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에 평생학습은 ‘삶 그 자체’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행복한 경험을
쌓아가기를 바라는 평생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지난해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는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의 평생교육 활성화방안 연구’를 통해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이 겪는 재정적인 어려움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좀 더 활성화된 평생교육기관으로의 발전 방향과 관련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 평생학습이음 웹진은 ’22년 1월 기획의 하나로 평생교육 현장의 필요에 기반한 연구를 진행한 조영희 평생교육원장, 김광복 교사, 김혜진 교사, 이선희 교사, 오인록 그리고 문영란 행정계장을 온라인으로 만나 연구 추진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평생교육 시설 교사로서의 삶과 애환 등에 관해 묻고 답을 들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영희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희입니다.
김광복 교육·홍보부장을 맡고 있고, 한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혜진 문해교육부장을 맡고 있고, 사회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선희 교육·홍보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오인록 컴퓨터 등 정보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문영란 행정계장 문영란입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광복 학력인정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1961년에 김성복 선생님 자택에서 몇 명의 군인들과 불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학교입니다. 작년에 60주년을 맞이했고, 동문이 1만 7천여 명 정도 됩니다.
조영희 우리 학교는 성인 문해교육과 청소년 대안 교육 및 성인 중등교육을 담당해오면서 지역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61년 설립자이자 교장인 김성복 선생께서 ‘목포성심학원’으로 문해교육을 위해 설립하여, 1986년 학력인정 시설로 학교 교육의 틀을 마련하였고, 1998년 1년 3학기제 실험학교로 선정되어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지역사회의 교육 소외계층 대상 평생교육에 헌신해 온 설립자 김성복 선생, 공동 설립자인 고 오정례 선생의 강한 의지대로 재단법인 향토가 설립되었고, 학력인정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개인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에서 공익 법인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이 되었습니다. 2020년 5월 새롭게 부임하신 제2대 박형규 교장 선생이 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평생학습은 ‘삶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
교사로 활동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고, 교사로 꾸준히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혜진 올해로 본교에서 22년째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습자들이 ‘감사하다.’라는 문자나 편지를 통한 감사의 표현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봐요. 제가 예전에 선배 교사로부터 ‘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삶이 헛되지 않다.’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저를 지금까지 교사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김광복 저는 18년 됐습니다. 18년 동안 교사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가르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제가 만학도를 만나 저도 몰랐던 저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조영희 이 학교에 근무한 지는 10년이 되었고요. 더 오랜 기간 시민운동 영역에서 일했습니다.
이선희 2005년부터 교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인학습자가 처음 입학하실 때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상태로 입학을 하세요. 오랫동안 학력이 없는 상태로 사회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상처를 안고 입학하시기 때문에 처음 뵈었을 때 자존감 너무 낮고 자신 없어 안타까운데, 학년이 올라가서 졸업하고, 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 자존감 낮았던 얼굴이 자존감으로 점점 채워지고 자신감 있게 사회생활 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교사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문영란 지금은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문해교사로 17년 활동하였습니다. 한글도 모르시는 분들이 글을 깨우치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기뻐하는 것이 저의 보람이었습니다.
가장 보람이 있으셨던 기억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은 학생이 궁금합니다.
김혜진 강진에서 트럭을 타고 학교에 다니셨던 여학생이 생각나네요. 2017년도에 졸업하셨는데, 제가 고 1학년 때 담임이었어요. 현재 호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동양화 전공 석사과정에 다니시고 있는 김*희씨입니다. 그때도 호탕한 성격이셨어요. 카톡이 오니 반가워서 전화하니 ‘선생님은 소복한 눈 사이로 피어나는 노란 꽃 복수초 같아요. 어려움 속에서도 소신 있게 생활하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셨어요. 2020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한국화 특선을 받으셨고 개인 미술관을 갖는 게 꿈이라고 하시면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광주 문학춘추 등단 시인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이 63세인데 아직도 본교에 다니면서 만났던 고등학교 동창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세요. 그분을 보면서 평생학습은 ‘삶의 과정’이고,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저 또한 꿈을 꾸게 되었어요.
김광복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없어서 시도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특히, 제가 한문교사라서 학생들에게 한문자격증 취득을 독려하거든요. 2021년도에도 9명이 급수를 취득했는데요. 그 중에 82세에 졸업하면서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분이 2년제 대학에 진학해 84세에 졸업 후 다시 4년제 대학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하시는 것을 보며,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보람을 느꼈어요.
