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남이섬 만든 강우현 디자이너_하면서 배우고, 배우면 써먹다 보면 평생학습이 되죠

2026-07-07

[이음의 탐구생활] 강우현 디자이너, 기획자, 탐나라공화국 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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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림읍 월림리의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낯선 이름의 나라가 나타난다. 탐나라공화국.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곳은 일반적인 관광지와 다르다. 반듯하게 정돈된 정원도, 완성된 전시관도 아니다. 돌담과 숲길, 연못과 조형물, 거울과 헌책, 오래된 병과 철 조각이 서로 기대어 있다. 누군가 버린 물건은 간판이 되고, 기성품처럼 보이는 가구는 또 다른 쓰임을 얻었다. 제주 돌은 무늬가 되고, 병은 녹아 작품이 되고, 책은 쌓여 도서관이 된다. 처음부터 그렇게 있었던 풍경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곳의 많은 것은 한 사람의 손끝과 함께한 사람들의 노동으로 만들어졌다.


이 나라의 ‘총통’이 강우현이다. 195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난 그는 홍익대 미술대학과 산업미술대학원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동화 작가로 활동하며 NOMA 국제그림책 원화 콩쿠르 대상, 체코 BIB 금패상, 일본 고단샤 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이어령의 동화에 그림을 입혔고, 황순원의 ‘소나기’ 같은 작품에도 삽화를 남겼다. 한국 디자인계에서 그의 이름은 일찌감치 하나의 장르였다. 그러나 그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의 경계 안에 머무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의뢰받은 문제를 푸는 사람이라면, 그는 문제 자체를 새로 정의하는 사람이었다. 브라질의 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로저 멜로와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채로 2년에 걸쳐 그림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말하면 통역을 거쳐 영어로, 다시 포르투갈어로 옮겨졌다가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세계적인 작가와 책 한 권을 만들어냈다.


광고와 출판, 캐릭터와 디자인을 넘나들던 그는 어느 날 남이섬으로 들어갔다. 빚과 적자가 쌓인 섬을 맡아 2006년 ‘나미나라공화국’을 선포했고, 남이섬을 문화와 상상의 공간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제주로 내려와 두 번째 나라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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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현 총통을 만나면 인터뷰는 책상 앞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는 먼저 공간을 보여준다. 돌 속에 숨어 있는 무늬를 보여주고, 버려진 풍력발전기의 몸통으로 만든 구조물을 설명하고, 거울이 왜 벽이면서도 벽처럼 느껴지지 않는지 묻는다. 어느 순간 이야기는 디자인에서 교육으로, 교육에서 AI로, AI에서 죽음과 책과 아이들의 배움으로 건너간다. 그의 말은 농담처럼 시작해 철학처럼 끝나고, 다시 장난처럼 돌아온다. 하지만 그 모든 말의 중심에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 말로 끝내지 않고 해보는 것. 알았다고 멈추지 않고 손으로 바꾸는 것.


그는 탐나라공화국을 ‘평생교육공원’이라고 부른다. 교실처럼 앉아서 배우는 곳이 아니라, 걷다가 보고, 만지다가 묻고, 실패하다가 자기 방식을 찾아가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평생학습은 자격증이나 수료증의 언어와 조금 다르다. 그는 “아는 것은 지식이고, 하는 것은 지혜”라고 말한다. 지식이 머리에 머무는 것이라면, 지혜는 몸을 거쳐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일흔을 넘기고도 재봉틀을 배우고, 돌을 자르고, 낡은 것을 고쳐 다시 쓰는 그의 오늘은 그 말을 그대로 보여준다. 강우현 총통에게 배움은 끝까지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끝까지 자기 손으로 살아보는 일이다.


손으로 세운 나라, 탐나라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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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래픽 디자이너, 동화 작가, 남이섬 CEO, 그리고 탐나라공화국 총통까지, 여러 이름으로 불려 오셨습니다. 지금의 강우현을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가요.


사람들이 날 설명하려고 하면 이름표가 자꾸 길어져요. 디자이너다, 동화 작가다, 남이섬을 만들었다, 탐나라공화국 총통이다. 근데 난 그냥 오늘도 뭔가 하는 사람이에요. 그림도 그리고 글씨도 쓰고 돌도 자르고 나무도 심고 미싱도 돌려요. 누가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이냐’ 물으면 나도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그냥 총통이라고 해버리면 편해요. 이 나라는 내가 만든 세계니까, 여기선 내가 총통이지.


