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이성수 기타리스트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평생을 학습에 매진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들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으레 책상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평생학습이 책상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편견이다. 평생학습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마칠 때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과 활동을 말한다. 학습자의 삶의 현장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이성수 씨가 평생학습e음에 등장한 이유다. 그는 1980년 말부터 굵직한 록밴드 등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2011년부터는 해리빅버튼이라는 하드록밴드를 결성해 기타리스트와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2년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2’에 출연해 대중성을 갖춘 음악과 빼어난 연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록밴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 싫어졌던 적이 없었어요. 음악을 하다 보면 현실들이 주는 압박감이나 어려움이 커서 힘들 때도 있지만 음악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결국 이 길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어려움이 있어도 좋아하는 일은 그만두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가 밴드 활동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한국 최고의 메탈 밴드인 크래쉬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1999년 영국으로 건너가 방송 그래픽 디자이너로 이력을 쌓았고, 2000년대 초반엔 국내로 돌아와 IT벤처기업 기획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2009년 무렵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만 해오고 있다.
그가 직접 가사를 쓰는 노래들은 특히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러시아에 가지 못했지만 2017년부터 40여 차례 넘는 공연을 펼쳤다. 이 씨는 인기 비결이 가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요. 해리빅버튼의 시적인 가사가 갖고 있는 위트와 심플함,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서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는 이성수 씨의 실력은 지난 2019년 미국의 유명 일렉트릭 기타 브랜드 깁슨에서 선정하는 ‘깁슨 기타 아티스트’에 꼽힐 정도로 독보적이다. 5월 3일 금요일 밤 9시에 합정동에 위치한 ‘제비다방’에서 솔로 공연을 펼친다.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가볼 것을 권한다.
나는 음악인 외에 다른 모습일 수 없는 사람
Q. 이력을 보니 아트 디렉터, 기획이사 등 음악과 관련 없는 일에서 상당히 성공하셨는데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음악을 편하게 하고 싶어서 일을 했었어요.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그 시간이 좀 길어졌던 것뿐인데, 음악이 아닌 일을 하면서 크게 병이 났었습니다. 음악 아닌 일도 제가 싫어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죽을 것처럼 아프고 나니까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 것인가 싶었어요. 행복이나 불행을 생각했다기보다 그냥 죽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일을 하다 쓰러져 죽을 바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다 죽자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아마 다들 그러실 거예요. 1년 정도 더 일을 하면 돈을 모으겠지만 그걸로 네 인생이 끝이라고 하면 과연 누가 돈 벌기 위한 일에 매달릴까요? 다들 저 같은 선택을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Q.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너 하고 싶은 거 하니까 얼마나 좋냐?’라는 거예요. 그런데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거기에 따르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요. 단지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마음을 갖는 것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추가로 따르는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서 부럽다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참 좋다고 생각해요.
Q. 음악인으로서의 한 길을 꾸준히 가시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가끔 사람들이 저한테 말해요. ‘아니 왜 목소리가 아직도 짱짱하냐?’ 보통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변하고 힘도 없어지거든요. 그러면 저는 늦게 시작해서 그만큼 목을 덜 썼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요. 제가 음악을 오래 할 수 있는 건 중간중간 다른 일을 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이 아니라 전업에 가까운 전문직을 했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다시 되찾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원동력은 제가 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었어요. 음악 작업은 외로운 일이지만 그 작업이 끝나면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기도 해요. 제 음악을 듣고 공감하거나 감동을 얻거나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주변에서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었을 거예요.
Q. 요즘도 기타 연습을 많이 하시나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타를 칩니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감각을 잃지 않고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요.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해도 금세 티가 납니다. 열심히 연습하면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평생학습의 50% 이상은 육체를 다루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하려고 해도 몸이 늙어버리면 쉽지 않거든요. 저도 공연을 2시간씩 하려면 무대에서 지치지 않도록 평소에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하거든요. 무대의 열기가 있어서 공연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초 체력을 키워놓아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포스트 하드록 밴드로서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Q. 기타리스트는 언제부터 되고 싶었던 건가요?
