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원장 김제선_“보편적 평생교육, 당위 넘어 국민 설득부터”

2022-08-27


9대 진흥원협의회장 임기 마치는 김제선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 





모든 마지막이 그렇듯, 전국시도평생교육진흥원협의회장(아래 진흥원협의회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만난 김제선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협의회장의 얼굴에는 후련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묻어났다. 

김 원장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 말까지 1년간 제9대 진흥원협의회장을 맡아 진흥원 협의회를 이끌었다. 진흥원협의회는 전국 17개 시도평생교육진흥원 간의 교류와 협력을 목적으로 2013년 창설된 연대기구다. 

김 원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만나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교류와 협력의 출발이라고 생각해 실무진 차원에서라도 최대한 자주 만나려 했다"면서 “대통령 선거와 지방 선거가 겹치는 시기였는데 ‘보편적 평생학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공동 정책 대응을 했다"고 지난 1년의 성과를 설명했다. 






김 원장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12월 유은혜 당시 교육부 장관과 조해진 당시 국회교육위원회 위원장을 각각 방문해 ▲진흥원협의회 법정단체화 ▲시도평생교육진흥원의 기능과 역할 강화 ▲교육예산 10%의 평생교육 의무배정도입 등 정책을 건의한 바 있다. 


협의회장을 지내며 절감한 평생학습계의 한계도 있었다. 김 원장은 “보편적 평생교육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미흡했다”면서 “국민들에게 보편적 평생교육을 설득해 내지 못한 것은 평생교육계가 성찰할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 희망제작소장 등을 지낸 사회운동가 출신인 김 원장은 2020년 11월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장으로 취임했다. 지난 8월 12일,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 원장실에서 만난 김 원장은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인터뷰에서 유머러스하면서도 단호한 말투로 거침없이 답변을 쏟아냈다. 

김 원장은 인터뷰 내내 보편적 평생교육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며 “담론”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평생교육이 “잔여적 여가 활동"이 아닌 국민 모두 언제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기본권이 되기 위해 평생학습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담론 형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진흥원이 학습자를 존중하고 실제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이 된다면 국민들의 지지기반이 넓어지고 신뢰도도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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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서 문해교육을 할 수는 없을까?




지난 1년간 진흥원협의회장을 맡으셨는데요. 성과와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요?

“시도 진흥원 별로 기능과 역할의 편차가 커요. 시와 도 차이도 있고 인재육성, 장학 기능을 가진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고 내부 직원 처우나 역할도 다르죠. 평생교육계 각 그룹 소통채널을 만들어 활성화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과 협력해서 시도진흥원 모델 연구를 추진한 것이 성취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진흥원협의회 법정단체화는 법률개정안이 계류돼 있는데 여야 간 이견은 없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정단체화 이전 단계로 사단법인 설립 총회를 했습니다. 



아쉬운 점은, 보편적 평생학습이 여전히 대중화되기에는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재 교육부 예산에서 평생교육 예산은 1%도 안 되거든요. 평생교육계는 당위적으로 ‘정부가 (보편적 평생교육을) 해야 한다’라고 촉구하고 있는데 정작 보편적 평생교육으로 가기 위한 경로 설계는 덜 된 것 같아요. 국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배우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잖아요. 이를 공공이 100% 책임지는 구조로 갈지, 민간에서 시장 주도로 갈 것인지, 비영리의 역할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역할과 책임 분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경로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풍성해져야 할 것 같아요.

새 정부 들어서고 자치 정부 수반들이 바뀌면서 독립적 법인으로 돼있던 일부 진흥원들이 다른 기관과 통폐합되는 일이 시작되고 있어요. 일부 기능 조정이 되고 있는 지역도 있고요. 공공기관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공공성을 헤치게 될까 우려스럽습니다.”  



김월용 원장(인천), 고석규 원장(전남)에 이어 이번이 <평생학습e음> 웹진에서 진행하는 세 번째 진흥원장 인터뷰인데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국가적 차원에서 평생교육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은 분명한 것 같은데 왜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가 어려운 걸까요? 

“제가 쓴 칼럼 중에 이런 게 있어요. ‘남의 교육에 관심 끄고 내 교육에 신경 쓰자’. 다들 교육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은영 박사가 나오는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면 애가 문제예요? 부모가 문제예요? 99% 부모가 문제예요. 학령기 아이가 아니라 나 자신이 배워야 해요. 순자는 ‘학불가이이(學不可以已)’라고 했어요. 배움에 끝이 없다는 거죠. 

