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었던 열대야로 힘들었던 이번 여름의 끝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잘 이겨낸 우리에게 시원한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울의 고궁 산책은 외국인들만의 인기 코스가 아니에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매력은 바로 고궁에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길 위의 평생학습’의 장소는 창경궁입니다. 찬바람이 살랑이는 저녁, 야간개방으로 열려있는 창경궁에 함께 가보실까요?
서울의 5대 궁궐 중 경복궁과 창덕궁은 상시 야간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덕수궁과 창경궁에서는 상시 야간개방이 되어있습니다.
운영시간 9시 ~ 21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1,000원
자료 출처 :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R702000000.do
야간에 개방되는 창경궁은 특히 춘당지가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 빛납니다. 낮 시간에는 창경궁 해설사, 우리궁궐지킴이, 궁궐길라잡이 등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인 해설 투어가 이루어지지만, 야간에는 공식적인 해설 투어가 제공되지 않아요.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여러 곳에서 해설 신청을 받고 있답니다. 혼자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역사적 의미를 들으며 관람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기에, 저는 야행 해설 프로그램에 신청해 함께 돌아보았어요.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후 1483년,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명명했죠.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연결된 동궐(東闕)로,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이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고, 궁궐이 아닌 공원으로 전락하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창경궁은 다른 궁궐들이 남향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있는 옥천교는 옛날의 모습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라고 하네요.
명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리던 장소입니다. 명정전 앞뜰에서 오른쪽에는 문반, 왼쪽에는 무반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리고 가운데 난 길은 임금님만 다닐 수 있는 어도였죠. 어도를 잘못 밟으면 태형 80대를 맞게 된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궁둥이가 불타는 것 같네요!
야간기행의 매력은 해설을 들으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고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밤이 되어 고궁의 조명이 켜지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고궁에 가보셨다면 기와 위에 작은 조각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보셨을 거예요. 이들을 ‘잡상’이라고 부르는데, 잡상이 많을수록 건물의 품격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잡상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경복궁의 경회루랍니다.
왕의 자리 뒤쪽에는 항상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죠. 사극에서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그렇죠?
천장을 올려다보면 봉황이 장식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최근에 기둥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왕이 있는 중요한 공간의 기둥은 둥근 모양이라는 거예요. 다른 건물들을 살펴보니, 거기엔 둥근 기둥이 없더라고요. 해설을 들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답니다. 이게 바로 길 위의 평생학습 아니겠어요?
궁궐 건물의 위쪽을 보면 그물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새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뱀이 올라오면 잡아서 죽여야 하지만, 궁에서는 절대 살생을 하면 안 된다고 해요. 궁에서 죽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왕과 왕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인이나 신하들은 죽을 때가 되면 외부로 내보내졌다고 하네요.
공부만 하지 마시고, 야경 속 궁궐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겨보세요. 마치 수채화 물감을 옅게 탄 듯한 느낌이지 않나요? 저 너머는 창덕궁이고, 이곳은 창경궁입니다.
배움 하나 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장례식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음이 없었으니, 시체를 어떻게 보관했을까요? 바로 미역을 이용해 수분을 흡수하여 5개월 동안 시체를 보관했다고 합니다.
고궁에서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을 직접 체험했어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서서히 붉어졌다가 보라빛으로 찬란하게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둠과 함께 찾아온 고궁의 불빛에 의지하여 이제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지나, 예쁜 연못을 보러 가볼 거예요.
춘당지는 야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면서 은근함의 미학을 극대화해 주죠. 물에 비친 모습이 더욱 기품을 더해줍니다.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야간에 보니 전면이 유리라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주네요.
창덕궁은 상시 야간개방되므로 언제든지 방문하실 수 있고, 경복궁 별빛야행은 9월 11일부터 10월 6일까지, 창덕궁 달빛기행은 9월 12일부터 11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멋진 가을밤을 고궁 야간 기행과 함께 즐겨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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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위원 박진숙
유난히 길었던 열대야로 힘들었던 이번 여름의 끝이 드디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더운 여름을 잘 이겨낸 우리에게 시원한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울의 고궁 산책은 외국인들만의 인기 코스가 아니에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의 매력은 바로 고궁에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길 위의 평생학습’의 장소는 창경궁입니다. 찬바람이 살랑이는 저녁, 야간개방으로 열려있는 창경궁에 함께 가보실까요?
서울의 5대 궁궐 중 경복궁과 창덕궁은 상시 야간개방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덕수궁과 창경궁에서는 상시 야간개방이 되어있습니다.
