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구로문화누리도서관 이정수 관장_도서관은 열린 평생학습공간

2026-05-06

[이음의 탐구생활] 이정수 구로문화누리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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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강의를 듣고, AI에게 질문을 던지면 답이 오는 시대다. 굳이 어딘가에 가지 않아도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은 도서관을 찾는다는 사실이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 IFLA는 공공도서관‘지식 접근뿐 아니라 공동체 형성과 시민 참여를 촉진하는 핵심 인프라’로 정의한다. 단순한 정보 제공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삶의 변화를 이끄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2021년 1억 4천만 명이었던 전국 공공도서관 방문자 수는 2025년 2억 3천만 명을 넘어섰다.(문화체육관광부·한국도서관협회, 2026년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조사) 책을 빌리러 온 사람이 독서회에 눌러앉고, 강연을 듣다가 처음 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깨닫는다.

 

이정수 구로문화누리도서관 관장은 그 변화를 수십 년간 곁에서 지켜봐 온 사람이다. 어머니에게서 “여자도 결혼해도 직장을 다녀야 한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고, 먼 길을 돌아 도서관에 닿았다.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엔 신문사 조사부 기자로 사회에 나섰고, IMF의 파고 속에서 눈물을 머금고 퇴사한 뒤 우연처럼 도서관의 문을 두드렸다. 서대문이진아기념도서관 13년, 서울도서관 2대 관장 4년. 그리고 지금은 구로문화누리도서관 초대 관장이다.

 

그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확인해 온 것이 있다. 도서관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기 시작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마중물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아이의 독서 때문에 처음 발을 들인 어머니가 독서회에서 신세 한탄을 하다가, 어느새 인문학 강의를 듣고, 마침내 강사가 되고 상담사가 되는 과정을 그는 수없이 지켜봤다. 배움은 책 한 권에서 시작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확장된다는 사실을 그는 현장에서 확인해 왔다.

 

평생학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갈증이 느껴질 때, 공허할 때, 뭔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들 때—그 시작을 가장 부담 없이 열어주는 곳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도서관을 둘러싼 환경은 계속 변하고 있지만, 그가 지켜온 한 가지는 변하지 않았다. 배움은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고, 도서관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정책의 자리에서는 구조를 설계했고, 현장에서는 사람을 만났다. 그 차이를 누구보다 분명하게 체감해 온 이정수 관장으로부터 도서관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고, 배움이 어떻게 삶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운명처럼 시작한 도서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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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처음부터 도서관 사서를 꿈꾸신 건 아니었다고요. 어떻게 이 길로 오셨나요?

 

맞아요. ‘도서관학과’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안 게 고등학교 때예요. 우연한 기회에 선배가 “도서관학을 하고 싶다”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 첫마디가 “아니, 무슨 건물에 학과가 있어요?”였어요. 그 정도로 몰랐던 거죠.

 

사실 저는 교대를 가려고 했어요. 어머니가 항상 선생님을 하라고 하셨거든요. 아이 키우면서 살기에 방학도 있고 좋다고요. 그러면서도 저희 딸들한테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죠. “너네 세대에는 여자도 결혼해도 직장을 다닐 거다. 남편만 바라보고 자식만 바라보고 살지 마라.” 그런데 교대를 떨어진 거예요. 그때 작은엄마가 “사서 자격증을 따면 학교와 상관없이 취직할 수 있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게 선배 이야기랑 불현듯 연결됐어요. ‘도서관학과 가볼까?’ 거창한 꿈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2학년 때 10진 분류를 배우는데,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10진 분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국립중앙도서관 견학을 가서 서고에 들어갔더니 책이 그렇게 많은 걸 보고, 뭐라 그럴까, 감동 같은 게 밀려왔어요.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졸업 후에는 도서관으로 가지 않았어요. 4학년 때 실습을 나갔는데 분위기가 너무 답답하고 월급도 적었거든요. 교수님한테 “공공도서관 말고 딴 데, 남녀 차별이 없는 곳은요?”라고 했더니 “언론사 같은 데는 남녀 평등하다고 하던데?”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한마디에, 신문사에 지원했어요.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환상을 갖고 간 거죠.

