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공부 6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저는 무모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이거 재고 저거 재고 계산 안 하고, ‘나쁜 일 아니다’ 싶으면 무작정하는 거죠.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어려운데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아무리 어려워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남들이 3시간 공부하면 저는 5시간 공부하면 되니까요.”
삶을 긍정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난 3월 7일 천안에서 최남숙(55)씨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계속 맴돌았던 질문이다. 이날 인터뷰는 남숙씨 집 부엌에서 진행되었다. 남숙씨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뇌병변 장애 1급인 딸 명옥(26)씨는 휠체어를 타고 옆집 이웃과 산책을 하다 들어와 거실에서 TV를 봤다. 곳곳에 남숙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14살부터 공부 대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남숙씨는 48살이 되어서야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남숙씨는 6년의 공부 끝에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공부 중독"이라는 남숙씨는 지금은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남숙씨가 가장 많이 쓴 표현은 ‘재밌다'였다.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는 남숙씨의 공부 도전기를 들어보았다.
✍🏼 [검정고시] “포스터 보자마자 ‘이건 꼭 해야 한다' 싶었죠"
14살 남숙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생업에 뛰어들었다. 고향이었던 충남 지역을 떠나 서울 도봉구에서 가정부 생활을 시작한 것.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는 가족 품을 떠나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했다.
“도봉구 2동. 거기 집도 길도 아직 기억나요. 그 옆에 여학교가 있었는데, 저는 시장을 다니잖아요. 나는 시장 가방 들고 가는데 걔네들은 교복 입고 하교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나를 서울에 취직시켰을까’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어요.”
5남매의 어머니는 남숙씨가 11살 때 돌아가셨다. 초등학생 남숙씨의 장래희망은 스님이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을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애들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꿈이 없었어요.”
서울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남숙씨는 대전에 있는 직물공장에서 일하다 또 다른 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
“직물공장 다닐 때는 2교대로 일했으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17살인가, 18살인가. 그때도 남의 집 살이를 했는데 책을 사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책만 가지고는 (혼자 공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직물 공장 다닐 때 영어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정도는 쓸 줄 알았어요. 한자도 조금 했고요. 소설과 역사를 좋아해서 책은 꾸준히 읽었어요.”
결혼을 하고 네 살 터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공부할 엄두를 내기 더욱 어려워졌다. 둘째인 명옥씨가 뇌병변 1급 장애아로 태어나면서 남숙씨는 명옥씨를 돌보는 데 모든 것을 집중했다.
“대전에 야학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애를 계속 보살펴야 하니 다닐 수가 없었죠.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딱 부럽더라고요. 얘는 졸업하면 졸업장이 생기잖아요.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다가 동사무소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건 내가 꼭 해야 한다' 싶었어요. 저녁에 남편한테 ‘나 이거 하겠다, (사이트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죠. 제가 그때 컴퓨터를 할 줄 몰랐거든요.”
남숙씨가 발견한 포스터는 충청남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충청남도 사이버 검정고시 학습센터’ 홍보물이었다. 2015년부터 운영 중인 충남사이버검정고시학습센터에서는 온라인으로 초・중・고졸 검정고시 강좌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충남도민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충청남도 사이버 검정고시 학습센터 (https://cn.gumjungstudy.com)
오프라인 수업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남숙씨에게 온라인으로 언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남숙씨는 48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학업을 멈춘 지 30여 년 만에 남숙씨는 다시 학생이 됐다.
“처음에는 영상을 보는데 어색하더라고요. 녹화 영상이긴 하지만 선생님이랑 저랑 1대1로 수업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계속하다 보니까 재밌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면 저도 대화 나누듯이 이야기를 했어요. ‘맞아요, 그건데요, 저건데요.’(웃음) 컴퓨터 기능이 그렇게 다양한 걸 그때 알았어요. 잠깐 멈추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서 보기도 하고, 어우 재밌다. 선생님이 친절하고 재밌게 수업을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1대1 과외를 받아보겠어요. 자부심을 느끼면서 공부했어요.”
