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방울 따옴 토마토 농장 이종현·오한솔 부부_“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나요? 일단 해봐요”

2022-07-08


퇴사 후 귀농한 이종현·오한솔 부부가 말하는 ‘도전하는 삶’ 





부부가 함께 회사를 그만뒀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됐을 때였다. 여자는 입사 6년 차, 남자는 입사 4년 차. 아직 사회 초년생이었다. 

흔히 ‘귀농 청년’이라 하면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햇살을 받으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모습. 귀농 8개월 차 이종현(29)·오한솔(28) 부부는 밭을 갈지 않는다. 부부는 현재 경기도 여주시에 1000평(3306제곱미터) 땅을 매입해 방울 토마토 스마트팜(smart farm) 시설을 짓고 있다. 스마트팜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술을 활용해 온도, 습도, 일조량 등 농작물의 생육 환경을 원격으로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는 농업을 뜻한다.



지난 6월 27일 방문한 10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는 한창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푸릇푸릇한 작물이 아직 없어서 그럴까. SF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실험실이 떠오르기도 했다. 부부는 이곳에서 흙이 아닌 인공토양(배지)에 물과 양분을 공급해 작물을 재배하는 양액재배 방식으로 농사를 지을 예정이다. 

93년생, 94년생 부부는 농사를 지어본 적 없다. 정해진 경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부부에게 필요한 것은 공부였다. 두 사람은 농협중앙회에서 운영하는 ‘청년 농부 사관학교’ 수료를 시작으로,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매치업(Match業)’ 스마트팜 전문 과정을 이수해 ‘스마트팜 전문가' 인증을 받았다. 

2018년 시작된 매치업 사업은 대학생, 구직자, 재직자 등 성인 학습자의 신기술・ 신사업 분야 직무 능력 향상을 위해 기업과 교육기관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온라인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직무 능력을 인증하는 프로그램이다. 2022년 현재 스마트팜, 블록체인, 드론, 빅데이터 등 9개 분야 36개 교육 과정을 운영 중이며 누적 학습자는 4만8000명에 달한다. 모든 과정은 무료다. 

남편인 종현씨는 2021년 매치업 우수사례 공모전 수기에서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서 농업에 대한 기초를 공부했다면 매치업 과정을 통해서는 스마트팜과 관련된 분야에 대해 깊게 배울 수 있어서 제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썼다. 종현씨는 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평생 직장이 사라진 시대, 회사의 일이 아닌 자신들만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부부의 도전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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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일' 말고 ‘우리 일'을 찾아서  






“일을 하다 보니 회사의 성장과 내 성장이 같이 간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또 저희는 자녀 계획이 있는데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한솔씨


퇴사 전, 종현씨는 은행에서 IT 기획을 한솔씨는 대기업에서 설계, 원가와 관련된 직무를 했다. 둘 다 첫 직장이었다. 성실히 일했지만 갈수록 회사 일은 내 일이 아니라 회사 일일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위한 일은 없을까’, ‘둘이 함께 일하면서 아이도 키울 수 있는 일은 없을까’고민하며 창업 기회를 모색하다 우연한 기회에 스마트팜을 알게 됐다. 

농사는 땅에서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부부에게 농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스마트팜의 존재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종현씨는 “저희의 전공을 살려서 최신 기술을 도입하면 경쟁력이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부부가 창업 아이템으로 농업을 선택한 이유다. 부부에게 농업은 낭만이 아닌 현실이다.



종현씨는 “환경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게 스마트팜의 핵심”이라면서 “일반 농사에서는 날씨 등 여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스마트팜은 저희가 환경을 직접 관리하고 제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솔씨는 “변수와 리스크를 줄일 수 있기에 품질도 일정하게 나올 수 있고 생산량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많은 작물 중 방울 토마토를 선택한 이유는 대중성 때문이었다. 방울 토마토는 남녀노소 좋아하고 평수 대비 수익성도 좋았다. 한솔씨는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농장 체험 등 다른 사업으로의 확장성을 고려했을 때 완숙 토마토보다는 방울 토마토가 낫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방울 토마토는 부부가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서 처음으로 재배해 본 작물이기도 하다. 지난해 2월 퇴사 후, 부부는 나란히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6개월간 기숙사 생활을 하며 토마토, 딸기, 상추 등 다양한 작물을 키워보며 실습 위주의 교육을 받았다. 이 기간 동안 부부는 각방을 쓰며 각자의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했다. 


