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은상 수상자 워헤드 학생_울산 사는 아프간 소년의 꿈 “한국 사람들 돕고 싶어요”

2022-11-28


‘제10회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 

초등부 은상 수상한 워헤드 학생




“이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들었던 쿵쾅쿵쾅거리는 무서운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봄에는 짹짹 새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에는 맴맴 매미소리를, 가을에는 귀뚜라미 소리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정말 꿈같은 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소년 워헤드(12)는 울산 서부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난 11월 5일 LG 사이언스파크에서 개최된 ‘제10회 전국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서 워헤드는 각각 한국어와 다리어(아프간어)로 자신의 꿈을 발표했다. 워헤드는 “한국에서 모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프가니스탄 넘버원 경찰이 되고 싶다”고 한국말로 또박또박 말했다. 워헤드는 이번 대회에서 초등부 교육부장관상 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8월 한국에 온 지 1년여 만이었다. 


아프간 특별기여자 391명(78가구)이 한국 땅을 밟은 지 1년이 지났다. 아프간 특별기여자는 주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 한국국제협력단(KOICA), 바그람 한국병원 등에서 일하며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을 도운 이들이다. 지난해 탈레반이 재집권하며 외국 정부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한국 정부는 ‘미라클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이 무사히 아프간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왔다. 특별기여자들은 충북 진천과 전남 여수의 임시생활시설에서 생활하며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을 받았고 올해 초부터 취업 지역을 정해 인천, 김포, 남양주, 울산 등 지역 사회에 정착했다. 

울산은 가장 많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가족이 자리를 잡은 지역이다(157명, 29가구). 특별기여자 가장 29명은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부 등 여러 협력업체에 취업했고, 학령기에 있는 자녀 69명은 울산에 있는 학교에 등교를 시작했다. 

특별기여자가 대규모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반발도 있었다. 올해 3월 아프간 학생들의 서부초 등교를 앞두고 일부 학부모들이 “먼저 외국인 학교부터 고려하라”, “우리 아이들 맘 놓고 학교 보낼 수 있는 대안을 달라”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에 울산시 교육청에서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여는가 하면, 노옥희 교육감이 아프간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첫 등교에 함께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보금자리를 찾은 아프간 특별기여자 가족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11월 25일, 울산 동구 서부초등학교를 찾았다. 서부초에는 현재 26명의 특별기여자 자녀가 다니고 있다. 서부초에서는 아프간 학생들의 안정적인 한국 생활 정착을 위해 울산시 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한국문화적응반 3학급(1~2학년/3~4학년/5~6학년)을 운영하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는 워헤드와 워헤드의 어머니 마르지아, 5~6학년 특별학급 담임인 박지영 교사 그리고 서부초에 상주하며 아프간 학생들의 통역을 돕고 있는 김호산나 통역사가 참석했다.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 발표 때와 달리 워헤드는 취재진을 보자 부끄러운 듯 연신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박지영 교사는 “워헤드가 발표할 때는 하나도 안 떨고 긴장도 안 했는데 원래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워헤드가 수줍음 때문에 답변을 제대로 못할 때면 “아까 선생님에게 말했던 것처럼 편하게 하면 된다”면서 옆에서 용기를 북돋웠다. 




“한국어 공부 많이 했어요, 노력했어요”




워헤드의 가족은 총 6명이다. 워헤드의 여동생 카리마는 서부초 5학년에, 또 다른 두 동생은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워헤드의 부모님은 아프간 바그람 공군기지에 위치한 바그람 한국 병원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간호사, 어머니는 간호조무사였다. 워헤드의 어머니 마르지아는 “직원들과 매우 잘 지내며 매우 행복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탈레반이 20년 만에 수도 카불을 재점령하면서 평화는 깨졌다. 마르지아는 “탈레반이 외국인이랑 같이 일한 사람은 살려주지 않겠다고 목숨을 위협했다"면서 “그때 한국 정부에서 도와주겠다고 해서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울산에 오기 전 진천과 여수에 6개월 동안 머물렀다는 마르지아는 “여수에서는 직원과 동행 하에 밖에 나갈 수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한국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묻자 워헤드는 커다란 눈을 똑바로 뜨며 말했다. 


“선생님, 여기 안전해요. 

      아프가니스탄에선 계속 싸웠어요.”  


마르지아는 “물론 탈레반이 수도에 오기 전에도 전쟁이 많았지만 탈레반이 수도를 차지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면서 “탈레반이 오기 전에는 학교도 갈 수 있었는데 탈레반이 온 후에는 학교, 병원 등 모든 공공시설이 다 닫혔다”고 말했다. 당시 충격과 두려움이 깊숙이 박혔기 때문일까. 박지영 교사는 “아이들이 다들 아프간에 안 돌아가고 싶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워헤드에게 이중 언어 말하기 대회 이야기를 꺼냈다.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한국어가 늘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묻자 워헤드는 “박지영 선생님이랑 공부 많이 했어요. 노력했어요"라고 말했다. 워헤드는 “처음에는 한국말이 너무 어려웠다”면서 “글자를 봤을 때 ‘이거 어떻게 읽어요’ 했어요”고 말했다. 