이선희 지금은 목포에 천사대교가 건설되어 4개 섬이 다 연결되어 차로 이동을 할 수 있지만, 2007년~8년경에는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고 등하교 했어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학생은 남편이 전업 농부셨어요. 목포로 중학교 유학을 오면서 야간 수업을 듣고 나면 목포 하숙집에서 주무시고, 다음 날 새벽 5시 첫 배로 집에 들어가 오전 내내 농사일을 하고, 3~ 4시쯤 철선을 타고 매일 등교를 하셨어요. 동네에서는 여유가 있어서 유학을 보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저 여편네 춤바람났네!’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소문이 돌았나 봐요.
졸업 무렵 ‘대학은 어떻게 하실 거냐?’ 여쭤보니, 본인은 ‘안 가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남편분이 ‘여기까지 했는데. 왜 그만두느냐?’라고 하신거죠. 그렇게 2년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셨어요. 동네에서 욕을 먹어가면서 6년간 학교에 다녔는데, 그분이 졸업할 무렵 동네에 요양센터와 한글학교가 생긴 거예요. 시골은 인력을 구할 때 지역에서 가능한 사람을 먼저 찾는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그분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한글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요양센터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으로 일 하면서 소위 투잡을 하게 되셨어요.
학생들에게 그분의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대학을 권유하면 학생들은 ‘선생님, 이 나이에 우리가 대학에 가서 뭐해요? 졸업장 가지고 뭐 할 것도 아닌데!’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럼 제가 이분의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내가 준비됐는데 기회를 안 잡는 것은 준비가 안 돼서 기회를 못 잡는 것하고 다르다. 꼭 공부라는 것이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어떤 기회가 나한테 올지 모를 일이다.’라고 말씀드려요.
마지막으로 한 분을 더 소개하고 싶어요. 올해 79세에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간 제 시어머님이세요. 어머님이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약간 우울해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가 ‘어머님, 뭐 해보고 싶으시냐?’라고 여쭤봤을 때, ‘공부하고 싶다. 네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어머님은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과정부터 시작하셔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시고 작년에 21학번으로 목포과학대학교 휴먼융합복지학과에 진학하셨어요.

“선생님, 이 나이에 우리가 대학에 가서 뭐해요?”
“공부라는 것이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어떤 기회가 나한테 올지 모를 일이에요.”
평생교육 현장에서 겪는 고충
활동하시면서 어떤 애환 또는 보람 같은 것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먼저, 어려웠던 점에 관해서요.
김혜진 제가 이번 연구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저희가 법인화 과정에서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이 학교가 현재 많은 어려움에 부딪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교사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 교사로서 교사의 목소리를 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저희의 과제이고 어려운 점입니다.
김광복 인간은 누구나 평생을 살면서 형성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법인화 과정에서 생긴 내부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학생들이 늦깎이 학생이 되어 공부하는 본래의 이유를 망각하고 편향된 프레임에 갇혀 행동하는 걸 볼 때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한 번쯤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이선희 다른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데요. 제게 가장 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교사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부분이에요. 재작년 전라남도 교육위원회에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셔서 법인화하는 과정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제가 도위원님들께 ‘저희는 교사인가요, 노동자인가요?’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일반 학교하고 똑같은 자격 요건이 필요해요. 즉,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근무를 할 수 있고, 조건이 같은데 저희는 지금 법인화가 되었음에도 법적 지위는 노동자거든요. 저희는 모두 다 여기서 근무하면서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러 상황을 접하면서 저희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이 와요. 그래서 저희가 연구 모임을 하면서도 이제 저희의 지위나 처우 개선에 관한 부분이 단순하게 급여에 관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희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부분 같이 포괄적으로 좀 논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가 지금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거든요. 급여 같은 경우는 이번 연구 모임을 하면서 보니까 ‘지방재정교부금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저희의 지위에 관한 부분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영란 문해교사로 활동할 때 본인 이름도 쓰지 못하시고 오신 분이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진학하시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보람이 있었어요. 글을 너무나도 깨우치고 싶으신데 한글을 못 깨우치고 눈물을 보이실 때는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이번 연구를 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선희 저희가 법인화가 된 이후에 굉장히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이 있어요. 즉, 저희가 법적 요건에 맞춰서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있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 평생교육 기관으로서 학교의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만들고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조영희 연구의 계기는 이선희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법인화가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법인화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까 재정상의 어려움이 있고, 그것에 대한 시각 차이로 많은 분란이 있었고 여기 계신 선생님들을 비롯한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충을 겪었어요.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은 근거법은 평생교육법이고, 교사는 교원에 대한 자격은 사립학교법을 준용하여 교사자격증을 요구하나 고용관계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근로자일 뿐이고, 학사 운영은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고, 세금은 지방세특레제한법의 적용을 받아요. 한 마디로, 하나의 존재를 놓고 끼어맞추는 거예요.
