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평생학습]눈 내리는 아프리카, 모로코 | 편집위원 박진숙

2026-03-03


여행이 곧 배움이 되는 순간

 

40c32cad322bf.jpg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땅 아프리카 모로코. 신비로움이 가득한 그곳을 다녀왔습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은 성인 학습 체계 구축과 국제 교육협력 확대를 위해 여러 나라와 교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2023년 6월, 모로코와 평생교육 협력 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국제 행사 공동 개최 협력, 경험과 정보 공유, 인적 교류 활성화, 그리고 지속적인 파트너십 구축입니다.

이 협약은 단순한 행정적 합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국가로, 성인교육과 평생학습 확산이 더욱 필요한 지역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 협약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학습은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저는 그 협약의 대상국인 모로코를 직접 여행하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이 나라는 어떤 교육적 가능성을 품고 있을까?

그리고 여행은 또 다른 형태의 평생교육이 아닐까?


지리적 학습: 스페인에서 배 타고 건너가는 아프리카

1cccc5cec3858.jpg

89cd2839f067d.jpg

모로코는 아프리카 대륙에 속해 있지만, 유럽과 놀랄 만큼 가깝습니다. 스페인 남단에서 배를 타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면 1시간 남짓만에 도착합니다.

배 위에서 여권에 도장을 찍으며 국경을 넘는 순간, ‘지리’는 더 이상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경험이 됩니다.

f7b876619a6ab.jpg

78183699d04c3.jpg

이 지리적 특성은 기후에서도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아프리카의 기후를 생각할 때 사막을 떠올리지만, 모로코의 북부와 서부는 지중해성 기후를 띱니다. 여행 중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말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요즘은 올리브가 잘 열려요.”

 

올리브는 원래 사막 기후의 작물이 아닙니다. 겨울은 온화하고, 여름은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지요. 모로코는 전통적으로 올리브 산지였고, 지금도 세계적인 올리브 생산국 중 하나입니다. 다만 최근에는 기후변화로 강수 패턴이 달라지고, 가뭄이 잦아지며, 고온 현상도 심화되는 등, 농업 전반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로코의 올리브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지리·기후·기후변화라는 현대적 과제를 한 번에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재’가 됩니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여행은 자연환경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는 현장 학습입니다. 지리적 경계, 기후대의 다양성, 그리고 변화하는 지구 환경까지.

 

모로코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아프리카라는 단어 하나로는 설명할 수 없는 나라”라고요.


기후를 통해 배우는 다양성

569226be6df8b.png

e292b92d41896.jpg

“아프리카인데 눈이 내립니다.”

모로코에는 겨울철 실제로 눈이 내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아틀라스 산맥은 고도가 높아 스키장이 운영되기도 합니다. 이곳에 서면 ‘아프리카 = 사막과 더위’라는 고정관념이 자연스럽게 깨집니다.

저는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를 함께 여행했었는데, 믿기 어렵겠지만 가장 춥게 느껴진 곳이 바로 모로코였습니다. 따뜻한 패딩 없이 다니기 어려울 정도였지요.


평생교육의 가치는 ‘모르는 것을 아는 것’만이 아닙니다.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잡는 힘, 곧 편견을 수정하는 능력도 중요한 핵심입니다. 모로코의 기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배움은 기존 인식을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요.


도시가 곧 교과서가 되다

1) 쉐프샤우엔 – 색채의 교육학

쉐프샤우엔은 ‘블루시티’로 불립니다. 도시 전체가 푸른 색조로 물들어 있지요. 이곳의 파란 건물은 단순한 관광 요소가 아니라 문화적 정체성의 상징입니다. 유대인 공동체의 역사, 더위를 낮추는 기능적 색채, 도시 브랜딩전략까지. 한 도시의 색이 그 자체로 문화사 수업이 됩니다.

07fc46c48a215.jpg

13e448efe509a.jpg


2) 페스 – 전통 기술의 살아있는 교실

03845b7a2821a.jpg

351aa43aafed9.jpg

8941322a51d37.jpeg

페스의 메디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로형 중세 구시가지입니다. 미로 같은 골목과 전통 가죽 염색 공정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장인 교육의 현장입니다. 도제식 교육, 세대 간 기술 전수, 전통 산업과 지역경제의 연결. 기계화된 교육 시스템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곳의 학습은 말 그대로 ‘몸으로 익히는 교육’입니다.