 

Q. 도서관학과를 나와서 신문사로 가셨는데, 막상 일해보니 어떠셨나요?

 

일이 진짜 재미있었어요. 조사부에서 취재기자들한테 자료를 찾아주는 일인데, 기자들이 원하는 방식이 도서관의 10진 분류랑 달랐어요. “매경에 유통 시리즈 나간 거 어디 있어?” 이렇게 찾는데, 선배들은 백화점 기사는 백화점, 시장 기사는 시장으로 따로 분류해 놓으니, 기자들이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유통 관련 기사를 다 한군데 모아서 ‘유통 일반’으로 만들었어요. 항공사고 일지를 미리 만들어뒀다가 기자가 찾으러 오면 바로 내어주면 “이거 언제 만든 거야?” 하면서 놀라기도 하고요. 이용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서비스해야 한다는 감각, 그게 신문사에서 몸으로 익힌 거예요.

 

그런데 IMF가 터지면서 서포트 직군부터 눈총을 받기 시작했어요. 마침 아이가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는데 너무 힘들어했어요. 눈물을 머금고 퇴사를 했죠. 경력 단절만은 피해야겠다는 생각에 석사 과정을 마치고 대학 강의를 나갔어요. 강의와 육아를 병행하는 전쟁 같은 순간들을 버티면서요. 우울하고 힘든 시간도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취업 사이트를 뒤지다가 서대문이진아기념도서관 관장 공모 공고를 봤어요. 결혼 전까지 살던 동네라 너무 익숙한 곳이었거든요. “아, 나 오라고 하는 데인가 봐.”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지원 준비를 했고, 합격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이사장님이 “결혼해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 조직을 이끄는 데 유리할 것 같다”라며 결정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2005년에 도서관 사람이 됐어요.

 

신문사 경험은 저한테 큰 도움이 됐어요. 저는 직원들한테 항상 “누가 그랬냐, 어디서 들었냐”를 자꾸 물어봐요. 사서는 정보의 신뢰성을 다루는 전문직인데, 출처도 확인 안 하고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경우가 있거든요. 정보 전문가라고 하면서 본인이 가짜뉴스의 유발자인 거예요.

 

그런 면에서 기자 생활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과 많이 다른 사서가 됐을 거예요. 이용자가 뭘 원하는지 읽는 눈도, 정보를 엄밀하게 다루는 태도도 결국 신문사에서 온 거니까요. 돌아보면 먼 길을 돌아온 것 같지만, 그 돌아온 길이 저를 만든 것 같아요.

 

사람이 자라야 도서관도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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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서울도서관장 시절, 서울 전역의 도서관 네트워크를 설계하는 역할을 하셨다고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었나요?

 

2017년에 2대 관장으로 갔는데, 막상 가보니 대표도서관으로서 가져야 할 정책적 모델이 없었어요.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외부 용역 대신 직원들이랑 직접 수립했어요. “도서관의 가치는 소장 도서 몇 권, 대출 몇 권의 숫자로 결정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시민의 삶이 실제로 바뀌었는가를 묻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하려 했어요.

 

시민토론회도 열어서 도서관 정책과 운영의 방향을 함께 공유했고, 장애인·노인 등 취약계층 지원사업도 주도했어요. 자치구 도서관들이 ‘한책읽기’ 같은 사업을 함께 하도록 연결하면서, 25개 자치구가 따로 또 같이 움직이는 체계를 만들려 했어요.

 

제일 뿌듯했던 게 북스타트 사업이에요.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책과 함께하자는 취지인데, 처음엔 11개 구만 했거든요. 25개 구 전체가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예산을 편성해서 골고루 나눠줬어요. ‘서울 어디에 살든 똑같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균형 있는 서비스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서울책보고도 그때 만들었어요. ‘저자-출판-서점-도서관-독자가 함께 하는 건강한 독서생태계’를 만들자는 취지였는데, 지금도 잠실나루역에 있는 간판을 보면 뿌듯해요.

 

Q. “행정이 직접 책임지는 공공도서관을 통해 주민 신뢰를 높여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신념을 그때 갖게 되신 건가요?

 

도서관장을 하면서 쭉 느꼈던 일이에요. 처음 들어간 도서관이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일하면서 계속 괴로웠어요. 우리는 공공성이 강한 구립도서관인데, 왜 공기업 마인드를 강요받아야 하나. 도서 구입 예산 천만 원을 받으면 제대로 써야 하는데, 공기업은 대행 사업비 절감률이 있어서 돈을 남겨야 해요. 독서회 하려고 결재를 올리면 돈이 나간다고 안 해줘요. 그래서 밤마다 공모 사업 계획서를 썼어요. 행정이 책임을 위탁해 버리고 관심을 끊으면, 도서관 운영은 흉내 내기에 불과해져요. 본질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서울도서관장 시절에도 자치구 도서관 지원 예산 평가 방식을 도서관 개별 평가에서 자치구 평가로 바꾸고, 사서 수를 기준에 넣었어요. 자치구가 사서를 더 늘릴수록 예산을 더 받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행정이 도서관에 제대로 책임지도록 유도하는 거죠.