더 나아가, 법인이 되면 법인의 감독기관은 기초 단위의 교육지원청이고, 학교 교육의 관할은 교육지원청의 상위기관이 전남교육청이에요. 이러한 복잡한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거미줄같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그물망을 뚫고 오로지 가치 있는 일을 향해서 나아가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자, 법에 맞춰야 하는 것은 다 맞춰보자. 그러나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더 활성화되고 입지가 넓게 펼쳐지고, 여기에서 학습할 수 있는 현재의 학습자들과 함께 100세 평생교육시대에 걸맞게 또한 아직도 잠재적인 평생학습자를 위해서 우리가 갈 방향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었어요. 가치 있는 것들을 지향하기 위해서 지속적 운영을 위한 방법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학교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또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당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선생님들이 ‘이대로 우리가 그냥 주저앉는 것보다는 무언가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자!’라는 심정으로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요. 그리고 이런 것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스스로 느끼고 변화하면서 견뎌내야 할 부분을 견뎌내자는 취지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현장 교사로서 생각하는 평생교육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김혜진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 학교인가 시설인가, 그렇다면 그 안의 교사는 교사인가 근로자인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법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사로서 자부심을 계속 느껴야 하는 상황, 즉 평생학습 사회에서 방금 언급한 것들이 제도와 법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일차적인 문제라고 보고요. 다음으로, 우리 교사들도 스스로 변화해서 평생학습에 걸맞게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부가 평생교육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것 같아요.
이선희 평생교육과 관련해서 저희가 현장에 계속 있으면서 느끼는 부분은 교육청이나 시 ·도 평생교육진흥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에서 하는 것을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과가 나는 일들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일하다 보면 법적인 부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분에서 현장과 사무실 간에 좀 괴리가 있어 보여요. 예를 들면, 우리 학교 같은 경우도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지만,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부분이 적어요. 따라서 무조건 어떤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다가 보면 그런 것은 좀 어렵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기관은 일단 개인 기관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재정적인 지원 부분에서 1순위는 아니라고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공공도서관이나 시나 도에서 직접 관할하는 기관을 1순위 지원 기관으로 지정할 때, 사실 배우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경우가 많은데, 재정적인 부분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문영란 고령의 학습자들이 교육을 받기에 너무나 열악한 교육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뿐 아니라 교사들도 끊임없이 교육 방법이나 내용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며 또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종사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력인정평생교육시설이 학교인가 시설인가, 그렇다면 그 안의 교사는 교사인가 근로자인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제도와 법이 보장되지 않는 부분이 일차적인 문제라면, 핵심은 정부가 평생교육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것 같아요.”


평생교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고민하다
이 연구의 핵심적인 주장은 무엇인가요?
이선희 평생교육의 공공성 확보죠. 저희가 분명히 일반 사립학교나 공립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단지 차이점은 학습자가 성인 학습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관이 지금 학력 인정 기관이지 단순하게 취미활동을 위한 교양 검사를 하는 곳은 아니라고 본다면 일반 사립학교에 준하는 재정적인 지원과 법적 지위나 처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관에 요구하는 기준이나 자격 요건 등이 모두 일반 사립학교와 같지만, 실제 우리 기관과 교사들이 처한 현실은 사설 학원 수준이라 보는 거죠. 기본적인 학습자의 학습비와 교사의 최소 인건비 정도는 지원하고 있다고 교육청이 얘기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면 그 이상의 재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인데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는 현재 법인화된 상태라 우리 기관이 필요에 따라 학습자 정원을 더 늘려 모집해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한다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그러면 그 부족분에 대해서 교육청에서 보조가 되어야 한다거나 또 다른 방안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연구 모임을 통해서 내린 결론은 지방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의 개정, 즉 ‘평생교육 시설로 학교 법인이 된 평생교육 시설 학교도 지원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면 우리 기관의 역할에 충분한 재정적인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기 계시는 모든 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이선희 저희 학교에 오시는 분들이 본인이 과거에 공부하기 싫어서 안 한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알고 계신 것처럼 어려운 시절에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서 공부를 못해서 지금 배우고 계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도 국가에서 교육에 대해서 책임을 져주는 게 맞잖아요.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본인들이 사회 발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는데도 그분들이 지금에 와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한 것이죠. 국가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지금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 연구의 시작과 끝은 결국 ‘공정’한 처우에 대한 것입니다.