운영시간 9시 ~ 21일까지(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요금 1,000원
자료 출처 : https://royal.khs.go.kr/ROYAL/contents/R702000000.do
야간에 개방되는 창경궁은 특히 춘당지가 있어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 빛납니다. 낮 시간에는 창경궁 해설사, 우리궁궐지킴이, 궁궐길라잡이 등 여러 기관에서 공식적인 해설 투어가 이루어지지만, 야간에는 공식적인 해설 투어가 제공되지 않아요. 하지만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여러 곳에서 해설 신청을 받고 있답니다. 혼자 둘러보는 것도 좋지만, 역사적 의미를 들으며 관람하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기에, 저는 야행 해설 프로그램에 신청해 함께 돌아보았어요.
창경궁은 원래 1418년 세종이 상왕 태종을 위해 지은 수강궁(壽康宮)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이후 1483년, 성종이 세 명의 대비(세조의 왕비 정희왕후, 덕종의 왕비 소혜왕후, 예종의 왕비 안순왕후)를 위해 수강궁을 크게 확장하고, 궁의 이름을 창경궁이라 명명했죠.
창경궁은 창덕궁과 경계 없이 연결된 동궐(東闕)로,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1911년,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이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고, 궁궐이 아닌 공원으로 전락하며 많은 부분이 훼손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광복 후, 1983년에 다시 창경궁으로 명칭을 회복하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창경궁은 다른 궁궐들이 남향을 바라보는 것과 달리, 정문과 정전이 동향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있는 옥천교는 옛날의 모습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이라고 하네요.
명정전은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과거시험, 궁중 연회 등 중요한 국가 행사가 열리던 장소입니다. 명정전 앞뜰에서 오른쪽에는 문반, 왼쪽에는 무반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이 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렀답니다. 그리고 가운데 난 길은 임금님만 다닐 수 있는 어도였죠. 어도를 잘못 밟으면 태형 80대를 맞게 된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궁둥이가 불타는 것 같네요!
야간기행의 매력은 해설을 들으며 붉은 기운이 감도는 아름다운 고궁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밤이 되어 고궁의 조명이 켜지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답니다.
고궁에 가보셨다면 기와 위에 작은 조각들이 줄지어 있는 걸 보셨을 거예요. 이들을 ‘잡상’이라고 부르는데, 잡상이 많을수록 건물의 품격이 높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퀴즈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잡상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경복궁의 경회루랍니다.
왕의 자리 뒤쪽에는 항상 일월오봉도가 걸려 있죠. 사극에서 많이들 보셨을 거예요, 그렇죠?
천장을 올려다보면 봉황이 장식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띕니다. 그런데 최근에 기둥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왕이 있는 중요한 공간의 기둥은 둥근 모양이라는 거예요. 다른 건물들을 살펴보니, 거기엔 둥근 기둥이 없더라고요. 해설을 들으면서 새로운 지식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답니다. 이게 바로 길 위의 평생학습 아니겠어요?
궁궐 건물의 위쪽을 보면 그물이 쳐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새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뱀이 올라오면 잡아서 죽여야 하지만, 궁에서는 절대 살생을 하면 안 된다고 해요. 궁에서 죽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왕과 왕비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인이나 신하들은 죽을 때가 되면 외부로 내보내졌다고 하네요.
공부만 하지 마시고, 야경 속 궁궐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겨보세요. 마치 수채화 물감을 옅게 탄 듯한 느낌이지 않나요? 저 너머는 창덕궁이고, 이곳은 창경궁입니다.
배움 하나 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장례식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얼음이 없었으니, 시체를 어떻게 보관했을까요? 바로 미역을 이용해 수분을 흡수하여 5개월 동안 시체를 보관했다고 합니다.
고궁에서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을 직접 체험했어요.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서서히 붉어졌다가 보라빛으로 찬란하게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둠과 함께 찾아온 고궁의 불빛에 의지하여 이제 나무가 우거진 정원을 지나, 예쁜 연못을 보러 가볼 거예요.
춘당지는 야간에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치면서 은근함의 미학을 극대화해 주죠. 물에 비친 모습이 더욱 기품을 더해줍니다.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로,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싸고 있습니다.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2004년에는 국가등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야간에 보니 전면이 유리라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주네요.
창덕궁은 상시 야간개방되므로 언제든지 방문하실 수 있고, 경복궁 별빛야행은 9월 11일부터 10월 6일까지, 창덕궁 달빛기행은 9월 12일부터 11월 10일까지 진행됩니다. 멋진 가을밤을 고궁 야간 기행과 함께 즐겨보시는 건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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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편집위원 박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