남숙씨는 2015년에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2016년에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잇달아 합격했다. 평소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국어와 역사는 쉽게 공부할 수 있었지만 수학과 과학은 어려웠다고.
“중졸 검정고시는 어려움 없이 공부했는데 고졸 검정고시 수학, 과학은 진짜 어려웠어요. 무슨 빅뱅이 나오는데, 가수 빅뱅은 아는데 빅뱅이 뭐야…(웃음) 수학이랑 과학은 선생님 설명 없으면 공부 못했을 거예요. (선생님이)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주시니까요. 방송 계속 보면서 문제 풀어 보고 잘 못 들으면 다시 보고, 한 마디라도 안 놓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일과 돌봄을 병행해야 했던 남숙씨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공부를 했다.
“딸이 학교에 있는 동안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종이에 영어 단어를 적어 놓고 빨래 갤 때도 보고 설거지할 때도 보고 버스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틈틈이 보는 거예요. 계속. 새벽 2~3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를 했어요. 공부가 진짜 재밌었어요. 자다가도 생각나면 일어나서 다시 봤어요. 완전히 알아야 하니까요. 악착같이 했어요. (충남평생교육) 진흥원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포기하면 아깝잖아요.”
공부의 어떤 점이 그토록 재밌었는지 묻자 남숙씨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국어는 원래 제가 소설 읽는 걸 좋아해서 재밌었고, 역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았는데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영어 같은 경우에는 회사 이름 밑에 ‘SINCE’라는 말이 많이 써 있잖아요. 연도랑 같이. ‘아, 이게 이때부터 시작했다는 뜻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TAKE OUT’은 포장을 해간다는 뜻이고요. 그동안 ‘저게 무슨 말이지’ 했던 단어의 뜻을 하나씩 알게 되니까 재밌는 거예요. 조금씩 보이고, 아는 게 늘어나고,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껴요. 공부하면서.”
남숙씨의 검정고시 합격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친정 식구들이었다.
“5남매 중 제가 제일 많이 못 배웠거든요. 제가 합격했을 때 형제들이 너무 좋아서 동네에 자랑을 했대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공부할 때 아버지한테 제가 ‘아버지, 나 고등학교 책값 줘'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때 나 가르쳤어야 했는데 못 가르쳤는데 책값을 주면 나를 가르친 게 되는 거라고요. 아버지가 책값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합격했죠(웃음).”
✍🏼 [공인중개사 시험] “시험 치는 6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닌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남숙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준비한 것이다. 공인중개사 합격률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남편이 권유를 했어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재밌어 하니까 공부를 시켜봐야겠다 하면서요(웃음). 공인중개사는 딸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사무실에 방 하나 놔두면 딸 돌보면서 상담할 수 있겠다 싶었죠.”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공부를 시작한 남숙씨가 시험에 최종 합격하는 데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검정고시는 한 번에 끝냈는데 공인중개사는 오래 걸렸어요. 중간에 딸이 아프니까 병원도 다니고 어떨 때는 며칠씩 공부를 못 하기도 했어요. 한때는 공부를 안 하려고 했어요. 애가 아프니까. 내가 공부 때문에 애를 못 돌봐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8년에는 접수를 해놓고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예 시험을 못 보러 갔어요. 그때 남편이랑 주말 부부고 아들은 군대에 있어서 저랑 딸만 집에 있었거든요.
중간에 아버지가 뇌졸중 때문에 몸이 편찮으셔서 저희 집에서 4개월 동안 모시면서 몸보신과 재활을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후회 안 하려면 제가 모셔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아버지한테 ‘아버지, 나 공인중개사 합격하면 아버지가 명패 해줘'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그래, 해줄게' 하셨는데 결국 합격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아팠죠.”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남숙씨가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꼭 합격해야겠다는 목표 그리고 공부의 즐거움 때문이었다.