 

지금 구로에서도 같은 생각으로 일하고 있어요. 11개 위탁 도서관 관장님들과 주기적으로 모여 방향을 논의해요. 그동안 위탁 기관들은 ‘문화원 도서관’, ‘성공회대 도서관’ 이런 식으로 자기 기관 이름을 앞세웠어요. 업무를 위탁한 거지, 구립도서관으로서의 공공 책임까지 포기한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계속 ‘구로구립도서관’이라는 말을 함께 쓰자고 해요. 그 말을 본인 입으로 하기 시작하면, 이 도서관이 누구를 위한 곳인지를 스스로 되새기게 되거든요.

 

지금 특히 공을 들이는 건 각 도서관의 중간 관리자들이에요. 그 친구들이 앞으로 관장도 하고 도서관을 이끌어갈 사람들이거든요. 이 체계를 몸으로 익혀둬야 나중에 자기가 관장이 됐을 때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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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관장님은 도서관이 독서를 통한 개인의 지적 성장뿐 아니라 지역민 교류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을 오래 견지해 오셨잖아요. 실제로 그 변화를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이진아기념도서관에 있었던 13년 동안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에 도서관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아이 독서 때문에 오세요. 그래서 제가 엄마들 독서회를 따로 만들었어요. 처음 1~2년은 무엇을 읽든 남편 흉, 시어머니 흉으로 끝나더라고요. 문집을 만들었더니 오픈 못 할 내용을 써오시더라고요. 그분들 나름대로 카타르시스였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져요.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기를 성찰하고, 꾸준히 토론하고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 어느새 시선이 나와 내 가족에서 지역과 사회로 넓어지기 시작해요. 강유원 선생님을 모셔서 1년에 40주씩 7년을 강의했는데, 독서회 하시던 어머니들이 전부 들을 정도로, 정말 열성적으로 참여하셨거든요. 또 저는 어머님들에게 항상 올바른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보수성향의 신문과 진보성향의 신문 두 개를 읽고 함께 토론해 보라고 해요. 그래야 균형적인 시각을 갖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엄마들의 생각이 바뀌고 자연스럽게 양육 태도도 달라지더라고요. 사교육 대신 함께 신문과 책을 읽고 토론해요.

 

그렇게 자란 아이가 수시로 대학에 가는 사례도 나왔어요. 어떤 교수님이 그 아이한테 “너는 원석 같은 아이다”라고 했대요. 학원으로 다듬어진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운 아이니까요. 상담가, 강사, 동화구연가가 된 분들도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나왔어요. 책의 힘만이라고 할 수 없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기 때문이에요. 도서관은 그 마중물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 확신을 갖고 지금 구로에 온 거예요.

 

Q. 올해부터 구로문화누리도서관 초대 관장을 맡으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이진아기념도서관부터 서울도서관까지 긴 시간을 거쳐 오셨으니,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들도 이미 많이 그려두셨을 것 같아요.

 

구로구에서 도서관 건립을 위한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인연이 됐죠. 11개 민간 위탁 도서관이 세 기관에 나뉘어 운영되는데 중앙관이 없어 전체가 정체된 느낌이었어요. 직영 중앙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주위에서 “경험 있는 네가 해라”라는 거예요. ‘나이 들어서 후배들을 위해 이 체계를 한번 잡아놓고 나오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그렇게 결심하고 왔어요.

 

구로에 처음 와서 보니 지역 주민들이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는 도서관이 그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민들이 찾아올 다양한 행사를 하려고 해요. 개관하고 나서 이금희 아나운서, 조병영 교수님을 초청했는데 구로구 전체에서 찾아오시더라고요. 이금희 아나운서 행사 때는 신청자 말고도 현장에 오신 분들까지 200여 명이 됐는데, 그냥 들어오시라고 했어요. 보겠다고 온 사람들을 신청 안 했다고 내보내기가 그렇잖아요. 그게 도서관이거든요.