근데 중요한 건 직함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느냐예요. 사람들은 자꾸 내가 누구보다 많이 배웠나, 무슨 상을 받았나, 어떤 자리에 있었나를 보는데, 막상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하고, 운전도 하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필요한 건 만들 줄 알아야 해요.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질수록 말이 줄고 생각이 분명해져요. 할 줄 모르니까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난 지금도 자꾸 해봐요.


Q. 남이섬을 세계적인 관광지로 만들어놓고 떠나, 다시 황무지인 제주로 오셨습니다.


여기는 거의 유배 생활로 온 거예요. 자발적인 유배자로 온 거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왔어요. 땅이 내 것도 아니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파도 파도 흙이 아니라 돌이 나오는 땅이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여기 서서 ‘도대체 뭘 하란 말이냐’ 그래요. 근데 난 내 발로 왔거든. 내 발로 왔으니까 할 거냐 말 거냐는 내가 정하는 거예요. 하겠다고 생각하면 방법이 보이고, 안 하겠다고 생각하면 이유가 보이고, 하기 싫으면 핑계가 나와요.


아무것도 없으면 아무거나 하면 되는 거지. 연못을 파니까 흙이 나오잖아요. 그 흙을 올리니까 산이 되고, 높은 데는 산, 낮은 데는 계곡, 더 낮은 데는 비닐을 깔아 연못이 됐어요. 나무도 천 원짜리 오백 원짜리 묘목 천 주를 심었어요. 직원들이 ‘여기선 나무가 죽는다, 죽는 이유가 열 가지가 넘는다’ 그래요. 그럼, 사장이 뭐가 좋으냐. 내가 돈 낼 테니까 심어, 그러면 되는 거예요.


절반이 죽었지. 근데 살아남은 게 지금 저 숲이에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안 되면 다시 하고 잘되면 또 하고. 그렇게 길을 찾아나가는 거예요.


Q. 남이섬은 직원들과 함께 일군 섬이었는데, 탐나라공화국은 대부분 직접 손으로 만드셨다고요.


남이섬에 있을 땐 직원들이 했어요. 여긴 직원이 따로 없어요. 정원 만들고 담쌓는 거 매일 내가 해요. 돌 자르고 철 자르고 용접하는 것도, 그림 그려서 돌에 새기는 것도 내가 먼저 하고. 왜 내가 다 하느냐. 내가 할 줄 모르면 일하는 사람이 날 이용하거든. 석공이든 용접공이든 곤조가 대단해서,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다 던지고 가버려요. 근데 내가 직접 하는 걸 보여주면 그냥 해요. 돌에 그림은 내가 새겨 보일 테니 당신은 시키는 대로 따라 새기고, 철판도 어려운 디자인은 내가 자를 테니 당신은 붙이기만 해라. 이러면 말을 들어요.


처음 왔을 때 원칙부터 정했어요. 정부 지원 받지 마라, 간섭이 들어온다. 투자 받지 마라, 다툰다. 돈이 없으면 돈 드는 일을 안 하면 되잖아. 돈 나고 사람 났나, 사람 나고 돈 났지. 돈보다 사람을 벌어라, 그거였어요.


그렇게 지역 주민들하고 나무를 심다 보니까 사람들이 나무를 가져다주기 시작하더라고. 여기 심은 나무 절반 이상은 도민들이 준 거예요. 12년 만에 주민등록도 옮겼어요. 여기서 살겠다고 옮긴 게 아니라 여기서 죽겠다고 옮긴 거예요.


배웠으면 써먹어라 — 아는 것에서 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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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학습e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입니다. 대표님께 ‘배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는 것과 하는 건 달라요. 배웠으면 써먹어라, 이거예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를 사람들은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로 풀잖아요. 2500년 전 공자 말씀이라고 꼰대 소리로 듣는데, 천만의 말씀이에요. 난 다르게 봐요. 배웠으면 즉시 써먹으라는 얘기예요. ‘습(習)’은 익힌다는 뜻이기 전에 쉬는 타이밍이거든. 바로 써먹지 않으면 그새 세상이 바뀌어버려요.


아는 건 지식이고 하는 건 지혜예요. 지식은 생각이고 지혜는 행동이고. 옛날에 글자도 못 읽던 어머니들이 왜 그렇게 지혜로웠겠어요. 몸으로 했기 때문이에요. 산부인과에서 아기를 낳았어요? 밭에서 낳았지. 농업학교 나와서 농사지었어요? 아니잖아. 다 하면서 익힌 거예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알고 한 게 하나도 없어요. 하면서 배웠어요.