“딸 때문에 수업을 못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유료 수업은 못 끊겠더라고요. 아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알려줬어요. 수업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재밌었어요. 뭘 하나 알아도 자세히 알 수 있고요. 내가 50년을 그냥 살아왔구나 싶었죠. 투기와 투자가 뭐냐, 저는 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이 뭐가 다른지, 징역과 금고가 뭔지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요. 그런 게 재밌었어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6년간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6년간 시험을 치면서 남숙씨는 시험 장소로 일부러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6년간 공부하면서 뭐가 좋았냐면요.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잖아요. 시험 치면서 6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닌 거예요. 처음 시험 봤을 때는 집에 돌아와서도 덜덜덜 떨었어요. 그런데 2019년도부터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험 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상쾌해요. 대학생들, 젊은이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험을 본 거잖아요. 저는 시험 볼 때 그 긴장감도 좋아요.”
남숙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 체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상쾌한 마음으로 시험을 쳤던 2019년, 남숙씨는 1차 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이듬해 시험에서 2차에 불합격하고 2021년에는 아까운 점수 차로 시험에 떨어졌다. 그해 결과 발표 이틀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몇 달은 마음이 허해서 방황을 하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2022년에 시험 보고 와서 가채점했는데 불안하더라고요. 될 것 같기는 한데 예전에 마킹 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요.”
2022년 11월 30일, 공인중개사 시험에 최종 합격하던 날을 남숙씨는 잊지 못한다.
“엄청 좋았죠. 자랑 많이 했어요. 컴퓨터에 뜬 합격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친정 식구들, 남편, 아들한테 보냈어요. 다들 축하해 주고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했냐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남숙씨는 오랜 시간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면서 지겹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공부를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나쁘지’ 이렇게 생각한 적은 있어도 하기 싫은 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운전을 못 해요. 면허는 있는데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그런데 공부는 하고 싶어요.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나쁘지' 하다가도 ‘어, 그렇구나. 오오' 혼잣말하면서 공부를 해요.”
중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살았던 세월 동안 남숙씨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위축이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어디 나왔다 이야기하고, 수학여행 어디 갔다 그러면 부럽고 쥐구멍 찾고 싶고 그랬어요. 그런데 공인중개사 합격하고 나니까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나는 초등학교까지밖에 못 나왔지만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인중개사도 합격했다고요. 원래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더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생겼지만 남숙씨는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딸 명옥씨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장님이 와서 일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괜찮아요. 언젠가 하면 되니까요. 급하게 생각 안 해요. 남편 정년 퇴직하면 그때 일 하면 되죠.”
어렵게 딴 자격증인데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나중에 하면 되지'라고 느긋한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 딸이 학교에 가면서 제가 식당에서 일을 했잖아요. 저는 그때도 감사했어요. 딸이 학교에 가니까 제가 식당에서 일할 수 있고 남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애 돌봐야 한다는 핑계 대고 그동안 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요. 똑같은 상황에서도 감사로 갈 수도 있고 불평으로 갈 수도 있는데 저는 항상 감사하려고 해요.
저는 우리 딸을 장애인이니까 더 밝게 키우려고 했어요. 딸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어요. 얘가 국악을 좋아해서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국악 한마당> 보러 서울 KBS홀에도 몇 번 갔어요. 거기에서 남상일씨랑 사진도 찍고요. <KBS 콘서트 7080>도 보러갔고요.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못 가요. 제가 같이 즐기니까 가는 거죠. 저는 명옥이를 우리 가정에 보내준 것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 [남숙씨의 꿈] “계속 공부하고 도전할 거예요”
남숙씨는 지난 1월에 또 한 번 서울 KBS 건물에 다녀왔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공인중개사 시험 끝나고 나니까 허탈한 거에요. 이제 뭐하지? 하다가 그전부터 TV 보면서 출연하고 싶었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참여했어요. 한 달 정도 공부했어요. <우리말 겨루기>도 물론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꼴찌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남숙씨는 <우리말 겨루기> 홈페이지에 있는 1월 정기 예심 합격자 발표 명단을 보여줬다. 방송 출연을 앞두고 남숙씨는 또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남숙씨 책상 위에 손글씨로 쓴 공부 흔적이 빼곡했다. 또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냐고 묻자 남숙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근처에 독립기념관이 있잖아요. 한국사 공부를 해서 해설도 해보고 싶어요. 계속 도전하고 공부할 거예요.”
