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평화나무농장 김준권·원혜덕 부부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유기농 제품은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한동안 환영받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웰빙시대라 불리는 요즘 소비자들은 농산물을 구매할 때 친환경 혹은 유기농인 제품을 선호한다. 그만큼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던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유기농을 고집해온 농부들이 있었던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집스러웠던 농부 중 한 명이 바로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대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 처음 유기농을 소개했던 정농회의 창립 회원이다. 1976년 정농회를 통해 유기농이 전파되며 명맥을 이어왔다. 그 당시 유기농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2005년부터 발도르프 교육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1861~1935)가 창시한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을 실천 중이다. 생명역동농업은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생소하지만 EU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유기농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내 나이가 일흔여섯인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해 넘어갈 때까지 일을 해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그 에너지는 내가 지은 농산물을 먹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내가 생명역동농업의 효과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지요.” - 김준권 대표 - |
김 대표만큼 유명한 이가 바로 그의 아내 원혜덕 씨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알려진 풀무원농장의 고 원경선 씨의 딸이자 주식회사 풀무원의 창시자인 원혜영 전 국회의원의 동생이기도 하다. 단순히 유명인의 딸이기만 해서 유명한 것은 아니다. 남편 김 대표와 40년 넘게 유기농업을 해오며 페이스북에 농사일기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원 씨는 김 대표와 결혼 후 유기농업을 함께 하기 위해 교사도 그만둘 정도로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그냥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더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온 두 부부를 보기만 해도, 그 이름처럼 평화로움이 넘쳐나는 농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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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의 쇠퇴를 막는 생명역동농업

Q. 생명역동농업이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이 농업은 1924년에 루돌프 슈타이너를 시초로 지금은 전 세계에 전파된 농법입니다. 생명역동농업은 한마디로 생명력 쇠퇴를 막는 농법입니다. 지금은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농가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지속 가능성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면 땅이 황폐해지고 사막화됩니다. 생산량도 급감해요.
생명역동농업은 사람과 토양과 환경의 지속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생산 방식이죠. 우주적인 요소와 에너지를 토양에 전달하고, 토양에 전달된 그 활력이 작물로 오고, 그 작물의 최종 이용자는 사람이니까, 그 활력이 사람한테 와서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유기농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활력에너지를 어떻게 식물한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죠.
Q. 생명역동농업은 다른 농법과 많이 다른가요?
제가 올 10월에 국제 생명역동농업 연합 데메터(DEMETER)가 주관하는 데메터 인증 심사를 국내 최초로 받을 예정입니다. 이 단체에는 유럽과 미국, 남미 등 50개국 이상의 생명역동농법 농가들이 가입해있는데, 데메터 인증을 받은 제품은 다른 유기농 제품에 비해 20~30% 비싸게 팔릴 정도로 신뢰가 높습니다. 이 인증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에요. 농부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지, 동물 사육은 윤리적이고 농장의 생명체는 충분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까지도 따져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농약만 적게 써도 친환경이라는 범주에 넣어줍니다. 유기농에 대한 명확한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에 비하면 생명역동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음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데메터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면 국내에 생명역동농업을 정착시키고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생명역동농업의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건강하고 활력있는 땅이어야 건강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그러한 건강한 토양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생명역동농업이죠. 생명역동농업은 유기농업과 마찬가지로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 등 합성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숙된 퇴비와 유기물로 작물을 기르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방제하는 등 자연의 순리에 맞는 농업 방식을 추구합니다. 땅을 건강하게 만들고 적절한 날에 맞춰서 각각의 작물을 심고 길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날이란 일반적인 재배 적기가 아니라 각각의 작물이 가장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날을 뜻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물이 가장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날을 알려 주고 그에 따라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생명역동농법 파종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 파종달력이 알려주는 날짜에 따라 씨를 뿌리고 옮겨심고 김을 매주어 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파종 달력만큼 중요한 것이 9종류의 증폭제를 사용하는 겁니다. 증폭제는 생명역동농업에서 땅의 기운을 생성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종달력에 9가지 증폭제가 무엇이며 각 증폭제의 특징과 무슨 달 무슨 일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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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짓기 위해 유기농 고집

Q. 처음 농사를 지을 때부터 유기농을 고집해오셨습니다. 유기농을 평생 고집해오신 이유가 있나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입니다. 저도 처음 군에서 제대한 후 풀무원농장에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일본 유기농업 단체인 애농회의 고다니 준이치 씨가 우리 농장을 방문해서 강의를 했어요. 그 강연을 통해 농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생겨서 지금껏 농사를 업으로 삼게 된 겁니다.
