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음의 탐구생활]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과학 문해력’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 코너 |


이정모 관장의 집무실에는 수십 마리 공룡 피규어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유명한 ‘공룡 덕후’인 이 관장은 독일 유학 시절 공룡에 빠져들어 책과 논문을 읽으며 공룡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공룡 좋아하다가 9살, 10살 되면 더는 흥미가 없어져요. 그게 질문을 못 찾으니까 그래요. 저희 과학관에서는 답을 주지 않아요. 답을 주면 재미가 없어요. 우리 과학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에요.”
스스로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이정모 관장은 질문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생화학을 전공한 이 관장은 안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1년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제일 싫었던 게 성적 매기는 거였어요.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 받고 마음 상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이건 할 일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이 정도 교양만 있으면 되는데 왜 수준을 나누나 싶었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5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4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3년. 지난 12년 동안 이정모 관장은 “직업이 관장"이자 “어쩌다 공무원”으로 살았다. 과학관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뿐 아니라 책 집필, 방송 출연 등 과학과 대중 사이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유익한데 재밌어요.” 이 관장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다. 유익함과 재미를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해 이 관장은 매일 책과 논문을 읽고 경계 없이 사람을 만난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그를 <평생학습e음> ‘이음의 탐구생활’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한 이유다.
지난 1월 1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만난 이 관장은 방송에서 보던 모습처럼 소탈하고 유쾌했다. 소문난 달변가답게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내놨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철학이 담겨 있는 이 관장의 말에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곱씹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2020년에 민간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되셨어요. 오는 2월 말에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임기가 끝나는데요. 3년 임기를 마치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관장 취임 후 첫 번째 결재가 코로나19로 인한 무기한 휴관이었어요. 관람객이 못 오는 상황에서 우리 내부의 일하는 방식, 시스템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 기획·제작을 외주로 주던 것을 내부에서 직원들이 직접 만들면서 예산을 절감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고요.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오래된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매년 3분의 1씩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교체했고요. 다른 박물관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수도권에 있는 박물관들과 꾸준히 협력해 전시를 열고 협력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과학관 구독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과학 실험 키트 만들어서 배송해 주고 동시에 온라인에 접속해서 실험을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죠. 이렇게 하니까 서울, 경기뿐만 아니라 경남, 전남, 제주에 계신 분들도 참여할 수 있더라고요. 온라인 과학관을 활성화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실제로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진짜 대학 실험실처럼 실험실을 싹 바꿨죠.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을 지낼 때는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거라 오히려 쉬웠는데, 국립과천과학관은 이미 있는 것을 바꿔야 하니 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규모나 예산도 더 크고요.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관장이 오면 고칠 것은 고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새로운 길로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과천과학관을 ‘실패의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 시절부터 과학관을 단지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체험과 실험을 직접 하는 곳으로 만드셨는데요. 관람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희 과학관에서는 답을 주지 않아요. 과학관이 답을 주면 재미가 없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과학 좋아하다가 왜 안 좋아해요? 질문을 못 찾아서 그래요. 어릴 때 공룡 좋아해서 이름 외우고 크기 외우고 초식이야, 육식이야 하다가 9살, 10살 되면 더 이상 질문을 못 찾으니까 흥미가 없는 거예요. 우리 과학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에요.
사실 답은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질문을 못 찾을까요. 영어 사전을 떠올려 보세요. 종이 사전에서는 단어 하나 찾으려면 위에 있는 단어와 아래 있는 단어를 같이 보면서 단어를 확장할 수 있는데 인터넷 사전에서는 딱 원하는 단어만 찾을 수 있어요. 새로운 것을 스스로 찾아내기 어렵죠. 그런 점에서 이런 오프라인 공간들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직접 작동해 보면서 스스로 질문을 얻게 하는 거죠. 관람객들게도 인기가 많아요.”

국립과천과학관 유튜브 채널
과천과학관 유튜브 구독자 수가 7만 명이 넘더라고요. 온라인 과학관을 구상한 이유가 있을까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문 못 연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시민들에게 과학적인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보통 관에서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면 썸네일부터 공무원스러운 유튜브가 많은데 우리는 그렇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각 파트별로 직원들이 직접 제작을 했어요. 그러다 PD도 채용했고요. 처음에는 직원들이 얼굴 내미는 것도 어색해서 마스크 쓰고, 가면 쓰고 했는데 점점 프로그램 퀄리티가 좋아졌어요.”