요리를 좋아하는 남숙씨는 자신의 밭에 콩 농사를 지어서 메주를 띄워서 직접 된장을 담그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된장을 담근 항아리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우리 것'을 지키고 싶다고. 남편의 정년 퇴직 후 함께 농사를 지으며, 딸 명옥씨를 돌보며, 공인 중개사 일을 하며,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을 남숙씨를 상상했다.
끝으로, 남숙씨에게 자신처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생각날 때, 기회가 될 때 무조건 하세요. 하루라도 빨리 공부해야 하루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
editor 홍현진
photographer 이민정
취재협조 충청남도평생교육진흥원
공인중개사 공부 6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저는 무모하게 하는 걸 좋아해요. 이거 재고 저거 재고 계산 안 하고, ‘나쁜 일 아니다’ 싶으면 무작정하는 거죠. 공인중개사 공부할 때도 ‘어려운데 왜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요. 아무리 어려워도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남들이 3시간 공부하면 저는 5시간 공부하면 되니까요.”
삶을 긍정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지난 3월 7일 천안에서 최남숙(55)씨를 만나 인터뷰하면서 계속 맴돌았던 질문이다. 이날 인터뷰는 남숙씨 집 부엌에서 진행되었다. 남숙씨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뇌병변 장애 1급인 딸 명옥(26)씨는 휠체어를 타고 옆집 이웃과 산책을 하다 들어와 거실에서 TV를 봤다. 곳곳에 남숙씨의 손길이 느껴지는 집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14살부터 공부 대신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남숙씨는 48살이 되어서야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중졸·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남숙씨는 6년의 공부 끝에 지난해 공인중개사 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공부 중독"이라는 남숙씨는 지금은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 남숙씨가 가장 많이 쓴 표현은 ‘재밌다'였다. 궁금한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는 남숙씨의 공부 도전기를 들어보았다.
✍🏼 [검정고시] “포스터 보자마자 ‘이건 꼭 해야 한다' 싶었죠"
14살 남숙씨는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생업에 뛰어들었다. 고향이었던 충남 지역을 떠나 서울 도봉구에서 가정부 생활을 시작한 것.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는 가족 품을 떠나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했다.
“도봉구 2동. 거기 집도 길도 아직 기억나요. 그 옆에 여학교가 있었는데, 저는 시장을 다니잖아요. 나는 시장 가방 들고 가는데 걔네들은 교복 입고 하교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 나를 서울에 취직시켰을까’ 아버지 원망도 많이 했어요.”
5남매의 어머니는 남숙씨가 11살 때 돌아가셨다. 초등학생 남숙씨의 장래희망은 스님이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을날 허허벌판에 홀로 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다른 애들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하는데 저는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는 꿈이 없었어요.”
서울에서 가정부로 일하던 남숙씨는 대전에 있는 직물공장에서 일하다 또 다른 집에서 가정부로 일한다.
“직물공장 다닐 때는 2교대로 일했으니 공부할 시간이 없었고 17살인가, 18살인가. 그때도 남의 집 살이를 했는데 책을 사서 검정고시 공부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책만 가지고는 (혼자 공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직물 공장 다닐 때 영어 알파벳 대문자, 소문자 정도는 쓸 줄 알았어요. 한자도 조금 했고요. 소설과 역사를 좋아해서 책은 꾸준히 읽었어요.”
결혼을 하고 네 살 터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자 공부할 엄두를 내기 더욱 어려워졌다. 둘째인 명옥씨가 뇌병변 1급 장애아로 태어나면서 남숙씨는 명옥씨를 돌보는 데 모든 것을 집중했다.