그때 선생님이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여러 중요한 일이 많지만,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화학비료나 농약을 많이 뿌려서 생산량만 늘리는 농사가 아니라 사람을 해치지 않는 농사, 사람을 살리는 농사여야 한다고 하셨죠.
그때부터 농사를 제 일로 받아들였는데, 제 생각이 바뀌니까 농사가 참으로 즐거운 일이 되더군요. 지금까지 농사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Q. 유기농업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포천에 자리잡고 한 10년간 땅심을 기르는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수확이 없었지요. 그 당시에는 양주에서 장인어른과 아내가 유기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트럭으로 거름을 날라 밭에 뿌리고 생명역동농업 증폭제를 계속 뿌리는 일을 반복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에 집을 짓고 가축을 키울 축사도 지었어요. 하지만 유기농으로 기른 작물은 볼품이 없어서 시장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토마토를 생산했는데 바로 팔기도 힘들어서 주스로 팔려고 작업장도 지어야 해서 빚도 많이 졌습니다. 그나마 자급이 가능해서 버텼지만 농지를 일부 팔아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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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로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시작하다

Q. 농사를 지어도 안 팔려서 큰 고생을 하셨겠어요. 지금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아내가 페이스북에 우리가 농사짓는 이야기를 써서 올린 것이 큰 도움이 됐지요. 한 1년 정도 글을 계속 올렸는데 우리 상품을 팔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름에 수확한 토마토를 전부 주스로 만들었는데 농장 한쪽에 가득 쌓아두기 그래서 페이스북에 토마토주스를 판다고 올렸더니 이틀 만에 토마토주스가 절반은 나가고 그 후에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와서 봄이 되기 전에 동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산양유 요거트와 통밀빵, 들기름, 양파 이렇게 해마다 우리가 농사지어 만든 물품들을 올렸는데 모두 바로 팔리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제대로 농사를 짓기만 한다면 소비자가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주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CSA는 다른 회원제와 다른 것인가요?
20년 전에 풀무원농장을 방문했던 미국 농부가 농사지은 채소를 시장에 내지 않고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한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한가 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대산해외농업연수에 참가했을 때 호주와 뉴질랜드의 유기농장을 방문했을 때 CSA를 알게 됐습니다.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라는 말은 해석하자면 ‘공동체, 혹은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농업’이라는 뜻입니다. 몇 년 동안 우리 생산물을 꾸준히 소비해준 소비자가 있어서 가능했지요.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우리가 생산하는 물건과 우리가 운영하는 농장에 대해 신뢰가 생겨서 본격적인 CSA를 할 수 있었습니다.
CSA에 성공하려면 생산자의 마음가짐과 정성이 있어야 하고 소비자의 가치 소비에 대한 마인드가 같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제품을 갖추고 소비자가 필요로 할 때 팔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1년 동안 우리가 지을 작물에 따라 1년 계획을 세우고 미리 주문해놓고 받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산품과 달리 날씨에 따라 작황이 달라져서 다른 물품으로 대체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주는 것은 우리 농장이 잘 꾸려질 수 있도록 돕고 우리의 농업 방식에 동의한다는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자를 제2의 생산자, 또는 공동생산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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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보다 가치 존중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기를

Q.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갈수록 농업이 젊은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이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해외 농가가 와서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EU의 농업정책에 감동했습니다. 한 명의 농업인을 어떤 식으로 길러내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농업인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원은 합니다. 그런데 신뢰가 없어요. 지원해봤자 농업인들이 제대로 쓰지 않을 거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어서 제대로 된 지원 효과를 못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서 더욱 농업이 외면받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농업이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살면서 농업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생명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죠. 그 생명을 살리고 유지 시키는 것, 생명의 원료가 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 농업입니다. 또한 자연을 보존하고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역 소멸 문제도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특별한 규모 확장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 있나요?