현재 서부초에서는 아프간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지원을 위해 3월부터 7명의 한국어 교육 교사가 주 14시간씩 한국어를 지도하고 있다. 특별학급인 한국문화적응반에서는 아프간 학생들이 한국반(원적반) 수업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과 수업을 기초부터 다져나가고 있다. 한국사 공부와 예절 교육을 꾸준히 실시하고 학생들이 모국어인 다리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다리어 단어 공부를 숙제로 병행하기도 한다. 5~6학년 특별학급에서는 현재 9명의 아프간 학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워헤드의 동생 카리마도 같은 반이다.

아프간 학생들은 일주일에 10시간씩 한국 학생들이 지내는 반에 가서 함께 수업을 듣는다. 워헤드는 6학년 5반이다. 박 교사는 “같은 학년 아이들과 아무래도 학력 격차가 나다 보니 한국반에 갈 때는 16명의 협력 강사 선생님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도움을 주신다"면서 “또 학과 수업이 끝난 뒤 매일 2시간씩 한국어와 수학을 1:1로 배우는 ‘오름길 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영 교사는 “1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 한국어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다”면서 “지금은 한국어로 일기도 쓰고 동화책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어 학습에 대해 박지영 교사는 “학생들마다 어려운 부분은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외국인들이 조사를 적절하게 쓰는 부분을 힘들어한다”면서 “음운에서 자음은 ㅈ과 ㅊ을 구분하기 힘들어하고, 모음은 ㅗ와 ㅜ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이 가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워헤드는 직접 만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지은 그림책을 보여줬다. 캐릭터 이름 중 ‘지민'이 있길래 누구냐고 물어보니 BTS 지민이란다. ‘BTS 지민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워헤드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반 가는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




2013년 시작돼 올해로 10년 차를 맞은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는 다문화 학생의 이중언어 학습과 정체성 확립을 돕고자 매년 개최되고 있다. 전국 대회에 앞서 17개 시도에서 다문화 학생 664명(초등 399명, 중등 265명)이 참가한 예선 대회가 열렸고 시도 대표로 51명(초등 28명, 중등 23명)이 선발됐다. 워헤드도 그중 한 명이다. 이번 대회는 교육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LG, 한국외국어대학교가 함께 개최했다.  

박 교사는 이중언어 말하기 대회에 나가기 위해 원고를 작성하는 과정부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학교 대표로 2명만 예선에 나가기는 했지만 저희 반은 처음부터 다 같이 원고 작성하고 연습도 다 같이 했어요. 왜냐하면 아이들이 배우려는 의지가 정말 강해서 몇 명만 특별하게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원고를 쓰기에는 막연하니까 꿈은 뭐고, 아프간 있을 때는 뭐가 좋았고, 한국에 와서 뭐가 좋았고 이런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다 같이 학교 방송실 가서 연습하고 강당에서도 연습하고 운동장에서도 연습했어요.”  


워헤드는 연습을 많이 했기 때문에 무대에서 하나도 떨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연습도 많이 했지만 아프간은 한국만큼 경쟁이 치열한 사회가 아니다 보니 아이들이 ‘1등 해야 해', ‘다 맞춰야 해'라는 압박감이 상대적으로 덜해서 오히려 자기가 연습한 것을 부담 없이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이런 부분은 저도 배울 점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은상을 수상했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워헤드는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저는 1등하고 싶었어요. 그래도 3등해서 좋았어요.” 



아프간에서 워헤드는 늘 무엇이든 1등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도 한국에 있을 때처럼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아프간 학교와 한국 학교의 다른 점에 대해 워헤드는 아프간에서는 수업이 빨리 끝나는데 한국에서는 수업도 많고 숙제도 많다며 “숙제가 많아서 게임도 못하고 놀지도 못해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국 학교가 낯설었던 워헤드에게 이제 26명의 한국인 친구들이 생겼다. 워헤드에게 학교생활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언제인지 묻자 “한국반에 갈 때 제일 재밌어요”라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과 페이스북에서 만나서 온라인 게임을 함께 하는 것이 워헤드에게 큰 즐거움이다. 



박지영 교사는 “처음에는 한국 학생들과 아프간 학생들이 따로 떨어져 있다 보니 어색한 면이 있었는데 함께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점점 친해지고 있다"면서 “한국 학생들이 반갑게 아프간 학생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기도 하고 한국 친구 집에 방문하거나 SNS를 통해 서로 소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부초는 오는 12월부터 아프간 학생들이 한국반에서 수업받는 시간을 점차 늘려갈 계획이다. 



‘우리 아프간 좋아해’ 말해주는 한국인들 




인터뷰가 진행된 교실 뒤편에는 아이들의 사진과 함께 가족 소개, 좋아하는 색, 계절, 음식, 장래희망 등이 적혀 있었다. 지난 8개월의 시간이 교실 곳곳에 묻어나 있었다. 박지영 박 교사는 아프간 아이들을 만나게 된 과정을 ‘미라클’이라고 말했다. 