“대전에 야학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애를 계속 보살펴야 하니 다닐 수가 없었죠. 딸이 고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딱 부럽더라고요. 얘는 졸업하면 졸업장이 생기잖아요.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다가 동사무소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건 내가 꼭 해야 한다' 싶었어요. 저녁에 남편한테 ‘나 이거 하겠다, (사이트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했죠. 제가 그때 컴퓨터를 할 줄 몰랐거든요.”
남숙씨가 발견한 포스터는 충청남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충청남도 사이버 검정고시 학습센터’ 홍보물이었다. 2015년부터 운영 중인 충남사이버검정고시학습센터에서는 온라인으로 초・중・고졸 검정고시 강좌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충남도민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하다.
충청남도 사이버 검정고시 학습센터 (https://cn.gumjungstudy.com)
오프라인 수업을 듣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남숙씨에게 온라인으로 언제든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남숙씨는 48살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 학업을 멈춘 지 30여 년 만에 남숙씨는 다시 학생이 됐다.
“처음에는 영상을 보는데 어색하더라고요. 녹화 영상이긴 하지만 선생님이랑 저랑 1대1로 수업하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계속하다 보니까 재밌어요.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면 저도 대화 나누듯이 이야기를 했어요. ‘맞아요, 그건데요, 저건데요.’(웃음) 컴퓨터 기능이 그렇게 다양한 걸 그때 알았어요. 잠깐 멈추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서 보기도 하고, 어우 재밌다. 선생님이 친절하고 재밌게 수업을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내가 어디 가서 이렇게 좋은 1대1 과외를 받아보겠어요. 자부심을 느끼면서 공부했어요.”
남숙씨는 2015년에는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2016년에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잇달아 합격했다. 평소에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국어와 역사는 쉽게 공부할 수 있었지만 수학과 과학은 어려웠다고.
“중졸 검정고시는 어려움 없이 공부했는데 고졸 검정고시 수학, 과학은 진짜 어려웠어요. 무슨 빅뱅이 나오는데, 가수 빅뱅은 아는데 빅뱅이 뭐야…(웃음) 수학이랑 과학은 선생님 설명 없으면 공부 못했을 거예요. (선생님이) 중요한 포인트를 잡아주시니까요. 방송 계속 보면서 문제 풀어 보고 잘 못 들으면 다시 보고, 한 마디라도 안 놓치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일과 돌봄을 병행해야 했던 남숙씨는 짬짬이 시간을 내서 공부를 했다.
“딸이 학교에 있는 동안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종이에 영어 단어를 적어 놓고 빨래 갤 때도 보고 설거지할 때도 보고 버스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틈틈이 보는 거예요. 계속. 새벽 2~3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를 했어요. 공부가 진짜 재밌었어요. 자다가도 생각나면 일어나서 다시 봤어요. 완전히 알아야 하니까요. 악착같이 했어요. (충남평생교육) 진흥원에서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셨는데 포기하면 아깝잖아요.”
공부의 어떤 점이 그토록 재밌었는지 묻자 남숙씨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국어는 원래 제가 소설 읽는 걸 좋아해서 재밌었고, 역사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았는데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재밌었어요. 영어 같은 경우에는 회사 이름 밑에 ‘SINCE’라는 말이 많이 써 있잖아요. 연도랑 같이. ‘아, 이게 이때부터 시작했다는 뜻이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TAKE OUT’은 포장을 해간다는 뜻이고요. 그동안 ‘저게 무슨 말이지’ 했던 단어의 뜻을 하나씩 알게 되니까 재밌는 거예요. 조금씩 보이고, 아는 게 늘어나고, 시야가 넓어지는 걸 느껴요. 공부하면서.”
남숙씨의 검정고시 합격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것은 친정 식구들이었다.
“5남매 중 제가 제일 많이 못 배웠거든요. 제가 합격했을 때 형제들이 너무 좋아서 동네에 자랑을 했대요.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공부할 때 아버지한테 제가 ‘아버지, 나 고등학교 책값 줘'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그때 나 가르쳤어야 했는데 못 가르쳤는데 책값을 주면 나를 가르친 게 되는 거라고요. 아버지가 책값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합격했죠(웃음).”