평생교육계는 보편적 평생교육을 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데 그럼 교육계는 동의하는가? 인구 소멸 시대가 되고 대학이 죽어가면서 대학은 보편적 평생교육에 점차 동의하고 있어요. 초중고도 언젠가는 같은 상황이 오기 전에 훨씬 더 전향적인 고민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농고가 생명과학고로 바뀌고 전국적으로 시도별로 생명과학고가 다 있어요. 그런데 귀농귀촌 센터를 따로 만들어요. 왜 생명과학고에서 야간에 성인 학습자를 가르치면 안 되는 걸까요? 현재 문해 교육 대상자가 전국적으로 550만 명에 달하는데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한글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성인들을 가르치면 안 되는 걸까요? 이분들이 한글을 배우는 순간 삶의 주인이 되고 행복감이 얼마나 높아지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절감될 수 있는데요. 

입시 중심으로 교육을 사고하는 틀을 바꾸는 것이 여전히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어요. 담론에서 밀리고 있는 거예요. 조금 세게 이야기하면 ‘담론 투쟁’이라고 하죠.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평생교육계가 평생학습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은 것에 대해 헌법 재판도 걸고 소송도 하는 등 여러 활동이 누적돼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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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교육




말씀을 듣다 보니 한국 교육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7월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 웹진에  ‘평생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출범을 바라며’라는 칼럼을 실으셨어요. 여전히 국가교육위원회는 법적 출범 시한을 넘겨 표류 중인데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시나요? 

“한국 정치 환경이 거대 양당 구도이다 보니 적대적 공존을 해요. 장기적 발전 전망에 따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을 정치가 못하게 되는 거죠.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는 2002년 대선 이회창 후보 때부터 필요하다고 주장했어요. 2017년 대선 때는 여야 모든 후보가 공약을 했고요. 물론 국교위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교육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에 대한 거시적인 중장기 계획을 세우고 논의하는 사회적 테이블 자체가 안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아쉬워요. 더 문제는 국교위에 학교 교육 관련자만 모이고 평생교육 관련 인사가 한 명도 안 들어가게 되면 또 학령기 중심으로만 생각하게 될 거 아니에요. 국교위에 평생교육계 인사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고, 평생교육에 대한 특별위나 전문위도 설치되어야 합니다.” 





보편적 평생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원장님께서 생각하시는 ‘보편적 평생교육’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배우고 싶을 때 배우고 가르치고 싶을 때 가르칠 수 있는 것이 보편적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전에서 시민활동할 때 마을 어린이 도서관 만드는 걸 돕는 일을 했어요. 아이 키우는 거 힘들잖아요. 걸어서 10분 안에 아이들이 편하게 갈 수 있고, 시끄럽게 떠들고 놀아도 되고,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볼 수 있는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생교육도 이런 모습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공자가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고 했죠. 배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돌보다 보면 지역 주민들이 공동체 속에서 함께 학습하고 성장할 수 있게 돼요. 우리는 누구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 초등학교 6학년이 초등학교 1학년 가르칠 수 있죠. 꼭 돈 내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죠. 내가 1시간 누군가를 가르쳤으면 무료로 1시간을 배울 수 있다거나, 공공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어요.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교과 과정이 정해져 있는 형식 학습의 틀을 벗어난 사고가 필요해요.”



희망제작소장으로 계시다 2020년 11월부터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장을 맡고 계시는데요. 다른 성격의 조직에서 일해보시니 어떠신가요?

“시민사회와 평생교육계가 다른 것 같지만 궤를 같이 해요. 시민사회의 본질적 기능에 평생학습 기능이 있거든요. 대전참여자치연대 있을 때 의회 모니터링을 위한 교육, 예산 분석 학교 같은 것을 했어요. 교육이 수반되지 않으면 시민단체 활동을 할 수 없어요. 희망제작소는 자치 정부 수반들을 모아서 교육하고 훈련하는 목민관 클럽을 해요. 수원평생학습관을 설립할 때부터 희망제작소에서 위탁운영하기도 했고요.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시민사회 있을 때는 돈도 만들어야 하고 사람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는 돈도 있고 사람도 있고(웃음) 대신 새로운 것을 하기에는 의사결정이 오래 걸리고 동의 받는 절차가 복잡하다는 어려움이 있어요. 공공기관의 숙명이죠.”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은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진흥원인데요. 경기도에 31개 시군이 있더라고요. 지역 간 격차가 매우 클 것 같은데 균형 성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셨나요?

