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가정의 달 5월, 평생학습으로 즐기기 | 편집위원 채희태

2024-05-07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이 없듯, 1년 열두 달 모두 저마다의 특별한 의미를 지니겠지만, 그중에서도 5월은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달인 것 같다.

T. S. 엘리엇이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던 4월을 보내고 나면 계절의 여왕 5월이 찾아온다. 5월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면 6월엔 장마를 맞이해야 하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부터는 무더위와 맞서야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년이 훅 지나가 버린다.

5월엔 어린이날,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적당한 간격으로 기다리고 있으며, 음력 4월 8일이 생신인 부처님도 양력으로 5월 어느 날 태어나셨다. 개인적으로는 사랑하는 두 딸과 내 생일도 5월에 들어 있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땐 모든 기념일을 핑계 삼아 즐길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땐 적당한 날을 잡아 퉁 치기도 쉽다. 이런 모든 사정을 다 합쳐서 5월을 이르는 말이 있으니 바로 ‘가정의 달’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평생학습의 관점으로 가정의 달 5월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것인지 이야기해 보겠다. 이름하여 ‘가정의 달 5월, 평생학습으로 즐기기’다.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전혀 다른 시대 경험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같은 세대라 하더라도 과거와는 달라진 성 역할로 인해 부부 사이, 아들과 딸 사이에 이견과 갈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과거엔 3대, 4대가 같이 살아도 세대 간, 이성 간 갈등이 표면화되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그 이유는 가족 공동체가 농경이라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사실상 ‘노동 공동체’였기 때문이었다.

 

과거에 직업은 곧 가업이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농부가 되었고, 장인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그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상인의 자식으로 태어나면 크든 작든 상단을 물려받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비틀즈가 10대의 우상으로 떠오른 이유 중 하나는 부모님을 따라 공장을 다녔던 10대들이 비틀즈를 통해 다른 꿈을 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틀즈가 등장하기 전에는 10대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대 정체성에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요즘은 자녀가 부모의 가업을 물려받는 경우는 흔치 않다. 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녀의 심각한 갈등 중 하나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자녀의 직업이다. 과거 컴퓨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할 즈음, 타이피스트가 매우 유망한 직업이던 적이 있었다. 적지 않은 부모들이 자녀를 타이피스트로 키우기 위해 교육비를 투자했다. 정작 그 자녀들이 직업을 가질 나이가 되었을 땐 거의 모든 사람이 타이피스트가 되어 있었다. 그렇다면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 상업 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가족은 여전히 공동체일까? 달라진 세상과 무관하게 여전히 가족을 과거와 같은 개념의 공동체로 여긴다면 가부장의 권위만 관철될 뿐이다. 그래서 가족은 공동체인 동시에, 서로 다른 성과 세대가 수평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연대체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 생각 드러내기 

가족만큼 ‘이심전심(以心傳心)’에 기댄 ‘지레짐작’이 난무하는 집단이 또 있을까? 가족은 서로를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상에서 자기 생각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면 어느새 가족은 가장 소통이 불가능한 집단이 되어 버린다. 가족에게 자기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희도 : 전학 가고 싶다는 거 진심이야. 나 이대로 시시하게 펜싱 그만두고 싶지 않아. 계속 성적 안 나오고 못하고 있는 거 맞는데, 나 진짜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도와줘.

엄마 : 노력하는 게 맞아? (희도가 입었던 옷을 집어 던지며) 너 이 옷 입고 어디 갔어? 내 화장품도 손댔지? 화장하고 이 옷 입고 어딜 갔길래 술 냄새 담배 냄새 묻혀 왔어?

희도 : 나이트….

엄마 : 너 미쳤어? 응?

희도 : 미칠 만큼 간절했어. 나이트 가서 경찰한테 걸려서 강제 전학 당할 생각이었어.

엄마 : 어디서 말 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고 있어. 이게 노력하는 사람의 태도야? 나희도, 너 펜싱 시작할 때 천재 소리 들었어. 누구보다 우월한 시작이었어. 근데 지금 넌 어디 있니? 아직도 펜싱 신동, 거기 머물러 있잖아. 남들이 갈고닦고 나아가는 동안 너 혼자 제자리잖아!

