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글꿈상(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박문옥 학습자
난독증으로 글자를 배울 수 없었던 시간들
나이 들어 문해교육을 받는 분들의 대부분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갈 수 없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서러울 정도로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푸념하는 학습자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도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있다. 바로 박문옥 학습자 이야기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는데 제가 글자 쓰기를 따라가지 못했더니 선생님이 저를 때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학교를 안 갔어요. 학교를 안 다니니까 한글을 배우지 못했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박 학습자는 난독증이었다. 아무리 글자를 읽고 배우려 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 학습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외워버렸다.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빼고는 뒤지는 것이 없었지만 항상 글을 모른다는 사실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도 그녀가 집안 살림을 하고 재테크하는 것을 보면서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나이 들면서 몸이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항상 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글자를 모르니 간호사가 가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주위에서 글자를 가르쳐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저도 한글을 배우고 싶었고요.
하지만 매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나는 글자를 배울 수 없겠구나’하고 포기했었죠.”
그렇게 한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수 없었던 시간이 흘렀다.
글자 아닌 소리로 한글 익히기 도전 1년 만에 성공했죠
박 학습자가 성남에 있는 집에서도 1시간은 걸렸던 용인시 신갈야간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아는 동생의 권유 때문이었다. 신갈야간학교가 문해교육을 매우 잘한다며 적극 추천했던 것. 먼 곳이라도 다니겠다고 결심하고 나섰지만 갑자기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아야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선천적으로 심장 판막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증상이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수술받고 병원을 다니면서 1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2년 전에 신갈야간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윤선희 선생님은 박 학습자에게 은인이었다. 난독증 때문에 아무리 글자를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박 씨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줬다. 눈으로 보는 글자 익히기가 아닌 소리로 글자 깨우치기로 접근한 것. 기역을 말하면 목에 탁 걸리는 느낌이 들 것이고, 리을을 말하면 혀가 말린다. 비읍을 말하면 입술이 딱 붙는다 식으로 글자를 소리로 익히기 시작했다. 1년 넘는 훈련 끝에 어느 순간 글자가 보였다. 그녀의 나이 일흔에 마침내 한글을 깨우친 것이다.
“감동이었어요. 소리를 따라 했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조합하니까 한글이 되고요.
1년 반 만에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녀가 올해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낸 작품 ‘내가 보네, 내가 읽네’에 그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하철역 이름 읽게 된 감동을 작품에 담았어요
처음에 학교 올 때 태평역에서 기흥역까지 정거장을 손으로 꼽았습니다 안내하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왔습니다 두 손이 꼭 차고 네 손가락을 더하면 내립니다
- 박문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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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바로 그녀가 처음 신갈야간학교를 찾을 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글자를 모르니 자신이 내릴 지하철역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집이 있는 태평역에서 학교가 있는 기흥역까지 14개 지하철역을 지나는 동안 손가락을 꼽아야 했다. 그러다 글자를 알게 되었고 이젠 손가락을 꼽지 않아도 자신이 내려야 할 역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자막에 나오는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짜 모를 줄 알았는데 못 볼 줄 알았는데 내가 보네 내가 읽네 이렇게 배우면 읽을 수 있구나 기흥역까지 오면서 울었습니다
- 박문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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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를 알게 되고 눈물이 많아진 박문옥 씨. 자신이 이번 생에서 글자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자신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젠 더 이상 손을 꼽지 않았고 긴장을 할 필요가 없다 보니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여기가 어느 역인지, 어떻게 해야 기흥역으로 갈 수 있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젠 졸다가 내릴 역을 놓쳐도 ‘아 내가 역을 지나쳤네’ 하며 어느 역인지 확인하고 안내판을 따라 되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그녀가 이처럼 졸다가 학교에 지각했을 때 박 씨를 가르친 선생님은 이를 감동으로 받아들였다.
문해교육 너머 성경공부에도 도전합니다
이제 한 자씩 잘 읽겠습니다 신기하고 기특한 일입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나도 읽을 수 있습니다
- 박문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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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씨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글꿈상을 수상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상이라 얼떨떨하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솔직히 썼을 뿐이라며 아직도 배워야 할 글자가 많다고 말하는 박문옥 학습자. 한글을 깨우치고 나니 간판이 보이고 성경도 읽을 수 있어서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도 밝아졌다는 평을 듣는단다. 40년 넘게 교회를 다녔는데 이젠 글자를 아니 성경교실을 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더 깊이 있게 알고 싶다는 박문옥 학습자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청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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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민
사진 강민구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글꿈상(교육부장관상)을 수상한 박문옥 학습자
나이 들어 문해교육을 받는 분들의 대부분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교를 갈 수 없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서러울 정도로 가고 싶어도 못 갔다고 푸념하는 학습자들의 사연은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그런데 경제적 여유가 있는데도 한글을 배우지 못한 경우가 있다. 바로 박문옥 학습자 이야기다.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갔는데 제가 글자 쓰기를 따라가지 못했더니 선생님이 저를 때리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학교를 안 갔어요. 학교를 안 다니니까 한글을 배우지 못했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박 학습자는 난독증이었다. 아무리 글자를 읽고 배우려 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박 학습자는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외워버렸다. 글자를 읽지 못한다는 것을 빼고는 뒤지는 것이 없었지만 항상 글을 모른다는 사실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도 그녀가 집안 살림을 하고 재테크하는 것을 보면서 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잊곤 했다. 나이 들면서 몸이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면서도 항상 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글자를 모르니 간호사가 가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던 탓이다.