중학생 때까지 화가가 꿈이었어요.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림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바로 기타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클래식 기타를 쳤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열정을 전부 기타에 쏟았던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그림 그릴 때보다 몇 배는 더 쏟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학교 밴드를 하던 친구의 권유로 밴드에 참가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잡게 된 거죠.
Q. 하드록 밴드인 해리빅버튼으로 13년째 활동 중이신데 독자들을 위해 해리빅버튼이 무슨 뜻인지, 하드록이 어떤 음악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음악은 포스트 하드록이에요.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나 형식은 하드록인데 트렌디함이 있죠.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와 파괴적인 성향의 보컬 창법 등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강한 록음악이 바로 '하드록'이죠. 저는 록음악의 정신을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하드록을 기반으로, 하지만 최신 사운드를 받아들이며 진화하는 하드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적 한계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록 정신을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틀 안에 가둬놓는 것은 록이 아닌 것이죠. 정통성과 트렌드 두 가지를 잡는 것이 해리빅버튼의 하드록입니다. 그리고 해리빅버튼이란 이름은 오래되고 큰 버튼이 달려있는 카스테레오를 지칭하는 영국 속어에서 따온 겁니다.
Q. 영국에서 일을 그만두고 오신 이유가 고양이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영국에 가기 전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당시 한국과 영국 사이에 협약이 없어서 고양이를 영국에 데려갈 수 없었어요. 지인, 친구들이 맡아 길러줬는데 어느 날 한국에서 고양이가 없어졌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고양이를 찾으러 한국에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때 우리나라와 영국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히 딴판이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좋은 직장을 왜 때려치냐, 미쳤다’라고 했는데 영국에서는 ‘당연히 가서 찾아야지’ 하며 걱정해 주는 거예요. 그때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그 고양이를 찾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고양이 집사로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러시아 관중의 떼창을 이끌어낸 해리빅버튼
Q. 러시아가 우리나라와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러시아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끄셨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러시아 공연은 우연히 이루어졌어요. 몇 년 전 러시아 밴드가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런데 얼마 후 그 밴드가 저에게 러시아에서 공연해 보는 게 어떠냐고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그렇게 러시아와 인연이 돼서 여러 번 공연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첫 공연 때 관객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거예요. 러시아 관객이 우리 노래를 떼창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러시아 사람들은 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고요. 문학 같은 기본 교육이 굉장히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러시아 정서와 통했던 것 같아요.
Q. 그동안 쓰신 곡들의 대부분이 영어 가사이던데 그것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요? 영어로 가사를 쓰신 이유가 해외 시장을 생각해서인가요?
꼭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기 보다는 처음에 곡을 쓸 때 영어가 편했어요. 영국에서 돌아와서 다시 밴드를 준비하며 곡을 쓸 때 그냥 떠오르는 가사를 메모했는데 그게 영어였던 셈이에요. 그리고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어 가사가 있어요. 우리말로 바꾸면 이상해지는 표현이 있어서 그냥 영어로 썼습니다. 우리말로도 표현이 충분하다면 우리말로도 쓰고요.
각자의 아름다움을 찾아 정화되는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곡을 써야죠
Q. 요즘은 어떤 곡을 쓰고 계시나요?
그동안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왔는데 요즘은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고 나서는 뭔가 얘기를 던지기가 두려워졌다고 할까? 공연계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 때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공연계나 뮤지션들이 굉장히 침체되어 있었는데 그 캠페인을 계기로 계속할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함께 이겨내자고 힘을 모으고 움직였지만, 이것이 끝나고 나니 다들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어요.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모든 면에서 굉장히 이기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 거죠.
