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변호사 박일환_배움은 새로운 세상을 선사합니다

2023-07-04


[이음의 탐구생활] 박일환 변호사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판사라는 직업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보통 ‘근엄함’일 것이다. 우리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여 나의 억울함을 풀어줄 마지막 보루라는 생각에 근엄한 권위를 표하며 존경을 표한다. 그런데 판사에도 종류가 여럿 있다. 대법원에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이 있고, 고등법원·지방법원·가정법원 등에는 판사가 있다. 판사는 3,000명이 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그중 대법관은 딱 13명뿐이다.

많은 판사들이 언젠가는 대법관까지 가고 싶어 하지만 한정된 자리인 만큼 그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극소수다. 그래서 대법관 출신은 변호사로 일해도 직업을 소개할 때 전직 대법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많다. 박일환 변호사도 많은 법관들이 꿈꾸던 대법관까지 역임하고 퇴임했다.

1975년 사법연수원 제5기 수료 후 각종 법원의 판사와 부장판사, 그리고 법원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2년까지 대법관을 지내고,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의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그는 전 대법관보다 차산선생이라 불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그마치 14만 명을 넘는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판결문을 통해 법을 접해왔다면 이젠 유튜버로서 세상과 법에 대해 소통하고 있습니다.
딱딱한 법보다 생활 속 유용한 법률 지식을 전달하고 있는데, 제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도 많이 만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도 접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박일환 변호사-


<차산선생 법률상식>이란 채널 이름으로 데뷔한 것은 2018년. 수십 년간 쌓은 법조계 경험이 3분 남짓한 영상에 녹아 있다. 영상엔 가족, 재산, 의료, 취미, 산재 등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법한 사례 중심의 법률상식을 담아 유익하다. 차산선생으로 이름을 정한 것은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지어준 호에서 딴 것으로 ‘그냥 저 산’, ‘동네에 있는 평범함 산’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누구나 와서 편히 쉬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몇 명 보지 않던 채널이 실버 버튼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박일환 변호사를 만나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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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관에서 인기 유튜버로 인생 2막



Q. 대법관과 유튜버라는 조합이 생소합니다. 원래 유튜브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딸 덕분에 시작한 셈이에요. 은퇴 후 35년에 걸친 법관 생활에 대한 소회나 판례를 정리한 회고록을 내볼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딸이 요즘 누가 책을 보냐며 유튜브를 권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 나이에 알지도 못하는 유튜브를 어떻게 하냐고 손사래를 쳤지요. 그런데 삼각대를 갖다 주면서 다시 권하기에 한 번 해볼까 하고 카메라를 켠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Q. 그래도 금세 적응하셨나봐요. 몇 년 되지 않았는데 구독자가 14만 명이 넘었습니다.

처음엔 삼각대 사용법도 몰라서 고생했어요. 그러다 자꾸 하니까 이젠 좀 능숙해졌습니다. 조회수도 처음에는 거의 없었어요. 몇 시간씩 고생해서 찍은 것을 딸이 편집해서 올렸는데 거의 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러다 한 유튜브 행사에서 제 유튜브 채널을 소개했는데 그때부터 조회수와 구독자수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제 구독자 연령층은 20대, 30대가 압도적인데 제 채널을 소개한 곳이 유튜브 행사라서 그런 것 같아요. 그 후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했는데 그때 10만 명을 달성했습니다.



Q. 콘텐츠 기획은 직접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생각해서 필요한 법률상식을 선정했는데 지금은 구독자가 댓글에 남긴 법률에 관한 궁금증을 콘텐츠로 삼기도 합니다. 일단 주제를 선정하면 관련 법률을 다시 검토하고 생각을 정리한 후 키워드 3개 정도를 정합니다. 그러면 딱 3분 정도 걸려요. 우리 아내가 저랑 40년을 살았는데 제가 유튜브 촬영하는 것을 보고 처음으로 ‘당신 대단하구나’ 그러는 거예요. 대법관일 때도 대단하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유튜브를 할 때 들어봤습니다.


Q. 유튜브를 시작하고 변한 것은 무엇인가요?

배움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줍니다. 저 역시 유튜브를 통해 새로운 것을 많이 접하게 됐습니다. 방송국도 가보고,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만나면서 이런 세상이 있구나, 이런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또 젊은 사람들의 언어도 많이 알게 됐어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접하면서 생활에 활력도 생기지요. 

보통 은퇴를 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고 싶다고 하잖습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다는 것은 생계를 위한 일을 그만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저는 생계가 아니라 제가 즐거워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유튜브가 그만하고 싶은 일이 아닌 것이지요. 처음엔 신기해서 업로드를 자주 했는데 지금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올리면서 부담 없이 즐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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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까지 생각해야 진정한 법관



Q. 법조인으로서는 어떻게 사셨는지 궁금합니다. 판사, 대법관, 변호사를 해보셨는데 같은 법조인이라도 차이가 있나요?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좀 다르긴 하더군요. 먼저 판사는 어떻게 하면 일 좀 적게 할까 하는데 변호사는 어떻게 하면 일을 많이 할까 하는 것부터 다르다고 할까요? 변호사는 일의 양에 따라 버는 돈도 다르니까요.(웃음) 그래도 변호사는 판사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역동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면에서 매력적입니다. 판사는 배당되는 사건의 양이 거의 정해져 있어서 밤새워 일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비교적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그런데 변호사와 달리 판사는 본인에게 배당되는 사건들만 담당하기 때문에 다소 수동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은 단점이에요.


