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갈지(之)자로 걸어야 하는 평생교육 | 편집위원 채희태

2024-07-02


횡단성(橫斷性, transversality)이라는 단어가 있다. 필자가 횡단성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2017년 11월, 프랑스 니오르에서 열렸던 사회적경제 연대 포럼에서였다. 포럼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하나같이 ‘전문성’보다 ‘횡단성’이 중요하다며 입을 모았다.



이 의미를 필자의 생각을 버무려 정리해 보았다. 모두가 전문성에만 지나치게 몰입한 결과 서로 다른 전문성 간의 연대와 협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반면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전문성과 전문성을 연결하는 횡단성이 필요하다는 의미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 후 필자는 마치 전도사처럼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횡단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필자와 말을 섞어본 사람이라면 횡단성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은 들어 보았으리라. 귀에 딱지가 앉은 사람도 몇 있을 것이고.


전문성과 횡단성 도식화

(출처: 채희태(2023). 프레이리의 ‘프락시스’와 『페다고지』의 현재적 의미에 관한 고찰, 110쪽)



그렇다면 횡단성이란 무엇일까? 중원문화에서 펴낸 『철학사전』에는 횡단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 놓았다.


고슴도치의 우화 - 추운 겨울 어느 날 고슴도치들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서로 몸을 밀착시켰다. 그러자 서로 찔려 아파서 다시 떨어졌다. 밀착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고슴도치들은 아프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가장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로를 감쌌다. - 로 예시되는 횡단성 개념은 수직적 위계와 수평적 칸막이를 깨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가타리는 60년대에 정신 병원 의사로서 활동하면서 의사 - 간호사 - 환자라는 제도적으로 결합된 3자 관계를 종래의 틀에서 해방하고 거기에 새로운 사회 변혁 모델을 찾으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횡단성’ 개념을 착상하였다.


그러나 횡단성 개념은 단순히 그러한 소극적인 의미를 갖기보다는 새로운 집단적인 표현 양식, 새로운 무의식적 집단 주체가 드러나는 장소 및 과정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특히 가타리는 그러한 횡단성을 가능케 하는 집단의 욕망에 대해 천착해 나간다(네이버 지식사전: 횡단성).


필자는 바야흐로 전문성의 시대가 저물고 횡단성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표 차이든, 두 배 차이든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정치의 세계에서 정치인은 오로지 당선만을, 철밥통이라고 불리는 직업적 행정가는 자신의 정년 사수를 최상의 가치로 여긴다. 만약 사회적 연대를 위해 각자가 생각하는 최선에서 한 발짝씩만 물러나 달라고 부탁하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들을 비난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그것이 이 시대 전문성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한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이라는 전문성은 어떨까? 교육은, 특히 학령기 교육은 미래(그것이 꿈이든, 직업이든)를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교육에서 과정은 사라지고 결과만 존재하게 된 것 같다.


그 이유는 입시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짜여 있는 대한민국 학령기 교육에서 대부분의 시험이 결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뿐만 아니라, 학교 시험에서도 정수가 아닌 소수점의 차이로 갈 수 있는 대학이 갈린다. 나아가 학문의 전당이라 불렸던 대학마저도 응용학문이 기초학문을 대체하며 직업 훈련소로 전락하고 있다.


일부 대학이 경쟁력 강화를 이유로 인문・과학 관련 학과를 잇달아 폐지하면서 기초학문이 수난을 겪고 있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2일 취업률, 학생 충원율 등을 평가해 대학 재정을 차등 지원하겠다고 밝혀 비인기 학과 위주의 대학 구조조정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김소연, 2008/5/8. “국립대마저 기초학문 '퇴학'”. 한겨레).


브라보이(Michael Burawoy)는 사회 전반의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루는 사회학(sociology)을 다양하게 분화하는 전문사회학(professional sociology)과 변별하기 위해 공공사회학(Public Sociolog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즉 사회학은 사회 전반의 문제를 구조적으로 살피는 공공사회학과 정치, 경제, 행정, 교육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사회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학의 학문 체계를 교육학에 적용해 보면 주로 학령기를 대상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을 공공교육(Public Education)이라고 명명하기는 다소 민망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는 계층 구조 속에서, 보다 높은 지위를 점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는 학령기 교육은 이미 오래전 사교육 논리에 점령당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교육과정, 교육공학, 교육행정 등이 학령기 교육을 공공의 교육으로 포장하려 해도 갈수록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교육학에도 교육의 관점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교육사회학이 있기는 하지만, 사회학의 관점에서 교육의 쓸모를 살피는 교육사회학과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회학 관점의 교육사회학이 단단한 교육체계를 향해 공성전을 펼치고 있다면, 교육학 관점의 교육사회학은 교육이 가진 논리를 동원해 교육체계를 지키기 위한 수성전에 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지한 필자의 성급한 일반화일 수도 있지만, 교육을 어디에서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의 따라 관점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평생교육은 그 대상이 학령기뿐만 아니라 전체 연령으로 확장된다. 형식에 있어서도 무형식, 비형식 교육을 아우른다. 교육의 대상이 전체 연령이고, 입시에서 벗어나 있는 평생교육은 위에서 언급한 교육의 전문성에서 다소 자유로운 편이다. 정해진 틀이 없고, 단단한 전문성으로부터 자유롭다면 평생교육은 차안대를 차고 무작정 앞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경주마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서 평생교육은 전문성과 전문성 사이에 횡단성이라는 다리를 놓고, 느긋하게 주변을 살피며 갈지(之)자로 걸을 필요가 있다.


Post Scrip.

개인 사정으로 칼럼을 연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공감해 주신 독자들께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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