희도 : 나도 그래서 답답하고 미치겠다고!

엄마 : 그럼 죽을 만큼 열심히 했어야지! 나이트나 들락거리고! 야, (만화책, 풀하우스를 찢어 던지며) 이딴 만화책이나 보고 있으면서 무슨 펜싱이고 전학이야!

희도 : (화를 내며) 엄마가 뭔데 풀하우스를 찢어? 엄마가 저 만화책보다 나은 게 있는 줄 알아? 엄마 내 경기 보러 한 번도 안 왔지? 나 경기 지고 집에 와서 혼자 속상할 때마다 나 위로해 줬던 거 엄마가 아니라 저 만화책이었어. 근데 무슨 자격으로 저걸 찢냐고! 뭐가 나아서! 엄마한테 오늘 전학 가고 싶다는 말 하려고 내가 무슨 용기를 냈는지 모르지? 강제 전학 가려고 나이트 갈 때보다 엄마랑 대화할 때 더 큰 용기가 필요하더라. 엄마는 나한테 그런 존재야.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

 

만화책을 찢어서 시원하게 날려 주시는 어머니.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전지적 시청자들을 알고 있다. 사고를 쳐서라도 전학을 가고 싶은 희도의 마음과 그 딸을 보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엄마의 마음을…. 부모와 자식은 지식의 차이, 경험의 차이, 시대 인식의 차이로 인해 늘 서로 다른 눈높이에서 대화한다. 그래서 늘 서로에 대한 절박함이 만나지 못하고 어긋난다. 그 가운데에는 언제나 사랑이라는 증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개입되어 있다. 1년 중 가족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5월, 가족 구성원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생각을 지레짐작만 하지 말고 편하게 드러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둘째, 생각 인정하기 

서로의 생각을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드러난 생각들을 인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정의 방향도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다. 존중이 위를 향하는 마음이라면, 인정은 주로 아래를 향한다. 가끔 존중은 하지 않고 인정을 바라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존중을 바라는 경우를 만나곤 한다.

 

존중과 인정은 사실 거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존중의 대가는 인정이고, 인정의 대가는 존중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가파른 언덕을 향해 달리는 것은 매우 버거운 일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녀가 있는 내리막으로 향하는 것은-마음만 먹을 수 있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잘못된 언어 습관으로 인해 다른 것(different)을 틀린 것(wrong)으로 착각해 온 우리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기가 가장 어렵긴 하다.

 

코로나로 인해 온 가족이 좁은 집 안에서 부대끼던 그 시절, 나는 딸이 좋아하는 아이돌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딸이 추천하는 만화, 영화, 드라마를 보며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십 대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열세 명이나 되는 세븐틴 멤버들의 이름을 모두 외우고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처음 만나는 십 대들과도 마음껏 수다를 떨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셋째, 생각 넓히기

가족 구성원이 자기 생각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고, 그 드러낸 생각을 인정할 수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 생각을 넓힐 수 있다. 부모가 자신이 경험한 어린 시절에 자녀를 묶어 두지 않고, 자녀도 부모를 향해 굳게 닫힌 마음을 열게 된다면, 부모와 자녀의 생각은 서로를 향해 넓어질 수 있지 않을까?

 

과거엔 주로 책을 통해서만 지식을 접하고, 생각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를 비롯한 온갖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어 있어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생각을 넓힐 수 있는 학습의 도구는 책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다양한 경험을 한 윗세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더라도 서로 다른 성적 경험을 하며 세상을 살아온 이성, 그리고 우리가 살았던 시대와는 전혀 딴판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랫세대와의 소통은 우리의 생각을 넓혀 주는 학습의 도구이자 대상이다. 가정의 달 5월, 그동안 대화 없이 지레짐작만 해 왔던 가족과 생각을 드러내고, 인정하고, 넓히는 평생학습을 실천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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