유퀴즈 온더 블록 방영분 중
‘유퀴즈 온 더 사이언스’라고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더라고요. 관장님이 직접 어린이 관람객을 게스트로 섭외해서 이야기 나누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거 난리가 났었어요. 서로 나오겠다고(웃음). ‘별.보.라’라고, 별이 보이는 라디오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요. 우리 직원이 천체투영관 보여주면서 별자리 해설 해주면서 음악도 틀어주고 사연도 읽어주고 라디오처럼 진행을 하는 건데 인기가 많았어요. 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관심이 많구나 싶었죠.
온라인 과학관을 통해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을 소비하게 됐으면 했어요. 왜 꼭 과학을 공부해야 하나요. 미술관 갈 때 ‘너 미술가 돼야 해'라고 안 해요. 축구 보러 가면서 ‘너 축구 선수 돼야 해'라고 안 하죠. 그런데 왜 과학관에만 오면 애들한테 ‘너 과학자 돼야 해'라고 하나요? 그건 후진국의 모습이에요.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니까 과학도 문화로 즐겼으면 해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저는 과학 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문학책을 읽으라고 해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 보면 공통점이 다 문학소년이었다는 거예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과학책에서는 지식과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독서력이 커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문학책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요. ‘갑자기 왜 도망을 가? 갑자기 왜 바람이 나?(웃음)’ 상상을 해야 하는 거죠. 독서력이 커져요.
그리고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반드시 실패를 해요. 실패가 없으면 문학이 성립을 안 하죠. 그러다 털고 일어나는 거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 실패를 해볼 텐데, 문학을 통해 실패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어요. 좌절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문학 작품을 읽으라고 해요. 과학적 지식은 진리가 아니에요. 몇 년만 지나도 많은 게 바뀌니까요. 과학을 몇 년씩 선행학습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시험’을 위한 과학 말고, ‘문화’로서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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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과학 교육에 관심 많은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관에서 정모'를 운영하는 등 성인 대상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열고 있는데요. 어른들에게는 왜 과학이 필요할까요?
“2017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14세 이하 인구보다 더 많아졌어요. 204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가 돼요. 애들은 갈수록 줄어들어요. 자꾸 어린이 과학관 짓자고 하는데 없는 애들 대상으로 과학관을 계속 지어봤자 뭐 하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화의 영역에서 과학을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제가 (과천과학관에) 오기 전부터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잘돼있었어요. 참여도도 높았고요. 그런데 성인들은 시간이 없잖아요. 이 바쁜 사람들에게 과학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죠.”

과학이라는 게 학교 다닐 때는 시험 때문에 공부하다가 졸업 후에는 써먹을 일이 없으니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 같아요.
“영어, 수학, 사회 다 똑같지 않나요? 역사, 정치, 경제, 심리 다 어려운데 과학만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어요. 딴 거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자연어로 돼있는데 과학은 수학이라고 하는 비자연어로 돼있으니까 거리가 느껴지죠. 내가 아무리 사당동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도 태국 사람에게 사당동에 대해 설명하면 못 알아듣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해요.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수학이라는 언어 대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어로 과학을 설명해 주는 거죠. 모든 연구에는 세금이 들어가요. 그래서 모든 연구의 결과물은 시민에게 전달돼야 합니다. 과학자와 시민들 사이에서 중간에 연결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과학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책도 많이 펴내고 방송 출연도 활발하게 하셨어요. 대중의 눈높이에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장님만의 원칙이 있을까요?
“PPT 슬라이드 만들 때 글자 안 넣고 사진만 넣어요.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요. 처음에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반응의 정도를 보면서 이 사람이 어디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파악을 하는 거죠.