✍🏼 [공인중개사 시험] “시험 치는 6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닌 거예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게 된 남숙씨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을 준비한 것이다. 공인중개사 합격률은 30%가 채 되지 않는다.
“남편이 권유를 했어요.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재밌어 하니까 공부를 시켜봐야겠다 하면서요(웃음). 공인중개사는 딸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잖아요. 사무실에 방 하나 놔두면 딸 돌보면서 상담할 수 있겠다 싶었죠.”
공인중개사 시험 과목이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공부를 시작한 남숙씨가 시험에 최종 합격하는 데는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검정고시는 한 번에 끝냈는데 공인중개사는 오래 걸렸어요. 중간에 딸이 아프니까 병원도 다니고 어떨 때는 며칠씩 공부를 못 하기도 했어요. 한때는 공부를 안 하려고 했어요. 애가 아프니까. 내가 공부 때문에 애를 못 돌봐서 그런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8년에는 접수를 해놓고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아예 시험을 못 보러 갔어요. 그때 남편이랑 주말 부부고 아들은 군대에 있어서 저랑 딸만 집에 있었거든요.
중간에 아버지가 뇌졸중 때문에 몸이 편찮으셔서 저희 집에서 4개월 동안 모시면서 몸보신과 재활을 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후회 안 하려면 제가 모셔야겠다 싶더라고요. 그때 아버지한테 ‘아버지, 나 공인중개사 합격하면 아버지가 명패 해줘'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그래, 해줄게' 하셨는데 결국 합격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마음이 아팠죠.”
공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남숙씨가 공부를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꼭 합격해야겠다는 목표 그리고 공부의 즐거움 때문이었다.
“딸 때문에 수업을 못 들을 수 있는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까 유료 수업은 못 끊겠더라고요. 아들이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를 알려줬어요. 수업 들으면서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게 재밌었어요. 뭘 하나 알아도 자세히 알 수 있고요. 내가 50년을 그냥 살아왔구나 싶었죠. 투기와 투자가 뭐냐, 저는 제 나름대로 정의를 내릴 수 있어요. 직계존속과 직계비속이 뭐가 다른지, 징역과 금고가 뭔지도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요. 그런 게 재밌었어요. 목표가 있으니까 열심히 할 수 있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6년간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6년간 시험을 치면서 남숙씨는 시험 장소로 일부러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6년간 공부하면서 뭐가 좋았냐면요. 고등학교에 가서 시험을 치잖아요. 시험 치면서 6년 동안 고등학교를 다닌 거예요. 처음 시험 봤을 때는 집에 돌아와서도 덜덜덜 떨었어요. 그런데 2019년도부터는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험 치고 나오는데 기분이 상쾌해요. 대학생들, 젊은이들이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험을 본 거잖아요. 저는 시험 볼 때 그 긴장감도 좋아요.”
남숙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부 체질'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상쾌한 마음으로 시험을 쳤던 2019년, 남숙씨는 1차 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이듬해 시험에서 2차에 불합격하고 2021년에는 아까운 점수 차로 시험에 떨어졌다. 그해 결과 발표 이틀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한 몇 달은 마음이 허해서 방황을 하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2022년에 시험 보고 와서 가채점했는데 불안하더라고요. 될 것 같기는 한데 예전에 마킹 실수를 한 적이 있어서요.”
2022년 11월 30일, 공인중개사 시험에 최종 합격하던 날을 남숙씨는 잊지 못한다.
“엄청 좋았죠. 자랑 많이 했어요. 컴퓨터에 뜬 합격 화면을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친정 식구들, 남편, 아들한테 보냈어요. 다들 축하해 주고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했냐고 하더라고요. 남편은 눈물이 났다고 하더라고요.”