 

4월에는 이정모 관장님과 문경수 탐험가를 모셔서 남극 북극 이야기를 하고, 다음 달에는 김누리 교수님이 오세요. 6월에는 개봉동에 사시는 정명섭 작가를 비롯해 구로에 사는 작가들과 북토크를 하려고 해요. 서울책보고를 만들 때 생각했던 ‘저자-출판-서점-도서관-독자가 함께하는 건강한 독서생태계’를 구로에서는 지역 밀착형으로 실현하고 싶어요. “우리 동네 문화누리도서관 너무 좋아”라는 말을 구로구민들이 자랑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평생학습, 성장하고 싶은 마음을 충족시켜 주는 최고의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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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학습의 관점에서 도서관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유튜브나 온라인으로도 다 배울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굳이 도서관을 찾는 이유가 뭘까요?

 

학원이나 문화센터, 유튜브는 콘텐츠를 제공해 줘요. 그런데 도서관은 사람을 연결해 줘요. 배움에 대한 욕구가 있고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와서 동아리로 조직되고, 서로의 자발성과 협력이 성장의 동인이 돼요. 평생학습센터가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배움의 틀을 만들어준다면, 도서관은 그 배움이 일상에서 계속 이어지도록 붙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동아리 활동이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프로그램이 또 다른 동아리를 낳아요. 도서관은 열린 평생대학이에요.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관이거든요.

 

유튜브나 온라인은 편한데, 머리에 잘 안 남는 특징이 있는 것 같아요. 반면 도서관에는 강의를 듣다가 옆 사람이 어떤 질문을 하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되는 게 있어요. 그게 온라인이 줄 수 없는 온도예요.

 

Q. 관장님께 평생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책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사서는 늘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지식노동자가 아니라 기능인에 불과해요.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 공부가 싫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스트레스받거나 공허할 때 공부를 하게 되더라고요. 배움이 도피가 아니라 회복이 되는 느낌이랄까요.

 

어릴 때 저희 집에는 책이 많았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거실에 책을 굴러다니게 뒀어요. 초등학교 5학년쯤부터는 함께 신문을 보면서 같은 사안에 대해 신문마다 시각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하게 했어요. 어머니한테서 제가 받은 걸 물려주는 방식이었죠.

 

요즘은 구로구 평생학습관에서 서울대학교와 함께 기획한 구로시민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있어요. 관장이 공부하는 도서관이어야 이용자들도 공부하는 공간이 된다고 믿거든요.

 

삶의 방향을 바꿔놓은 책이라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예요. 대학 1학년 때 처음 읽었는데 너무 어려웠어요. 그런데 조교 선생님이 그 책을 얘기할 때 텐션이 굉장히 높아지시는 거예요.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그러고 잊어버렸다가 30대에 다시 읽었더니, 그때 선생님이 왜 그러셨는지 이해가 됐어요. 그 후로 10년에 한 번씩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달라요. ‘허리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삶이다.’, ‘인생이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데, 분별있는 사람은 브레이크를 쓴다.’ 이 말들이 20대엔 무슨 말인지 몰랐고, 30대엔 이상하게 울렸고, 지금은 또 다르게 들려요. 나이에 따라 책이 다르게 다가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그게 평생학습이 아닐까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가 달라졌으니까 다르게 읽히는 것, 그게 내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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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도서관이 ‘나와는 먼 곳’이라고 느끼는 분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한번은 이런 분이 계셨어요. 은퇴한 남성분인데, 등산 가다 화장실 때문에 도서관에 들어오셨다가 프로그램이 있는 걸 보고 들어도 되냐고 물으셔서 들어오신 거예요. 그게 인연이 돼서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까지 참여하셨는데, 나중에 하신 말씀이 “일주일에 두 번 도서관 오는 게 애인 만나러 오는 기분이었다”라는 거예요. 은퇴 후 뭘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할 일이 생겼다고요.

 

살다 보면 뭔가 갈증이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냥 한번 가보세요. 들어와서 소파에 앉아 멍때리다 나가도 누가 뭐라 안 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꽂히는 책이 생기고, 마음에 드는 강연이 생기는 거예요. 영국에서는 도서관 간판 대신 ‘아이디어 스토어’라고 붙인 곳도 있어요.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아이디어를 얻으러 오는 곳. 그런 마음으로 오시면 돼요.

 

도서관은 뭔가를 잘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에요. 뭔가를 찾고 있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에요. 그리고 거기서 대부분 찾게 되더라고요. 꼭 책이 아니라도요.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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