‘한 사람은 안정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한 사람만 도전하는 방법도 있지 않냐’고 묻자, 한솔씨가 단호한 얼굴로 “부부는 일심동체잖아요. 사업 준비하는 게 크게 투자하는 것도 많고 결정할 것도 많고 혼자 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한솔씨가 긍정적이고 결단력 있는 성격이라면, 종현씨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성격이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올인하는 게 맞는 걸까 걱정했다던 종현씨는 “지금 생각하니 아마 혼자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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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닝포인트에서 만난 평생교육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서 교육을 받던 중 부부는 사관학교 교수님으로부터 매치업 사업을 소개받는다. 청년 농부 사관학교에서 농업 전반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면 매치업 스마트팜 과정에서는 스마트팜에 특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종현씨와 한솔씨가 이수한 스마트팜 전문 과정은 연암대학교와 팜한농·LG CNS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구축 전문가 ▲방제 전문가 ▲영양 전문가 ▲환경 관리 전문가 교육과정 등 4개 강좌를 온라인으로 운영했다. 온라인 수업이 끝난 후 현장 견학과 실습도 진행됐다. 

부부는 8주간 2시간씩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서 매주 퀴즈를 풀고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도 쳤다.  이해가 잘 안 가면 영상을 몇 번씩 다시 돌려보기도 하고 서로 질문하며 공부했다. 부부는 둘 다 성적 우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수업을 들으면서 토마토와 관련해서 어떤 해충과 병이 있고 어떻게 방제해야 하며 어떤 조건을 주었을 때 가장 잘 자랄 수 있는지와 같은 좀 더 깊이 있는 내용들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또 당시 저희가 온실 구축을 위해 업체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공사원가 계산서나 계약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하는지, 계약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큰 도움이 되었어요.”  -종현씨  


한솔씨는 “스마트팜 관련해서는 생각보다 전문적으로 교육해 주는 곳이 많지 않은데 무료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만족했다”고 말했다. 종현씨는 “매치업 사업을 알게 된 후 우리가 들을만한 다른 교육은 없는지 사이트에 자주 들어가서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전북 완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만난 종현씨와 한솔씨에게는 귀농 지역을 고르는 것도 큰 고민이었다. 스마트팜 짓기 좋은 땅을 찾아 전남 해남, 충북 괴산 등 안 가본 곳이 없다는 부부는 유통망을 고려해 지난해 10월 경기도 여주에 있는 지금의 땅을 매입했다. 퇴사한 지 8개월 만이었다. 퇴사 전 미리 받아둔 대출금과 그동안 모아둔 돈이 사업 자금이 되었다. 

‘몇 년간 귀농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던데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 같다’고 말하자 한솔씨가 웃으며 말했다. 


“남편은 걱정이 많아서 조금 더 있다가 (땅을) 사자고 했는데, 그날 딱 본 날 결정하고 다음 날 매매를 했어요. 놓치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어차피 고민 많이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일단은 해보자 싶었죠. 부딪쳐 봐야 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젊은 나이에 시작한 것도 있고요.” -한솔씨


옆에 앉아 있던 종현씨는 “아무래도 큰 투자이기도 하고 아직 초기라 확정된 게 없으니 마음이 쫄리기는 하지만 괜찮겠죠?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한솔씨의 긍정 바이러스가 종현씨에게도 이미 번진 듯했다. 

