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코로나가 남긴 평생교육의 과제 | 편집위원 채희태

2023-06-06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지 1년 남짓 지난 지금, 코로나가 남긴 평생교육의 과제를 논하는 것은 때늦은 뒷북일까, 아니면 조급한 설레발일까? 일상이 온통 코로나였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적응을 한 탓인지 코로나로부터 벗어난 일상이 매우 익숙하게 느껴진다. 


적응 능력은 인간에게 내린 축복이자 저주이다. 인간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탁월한 적응 능력을 지녔다.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는 다른 동물에 비해 추위에 약한 인간은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식물의 줄기를 엮거나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인간은 치타처럼 빨리 달릴 수도 없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으로 가장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치타가 아닌 인간이다. 인간은 새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늘을 넘어 우주를 향해 나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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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인간은 적응 능력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기도 한다.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고 나면, 이제 그 적응 능력은 변화에 저항하기 위해 작동한다. 인류가 성취해 온 문명으로 인해 물리적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심리적 변화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은 갈수록 퇴화하여 끝도 알 수 없는 바닥을 향해 돌진 중이다.

물리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은 죽임을 당하지만, 심리적 변화를 이기지 못한 인간은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이유는 갈수록 사소해지고 있다. 자존감이 낮아, 성적이 떨어져, 남들의 비난이 무섭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과거에는 흔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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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코로나의 공포가 완벽하게 우리의 기억을 떠나기 전에,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강제로 멈췄던 세상에서 했던 소중한 성찰이 망각에 적응하기 전에, 그것이 뒷북이든 설레발이든 코로나가 남긴 평생교육의 과제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평생교육이 고민해야 하는 과제는 두 가지다. 현실은 너무 복잡하고, 그 복잡한 현실에 발을 담그면 자기도 모르게 휘말릴 수 있으니, 평생교육만이라도 달려 나가는 현실 뒤에 잠시 멈춰 서서 과거를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코로나가 인류에겐 그저 귀찮은 바이러스였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지구 입장에선 코로나가 백신이었을 수도 있다. <어벤저스>에서 우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가장 위협적인 인류의 절반을 랜덤하게 날려버린 ‘타노스'처럼, 코로나는 지구 생태계를 파괴해 온 인류의 개체수 조정을 시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21세기라는 시간을 공유하며 살고 있는 70억 인류는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신자유주의를 타고 세계화 바람이 거세게 불기는 했지만, - 사실 코로나가 과거의 여느 전염병보다 더 위협적이었던 이유는 코로나가 그만큼 치명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 세계를 완벽하게 동일한 환경으로 만들지는 못했다. 오히려 세계화는 다양한 행복의 기준을 해체해 선진국의 그것에 맞추어 상대적 불행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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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건물 전경

2010년, 영국 런던에 자리 잡은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은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하며 조사 대상 143개 국가 중에서 부탄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GNI)이 2,000달러도 되지 못했던 가난한 나라 부탄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결과가 나왔으니 한국 언론은 물론 해외 언론도 깜짝 놀라 기사를 쏟아냈다. 그 여파로 한때 부탄은 한국 공무원들의 해외 연수지로 각광을 받기도 했다. 혹자는 부탄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세계화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2021년 세계화에 노출된 부탄의 행복지수는 95위로 급락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는 코로나가 터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월 스트리트의 금융 자본가보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찮은 일을 해 왔던 돌봄과 배달 노동자들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코로나는 우리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고 걸었던 그 길이 인류 공멸의 길이였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코로나가 평생교육에게 남긴 첫 번째 과제는 인류가 걸어왔던 그 끔찍한 길에 대해 성찰하고, 코로나가 남긴 교훈을 오래오래 되새기는 것이다.


사실 필자는 개인적으로도 코로나가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았다. 뿐만아니라 근대 이후 앞만 보고 달려온 인류를 잠깐 멈출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코로나가 당분간 더 지속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필자가 코로나로 인해 무슨 금전적 이익을 보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정되어 있었던 강의가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바람에 애지중지하던 기타를 팔아야 했고, 깨지 말아야 할 보험을 해지하면서 버텼다. 


만약 어른과 아이가 선착순으로 빵을 먹어야 하는 사회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 아이들은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종족의 유지나 번영을 위해서 그런 선택을 할 사회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쩐다? 이미 우리는 그런 바보 같은 선택에 최선을 다해 동참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우리가 다시 시동을 걸고 있는 세계화가 더 많은 빵을 얻기 위해 국가들끼리 경쟁하는 선착순과 무엇이 다를까?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선진국이 제시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달려가기만 한다면 세계는 더 빠르게 양극화가 진행될 것이다. 입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 교육이 불행한 까닭은 멈추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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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교육은 달려나가는 교육이 아니라,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는 교육이다.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 보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는 보지 못했던 낯설고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다. 그 낯선 풍경에 적응하는 것이 어쩌면 평생교육의 목표일지 모른다. 평생교육이 상상하는 미래는 모두가 세간의 기준만을 쫓는 전체주의 사회가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수평적으로 연대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남긴 평생교육의 두 번째 과제는 그러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


평생교육은 인생의 다양한 단계에서 계속적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다양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과 기술을 확장하고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사회의 포용성을 높이고, 사람들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다양성은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그 이유는 모든 개체가 동일하다면 특정 질병이나 위협이 생겼을 때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갖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나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면 사회 전체가 위험에 노출되며, 그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평생교육이 추구하는 다양성과 유연성은 인류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는 세계적인 규모로 사회와 교육의 변화를 일으켰고, 우리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그야말로 가능성일 뿐이다. 평생교육이 가지고 있는 혜안이 그 가능성을 알아보았다면, 평생교육이 해야 할 실천은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 아닐까?



글 채희태 

- 낭만백수를 꿈꾸는 프리랜서, 콘텐츠, 정책 기획자

- [백수가 과로에 시달리는 이유] 저자

- 현재 공주대학교에서 평생교육 박사과정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