Q. 해리빅버튼이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시는지요?
우리는 예전부터 '인간성의 상실' 같은 것들에 관해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요즘은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꿈꿨으면 해요. 아름다움이란 것도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따뜻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 정화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기준을 세우겠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보고 각자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연결하고 인정하면서 사회를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Q. 그럼 앞으로 하드록보다는 다른 분야로 음악을 더 넓혀가시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드록으로도 충분히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제가 말씀드리는 아름다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Q. 이성수 씨가 생각하는 평생학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냥 평생동안 학습하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생학습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교육 시스템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것을 해야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계속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중장년만 돼도 스스로 학습을 포기하는 것 같아요. ‘난 이런 거 못해’라고 하면서 쉽게 자기 자신들을 내려놓더라고요. 그렇게 놔버리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IT기술에 막 익숙해지면서 얼리어답터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현재를 살 수 있을 정도로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평생학습이 필요하고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Q. 끝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배우고 싶은 욕망은 결국 건강한 신체에서 나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무언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거든요. 육체와 정신 모두 건강해야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도 육체적인 것을 더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육체의 건강을 이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때가 왔거든요. 아픈 다음에 의료비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층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미리 예방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은 평생학습을 하라고 하면 무언가에 계속 도전하라고 등 떠미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배운다는 것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가 해도 되나?’라는 의구심을 갖거나 무언가를 해보는 데 벽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세요. 그게 배우는 것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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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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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학습에 매진했다는 평을 듣는 사람들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으레 책상 앞에서 책을 읽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나 평생학습이 책상 앞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어찌 보면 편견이다. 평생학습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인간이 태어나서부터 마칠 때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배우는 과정과 활동을 말한다. 학습자의 삶의 현장에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기타리스트이자 보컬리스트인 이성수 씨가 평생학습e음에 등장한 이유다. 그는 1980년 말부터 굵직한 록밴드 등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2011년부터는 해리빅버튼이라는 하드록밴드를 결성해 기타리스트와 보컬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지난 2012년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2’에 출연해 대중성을 갖춘 음악과 빼어난 연주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수십 년 동안 록밴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제가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음악이 싫어졌던 적이 없었어요. 음악을 하다 보면 현실들이 주는 압박감이나 어려움이 커서 힘들 때도 있지만 음악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도 결국 이 길로 돌아오게 되더군요. 어려움이 있어도 좋아하는 일은 그만두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고 그가 밴드 활동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한국 최고의 메탈 밴드인 크래쉬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했던 그는 1999년 영국으로 건너가 방송 그래픽 디자이너로 이력을 쌓았고, 2000년대 초반엔 국내로 돌아와 IT벤처기업 기획이사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2009년 무렵 일을 그만두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만 해오고 있다.
그가 직접 가사를 쓰는 노래들은 특히 러시아에서 인기가 높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러시아에 가지 못했지만 2017년부터 40여 차례 넘는 공연을 펼쳤다. 이 씨는 인기 비결이 가사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해요. 해리빅버튼의 시적인 가사가 갖고 있는 위트와 심플함, 긍정적인 에너지가 정서적으로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꾸준히 공연을 이어가는 이성수 씨의 실력은 지난 2019년 미국의 유명 일렉트릭 기타 브랜드 깁슨에서 선정하는 ‘깁슨 기타 아티스트’에 꼽힐 정도로 독보적이다. 5월 3일 금요일 밤 9시에 합정동에 위치한 ‘제비다방’에서 솔로 공연을 펼친다. 그의 공연을 직접 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가볼 것을 권한다.
Q. 이력을 보니 아트 디렉터, 기획이사 등 음악과 관련 없는 일에서 상당히 성공하셨는데 다시 음악으로 돌아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저는 음악을 편하게 하고 싶어서 일을 했었어요.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해보자는 마음이었지요. 그런데 그 시간이 좀 길어졌던 것뿐인데, 음악이 아닌 일을 하면서 크게 병이 났었습니다. 음악 아닌 일도 제가 싫어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죽을 것처럼 아프고 나니까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 것인가 싶었어요. 행복이나 불행을 생각했다기보다 그냥 죽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일을 하다 쓰러져 죽을 바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다 죽자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거예요. 아마 다들 그러실 거예요. 1년 정도 더 일을 하면 돈을 모으겠지만 그걸로 네 인생이 끝이라고 하면 과연 누가 돈 벌기 위한 일에 매달릴까요? 다들 저 같은 선택을 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Q.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부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너 하고 싶은 거 하니까 얼마나 좋냐?’라는 거예요. 그런데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지만 거기에 따르는 희생이 반드시 있어요. 단지 그 희생을 기꺼이 감당할 마음을 갖는 것이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추가로 따르는 어려움을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사람들이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서 부럽다고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서 참 좋다고 생각해요.