“아이들과 저는 진짜 운명처럼 만났죠. 저는 원래 중동에서 항공사 승무원을 했어요. 카타르에도 있었고 두바이에도 있었죠. 그런데 마침 아프간 특별학급 담임교사를 뽑는다는 채용공고를 봤어요. 저는 이미 이슬람권 문화에 잘 적응돼 있으니 이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밝고 잘 따라줘요. 조금이라도 모르면 이해가 될 때까지 질문을 해요. 아이들이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서 이끌어가는 데 수월해요.” 



박 교사는 지난 3월 처음 아이들과 처음 만났을 때 서먹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뭔가가 있을까’고민하다 생일을 챙겨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 생일이 언젠지 다 조사를 해서 달력에 체크를 하고 그달 그달 생일을 챙겨주기로 했어요. 입학한 지 며칠 안 돼서 생일인 아이가 있어서 ‘Happy Birthday to you’노래를 틀었는데 애들이 생일 챙기는 게 뭔지를 모르는 거예요. 아프간은 대가족이다 보니까 집에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생일을 안 챙기는 문화였던 거예요. 그때부터 그달에 생일 있는 친구들에게 노래 불러주고 같이 사진 찍고 했는데 7월에 제 생일이 있었어요. 그달에 생일인 아이가 두 명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선생님 생일도 같이 하자’고 말하는 걸 보고 얘들이 진짜 마음이 따뜻하다고 느꼈어요.” 



이날 다리어 통역을 맡아준 김호산나 통역사와 아프간 특별기여자들과의 인연도 놀랍다. 어린 시절 아프간 인근 타지키스탄에 10년간 살았다는 김 통역사는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언어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그 지역 문화와 언어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해 8월 아프간에서 특별기여자들이 왔을 때부터 통역을 맡아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통역사는 “처음에 진천에 수업 통역으로 가서 아프간 어머님, 아버님들을 만났는데 초등학교 시절 아이들과 떠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너무 행복했다”면서 “그때부터 여수, 남양주, 울산까지 특별기여자 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김 통역사와 마르지아, 아프간 학생들 사이에 끈끈한 유대감이 느껴졌다.  



마르지아는 “처음에 아이들 등교를 반대하시는 분들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 많이 속상하고 슬펐다”면서 “걱정을 엄청 많이 했는데 이후에 한국 분들이 잘해주시고 도와주시는 모습 보고 (한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시장에 가면(마르지아는 이 말을 할 때 ‘시장’을 다리어가 아닌 한국어로 말해서 옆에 있던 워헤드가 웃었다) 처음이라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데 한국 분들이 돈 계산하시는 것 도와주시고 아이들한테도 과자 하나씩 쥐어주면서 ‘우리 아프간 좋아해’라고 말해주세요.”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아이들에 비해 어른들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다. 일과 육아, 가사 등으로 평일에 분주한 아버지, 어머니들은 주말에 하루씩 몰아서 하루 종일 한국어를 배운다. 다문화센터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배우는 것도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는 일을 못해서 외롭다는 마르지아는 요즘 재봉틀을 배우고 있다. 마르지아는 한국말을 잘하게 돼서 일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르지아는 한국어로 이렇게 말했다.  


“(한국어) 머리가 아파요(웃음). 한국말 빨리 배우고 싶어요.” 



갑작스레 떠나온 고국이 그립지는 않을까. 마르지아는 “낮에는 바쁘니까 정신없으니 생각을 못 하다가 밤에 밥을 짓다 보면 아프간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마르지아는 “그래도 이곳에서는 아이들 미래가 밝아서 좋다”고 말했다. 아프간에서는 여자 학생들이 초등학교 6학년까지만 다닐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이들에 계속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를 좋아한다는 워헤드는 한국에서 친구들과 축구할 때면 아프간에서 같이 축구하던 친구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1시간 반쯤 지난 오후 4시 10분, ‘오름길 학습’을 마친 아프간 학생들이 우르르 교실로 몰려 들어왔다. 아이들은 취재진에게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한국말로 먼저 살갑게 인사를 건넸다. 얼굴에 수줍음과 장난기가 묻어났다. 

박 교사는 “한국 사회는 이슬람 문화와 무슬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존재하는 것 같다”면서 “오해와 편견을 불식시키는 소통의 시작은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따뜻한 관심이 지속된다면 아프간 학생들이 우리 한국 사회에 잘 안착하여 훗날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훌륭히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경찰의 어떤 점이 멋져 보였냐’는 질문에  워헤드는 “한국 경찰이 나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면서 “꼭 경찰이 되고 싶다”고 강조했다. 


“저는 계속 한국에 살고 싶고 한국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고 배려해 주고 싶어요.” 


워헤드는 내년부터 중학교 일반 학급에서 한국 학생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10년 후, 20년 후의 워헤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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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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