2㏊ 정도 규모에서 50가지 작물을 농사짓고 있어요. 선식에만 12가지 작물이 들어가니까 양은 많지 않아도 종류가 다양해요. 산양유도 그렇고 한우도 그렇고 할 일이 많아서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독자들에게 꼭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아이들한테 이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보면 다 이익을 추구하는 삶, 돈을 숭배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갈수록 세상이 힘들어지는 이유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익보다는 가치 존중이 더 인정받는 세상이 된다면 농업도 대접받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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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민
사진 강민구
[이음의 탐구생활] 평화나무농장 김준권·원혜덕 부부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유기농 제품은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 때문에 한동안 환영받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웰빙시대라 불리는 요즘 소비자들은 농산물을 구매할 때 친환경 혹은 유기농인 제품을 선호한다. 그만큼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탓이다.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던 어려운 시기를 버티며 유기농을 고집해온 농부들이 있었던 덕에 우리나라에서도 유기농 제품을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고집스러웠던 농부 중 한 명이 바로 평화나무농장 김준권 대표다.
김 대표는 우리나라에 처음 유기농을 소개했던 정농회의 창립 회원이다. 1976년 정농회를 통해 유기농이 전파되며 명맥을 이어왔다. 그 당시 유기농업을 시작한 김 대표는 2005년부터 발도르프 교육으로 유명한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1861~1935)가 창시한 ‘생명역동농업(Bio-Dynamic Agriculture)’을 실천 중이다. 생명역동농업은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생소하지만 EU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수준 높은 유기농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내 나이가 일흔여섯인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저녁 해 넘어갈 때까지 일을 해요. 그 힘이 어디에서 나오겠어요?
그 에너지는 내가 지은 농산물을 먹기 때문에 나오는 거예요. 내가 생명역동농업의 효과를 보여주는 산 증인이지요.”
- 김준권 대표 -
김 대표만큼 유명한 이가 바로 그의 아내 원혜덕 씨다. 우리나라 유기농업의 선구자로 알려진 풀무원농장의 고 원경선 씨의 딸이자 주식회사 풀무원의 창시자인 원혜영 전 국회의원의 동생이기도 하다. 단순히 유명인의 딸이기만 해서 유명한 것은 아니다. 남편 김 대표와 40년 넘게 유기농업을 해오며 페이스북에 농사일기를 꼼꼼하게 기록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원 씨는 김 대표와 결혼 후 유기농업을 함께 하기 위해 교사도 그만둘 정도로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해왔다. 그냥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생명의 가치를 더하는 농사를 짓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온 두 부부를 보기만 해도, 그 이름처럼 평화로움이 넘쳐나는 농장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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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의 쇠퇴를 막는 생명역동농업
Q. 생명역동농업이라는 말이 생소합니다.
이 농업은 1924년에 루돌프 슈타이너를 시초로 지금은 전 세계에 전파된 농법입니다. 생명역동농업은 한마디로 생명력 쇠퇴를 막는 농법입니다. 지금은 화학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농가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지속 가능성이 없어요. 그런 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면 땅이 황폐해지고 사막화됩니다. 생산량도 급감해요.
생명역동농업은 사람과 토양과 환경의 지속적인 건강을 유지하는 생산 방식이죠. 우주적인 요소와 에너지를 토양에 전달하고, 토양에 전달된 그 활력이 작물로 오고, 그 작물의 최종 이용자는 사람이니까, 그 활력이 사람한테 와서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게 보면 유기농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만 활력에너지를 어떻게 식물한테 전달할 것인가 하는 내용이 추가된 것이죠.