“주위에서 글자를 가르쳐주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저도 한글을 배우고 싶었고요.
하지만 매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나는 글자를 배울 수 없겠구나’하고 포기했었죠.”
그렇게 한글을 배우고 싶었지만 배울 수 없었던 시간이 흘렀다.
박 학습자가 성남에 있는 집에서도 1시간은 걸렸던 용인시 신갈야간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아는 동생의 권유 때문이었다. 신갈야간학교가 문해교육을 매우 잘한다며 적극 추천했던 것. 먼 곳이라도 다니겠다고 결심하고 나섰지만 갑자기 심장 판막증 수술을 받아야 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선천적으로 심장 판막이 부족하다고 했어요. 증상이 없어서 전혀 모르고 있다가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더라고요.
수술받고 병원을 다니면서 1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다 2년 전에 신갈야간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윤선희 선생님은 박 학습자에게 은인이었다. 난독증 때문에 아무리 글자를 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박 씨에게 새로운 방법을 알려줬다. 눈으로 보는 글자 익히기가 아닌 소리로 글자 깨우치기로 접근한 것. 기역을 말하면 목에 탁 걸리는 느낌이 들 것이고, 리을을 말하면 혀가 말린다. 비읍을 말하면 입술이 딱 붙는다 식으로 글자를 소리로 익히기 시작했다. 1년 넘는 훈련 끝에 어느 순간 글자가 보였다. 그녀의 나이 일흔에 마침내 한글을 깨우친 것이다.
“감동이었어요. 소리를 따라 했는데 글자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조합하니까 한글이 되고요.
1년 반 만에 단어를 읽을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녀가 올해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낸 작품 ‘내가 보네, 내가 읽네’에 그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에 학교 올 때
태평역에서 기흥역까지
정거장을 손으로 꼽았습니다
안내하는 소리를 못 들을까 봐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왔습니다
두 손이 꼭 차고
네 손가락을 더하면 내립니다
- 박문옥 -
이 구절은 바로 그녀가 처음 신갈야간학교를 찾을 때 모습을 그린 것이다. 글자를 모르니 자신이 내릴 지하철역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집이 있는 태평역에서 학교가 있는 기흥역까지 14개 지하철역을 지나는 동안 손가락을 꼽아야 했다. 그러다 글자를 알게 되었고 이젠 손가락을 꼽지 않아도 자신이 내려야 할 역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자막에 나오는 글자를
읽을 수 있습니다.
진짜 모를 줄 알았는데
못 볼 줄 알았는데
내가 보네 내가 읽네
이렇게 배우면 읽을 수 있구나
기흥역까지 오면서 울었습니다
- 박문옥 -
글자를 알게 되고 눈물이 많아진 박문옥 씨. 자신이 이번 생에서 글자를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글을 읽는 자신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이젠 더 이상 손을 꼽지 않았고 긴장을 할 필요가 없다 보니 졸다가 내릴 역을 지나치기도 한다.
“예전 같으면 여기가 어느 역인지, 어떻게 해야 기흥역으로 갈 수 있는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젠 졸다가 내릴 역을 놓쳐도 ‘아 내가 역을 지나쳤네’ 하며 어느 역인지 확인하고 안내판을 따라 되돌아갈 수 있게 됐어요.”
그녀가 이처럼 졸다가 학교에 지각했을 때 박 씨를 가르친 선생님은 이를 감동으로 받아들였다.
이제 한 자씩 잘 읽겠습니다
신기하고 기특한 일입니다
다른 것 다 필요 없습니다
나도 읽을 수 있습니다
- 박문옥 -
박 씨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글꿈상을 수상했지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상이라 얼떨떨하다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들을 솔직히 썼을 뿐이라며 아직도 배워야 할 글자가 많다고 말하는 박문옥 학습자. 한글을 깨우치고 나니 간판이 보이고 성경도 읽을 수 있어서 자신감이 생기고 성격도 밝아졌다는 평을 듣는단다. 40년 넘게 교회를 다녔는데 이젠 글자를 아니 성경교실을 다니며 하느님 말씀을 더 깊이 있게 알고 싶다는 박문옥 학습자의 배움에 대한 열망은 청춘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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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선민
사진 강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