오인록 저희가 이 연구를 처음에 시작할 때 평생교육이 향후 계속 활성화될 것인가 여부에 관한 고민을 했었거든요. 결론은 평생교육이 활성화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러면서 법인화를 했던 것이거든요. 법인화된 이후 우리는 법인화가 됐으니까 개인 학교가 아니고, 또한 우리가 법인화를 최초로 한 것은 아니니까 먼저 했던 곳도 찾아가 보는 등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고 했는데요. 견학했던 학교 가운데 송암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 나눈 얘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평생교육시설을 「시설」로 보지 말고 「학교」로 보게 되면 현재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에 상당히 공감했어요. 그러니까 지방재정교부금법에서 일시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게 아니라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자체를 학교로 인정해 준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영희 저는 이번 연구가 ‘자기분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좋은 얘기는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땅에 발을 딛고 있잖아요. 저는 우리가 현재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 지점을 관장하는 법 제도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봤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두 번째로는 학력 보완 교육 영역에서 교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는 게 큰 의의라고 생각해요.
셋째, 연구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권위 있는 연구가 될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우리가 출발 자체를 굉장히 중요한 계기로 삼자, 그래서 연구를 함께 마쳤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일상 업무가 있어요. 수업도 해야죠. 그런 가운데서 연구한다는 것은 함께 모이는 시간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학을 완전히 반납하고 서로 어디로 찾아다닌 거예요. 교사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런 분들이 해왔다는 점에서 저도 연구팀의 일원이긴 하지만 정말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려운 시절에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서 공부를 못해서 지금 배우는 교육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을 져주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국가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지금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 연구의 시작과 끝은 결국 ‘공정’한 처우에 대한 것입니다.”
‘평생교육시설을 「시설」로 보지 말고 「학교」로 보게 되면 현재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평생학습이 중요한 ‘100세 시대’에 ‘나에게 있어 평생학습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영희 사회로부터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오인록 저는 그냥 ‘삶’ 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것이 평생학습인 것 같습니다. 늘 가까이 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선희 평생학습은 ‘자기 돌봄’ 입니다. 우리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이 시기에 계속 배워야 하잖아요. 키오스크 앞에서 어른들뿐만 아니라 저희도 ‘이건 뭐지?’ 하면서 한참 쳐다보고, 터치하는 것처럼요.
김혜진 저는 ‘반짝이는 호기심’ 이란 말을 적었어요. 그래야 좀 건강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평생학습은 ‘행복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김광복 나의 생활이며 나눔 이다.
문영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통로 이다.

interview 서헌주
edit 정유미
design 이해선
‘100세 시대’에 평생학습은 ‘삶 그 자체’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행복한 경험을
쌓아가기를 바라는 평생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전합니다.
지난해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서는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의 평생교육 활성화방안 연구’를 통해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이 겪는 재정적인 어려움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좀 더 활성화된 평생교육기관으로의 발전 방향과 관련 의미 있는 제안을 하였다. 평생학습이음 웹진은 ’22년 1월 기획의 하나로 평생교육 현장의 필요에 기반한 연구를 진행한 조영희 평생교육원장, 김광복 교사, 김혜진 교사, 이선희 교사, 오인록 그리고 문영란 행정계장을 온라인으로 만나 연구 추진의 배경과 의미 그리고 평생교육 시설 교사로서의 삶과 애환 등에 관해 묻고 답을 들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영희 평생교육원장을 맡고 있는 조영희입니다.
김광복 교육·홍보부장을 맡고 있고, 한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혜진 문해교육부장을 맡고 있고, 사회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선희 교육·홍보기획을 맡고 있습니다.
오인록 컴퓨터 등 정보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문영란 행정계장 문영란입니다.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광복 학력인정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1961년에 김성복 선생님 자택에서 몇 명의 군인들과 불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시작한 학교입니다. 작년에 60주년을 맞이했고, 동문이 1만 7천여 명 정도 됩니다.