강연을 하다 보면 공간에 따라 참석하는 사람들이 달라요. 작은 도서관이나 작은 지역 서점에 온 분들은 되게 진지해요. 이런 분들에게는 넓게 이야기하지 않고 좁게, 깊게 강의하죠. 큰 도서관, 극장식 강연장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하고요. 저는 딱 세 가지만 얻어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 시간 강연에도 세 가지 두 시간 강연에도 세 가지. 그 세 가지를 연결고리 삼아서 계속 기억에 남게 하는 거죠.”

철저히 수용자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당연하죠. 돈 주는 사람들인데(웃음). 이 분들은 이 내용을 배워서 시험을 치려는 게 아니라 과학을 문화로 즐기러 온 거잖아요. 와주시는 게 고마우니까 그분들에게 어떤 걸 줘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할까 고민해요. (강연장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변화가 있으면 되는 거지, 변화의 양이나 임팩트는 그 다음이에요.”
과학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과학화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자꾸 이렇게 만나야 하죠. 사이언스 리터러시(과학 문해력)를 갖는다는 건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과학 지식이 필요해요. 과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뿐 아니라 대중도 과학에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과학 대중화라고 하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초등학교 4,5학년 정도가 그 대상이었어요. 이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어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같은 경우는 매주 목요일마다 저녁에 성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는데요. 좌석이 60석인데 그중 40석 정도가 반복해서 오시는 분들이었어요. 한 번 관심을 가지니까 재미를 느끼고 프로그램 끝나고 같이 맥주 마시면서 전화번호 교환하고요. 교사인 참가자는 본인이 일하는 학교에 과학자들을 초청하기도 했어요. 대중의 과학화라는 게, 아이들과 노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됐는데 성인층이 비어 있어요. 대상층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야 해요.”

대학생 때부터 9년 넘게 야학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요. 그때의 경험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엄청 커요. 가장 결정적이죠. 제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는데요. 집에 오면 엄마가 오늘 뭘 배웠냐고 물어봐요. 엄마가 다림질하고 있으면 ‘어, DNA라고 하는 게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 엄마가 아주 재밌게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설명을 잘했죠(웃음). 어느 날 엄마가 교회에 야학이 있는데 교사를 하면 양복을 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양복에 혹해서 하겠다고 했죠(웃음).
제가 있던 야학은 검정고시 야학이자 노동야학, 생활야학이었는데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사람들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놈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제자들은 검정고시를 다 붙여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검정고시 붙이는 게 쉽지 않아요. 잘 가르쳐야 해요.
그럼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 이분들은 하루 열몇 시간씩 일하고 온, 무지무지하게 피곤한 사람들이에요. 복습할 시간, 예습할 시간이 어딨어요. 이런 분들도 듣고 이해하고 시험을 맞출 수 있도록 수업 내용을 수십 번씩 머릿속으로 연습했어요. ‘이 이야기할 때는 이런 예시를 들어야겠다, 이때쯤 되면 지칠 때니까 이런 농담을 해야겠다’ 열심히 시뮬레이션했죠. 야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저한테 도움을 준 곳이에요. 교회 분들, 교사들,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공부하시는지 궁금해요. 혹시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책 쓴 다음부터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과학자 친구들이 생기니까 편하더라고요.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니까요. 과학책 쓰는 사람들끼리는 그게 좋아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책 내면 수십 권씩 사주고요. 과학책 쓰는 사람들이 적어요. 우리가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많은 작가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분위기가 매우 협력적이에요.”

매일 책과 논문을 읽으신다고 들었어요.
“매일 읽죠. 안 읽으면 쫓아가지를 못 하니까요. 저는 페이스북에 노벨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논문을 찾느라 시간 낭비가 심했는데요. 요즘에는 페북에서 논문을 골라서 해설해 주는 분들이 있어요. 해설까지는 안 바라고 고르기만 해줘도,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 팔로우 해두면 쫓아갈 수 있죠. 혼자서는 다 못 찾아 읽어요.”
집단지성 같은 느낌이네요.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 읽는다고 하시던데요.
“교양 과학서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책이 나와도 90% 정도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럼 그 부분만 읽는 거죠. 처음에는 지식이라는 게 이렇게 천천히 쌓여요. 그러다 어느 변곡점이 되면 확 올라가요. 20살 때부터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한 게 40년이 쌓이다 보니까 그런 변곡점이 오는 것 같아요. 그만큼 많이 읽고 공부하면서 인사이트가 생겼으니까요.”