Q. 판사 시절 남긴 판례 중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이 컸던 것이 있으셨나요?

제가 맡은 사건에서는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게 판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매 사건에 임했습니다. 특히 대법관이었을 때는 제 판결이 사건의 마지막 판결이 되는 거니까 더욱 꼼꼼히 보고 조심했던 것 같아요. 

제일 기억에 남는 사건은 대법관 시절이었던 2007년 전 제주도지사에게 무죄를 판결하며 압수수색 과정에서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다면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는 ‘위법수집 증거배제 원칙’을 적용한 겁니다. 요즘도 그 판결이 많이 인용되고 있습니다. 

또 제가 법관 중에서 지식재산권을 가장 오래 다뤘을 겁니다. ‘소리바다’의 저작권 침해 책임을 인정한 것과 ‘초코파이’ 상표와 관련해 어느 회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판결도 제가 내렸습니다. 



갈수록 지식재산권이 중요해지고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에서 IT와 문화가 결합해서 하나의 문화 장르를 형성한 나라가 우리나라하고 미국밖에 없습니다. 요즘 인기를 끄는 K-Pop의 대명사 BTS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BTS는 IT를 활용해 무명시절부터 세계인과 소통했고 결국 대스타가 됐잖아요? 우리나라 화장품도 OTT를 통해 한국 사람들 피부가 좋다는 게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었어요. 

우리나라는 이런 IT와 문화의 결합한 실력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것이죠. 지식재산권은 갈수록 엄격해지기 때문에 각 나라가 보호를 많이 해주는 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특히 2000년대 들어서 좋은 나라가 된 것은 국민들이 지식재산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한 이유가 될 겁니다.


Q. 판사로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법관이 다루는 것은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그 속에는 당사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의 미래가 오롯이 담겨 있기에 이 세상에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없는 것이죠. 그런 분들의 고충을 듣고 살피고 판단하는 심판 역할을 해야 하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립적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공평하게 대우해서 그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중립이나 공평이 사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도 항상 고민했던 부분이고요. 그래서 개인의 감정은 최대한 빼고 법리에 따라 판결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즘 판사들의 판결에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 법원의 책임이라고 봅니다. 하루 빨리 국민들이 믿는 법원이 되어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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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이 중요한 시대, 폭넓게 호기심을 갖는 것이 중요



Q. 판사로서의 소양이나 덕목이 예전보다 소홀해진 것은 교육 때문일까요? 

요즘 보니까 선행학습을 당연히 여기고 있던데 처음에는 효과가 있겠지만 그 사람이 40대, 50대가 되어서는 선행학습이 없지 않습니까? 만들어진 사람은 자기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사고와 판단으로 무언가를 해내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그렇게 키워진 젊은 판사들이 신념을 가지고 스스로의 판단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특히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아니 날이 갈수록 누군가 시키는 일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기성세대가 자신의 성공방식으로 자녀를 교육시키는 게 문제에요. 의사라는 직업도 시대에 따라 인기 학과가 달라지잖아요? 지금의 안목으로 자녀의 미래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법도 마찬가지로 많이 변했어요. 2000년대 와서 없어진 법도 많고 대신 새로 생긴 법도 많습니다. 예를 들면 70, 80년대만 해도 어음 관련 민사 사건이 많았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대신 그 시대에 지식재산권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게 많잖아요? 이처럼 시대가 변하면 콘텐츠도 변하기 때문에 지금의 시각을 고집하면 발전하지 못해요.


Q. 자신의 자녀를 법조인으로 키우고 싶다면 어떤 자질을 키워줘야 할까요?

법조인으로 키워야 한다기보다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든 굉장히 폭넓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 성공할 겁니다. 제가 대학을 가던 시절만 해도 판사, 의사, 변호사가 전문직의 대부분이었어요. 그리고 하는 일도 비슷했죠.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달리 외국하고 거래하는 일도 많고, 매매 계약의 유형도 다양해지면서 필요로 하는 역할도 다양해졌습니다. 고지식하게 공부하기보다 호기심을 갖고 다방면으로 관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판결문을 쓸 때도 논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학적 사고도 필요하니까 놓칠 수 없지요. 진짜 공부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는 거예요. 우물 안 개구리로 아이를 키우면 안 됩니다.


Q. 다들 은퇴할 나이에 새롭게 유튜브라는 세계에 도전하셔서 안착하셨는데요, 요즘 평생학습시대인 만큼 나이 들어서 공부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이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먼저 나이 들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죠. 이 나이에 내가 뭘 하겠나 하면 안 돼요. 제가 30대, 40대였던 때하고 지금하고 사회가 완전히 반대가 됐어요. 그때 좋았던 것이 지금은 나빠지고 그때 나빴던 것이 지금은 좋아진 게 많아요. 언제는 산부인과 의사가 좋은 직업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꺼리는 직업이 된 것처럼요. 지금 좋은 사람들은 그 당시에 고생한 사람들이 빛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지금 60대라고 해도 앞으로 30년은 더 산다고 봐야 합니다. 예전에는 초·중·고·대학을 다 합쳐서 15년을 배운 후 직장에서 길어야 30년을 풀어가며 살고 은퇴해요. 예순 이후의 삶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100세 시대 아닙니까? 15년 배워서 30년을 잘 살아왔는데 지금 환갑 지나면서 한 5년 정도 배워가지고 여든까지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든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한글도 배우기 전에는 어렵지만 배우고 나면 정말 쉬운 것처럼 무엇이든 배우면 쉬워집니다.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저를 보세요. 유튜브를 통해서 문화계 인사까지 만나는 새로운 세상을 만났지 않습니까? 배우고 나면 또 다른 도전이 생기고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이선민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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