Q. 음악인으로서의 한 길을 꾸준히 가시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가끔 사람들이 저한테 말해요. ‘아니 왜 목소리가 아직도 짱짱하냐?’ 보통 나이가 들면 목소리도 변하고 힘도 없어지거든요. 그러면 저는 늦게 시작해서 그만큼 목을 덜 썼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해요. 제가 음악을 오래 할 수 있는 건 중간중간 다른 일을 했던 것이 한 가지 이유인 것 같아요. 음악 활동을 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같은 임시직이 아니라 전업에 가까운 전문직을 했었거든요. 그 일을 하면서 음악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을 다시 되찾았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큰 원동력은 제가 하는 음악을 듣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었어요. 음악 작업은 외로운 일이지만 그 작업이 끝나면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이기도 해요. 제 음악을 듣고 공감하거나 감동을 얻거나 좋아하시는 분들, 그리고 주변에서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없었으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었을 거예요.
Q. 요즘도 기타 연습을 많이 하시나요?
하루에도 몇 시간씩 기타를 칩니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재의 감각을 잃지 않고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요. 조금만 연습을 게을리해도 금세 티가 납니다. 열심히 연습하면서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합니다. 저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평생학습의 50% 이상은 육체를 다루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 하려고 해도 몸이 늙어버리면 쉽지 않거든요. 저도 공연을 2시간씩 하려면 무대에서 지치지 않도록 평소에 기초 체력을 키워야 하거든요. 무대의 열기가 있어서 공연을 하는 게 힘들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수록 기초 체력을 키워놓아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계속할 수 있게 됩니다.
Q. 기타리스트는 언제부터 되고 싶었던 건가요?
중학생 때까지 화가가 꿈이었어요.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림을 그만두기로 하면서 바로 기타를 만났어요. 처음에는 클래식 기타를 쳤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열정을 전부 기타에 쏟았던 것 같아요. 아니 오히려 그림 그릴 때보다 몇 배는 더 쏟았어요. 그러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학교 밴드를 하던 친구의 권유로 밴드에 참가하면서 일렉트릭 기타를 잡게 된 거죠.
Q. 하드록 밴드인 해리빅버튼으로 13년째 활동 중이신데 독자들을 위해 해리빅버튼이 무슨 뜻인지, 하드록이 어떤 음악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음악은 포스트 하드록이에요. 정신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나 형식은 하드록인데 트렌디함이 있죠.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와 파괴적인 성향의 보컬 창법 등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강한 록음악이 바로 '하드록'이죠. 저는 록음악의 정신을 순수한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하드록을 기반으로, 하지만 최신 사운드를 받아들이며 진화하는 하드록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장르적 한계에 타협하지 않고 진정한 록 정신을 펼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고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틀 안에 가둬놓는 것은 록이 아닌 것이죠. 정통성과 트렌드 두 가지를 잡는 것이 해리빅버튼의 하드록입니다. 그리고 해리빅버튼이란 이름은 오래되고 큰 버튼이 달려있는 카스테레오를 지칭하는 영국 속어에서 따온 겁니다.
Q. 영국에서 일을 그만두고 오신 이유가 고양이 때문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영국에 가기 전 기르던 고양이가 있었는데 당시 한국과 영국 사이에 협약이 없어서 고양이를 영국에 데려갈 수 없었어요. 지인, 친구들이 맡아 길러줬는데 어느 날 한국에서 고양이가 없어졌다는 연락이 온 거예요. 그래서 고양이를 찾으러 한국에 돌아와야겠다고 결심했지요. 그때 우리나라와 영국 사람들의 반응이 완전히 딴판이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좋은 직장을 왜 때려치냐, 미쳤다’라고 했는데 영국에서는 ‘당연히 가서 찾아야지’ 하며 걱정해 주는 거예요. 그때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결국 그 고양이를 찾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 고양이 집사로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Q. 러시아가 우리나라와 문화적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러시아에서 굉장히 큰 인기를 끄셨던 비결은 무엇인가요?