조영희 우리 학교는 성인 문해교육과 청소년 대안 교육 및 성인 중등교육을 담당해오면서 지역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1961년 설립자이자 교장인 김성복 선생께서 ‘목포성심학원’으로 문해교육을 위해 설립하여, 1986년 학력인정 시설로 학교 교육의 틀을 마련하였고, 1998년 1년 3학기제 실험학교로 선정되어 200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하였습니다. 지역사회의 교육 소외계층 대상 평생교육에 헌신해 온 설립자 김성복 선생, 공동 설립자인 고 오정례 선생의 강한 의지대로 재단법인 향토가 설립되었고, 학력인정 목포제일정보중·고등학교는 개인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에서 공익 법인이 운영하는 평생교육시설이 되었습니다. 2020년 5월 새롭게 부임하신 제2대 박형규 교장 선생이 학교를 이끌고 있습니다.
평생학습은 ‘삶을 이끌어 나가는 과정’
교사로 활동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고, 교사로 꾸준히 활동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김혜진 올해로 본교에서 22년째 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학습자들이 ‘감사하다.’라는 문자나 편지를 통한 감사의 표현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봐요. 제가 예전에 선배 교사로부터 ‘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삶이 헛되지 않다.’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습니다. 그 부분이 저를 지금까지 교사로 이끈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김광복 저는 18년 됐습니다. 18년 동안 교사로서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가르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제가 만학도를 만나 저도 몰랐던 저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거든요.
조영희 이 학교에 근무한 지는 10년이 되었고요. 더 오랜 기간 시민운동 영역에서 일했습니다.
이선희 2005년부터 교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인학습자가 처음 입학하실 때는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상태로 입학을 하세요. 오랫동안 학력이 없는 상태로 사회활동을 하시면서 많은 상처를 안고 입학하시기 때문에 처음 뵈었을 때 자존감 너무 낮고 자신 없어 안타까운데, 학년이 올라가서 졸업하고, 또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모습을 보면, 처음 자존감 낮았던 얼굴이 자존감으로 점점 채워지고 자신감 있게 사회생활 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교사 생활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문영란 지금은 행정실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문해교사로 17년 활동하였습니다. 한글도 모르시는 분들이 글을 깨우치고 세상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기뻐하는 것이 저의 보람이었습니다.
가장 보람이 있으셨던 기억과 함께 가장 기억에 남은 학생이 궁금합니다.
김혜진 강진에서 트럭을 타고 학교에 다니셨던 여학생이 생각나네요. 2017년도에 졸업하셨는데, 제가 고 1학년 때 담임이었어요. 현재 호남대학교 대학원 미술학과 동양화 전공 석사과정에 다니시고 있는 김*희씨입니다. 그때도 호탕한 성격이셨어요. 카톡이 오니 반가워서 전화하니 ‘선생님은 소복한 눈 사이로 피어나는 노란 꽃 복수초 같아요. 어려움 속에서도 소신 있게 생활하신 선생님께 감사한다.’고 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셨어요. 2020년에 대한민국 미술대전 한국화 특선을 받으셨고 개인 미술관을 갖는 게 꿈이라고 하시면서 활동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광주 문학춘추 등단 시인이기도 합니다. 지금 나이 63세인데 아직도 본교에 다니면서 만났던 고등학교 동창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세요. 그분을 보면서 평생학습은 ‘삶의 과정’이고, ‘삶의 과정에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저 또한 꿈을 꾸게 되었어요.
김광복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자신이 없어서 시도를 못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특히, 제가 한문교사라서 학생들에게 한문자격증 취득을 독려하거든요. 2021년도에도 9명이 급수를 취득했는데요. 그 중에 82세에 졸업하면서 2급 자격증을 취득한 분이 2년제 대학에 진학해 84세에 졸업 후 다시 4년제 대학 3학년에 편입해서 공부하시는 것을 보며, 존경하는 마음과 함께 보람을 느꼈어요.
이선희 지금은 목포에 천사대교가 건설되어 4개 섬이 다 연결되어 차로 이동을 할 수 있지만, 2007년~8년경에는 다리가 없어서 배를 타고 등하교 했어요. 제가 소개하고 싶은 학생은 남편이 전업 농부셨어요. 목포로 중학교 유학을 오면서 야간 수업을 듣고 나면 목포 하숙집에서 주무시고, 다음 날 새벽 5시 첫 배로 집에 들어가 오전 내내 농사일을 하고, 3~ 4시쯤 철선을 타고 매일 등교를 하셨어요. 동네에서는 여유가 있어서 유학을 보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저 여편네 춤바람났네!’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소문이 돌았나 봐요.