3) 카사블랑카 – 종교와 건축이 만나는 공간

e36aa3c687f24.jpg

우리에게는 영화 제목 덕분에 익숙한 카사블랑카. 하산 2세 모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모스크입니다. 대서양을 향해 서 있는 이 거대한 건축물은 종교 교육, 공동체 교육, 역사 교육이 겹쳐지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이슬람 건축의 미학, 공동체 중심 문화, 그리고 신앙을 통한 가치 교육. 건축은 이곳에서 하나의 교과서가 됩니다.

1a234f51e78ed.jpg


식탁 위의 평생교육

- 넙적한 빵과 허브차에서 배우는 공동체 문화

746cb4ef811c5.jpg78eb9fcb5086f.jpgcaf1ec0e14f3c.jpg


여행에서 음식은 단순한 미각 경험이 아닙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기후, 종교와 공동체 문화를 가장 일상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재입니다.

모로코에서 만난 넙적한 빈대떡 같은 빵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전통 팬케이크인 '므세멘(Msemen)'입니다. 겹겹이 접어 구워내는 이 빵은 아침 식사로도, 간식으로도, 차와 함께 곁들이는 음식으로도 즐깁니다. 손으로 직접 반죽하고, 접고, 굽는 과정 자체가 도제식 전통 기술의 전수와 맞닿아 있습니다. 주방은 또 하나의 생활 교육 현장이 됩니다.

식사의 마무리는 늘 특별한 차 한 잔이었습니다. 강한 녹차에 신선한 민트잎을 듬뿍 넣어 따르는 '아타이(Moroccan mint tea)'. 높은 위치에서 잔으로 따르는 모습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거품을 살리고 향을 퍼뜨리는 전통 방식입니다.

이 차는 ‘음료’라기보다 ‘환대의 상징’입니다. 손님이 오면 차를 내고, 차를 나누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며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말과 차가 오가는 시간 속에서 문화가 전수되는 것, 그 자체가 관계 중심의 학습입니다.

 

몸에 입는 문화, 전통의상이라는 교육

eb9dd94f0c7fc.jpg

88caf1d46bb87.jpg

여행 중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모로코 사람들의 전통의상이었습니다. 우리의 한복처럼, 그들의 옷에도 기후와 종교, 역사와 정체성이 담겨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전통의상은 길고 넉넉한 후드가 달린 겉옷, '젤라바(Djellaba)'입니다.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긴 로브 형태의 이 옷은 사막 기후에 적응한 실용적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강한 햇빛을 가리는 후드, 통풍이 잘되는 넉넉한 실루엣, 낮과 밤의 기온차를 견디는 두께감까지. 옷 자체가 환경에 대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또 공식 행사나 결혼식에서는 화려한 장식과 자수가 더해진 '카프탄(Kaftan)'을 입습니다. 의상은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신분과 상황, 공동체 소속을 드러내는 문화적 언어입니다.

평생교육의 관점에서 본다면, 전통의상은 비언어적 학습 자료입니다. 우리는 교과서로 역사를 배우지만, 그들은 옷으로 역사와 종교적 정체성을 입고 살아갑니다. 여행자는 그 옷을 바라보는 순간, ‘다름’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배움에 닿게 됩니다.

 

여행은 가장 오래된 평생교육 방식이다

67815cb35622a.jpg

3d67f2e05b743.jpg

모로코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습니다. 지리적 경계를 새롭게 인식하고, 기후에 대한 고정관념을 수정하며, 전통 기술의 교육적 가치를 확인하고, 종교와 공동체 문화를 이해하는 일. 이 모든 배움이 교실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모로코의 교육협력이 제도적 차원의 연결이라면, 여행은 개인 차원의 연결입니다. 평생교육은 나이를 초월합니다. 그리고 여행은 그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된 실천 방식입니다.

모로코는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배움은 교과서가 아니라 경험 속에 있다.”



글 편집위원 박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