더 명랑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위해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과학 문해력이 높은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숫자로 생각하는 사회가 과학 문해력이 높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충제 달걀’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그 당시 달걀에서 피프로닐이라는 독성 성분이 발견됐다고 해서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ADI(평생 1일 섭취 허용량)와 ARfD(급성 독성 참고량) 기준을 보면, 체중 60kg 성인이 평생 동안 ‘살충제 달걀’을 하루에 5.5개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돼있어요. 몸에서 독성이 발휘되려면 하루에 달걀 246개를 먹어야 하고요. 아니 하루에 달걀 246개를 어떻게 먹어요. 독성이 발휘되기도 전에 배가 터져 죽을걸요.
저는 그 달걀이 괜찮다는 게 아니에요. 물론 문제는 있죠. 그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되는 거지,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서 한 판에 몇 만원 하는 달걀을 사 먹고, 제 제자는 운영하던 빵집이 망하고, 수많은 양계장이 파산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4대강 사업할 때 쏟아져 들어간 세금을 생각해 보세요. 억울하지 않나요? 우리가 숫자로 생각하면 안심하면서 내 돈과 세금을 절약할 수 있어요. 그럼 명랑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과학관도 평생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학관이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는 공간, 장수 시대에 퇴직자가 새로운 공부를 하며 우주와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어요. 이를 위해 앞으로 과학관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과학관이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계속해야 하지만, 굳이 공부가 아니라 놀러 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해요. 미술관처럼 과학관도 남자친구, 여자친구 데리고 가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으면서 계속 오다 보니까 과학이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고 해서 노벨상 받는 게 아니잖아요. 저변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된다고 봐요. 지금 우리 K팝 한 번 봐요.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다양해 지면서 외국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즐기게 됐잖아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기가 끝난 후 3월부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없어요. 제안이 많이 오기는 하는데, 일단 올해 여름까지는 놀러 갈 계획을 다 짜놨어요. 먼저 스페인에 6주 갈 예정이고요. 스페인어 공부를 334일째 하루도 안 빠지고 하고 있어요. 코모도 도마뱀 보러 발리에 일주일 갈 거고요. 새 보러 몽골에 일주일 갑니다. 나머지는 밀린 원고 쓸 거예요.
제가 어쩌다 공무원이에요. 12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공무원 일을 했네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가을부터도 어디 출근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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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홍현진
photographer 이민정
design 이해선
[이음의 탐구생활]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이 말하는 ‘과학 문해력’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 코너
이정모 관장의 집무실에는 수십 마리 공룡 피규어가 곳곳에 놓여있었다. 유명한 ‘공룡 덕후’인 이 관장은 독일 유학 시절 공룡에 빠져들어 책과 논문을 읽으며 공룡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공룡 좋아하다가 9살, 10살 되면 더는 흥미가 없어져요. 그게 질문을 못 찾으니까 그래요. 저희 과학관에서는 답을 주지 않아요. 답을 주면 재미가 없어요. 우리 과학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에요.”
스스로를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르는 이정모 관장은 질문을 얻을 수 있게 돕는 사람이다. 생화학을 전공한 이 관장은 안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2011년 서대문 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부임했다.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제일 싫었던 게 성적 매기는 거였어요. 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열심히 공부했는데 성적 받고 마음 상하는 일이 반복되니까 이건 할 일이 아니다 싶더라고요. 이 정도 교양만 있으면 되는데 왜 수준을 나누나 싶었죠.”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으로 5년,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으로 4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으로 3년. 지난 12년 동안 이정모 관장은 “직업이 관장"이자 “어쩌다 공무원”으로 살았다. 과학관 운영을 책임지는 역할뿐 아니라 책 집필, 방송 출연 등 과학과 대중 사이를 잇는 작업을 꾸준히 하느라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유익한데 재밌어요.” 이 관장이 출연한 유튜브 영상에 어김없이 달리는 댓글이다. 유익함과 재미를 둘 다 놓치지 않기 위해 이 관장은 매일 책과 논문을 읽고 경계 없이 사람을 만난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그를 <평생학습e음> ‘이음의 탐구생활’ 첫 번째 인터뷰이로 선정한 이유다.