“경기도 남부와 북부의 불균형이 심해요. 평생교육만 불균형이 있는 게 아니라 남부에 비해 북부가 교통도 불편하고 인프라도 부족하고 복지관도 부족하고 전반적으로 불균형이 있죠. 다만 경기도는 자치정부 수반들이 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31개 시군이 모두 교육부로부터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됐어요. 

상대적으로는 좋은 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지역별 격차가 있고 자치정부 수반이 누구냐에 따라 관심과 투자의 편차가 있는데요. 진흥원에서는 평생학습 프로그램 공급에 있어서 소외계층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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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어려워진 소외계층 도울 수 있도록




코로나19 펜데믹 2년 동안 평생교육계도 많이 침체됐는데요. 경기도 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평생학습 디지털 전환’을 위해 애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평생교육 관련자들이 디지털 방식으로 학습하고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스튜디오’를 파주, 양평, 수원에 만들었어요. 평생교육 강의를 하거나 콘텐츠 제작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인프라 투자를 시작한 것인데요. 어려운 여건 속에서 도의회가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저는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도민이 직접 강사가 돼서 ‘평생교육 1번가’, ‘GSEEK’ 등 온라인 채널에 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각 시군마다 스튜디오가 생겨서 청소년, 성인학습자들이 서로 연결돼서 생태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쌍방향 생태계가 조성되기를 바랍니다.” 




원장님 개인적으로는 평생교육의 수혜를 받아보신 적 있나요?

“운동권이라는 게 다 비형식 학습이니까요(웃음). 대학 들어가서 서클 활동했던 것, 어린이도서관 만든 것, 사회적경제 생태계 만든 것 모두 다 학습 과정이었죠. (벽에 있는 서각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서각이 제가 최근에 배워서 판 거예요. 스스로를 경계하는 자경문이에요. ‘무본도생(務本道生)’은 본질에 충실하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는 뜻이고, ‘절문근사(切問近思)’는 절실히 믿되 가까운 곳에서부터 실천하자는 뜻이에요. 

저에게 서각을 가르쳐주신 분은 저한테 돈을 받지 않으셨어요. 그분도 누군가에게 신세졌기 때문에 저에게 가르쳐주신 거죠. 원래 우리 사회에서는 가르치고 돈을 받는 게 오히려 특이한 일이었어요. 교육과 돈의 거래는 아주 최근의 일이죠. 평생교육 현장에서 강사들이 힘들어하는 게, ‘내가 돈 냈는데 너는 이것밖에 안 하냐'는 반응이에요. 공동체적인 호혜관계였던 교육이 시장의 거래관계로 변한 거죠. 원래 배움이라는 게 공동체적인 관계 속에서 주고 받는 것인데, 이걸 다시 되돌려야 해요.”  



원장님 말씀을 듣다 보니 평생교육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가 다시 심해지고 있기는 한데요. 엔데믹 전환을 앞두고 평생교육계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코로나19로 인해 고령층, 농촌지역, 취약계층일수록 평생학습 접근권이 더 멀어졌어요. 이번에 비 피해도 가난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 것처럼, 똑같은 감염병이라 해도 어려운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든 거죠. 이분들과 함께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 고민이 필요하고요. 이를 위해서는, (미리 준비해 온 답변지를 읽으며) 이 구절을 꼭 써주세요. 


‘분연히 떨쳐 일어나 평생학습을 잔여적 여가활동으로 취급하는 무지몽매한 정책 담당자와 맞서 싸우는 결단을 해야 한다.’


정말 중요한 평생학습이 잔여적 활동으로 취급되지 않기 위해서는 세력화가 필요해요. 제가 술자리에서 건배사로 ‘작주개진(作主皆眞)’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내가 주인이 되면 온 세상이 진리로 가득한 행복을 맛볼 수 있다는 거죠. 평생교육계가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모든 국민들이 평생학습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소명을 가지고 우리가 주인이 돼서 움직이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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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홍현진

photographer 이민정

design 이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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