Q. 그런데 ‘평생학습’이라는 말 자체에는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평생학습의 맹점이 뭐냐면, 배우기만 하고 자격증만 쌓는 거예요. 배운 건 많은데 할 줄 아는 건 없고, 말은 많은데 정작 못 해요. AI한테 문서 받아서 프린트만 잔뜩 해놓고 본인은 정작 안 읽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거 나한테 보여주지 말고 당신이 말로 해봐라, 그러면 못 해요.


평생학습을 한마디로 정의하라고요? 그건 국가 용어예요. 공공의 언어지. 진짜는 뭔가를 하다 보면 배우고, 배운 걸 업그레이드해서 또 써먹는 거예요. 사업하다 망하면 사람들이 수업료 냈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평생학습 과정이에요. 그러니까 마흔, 쉰은 수업료 낼 나이가 아니라 써먹을 나이예요.


사람들은 깨닫고 느끼는 걸 그렇게 좋아하는데, 깨달았으면 어디다 써먹어야 할 거 아니야. 깨닫는 데서 끝나면 그건 배운 게 아니에요.


Q. 책을 많이 읽으라는 시대에, 대표님은 “책을 안 본다”라고 하셨습니다.


독서가 취미라는 사람들 보면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10권을 읽었으면 한 권을 써야지. 난 책을 잘 안 봐요. 눈도 잘 안 보이고. 대신 책을 수십 권 내요. 안 보고 쓰니까 표절이 없어요. 다 내 얘기니까. 사람들이 ‘책 속에 길이 있다’ 그러잖아요. 근데 그 책은 모두의 길이에요. 내 길은 책 바깥에 있어요. 책을 보다가 모두의 길에서 뛰쳐나와서 자기 길을 찾는 거, 그게 마이웨이예요. 마이웨이는 노래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거예요.


그렇다고 책이 필요 없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 헌책을 30만 권 모았어요. 인쇄소, 식당, 도서관에서 버리는 책을 나한테 버리라고 했더니 1년도 안 돼서 그만큼 모이더라고. 쌓아 놓으니, 도서관이 된 거예요. 100년 뒤엔 책 없는 세상이 와요. 그때까지 내가 보관하면 이게 다 보물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팔만대장경을 직접 본 적은 없어도 그게 남아 있으니까 배우잖아요. 도서관은 공부시키는 책방이 아니에요. 상상을 자극하는 공간이지. 책은 통째로 볼 거 없어요. 빨대 꽂아서 알맹이만 쪽 뽑아내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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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새로운 것 앞에서 사람들은 “나는 못해, 안 해봤어”라고 합니다.


안 해봤으니까 새로운 거고, 못하니까 배워야 하는 거예요. 근데 사람들은 거꾸로 가요. 자기가 이미 아는 걸 또 배우려고 해요. 잘난 척할 수 있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책 읽고 좋아하는 음식 먹지, 안 먹어본 건 두려워하잖아요. 새로운 거 앞에서 자꾸 뒷걸음질을 쳐요. 두려움은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작년에 내가 미싱을 배웠어요. 하루 10시간씩 100일을 했어. 그러다 몸무게가 6~7kg이 빠졌어요.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로 했지. 그렇게 미싱을 익히고 나니까 평범한 천이 다르게 보여요. 그냥 천에 염색을 하고, 심심풀이로 박음질을 넣었더니 작품이 되더라고. 거기다 사인 하나 해놓으면 또 새로워져요.


돌 녹이는 것도 그래요. 1,300도로 돌을 녹이면 유리도 나오고 철도 나와요. 학교 연구실에서도 안 하는 걸 나는 해봐요. 안 해보면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상상조차 못 하는 걸 직접 해보는 게 지금 시대예요.


Q. AI 시대에 인간의 배움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AI는 정해진 답이 있고 그 답을 향해 가요. 인간은 답을 무시할 권한이 있어요.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고 때려치울 수도 있고. 거기에 인간의 가치가 있는 거예요.


AI가 그림도 그려주고 계획서도 써주니까 편하죠. 나도 정리할 땐 써요. 저장하고 재생하고 반복하는 일은 컴퓨터한테 맡기고. 근데 편해진 만큼 내 일은 사라져요. 그럴듯한 평균치 안으로 쏙 들어가 버리면 큰일이에요. 내 생각을 말하지 못하면 AI가 날 우습게 봐요. 그러면 AI를 부리는 게 아니라 내가 이용당하는 거예요.