지난 1월 11일, 국립과천과학관에서 만난 이 관장은 방송에서 보던 모습처럼 소탈하고 유쾌했다. 소문난 달변가답게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을 내놨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과 철학이 담겨 있는 이 관장의 말에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곱씹어 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왜 우리는 질문을 못 찾을까?
2020년에 민간 출신으로는 최초로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 되셨어요. 오는 2월 말에 국립과천과학관 관장 임기가 끝나는데요. 3년 임기를 마치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관장 취임 후 첫 번째 결재가 코로나19로 인한 무기한 휴관이었어요. 관람객이 못 오는 상황에서 우리 내부의 일하는 방식, 시스템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죠. 전시나 교육 프로그램 기획·제작을 외주로 주던 것을 내부에서 직원들이 직접 만들면서 예산을 절감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었고요.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을 위한 전시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오래된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매년 3분의 1씩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교체했고요. 다른 박물관과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수도권에 있는 박물관들과 꾸준히 협력해 전시를 열고 협력 체계를 갖췄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과학관 구독 서비스를 만들었어요. 과학 실험 키트 만들어서 배송해 주고 동시에 온라인에 접속해서 실험을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았죠. 이렇게 하니까 서울, 경기뿐만 아니라 경남, 전남, 제주에 계신 분들도 참여할 수 있더라고요. 온라인 과학관을 활성화하고, 오프라인에서는 실제로 과학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진짜 대학 실험실처럼 실험실을 싹 바꿨죠.
서울시립과학관 관장을 지낼 때는 기존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거라 오히려 쉬웠는데, 국립과천과학관은 이미 있는 것을 바꿔야 하니 좀 더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규모나 예산도 더 크고요.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할 일은 다 한 것 같아요. 이제 새로운 관장이 오면 고칠 것은 고치고 포기할 것은 포기하면서 새로운 길로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과천과학관을 ‘실패의 체험이 가능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서울시립과학관 시절부터 과학관을 단지 보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체험과 실험을 직접 하는 곳으로 만드셨는데요. 관람객들 반응은 어땠나요?
“저희 과학관에서는 답을 주지 않아요. 과학관이 답을 주면 재미가 없어요. 아이들이 어릴 때 과학 좋아하다가 왜 안 좋아해요? 질문을 못 찾아서 그래요. 어릴 때 공룡 좋아해서 이름 외우고 크기 외우고 초식이야, 육식이야 하다가 9살, 10살 되면 더 이상 질문을 못 찾으니까 흥미가 없는 거예요. 우리 과학관은 호기심을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얻어 가는 곳이에요.
사실 답은 인터넷에서 너무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우리가 질문을 못 찾을까요. 영어 사전을 떠올려 보세요. 종이 사전에서는 단어 하나 찾으려면 위에 있는 단어와 아래 있는 단어를 같이 보면서 단어를 확장할 수 있는데 인터넷 사전에서는 딱 원하는 단어만 찾을 수 있어요. 새로운 것을 스스로 찾아내기 어렵죠. 그런 점에서 이런 오프라인 공간들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직접 작동해 보면서 스스로 질문을 얻게 하는 거죠. 관람객들게도 인기가 많아요.”
국립과천과학관 유튜브 채널
과천과학관 유튜브 구독자 수가 7만 명이 넘더라고요. 온라인 과학관을 구상한 이유가 있을까요?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문 못 연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시민들에게 과학적인 즐거움을 주고 싶었어요. 보통 관에서 운영하는 유튜브를 보면 썸네일부터 공무원스러운 유튜브가 많은데 우리는 그렇지 하지 않기로 했어요. 각 파트별로 직원들이 직접 제작을 했어요. 그러다 PD도 채용했고요. 처음에는 직원들이 얼굴 내미는 것도 어색해서 마스크 쓰고, 가면 쓰고 했는데 점점 프로그램 퀄리티가 좋아졌어요.”