땅을 구한 후 시공업체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원가 관련 일을 했던 한솔씨의 경험이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믿을 수 있는 시공업체를 만나 지난 5월부터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사는 오는 7, 8월 경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부부는 ‘방울 따옴 토마토 농장’이라는 브랜드명으로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SNS 채널에 농장 준비 과정을 업로드하고 있다.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판로를 확보하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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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조롱하지 않는 문화





농업은 생활이기도 하다. 예비 귀농인들이 공통적으로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지역 주민들의 텃세다. 새로운 지역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집 구할 때 고생했죠. 생각보다 빈집이 없더라고요. 월세도 잘 없고요. 저희가 힘들어하고 있으니까 주민 분이 집을 구해주셨어요. 아무래도 저희가 젊기도 하고 주민분들께 먼저 다가가니까 예뻐해 주시는 것 같아요. 사실 주민 분들과 부딪힐 일은 아직 크게 없는 것 같아요.”  -한솔씨 


농사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배우는 것부터 땅을 매입하고 시공업체를 선정하고 온실을 구축하고 집을 구하고 지원 사업 사업 계획서를 쓰고… 회사에서는 내가 맡은 역할만 충실히 해내면 됐다면 사업은 A부터 Z까지 내가 해야만 일이 끝난다. 어려움의 연속이지만 두 사람은 ‘내 일’을 하고 있다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회사 생활할 때는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겼는데, 이제는 저희 시간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어서 좋아요. 저희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으니까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사업적으로도 비전이 있을 것 같고요.”  -종현씨


“밖에 있는 게 너무 좋아요(웃음). 맨날 사무실에 앉아서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고 살다가… 하루하루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저는 회사 다닐 때도 즐거웠는데 나오니까 더 좋아요. 물론 준비하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결과물이 바로바로 나오고 뭔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고요.”  -한솔씨 



부부의 공부는 끝이 없다. 스마트팜 관련 책을 찾아보거나 스마트팜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사례를 공부하고 선도 농가를 방문해 보기도 한다. 한솔씨는 “처음에는 기계 잘 쓰고 컴퓨터 잘 하면 스마트팜에 도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 이거 우리 둘이네?’ 했는데 실전은 달랐다”면서 “숫자도 보이고 컴퓨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도 다 아는데 저희가 농사는 잘 모르니까 어떤 걸 믿고 따라가야 할지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 여주시 청년 후계농으로 선정된 부부는 최근 청년 후계농 대상 필수 교육으로 세금 관련 교육을 듣기도 했다. 꼼꼼한 종현씨는 농업 관련 경영, 회계 분야를 깊게 공부해 이후에 컨설팅을 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부는 여주에서 운영하는 농업인 대학에서 경영 마케팅 수업도 듣고 있다. 

종현씨와 한솔씨는 오는 9월부터 방울 토마토를 심어 11월부터는 수확을 시작할 예정이다. 


“귀농해서 3년, 5년 버티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장기적으로 수익이 생기면 땅을 더 매입하고 사업도 더 다각화해보고 싶어요. 방울 토마토 판매뿐 아니라 체험 농장, 원데이 클래스, 방울토마토를 활용한 반려동물 가공식품 개발 등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종현씨


귀농을 고민하는 예비 귀농인들에게 두 사람은 막연하게 고민만 하지 말고 사업계획서를 한 번 써보라고 조언했다.



“사업 계획을 안 써보면 이게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잘 감이 안 오더라고요. 수익을 어떻게 낼지에 대해 계획을 세워보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한솔씨  


인터뷰 내내 부부는 “일단 해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에 계속 부딪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서 건강하고 단단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끝으로 종현씨와 한솔씨에게 도전하는 삶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본인에 대한 확신과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퇴사할 때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요. 청년층이 도전의식을 갖고 여러 분야에 도전하게 되면 농업뿐만 아니라 많은 분야가 발전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또 삶의 터닝포인트에서는 공부가 필요하잖아요. 그때 접할 수 있는 교육 기회가 더 다양해지고 많아졌으면 해요.”  -종현씨


“개인적으로는 ‘안 돼도 괜찮아'라는 마인드가 필요할 것 같고요. 사회적으로도 실패에 대해 조롱하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좋겠어요. 주변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한다고 하면 ‘그거 왜 해, 망하면 어떡해'라고 하고 잘 안 되면 ‘잘 안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려면 자금이 필요한데 투자 시스템도 활성화되면 좋을 것 같아요.”  -한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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