러시아 공연은 우연히 이루어졌어요. 몇 년 전 러시아 밴드가 에이전시를 통해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메일을 보내왔어요. 그래서 제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도와줬어요. 그런데 얼마 후 그 밴드가 저에게 러시아에서 공연해 보는 게 어떠냐고 다시 연락이 온 거예요. 그렇게 러시아와 인연이 돼서 여러 번 공연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첫 공연 때 관객들이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거예요. 러시아 관객이 우리 노래를 떼창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거든요. 러시아 사람들은 가사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더라고요. 문학 같은 기본 교육이 굉장히 잘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래서 러시아 정서와 통했던 것 같아요.
Q. 그동안 쓰신 곡들의 대부분이 영어 가사이던데 그것도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요? 영어로 가사를 쓰신 이유가 해외 시장을 생각해서인가요?
꼭 해외 시장을 겨냥했다기 보다는 처음에 곡을 쓸 때 영어가 편했어요. 영국에서 돌아와서 다시 밴드를 준비하며 곡을 쓸 때 그냥 떠오르는 가사를 메모했는데 그게 영어였던 셈이에요. 그리고 한국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영어 가사가 있어요. 우리말로 바꾸면 이상해지는 표현이 있어서 그냥 영어로 썼습니다. 우리말로도 표현이 충분하다면 우리말로도 쓰고요.
Q. 요즘은 어떤 곡을 쓰고 계시나요?
그동안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왔는데 요즘은 정리가 안 되고 있어요. 코로나 팬데믹이 지나고 나서는 뭔가 얘기를 던지기가 두려워졌다고 할까? 공연계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달라졌어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데도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팬데믹 때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라는 캠페인을 벌인 적이 있어요. 그 당시 공연계나 뮤지션들이 굉장히 침체되어 있었는데 그 캠페인을 계기로 계속할 힘을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는 함께 이겨내자고 힘을 모으고 움직였지만, 이것이 끝나고 나니 다들 남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어요. 각자 자기가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모든 면에서 굉장히 이기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는 거죠.
Q. 해리빅버튼이 대중들에게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시는지요?
우리는 예전부터 '인간성의 상실' 같은 것들에 관해 많이 이야기해왔지만 요즘은 인간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을 꿈꿨으면 해요. 아름다움이란 것도 주관적이고 애매모호할 수 있지만 우리가 아름다운 것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따뜻한 것들,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함께 정화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기준을 세우겠다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찾아보고 각자의 기준으로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서로 다른 기준을 연결하고 인정하면서 사회를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요.
Q. 그럼 앞으로 하드록보다는 다른 분야로 음악을 더 넓혀가시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하드록으로도 충분히 그런 것을 표현할 수 있거든요. 제가 말씀드리는 아름다운 것은 우리 사회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표면적인 아름다움이 아니에요. 내면적인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표현 방식은 다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해왔고요.
Q. 이성수 씨가 생각하는 평생학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냥 평생동안 학습하고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평생학습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교육 시스템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이것을 해야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라도 계속 스스로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중장년만 돼도 스스로 학습을 포기하는 것 같아요. ‘난 이런 거 못해’라고 하면서 쉽게 자기 자신들을 내려놓더라고요. 그렇게 놔버리면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어떻게 살려고 하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요즘처럼 급변하는 IT기술에 막 익숙해지면서 얼리어답터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현재를 살 수 있을 정도로는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수록 평생학습이 필요하고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Q. 끝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모든 배우고 싶은 욕망은 결국 건강한 신체에서 나옵니다. 건강하지 않으면 무언가 배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거든요. 육체와 정신 모두 건강해야 하지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도 육체적인 것을 더 도입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육체의 건강을 이젠 국가가 책임져야 할 때가 왔거든요. 아픈 다음에 의료비를 지원할 것이 아니라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층이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도록 미리 예방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은 평생학습을 하라고 하면 무언가에 계속 도전하라고 등 떠미는 느낌을 받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배운다는 것은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내가 해도 되나?’라는 의구심을 갖거나 무언가를 해보는 데 벽을 느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하세요. 그게 배우는 것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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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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