유퀴즈 온더 블록 방영분 중
‘유퀴즈 온 더 사이언스’라고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하는 프로그램도 있더라고요. 관장님이 직접 어린이 관람객을 게스트로 섭외해서 이야기 나누는 게 흥미로웠어요.
“그거 난리가 났었어요. 서로 나오겠다고(웃음). ‘별.보.라’라고, 별이 보이는 라디오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요. 우리 직원이 천체투영관 보여주면서 별자리 해설 해주면서 음악도 틀어주고 사연도 읽어주고 라디오처럼 진행을 하는 건데 인기가 많았어요. 아, 사람들이 생각보다 더 관심이 많구나 싶었죠.
온라인 과학관을 통해서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을 소비하게 됐으면 했어요. 왜 꼭 과학을 공부해야 하나요. 미술관 갈 때 ‘너 미술가 돼야 해'라고 안 해요. 축구 보러 가면서 ‘너 축구 선수 돼야 해'라고 안 하죠. 그런데 왜 과학관에만 오면 애들한테 ‘너 과학자 돼야 해'라고 하나요? 그건 후진국의 모습이에요.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니까 과학도 문화로 즐겼으면 해요.”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말씀을 해주시나요?
“저는 과학 하고 싶다는 어린이들에게 문학책을 읽으라고 해요.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 보면 공통점이 다 문학소년이었다는 거예요.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학에서도 살아남는다고 생각해요. 과학책에서는 지식과 정보는 얻을 수 있지만 독서력이 커지지 않거든요. 그런데 문학책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펼쳐져요. ‘갑자기 왜 도망을 가? 갑자기 왜 바람이 나?(웃음)’ 상상을 해야 하는 거죠. 독서력이 커져요.
그리고 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반드시 실패를 해요. 실패가 없으면 문학이 성립을 안 하죠. 그러다 털고 일어나는 거죠. 연구자의 길에 들어서면 실패를 해볼 텐데, 문학을 통해 실패를 미리 경험해 볼 수 있어요. 좌절하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회복 탄력성을 기를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과학자가 되고 싶으면 문학 작품을 읽으라고 해요. 과학적 지식은 진리가 아니에요. 몇 년만 지나도 많은 게 바뀌니까요. 과학을 몇 년씩 선행학습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죠.”
‘시험’을 위한 과학 말고, ‘문화’로서의 과학
아이들 과학 교육에 관심 많은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과학관에서 정모'를 운영하는 등 성인 대상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열고 있는데요. 어른들에게는 왜 과학이 필요할까요?
“2017년 기준으로 65세 이상 인구가 14세 이하 인구보다 더 많아졌어요. 2040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30%가 돼요. 애들은 갈수록 줄어들어요. 자꾸 어린이 과학관 짓자고 하는데 없는 애들 대상으로 과학관을 계속 지어봤자 뭐 하겠어요.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문화의 영역에서 과학을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제가 (과천과학관에) 오기 전부터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잘돼있었어요. 참여도도 높았고요. 그런데 성인들은 시간이 없잖아요. 이 바쁜 사람들에게 과학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죠.”
과학이라는 게 학교 다닐 때는 시험 때문에 공부하다가 졸업 후에는 써먹을 일이 없으니 자연스레 멀어지는 것 같아요.
“영어, 수학, 사회 다 똑같지 않나요? 역사, 정치, 경제, 심리 다 어려운데 과학만 더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어요. 딴 거는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자연어로 돼있는데 과학은 수학이라고 하는 비자연어로 돼있으니까 거리가 느껴지죠. 내가 아무리 사당동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도 태국 사람에게 사당동에 대해 설명하면 못 알아듣잖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이언스 커뮤니케이터가 필요해요.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수학이라는 언어 대신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자연어로 과학을 설명해 주는 거죠. 모든 연구에는 세금이 들어가요. 그래서 모든 연구의 결과물은 시민에게 전달돼야 합니다. 과학자와 시민들 사이에서 중간에 연결하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과학관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책도 많이 펴내고 방송 출연도 활발하게 하셨어요. 대중의 눈높이에서 과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 관장님만의 원칙이 있을까요?