남숙씨는 오랜 시간 공인중개사 공부를 하면서 지겹다고 느낀 적은 있었지만 ‘공부를 하기 싫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나쁘지’ 이렇게 생각한 적은 있어도 하기 싫은 건 전혀 없었어요. 제가 운전을 못 해요. 면허는 있는데 운전하고 싶은 마음이 없거든요. 그런데 공부는 하고 싶어요. ‘내 머리가 왜 이렇게 나쁘지' 하다가도 ‘어, 그렇구나. 오오' 혼잣말하면서 공부를 해요.”
중고등학교 졸업장 없이 살았던 세월 동안 남숙씨는 자신도 모르게 자꾸 위축이 됐다고 한다.
“사람들이 중고등학교 어디 나왔다 이야기하고, 수학여행 어디 갔다 그러면 부럽고 쥐구멍 찾고 싶고 그랬어요. 그런데 공인중개사 합격하고 나니까 이제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겠더라고요. 나는 초등학교까지밖에 못 나왔지만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졸업하고 공인중개사도 합격했다고요. 원래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더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됐어요. 공부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생겼지만 남숙씨는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딸 명옥씨를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는 사장님이 와서 일하라고 하는데 지금은 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괜찮아요. 언젠가 하면 되니까요. 급하게 생각 안 해요. 남편 정년 퇴직하면 그때 일 하면 되죠.”
어렵게 딴 자격증인데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나중에 하면 되지'라고 느긋한 마음을 먹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 딸이 학교에 가면서 제가 식당에서 일을 했잖아요. 저는 그때도 감사했어요. 딸이 학교에 가니까 제가 식당에서 일할 수 있고 남이 해준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애 돌봐야 한다는 핑계 대고 그동안 집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고요. 똑같은 상황에서도 감사로 갈 수도 있고 불평으로 갈 수도 있는데 저는 항상 감사하려고 해요.
저는 우리 딸을 장애인이니까 더 밝게 키우려고 했어요. 딸 데리고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은 다 갔어요. 얘가 국악을 좋아해서 기차 타고, 지하철 타고 <국악 한마당> 보러 서울 KBS홀에도 몇 번 갔어요. 거기에서 남상일씨랑 사진도 찍고요. <KBS 콘서트 7080>도 보러갔고요.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면 못 가요. 제가 같이 즐기니까 가는 거죠. 저는 명옥이를 우리 가정에 보내준 것을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 [남숙씨의 꿈] “계속 공부하고 도전할 거예요”
남숙씨는 지난 1월에 또 한 번 서울 KBS 건물에 다녀왔다.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공인중개사 시험 끝나고 나니까 허탈한 거에요. 이제 뭐하지? 하다가 그전부터 TV 보면서 출연하고 싶었던 <우리말 겨루기> 예심에 참여했어요. 한 달 정도 공부했어요. <우리말 겨루기>도 물론 열심히 준비하기는 했지만 ‘꼴찌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그냥 해보는 거예요.”
남숙씨는 <우리말 겨루기> 홈페이지에 있는 1월 정기 예심 합격자 발표 명단을 보여줬다. 방송 출연을 앞두고 남숙씨는 또다시 공부를 하고 있다. 남숙씨 책상 위에 손글씨로 쓴 공부 흔적이 빼곡했다. 또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냐고 묻자 남숙씨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 근처에 독립기념관이 있잖아요. 한국사 공부를 해서 해설도 해보고 싶어요. 계속 도전하고 공부할 거예요.”
요리를 좋아하는 남숙씨는 자신의 밭에 콩 농사를 지어서 메주를 띄워서 직접 된장을 담그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된장을 담근 항아리를 하나씩 늘려가면서 ‘우리 것'을 지키고 싶다고. 남편의 정년 퇴직 후 함께 농사를 지으며, 딸 명옥씨를 돌보며, 공인 중개사 일을 하며,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을 남숙씨를 상상했다.
끝으로, 남숙씨에게 자신처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할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생각날 때, 기회가 될 때 무조건 하세요. 하루라도 빨리 공부해야 하루라도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
editor 홍현진
photographer 이민정
취재협조 충청남도평생교육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