 적용되기도 한다. 입시에 최적화된 학령기 교육은 사회의 보편적 성장 보다 개인의 성공에 몰두하게 만든다. 교육을 성공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반박할 수 있다. 동의한다. 개천에서 용을 만드는 교육은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교육의 새로운 기능 중 하나이다. 공감이 정서적 공감과 인지적 공감이라는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듯, 교육 또한 개인의 성공뿐만 아니라 사회의 보편적 성장에 기여할 때 시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정치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정치고, 공무원에게만 이익이 되는 행정이라면 누가 투표를 하고 법을 지키겠는가!
나라마다 평생교육이 시작된 여러 배경과 이유가 있겠지만, 선발 중심의 학령기 교육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교육은 시대마다 다른 쓸모를 가진다. 인류가 축적해 온 문명의 지식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학령기 교육은 이제 그 쓸모를 다했다. 학령기 교육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빠르게 팽창하고 있는 정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새로운 쓸모에 대한 고민과 합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공감에도 자아를 향하는 정서적 공감과 타자를 향해 나아가는 인지적 공감이 있듯이, 학령기 교육이 개인의 성장이라는 구심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면, 평생교육은 감당할 수 없는 정보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원심력을 발휘해 교육의 반경을 더욱 넓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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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