“PPT 슬라이드 만들 때 글자 안 넣고 사진만 넣어요. 그리고 사람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맞는 이야기를 해요. 처음에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반응의 정도를 보면서 이 사람이 어디까지 받아들일 준비가 돼있는지 파악을 하는 거죠.
강연을 하다 보면 공간에 따라 참석하는 사람들이 달라요. 작은 도서관이나 작은 지역 서점에 온 분들은 되게 진지해요. 이런 분들에게는 넓게 이야기하지 않고 좁게, 깊게 강의하죠. 큰 도서관, 극장식 강연장에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하고요. 저는 딱 세 가지만 얻어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 시간 강연에도 세 가지 두 시간 강연에도 세 가지. 그 세 가지를 연결고리 삼아서 계속 기억에 남게 하는 거죠.”
철저히 수용자 중심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당연하죠. 돈 주는 사람들인데(웃음). 이 분들은 이 내용을 배워서 시험을 치려는 게 아니라 과학을 문화로 즐기러 온 거잖아요. 와주시는 게 고마우니까 그분들에게 어떤 걸 줘서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할까 고민해요. (강연장에) 들어올 때와 나갈 때 변화가 있으면 되는 거지, 변화의 양이나 임팩트는 그 다음이에요.”
과학의 대중화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과학화도 중요하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는데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자꾸 이렇게 만나야 하죠. 사이언스 리터러시(과학 문해력)를 갖는다는 건 과학적 지식이 아니라 과학적인 태도,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과학 지식이 필요해요. 과학이 대중에게 다가가는 것뿐 아니라 대중도 과학에게 접근을 해야 합니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과학 대중화라고 하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초등학교 4,5학년 정도가 그 대상이었어요. 이제는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졌어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같은 경우는 매주 목요일마다 저녁에 성인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열었는데요. 좌석이 60석인데 그중 40석 정도가 반복해서 오시는 분들이었어요. 한 번 관심을 가지니까 재미를 느끼고 프로그램 끝나고 같이 맥주 마시면서 전화번호 교환하고요. 교사인 참가자는 본인이 일하는 학교에 과학자들을 초청하기도 했어요. 대중의 과학화라는 게, 아이들과 노인들은 이미 어느 정도 됐는데 성인층이 비어 있어요. 대상층을 점점 확장시켜 나가야 해요.”
대학생 때부터 9년 넘게 야학 교사 생활을 하셨는데요. 그때의 경험이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엄청 커요. 가장 결정적이죠. 제가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했는데요. 집에 오면 엄마가 오늘 뭘 배웠냐고 물어봐요. 엄마가 다림질하고 있으면 ‘어, DNA라고 하는 게 있는데… 어쩌고 저쩌고’ 하면 엄마가 아주 재밌게 들었어요. 제가 생각해도 제가 참 설명을 잘했죠(웃음). 어느 날 엄마가 교회에 야학이 있는데 교사를 하면 양복을 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양복에 혹해서 하겠다고 했죠(웃음).
제가 있던 야학은 검정고시 야학이자 노동야학, 생활야학이었는데요.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무슨 말을 하려 해도 사람들이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놈이 뭘 안다고 그래’라고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 제자들은 검정고시를 다 붙여주겠다는 목표를 세웠어요. 검정고시 붙이는 게 쉽지 않아요. 잘 가르쳐야 해요.
그럼 어떻게 잘 가르치느냐. 이분들은 하루 열몇 시간씩 일하고 온, 무지무지하게 피곤한 사람들이에요. 복습할 시간, 예습할 시간이 어딨어요. 이런 분들도 듣고 이해하고 시험을 맞출 수 있도록 수업 내용을 수십 번씩 머릿속으로 연습했어요. ‘이 이야기할 때는 이런 예시를 들어야겠다, 이때쯤 되면 지칠 때니까 이런 농담을 해야겠다’ 열심히 시뮬레이션했죠. 야학은 여러 가지 점에서 저한테 도움을 준 곳이에요. 교회 분들, 교사들,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공부하시는지 궁금해요. 혹시 모르는 내용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책 쓴 다음부터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어요. 과학자 친구들이 생기니까 편하더라고요. 전화해서 물어보면 되니까요. 과학책 쓰는 사람들끼리는 그게 좋아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 도와주고 책 내면 수십 권씩 사주고요. 과학책 쓰는 사람들이 적어요. 우리가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많은 작가들이 필요해요. 그래서 분위기가 매우 협력적이에요.”