졸업 무렵 ‘대학은 어떻게 하실 거냐?’ 여쭤보니, 본인은 ‘안 가겠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남편분이 ‘여기까지 했는데. 왜 그만두느냐?’라고 하신거죠. 그렇게 2년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셨어요. 동네에서 욕을 먹어가면서 6년간 학교에 다녔는데, 그분이 졸업할 무렵 동네에 요양센터와 한글학교가 생긴 거예요. 시골은 인력을 구할 때 지역에서 가능한 사람을 먼저 찾는데, 일할 수 있는 사람이 그분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렇게 한글학교의 선생님이 되고, 요양센터에 사회복지사 선생님으로 일 하면서 소위 투잡을 하게 되셨어요.
학생들에게 그분의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대학을 권유하면 학생들은 ‘선생님, 이 나이에 우리가 대학에 가서 뭐해요? 졸업장 가지고 뭐 할 것도 아닌데!’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럼 제가 이분의 사례를 말씀드리면서 ‘내가 준비됐는데 기회를 안 잡는 것은 준비가 안 돼서 기회를 못 잡는 것하고 다르다. 꼭 공부라는 것이 어디다 써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배우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내가 준비되어 있으면 어떤 기회가 나한테 올지 모를 일이다.’라고 말씀드려요.
마지막으로 한 분을 더 소개하고 싶어요. 올해 79세에 대학교 2학년에 올라간 제 시어머님이세요. 어머님이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약간 우울해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가 ‘어머님, 뭐 해보고 싶으시냐?’라고 여쭤봤을 때, ‘공부하고 싶다. 네가 있는 학교에 다니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어머님은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과정부터 시작하셔서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시고 작년에 21학번으로 목포과학대학교 휴먼융합복지학과에 진학하셨어요.
평생교육 현장에서 겪는 고충
활동하시면서 어떤 애환 또는 보람 같은 것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먼저, 어려웠던 점에 관해서요.
김혜진 제가 이번 연구 모임을 시작하게 된 것은 저희가 법인화 과정에서 학력 인정 평생교육 시설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 보람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이 학교가 현재 많은 어려움에 부딪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교사 노동조합을 만들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야겠다. 교사로서 교사의 목소리를 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저희의 과제이고 어려운 점입니다.
김광복 인간은 누구나 평생을 살면서 형성된 프레임을 바꾸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법인화 과정에서 생긴 내부갈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와중에 학생들이 늦깎이 학생이 되어 공부하는 본래의 이유를 망각하고 편향된 프레임에 갇혀 행동하는 걸 볼 때 참 힘들고 어렵습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런 행동을 하는가. 한 번쯤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어요.
이선희 다른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데요. 제게 가장 큰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이 교사의 지위와 처우에 관한 부분이에요. 재작년 전라남도 교육위원회에서 우리 학교를 방문하셔서 법인화하는 과정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눴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제가 도위원님들께 ‘저희는 교사인가요, 노동자인가요?’라고 말씀드렸거든요. 왜냐하면 우리 학교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일반 학교하고 똑같은 자격 요건이 필요해요. 즉,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야 근무를 할 수 있고, 조건이 같은데 저희는 지금 법인화가 되었음에도 법적 지위는 노동자거든요. 저희는 모두 다 여기서 근무하면서 ‘교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여러 상황을 접하면서 저희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이 와요. 그래서 저희가 연구 모임을 하면서도 이제 저희의 지위나 처우 개선에 관한 부분이 단순하게 급여에 관한 부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저희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부분 같이 포괄적으로 좀 논의가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희가 지금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어려운 문제거든요. 급여 같은 경우는 이번 연구 모임을 하면서 보니까 ‘지방재정교부금법이나 시행령 개정을 통해서 어느 정도 개선의 여지가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저희의 지위에 관한 부분은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영란 문해교사로 활동할 때 본인 이름도 쓰지 못하시고 오신 분이 학력인정 문해교육프로그램을 이수하고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까지 진학하시고 감사하다고 말씀하실 때 보람이 있었어요. 글을 너무나도 깨우치고 싶으신데 한글을 못 깨우치고 눈물을 보이실 때는 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을 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이번 연구를 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이선희 저희가 법인화가 된 이후에 굉장히 재정적인 어려움이 많이 있어요. 즉, 저희가 법적 요건에 맞춰서 법인화를 추진했지만, 현실적으로 재정적인 부분을 해결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이 있거든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 평생교육 기관으로서 학교의 역할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에서 모임을 만들고 연구를 하게 되었어요.