Q. 생명역동농업은 다른 농법과 많이 다른가요?
제가 올 10월에 국제 생명역동농업 연합 데메터(DEMETER)가 주관하는 데메터 인증 심사를 국내 최초로 받을 예정입니다. 이 단체에는 유럽과 미국, 남미 등 50개국 이상의 생명역동농법 농가들이 가입해있는데, 데메터 인증을 받은 제품은 다른 유기농 제품에 비해 20~30% 비싸게 팔릴 정도로 신뢰가 높습니다. 이 인증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에요. 농부가 자연 친화적인 삶을 사는지, 동물 사육은 윤리적이고 농장의 생명체는 충분한 권리를 누리고 있는지까지도 따져 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농약만 적게 써도 친환경이라는 범주에 넣어줍니다. 유기농에 대한 명확한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그에 비하면 생명역동농업은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음은 물론 모든 생명체의 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농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데메터 인증을 받을 수 있다면 국내에 생명역동농업을 정착시키고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생명역동농업의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합니다.
건강하고 활력있는 땅이어야 건강한 농산물이 생산됩니다. 그러한 건강한 토양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생명역동농업이죠. 생명역동농업은 유기농업과 마찬가지로 농약과 화학비료, 제초제 등 합성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완숙된 퇴비와 유기물로 작물을 기르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방제하는 등 자연의 순리에 맞는 농업 방식을 추구합니다. 땅을 건강하게 만들고 적절한 날에 맞춰서 각각의 작물을 심고 길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날이란 일반적인 재배 적기가 아니라 각각의 작물이 가장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날을 뜻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작물이 가장 생산력을 높일 수 있는 날을 알려 주고 그에 따라 작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생명역동농법 파종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이 파종달력이 알려주는 날짜에 따라 씨를 뿌리고 옮겨심고 김을 매주어 작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그리고 파종 달력만큼 중요한 것이 9종류의 증폭제를 사용하는 겁니다. 증폭제는 생명역동농업에서 땅의 기운을 생성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파종달력에 9가지 증폭제가 무엇이며 각 증폭제의 특징과 무슨 달 무슨 일에 어떤 작용이 일어나는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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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는 농사를 짓기 위해 유기농 고집
Q. 처음 농사를 지을 때부터 유기농을 고집해오셨습니다. 유기농을 평생 고집해오신 이유가 있나요?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사실 힘든 일입니다. 저도 처음 군에서 제대한 후 풀무원농장에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일본 유기농업 단체인 애농회의 고다니 준이치 씨가 우리 농장을 방문해서 강의를 했어요. 그 강연을 통해 농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생겨서 지금껏 농사를 업으로 삼게 된 겁니다.
그때 선생님이 사람은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자신의 삶을 가치 있는 일에 쓰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여러 중요한 일이 많지만,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화학비료나 농약을 많이 뿌려서 생산량만 늘리는 농사가 아니라 사람을 해치지 않는 농사, 사람을 살리는 농사여야 한다고 하셨죠.
그때부터 농사를 제 일로 받아들였는데, 제 생각이 바뀌니까 농사가 참으로 즐거운 일이 되더군요. 지금까지 농사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계속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Q. 유기농업을 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려움은 없었나요??