내가 손으로 그린 그림은 AI가 못 그려요. 구겨진 종이 보고 ‘여기서 강아지를 봤다’ 하는 것도 못해. 그렇게 내 손으로 하나씩 하다 보면 AI도 함부로 못 가져가는, 나만의 것이 생겨요. 40년 전에 내가 그린 그림을 지금 달력으로 다시 써도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두려워할 게 아니라 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하는 거예요.


다르게 보면 쓸모가 보인다 — 버려진 것에서 가치를dbfe5ed057715.jpeg

Q. 안 되는 일 앞에서도 대표님은 늘 방법부터 찾으십니다. 그 역발상은 어디서 나옵니까.


못 쓰는 건 ‘못’ 자를 빼고, 안 되는 건 ‘안’ 자를 빼고, 불가능은 ‘불’ 자를 빼면 돼요. 거울에 ‘불가능’을 비추면 글자가 뒤집혀서 다르게 읽히기도 하고. 그게 긍정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여기 ‘맨발길’도 그래요. 다들 건강에 좋다고 맨발로 걷는데, 난 ‘맨정신으로 다녀라’는 뜻으로 만들었어요. 발바닥도 중요하지만, 뇌가 망가지면 발바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까. 저기 소 조형물도 그래요. 돌탑에 구멍을 뚫자니 직원들이 헐고 다시 해야 한다길래, 거울 하나 사다 가운데 박았어요. 하늘이 반사되니까 진짜 구멍처럼 보이거든.


사람들이 자꾸 물어요, 상상력이 어디서 오냐고. 하도 대답하기 싫어서 적어놨어요. 하늘, 땅, 구름, 바람, 불꽃, 들불, 그리고 당신의 질문과 의심들이 내 머릿속에서 섞이고 걸러진다고. 사람들은 의심이 중요한 상상의 재료라는 걸 몰라요. 의심만 하고 멈춰버려. 상상은 손끝에서 나오고 기술은 머리에서 나와요.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하지.


Q. 같은 돌, 같은 병을 보고도 남들과 다른 걸 보십니다. 대표님께 디자인은 어떤 일입니까.


디자인을 예쁘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좁아져요. 다르게 보는 일이에요. 제주 돌멩이를 보면 보통 사람은 구멍만 봐요. 난 그 안에서 새도 보고, 물새도 보고, 꽃도 봐요. 그걸 확대해서 잘라보고, 컴퓨터에 넣어보고, 모아보면 패턴이 돼요. 패턴이 되면 귀걸이도 되고 목걸이도 되고 제주만의 그릇도 돼요. 같은 돌인데 누구에겐 그냥 돌멩이고, 누구에겐 소재가 되는 거예요.


그냥 놔두면 자연이고, 기계가 닿으면 문명이고, 사람 손이 닿으면 문화고, 내 손이 닿으면 작품이 돼요. 요즘 사람들은 콘텐츠, 콘텐츠 하는데 난 지금이 소재의 시대라고 봐요. 소재를 모르니까 도구를 못 쓰고, 도구를 못 쓰니까 자기 것을 못 만들어요. 결국 기성품만 쓰게 되는 거지. 남이 만든 걸 소비하는 사람으로만 남는 거예요.


Q. 이곳을 둘러보면 버려진 물건이 죄다 작품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대표님께 업사이클링은 어떤 의미입니까.


재활용을 착한 일 정도로만 보지 않아요. 그건 가치를 올리는 일이에요. 식당, 당구장, 골프장, 망한 집… 다들 버릴 게 생기면 치울 돈이 없어서 골치예요. 그럼 내가 치워드린다고 가져와요. 당구 치러 가서 주인한테 인사하면서 ‘당구장 망한 집 있으면 알려달라’ 그래요. 당구대 다리 밑에 돌이 세 개씩 들어가 있거든. 그게 다 좋은 돌이에요. 전쟁기념관 웨딩홀에 있던 것도 오고, 골프장 테이블도 오고, 안산시가 보도블록 교체하면서 두 트럭을 보내준 적도 있어요.


책상도 안 쓰는 거 가져다 정돈하니까 교실이 되더라고. 중요한 건 ‘버린다’는 말이에요. 버리는 데도 두 가지가 있어요. 안으로 버리면 ‘써버린다’가 되고, 바깥으로 버리면 ‘내버린다’가 돼요. 써버리면 창조를 하는 거고, 내버리면 청소를 하는 거예요. 써버리는 순간 내 것이 되고, 내버리는 순간 쓰레기가 되는 거죠.