조영희 연구의 계기는 이선희 선생님이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법인화가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법인화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기준에 맞추다 보니까 재정상의 어려움이 있고, 그것에 대한 시각 차이로 많은 분란이 있었고 여기 계신 선생님들을 비롯한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충을 겪었어요. 학력인정 평생교육 시설은 근거법은 평생교육법이고, 교사는 교원에 대한 자격은 사립학교법을 준용하여 교사자격증을 요구하나 고용관계는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근로자일 뿐이고, 학사 운영은 초·중등교육법의 적용을 받고, 세금은 지방세특레제한법의 적용을 받아요. 한 마디로, 하나의 존재를 놓고 끼어맞추는 거예요.
더 나아가, 법인이 되면 법인의 감독기관은 기초 단위의 교육지원청이고, 학교 교육의 관할은 교육지원청의 상위기관이 전남교육청이에요. 이러한 복잡한 관계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거미줄같이 촘촘하게 박혀 있는 그물망을 뚫고 오로지 가치 있는 일을 향해서 나아가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자, 법에 맞춰야 하는 것은 다 맞춰보자. 그러나 거기에 멈추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가 더 활성화되고 입지가 넓게 펼쳐지고, 여기에서 학습할 수 있는 현재의 학습자들과 함께 100세 평생교육시대에 걸맞게 또한 아직도 잠재적인 평생학습자를 위해서 우리가 갈 방향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었어요. 가치 있는 것들을 지향하기 위해서 지속적 운영을 위한 방법도 찾아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렇다면, ‘다른 학교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또 다른 것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당면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선생님들이 ‘이대로 우리가 그냥 주저앉는 것보다는 무언가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자!’라는 심정으로 직접 발로 뛰어다녔어요. 그리고 이런 것을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우리가 스스로 느끼고 변화하면서 견뎌내야 할 부분을 견뎌내자는 취지에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현장 교사로서 생각하는 평생교육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시는지요.
김혜진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이 학교인가 시설인가, 그렇다면 그 안의 교사는 교사인가 근로자인가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렇게 법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교사로서 자부심을 계속 느껴야 하는 상황, 즉 평생학습 사회에서 방금 언급한 것들이 제도와 법으로 보장이 되지 않는 부분이 가장 일차적인 문제라고 보고요. 다음으로, 우리 교사들도 스스로 변화해서 평생학습에 걸맞게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봐요.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부가 평생교육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책임은 지지 않는 구조인 것 같아요.
이선희 평생교육과 관련해서 저희가 현장에 계속 있으면서 느끼는 부분은 교육청이나 시 ·도 평생교육진흥원,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에서 하는 것을 체감하기는 어렵습니다. 성과가 나는 일들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일하다 보면 법적인 부분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분에서 현장과 사무실 간에 좀 괴리가 있어 보여요. 예를 들면, 우리 학교 같은 경우도 하고 싶은 일은 정말 많지만, 자력으로 할 수 있는 재정적인 부분이 적어요. 따라서 무조건 어떤 재정적인 지원을 요청하다가 보면 그런 것은 좀 어렵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은 기관은 일단 개인 기관으로 분류가 되기 때문에 재정적인 지원 부분에서 1순위는 아니라고 느껴지거든요. 예를 들어 공공도서관이나 시나 도에서 직접 관할하는 기관을 1순위 지원 기관으로 지정할 때, 사실 배우는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좀 더 활발한 활동을 하고 계신 경우가 많은데, 재정적인 부분에서 너무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문영란 고령의 학습자들이 교육을 받기에 너무나 열악한 교육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뿐 아니라 교사들도 끊임없이 교육 방법이나 내용을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며 또한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종사자들의 처우가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생교육의 '공공성'과 '공정성'을 고민하다
이 연구의 핵심적인 주장은 무엇인가요?