매일 책과 논문을 읽으신다고 들었어요.
“매일 읽죠. 안 읽으면 쫓아가지를 못 하니까요. 저는 페이스북에 노벨상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논문을 찾느라 시간 낭비가 심했는데요. 요즘에는 페북에서 논문을 골라서 해설해 주는 분들이 있어요. 해설까지는 안 바라고 고르기만 해줘도, 관심 있는 분야의 사람들 팔로우 해두면 쫓아갈 수 있죠. 혼자서는 다 못 찾아 읽어요.”
집단지성 같은 느낌이네요. 책을 읽을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 읽는다고 하시던데요.
“교양 과학서 같은 경우에는 새로운 책이 나와도 90% 정도는 제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럼 그 부분만 읽는 거죠. 처음에는 지식이라는 게 이렇게 천천히 쌓여요. 그러다 어느 변곡점이 되면 확 올라가요. 20살 때부터 꾸준히 쉬지 않고 공부한 게 40년이 쌓이다 보니까 그런 변곡점이 오는 것 같아요. 그만큼 많이 읽고 공부하면서 인사이트가 생겼으니까요.”
더 명랑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위해 사이언스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과학 문해력이 높은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숫자로 생각하는 사회가 과학 문해력이 높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제가 ‘살충제 달걀’ 이야기를 자주 했는데요. 그 당시 달걀에서 피프로닐이라는 독성 성분이 발견됐다고 해서 난리가 났어요. 그런데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한 ADI(평생 1일 섭취 허용량)와 ARfD(급성 독성 참고량) 기준을 보면, 체중 60kg 성인이 평생 동안 ‘살충제 달걀’을 하루에 5.5개를 먹어도 안전하다고 돼있어요. 몸에서 독성이 발휘되려면 하루에 달걀 246개를 먹어야 하고요. 아니 하루에 달걀 246개를 어떻게 먹어요. 독성이 발휘되기도 전에 배가 터져 죽을걸요.
저는 그 달걀이 괜찮다는 게 아니에요. 물론 문제는 있죠. 그 정보를 시민들에게 알려주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되는 거지, 온 국민이 패닉에 빠져서 한 판에 몇 만원 하는 달걀을 사 먹고, 제 제자는 운영하던 빵집이 망하고, 수많은 양계장이 파산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4대강 사업할 때 쏟아져 들어간 세금을 생각해 보세요. 억울하지 않나요? 우리가 숫자로 생각하면 안심하면서 내 돈과 세금을 절약할 수 있어요. 그럼 명랑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과학관도 평생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학관이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는 공간, 장수 시대에 퇴직자가 새로운 공부를 하며 우주와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공간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어요. 이를 위해 앞으로 과학관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과학관이 평생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도 계속해야 하지만, 굳이 공부가 아니라 놀러 올 수 있는 곳이 됐으면 해요. 미술관처럼 과학관도 남자친구, 여자친구 데리고 가서 지적으로 보일 수 있으면서 계속 오다 보니까 과학이 재밌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노벨상을 목표로 한다고 해서 노벨상 받는 게 아니잖아요. 저변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된다고 봐요. 지금 우리 K팝 한 번 봐요. 우리나라 문화 수준이 점점 높아지고 다양해 지면서 외국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즐기게 됐잖아요.”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임기가 끝난 후 3월부터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없어요. 제안이 많이 오기는 하는데, 일단 올해 여름까지는 놀러 갈 계획을 다 짜놨어요. 먼저 스페인에 6주 갈 예정이고요. 스페인어 공부를 334일째 하루도 안 빠지고 하고 있어요. 코모도 도마뱀 보러 발리에 일주일 갈 거고요. 새 보러 몽골에 일주일 갑니다. 나머지는 밀린 원고 쓸 거예요.
제가 어쩌다 공무원이에요. 12년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공무원 일을 했네요.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가을부터도 어디 출근하기보다는 자유로운 일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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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홍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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