포천에 자리잡고 한 10년간 땅심을 기르는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수확이 없었지요. 그 당시에는 양주에서 장인어른과 아내가 유기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트럭으로 거름을 날라 밭에 뿌리고 생명역동농업 증폭제를 계속 뿌리는 일을 반복해서 토양을 비옥하게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12년 전에 집을 짓고 가축을 키울 축사도 지었어요. 하지만 유기농으로 기른 작물은 볼품이 없어서 시장에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어요. 토마토를 생산했는데 바로 팔기도 힘들어서 주스로 팔려고 작업장도 지어야 해서 빚도 많이 졌습니다. 그나마 자급이 가능해서 버텼지만 농지를 일부 팔아야 할까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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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A로 도시와 농촌의 연대를 시작하다
Q. 농사를 지어도 안 팔려서 큰 고생을 하셨겠어요. 지금은 회원제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아내가 페이스북에 우리가 농사짓는 이야기를 써서 올린 것이 큰 도움이 됐지요. 한 1년 정도 글을 계속 올렸는데 우리 상품을 팔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름에 수확한 토마토를 전부 주스로 만들었는데 농장 한쪽에 가득 쌓아두기 그래서 페이스북에 토마토주스를 판다고 올렸더니 이틀 만에 토마토주스가 절반은 나가고 그 후에도 꾸준히 주문이 들어와서 봄이 되기 전에 동이 났습니다.
그때부터 산양유 요거트와 통밀빵, 들기름, 양파 이렇게 해마다 우리가 농사지어 만든 물품들을 올렸는데 모두 바로 팔리더라고요. 그때 우리가 제대로 농사를 짓기만 한다면 소비자가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주신다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CSA(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Q. CSA는 다른 회원제와 다른 것인가요?
20년 전에 풀무원농장을 방문했던 미국 농부가 농사지은 채소를 시장에 내지 않고 도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한다고 했을 때 그게 가능한가 하고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 대산해외농업연수에 참가했을 때 호주와 뉴질랜드의 유기농장을 방문했을 때 CSA를 알게 됐습니다.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라는 말은 해석하자면 ‘공동체, 혹은 지역사회가 지원하는 농업’이라는 뜻입니다. 몇 년 동안 우리 생산물을 꾸준히 소비해준 소비자가 있어서 가능했지요. 그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우리가 생산하는 물건과 우리가 운영하는 농장에 대해 신뢰가 생겨서 본격적인 CSA를 할 수 있었습니다.
CSA에 성공하려면 생산자의 마음가짐과 정성이 있어야 하고 소비자의 가치 소비에 대한 마인드가 같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제품을 갖추고 소비자가 필요로 할 때 팔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1년 동안 우리가 지을 작물에 따라 1년 계획을 세우고 미리 주문해놓고 받아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공산품과 달리 날씨에 따라 작황이 달라져서 다른 물품으로 대체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불편을 감수해주는 것은 우리 농장이 잘 꾸려질 수 있도록 돕고 우리의 농업 방식에 동의한다는 응원을 보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비자를 제2의 생산자, 또는 공동생산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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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보다 가치 존중이 인정받는 세상이 오기를
Q. 농사를 짓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갈수록 농업이 젊은 사람들이 가지 않으려 하는 길이 된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해외 농가가 와서 강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EU의 농업정책에 감동했습니다. 한 명의 농업인을 어떤 식으로 길러내고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거예요. 농업인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원은 합니다. 그런데 신뢰가 없어요. 지원해봤자 농업인들이 제대로 쓰지 않을 거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있어서 제대로 된 지원 효과를 못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일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면서 더욱 농업이 외면받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농업이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살면서 농업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다고 봅니다. 생명이야말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것이죠. 그 생명을 살리고 유지 시키는 것, 생명의 원료가 되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 농업입니다. 또한 자연을 보존하고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도 합니다. 지역 소멸 문제도 농업의 가치를 인정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특별한 규모 확장 계획을 갖고 계신 것이 있나요?
2㏊ 정도 규모에서 50가지 작물을 농사짓고 있어요. 선식에만 12가지 작물이 들어가니까 양은 많지 않아도 종류가 다양해요. 산양유도 그렇고 한우도 그렇고 할 일이 많아서 지금의 규모를 유지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끝으로 독자들에게 꼭 남기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지요?
아이들한테 이익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나 학교에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보면 다 이익을 추구하는 삶, 돈을 숭배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갈수록 세상이 힘들어지는 이유가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익보다는 가치 존중이 더 인정받는 세상이 된다면 농업도 대접받는 날이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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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민
사진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