이선희 평생교육의 공공성 확보죠. 저희가 분명히 일반 사립학교나 공립학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거든요. 단지 차이점은 학습자가 성인 학습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기관이 지금 학력 인정 기관이지 단순하게 취미활동을 위한 교양 검사를 하는 곳은 아니라고 본다면 일반 사립학교에 준하는 재정적인 지원과 법적 지위나 처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관에 요구하는 기준이나 자격 요건 등이 모두 일반 사립학교와 같지만, 실제 우리 기관과 교사들이 처한 현실은 사설 학원 수준이라 보는 거죠. 기본적인 학습자의 학습비와 교사의 최소 인건비 정도는 지원하고 있다고 교육청이 얘기할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보면 그 이상의 재정이 필요한 것이 현실인데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저희는 현재 법인화된 상태라 우리 기관이 필요에 따라 학습자 정원을 더 늘려 모집해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한다거나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거든요. 그러면 그 부족분에 대해서 교육청에서 보조가 되어야 한다거나 또 다른 방안이 필요하지만, 그것도 법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연구 모임을 통해서 내린 결론은 지방재정교부금법 시행령의 개정, 즉 ‘평생교육 시설로 학교 법인이 된 평생교육 시설 학교도 지원할 수 있다’라는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면 우리 기관의 역할에 충분한 재정적인 지원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여기 계시는 모든 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이선희 저희 학교에 오시는 분들이 본인이 과거에 공부하기 싫어서 안 한 사람은 거의 없거든요. 알고 계신 것처럼 어려운 시절에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서 공부를 못해서 지금 배우고 계시는 거잖아요. 그러면 이런 사람들도 국가에서 교육에 대해서 책임을 져주는 게 맞잖아요. 그게 공정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본인들이 사회 발전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했는데도 그분들이 지금에 와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한 것이죠. 국가에서 하지 못하는 일들을 지금 담당하고 있는 우리 교사들에 대해서도 국가가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희 연구의 시작과 끝은 결국 ‘공정’한 처우에 대한 것입니다.
오인록 저희가 이 연구를 처음에 시작할 때 평생교육이 향후 계속 활성화될 것인가 여부에 관한 고민을 했었거든요. 결론은 평생교육이 활성화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했고, 그러면서 법인화를 했던 것이거든요. 법인화된 이후 우리는 법인화가 됐으니까 개인 학교가 아니고, 또한 우리가 법인화를 최초로 한 것은 아니니까 먼저 했던 곳도 찾아가 보는 등의 노력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찾으려고 했는데요. 견학했던 학교 가운데 송암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 나눈 얘기가 인상 깊게 남아있어요. ‘평생교육시설을 「시설」로 보지 말고 「학교」로 보게 되면 현재에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의견에 상당히 공감했어요. 그러니까 지방재정교부금법에서 일시적인 해결방안을 찾는 게 아니라 학력인정 평생교육시설 자체를 학교로 인정해 준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한 번에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영희 저는 이번 연구가 ‘자기분석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여러 가지 좋은 얘기는 많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땅에 발을 딛고 있잖아요. 저는 우리가 현재 있는 지점이 어디인지, 이 지점을 관장하는 법 제도는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봤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두 번째로는 학력 보완 교육 영역에서 교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는 게 큰 의의라고 생각해요.
셋째, 연구 결과물이라는 측면에서 권위 있는 연구가 될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우리 스스로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러나 우리가 출발 자체를 굉장히 중요한 계기로 삼자, 그래서 연구를 함께 마쳤다는 것 그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분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일상 업무가 있어요. 수업도 해야죠. 그런 가운데서 연구한다는 것은 함께 모이는 시간을 잡는 것부터 시작해서 방학을 완전히 반납하고 서로 어디로 찾아다닌 거예요. 교사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런 분들이 해왔다는 점에서 저도 연구팀의 일원이긴 하지만 정말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생학습이 중요한 ‘100세 시대’에 ‘나에게 있어 평생학습이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영희 사회로부터 내가 받은 것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오인록 저는 그냥 ‘삶’ 이라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것이 평생학습인 것 같습니다. 늘 가까이 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서 ‘삶’이라고 생각해요.
이선희 평생학습은 ‘자기 돌봄’ 입니다. 우리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는 이 시기에 계속 배워야 하잖아요. 키오스크 앞에서 어른들뿐만 아니라 저희도 ‘이건 뭐지?’ 하면서 한참 쳐다보고, 터치하는 것처럼요.
김혜진 저는 ‘반짝이는 호기심’ 이란 말을 적었어요. 그래야 좀 건강하게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평생학습은 ‘행복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김광복 나의 생활이며 나눔 이다.
문영란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통로 이다.
interview 서헌주
edit 정유미
design 이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