외국 작가들 데려다 7년 동안 워크숍도 했어요. 먹고 자는 거 다 해주는 대신 조건이 하나 있었어요. 비행기에 안 들어갈 만큼 큰 걸 만들어라. 그럼 못 가져가니까 다 놓고 가요. 여기 큰 작품들이 그렇게 남은 거예요.


Q. 심지어 하늘을 분양하신 적도 있다고요.


지금은 가치의 시대예요. 가치를 올려라, 이거예요. 2,000원짜리 물건도 내가 손으로 글자 하나 써넣으면 20,000원이 돼요. 똑같은 컵인데 그림 하나 그리면 가치가 달라지는 거죠. 가치를 만들어가는 게 그냥 내 일상이에요.


하늘도 그래서 분양했어요. 몇 해 전에 하늘을 쪼개서 ‘천당’을 만들자 해서 한 칸 한 칸 번지수를 매겨 분양을 했어요. 그랬더니 스무날 만에 120칸이 다 팔리더라고. 그 돈으로 하늘 등대를 세웠어요. 고장 나서 버려진 풍력발전기를 관광공사에서 준다길래 운반비만 들여 가져온 거예요. 거기다 주소를 붙여놨어요. 언젠가 그 주소를 치면 돌아가신 아버지, 할아버지하고 대화하는 날이 올 거라고 했거든. 그땐 다들 황당한 소리로 들었는데, 요즘 AI 보면 거의 다 돼가요. 반신반의하며 한 칸씩 사줬던 사람들이 결국 그 등대를 함께 세워준 셈이에요.


커피도 마찬가지예요. 커피 한 잔 4,000원 받는 데만 매달리면 장사꾼이지만, 그 커피를 핑계로 손님이 이 공간을 둘러보고 체험까지 하게 하면 40,000원짜리 가치를 사 가요. 나만 먹고살면 장사꾼이고, 여럿이 먹고살면 사업가예요.


인생에 2막은 없다 — 오늘 시작하는 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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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이가 들수록 배움이 더 어렵다고 호소하는 분이 많습니다.


예순, 일흔 넘어서 새로운 일을 하고 싶거든 가족하고 의논하지 마세요. 아내하고도, 자식하고도 하지 마. 무조건 반대해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나를 막아요. ‘이 나이에 뭘 하느냐’고. 이 나이니까 하는 거예요. 인생 2막이라는 말도 쓰지 마요. 인생에 막은 없어요. 한 번이에요. 오늘 씨를 뿌려야 내일 나오는 거지, 어제는 이미 갔어요.


시니어(senior)라고 하면 다들 실버, 노년을 떠올리잖아요. 근데 난 그걸 ‘신(新)세대’, 새로운 세대로 읽어요. 나이 들었다고 한물간 게 아니라, 늘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그렇게 해석하면 훨씬 낫잖아. 나는 올해 일흔이 넘었는데도 매일 새로 시도해요. 어제 만든 걸 오늘 또 고쳐요. 좋은데, 더 좋게 할 수 있으니까.


진보라는 것도 거창한 게 아니라 나아지는 거예요. 남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나를 바꾸는 게 먼저고. 내가 나를 바꾸지 않으면 누가 바꿔주겠어요. 이 나이엔 아무도 못 바꿔. 그래서 매일 바꾸는 거예요.


Q. 죽음에 대해서도 독특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생로병사’가 아니라 ‘생노락’이라고요.


사람들은 생로병사라고 하죠.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고. 근데 난 요즘 그 말이 꼭 맞나 싶어요. 옛날엔 나이 들어 병들어 죽었지만, 지금은 병들어도 안 죽어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10년을 더 사는 시대가 됐어요. 그러면 죽는 것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해지잖아요.


그래서 난 생노락이라고 해요. 태어나고, 늙고, 놀다 가는 것.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하다 가는 게 제일 좋은 죽음이에요.


여기 밑에 내 비석도 미리 세워놨어요. 지금 난 죽었다고 치고 해요. 죽었다고 치면 겁이 줄어들거든. 그러니까 매일 새로운 걸 겁 없이 해볼 수 있는 거예요. 남길 것을 남기려고 애쓰는 사람도 많은데, 후손들은 원치도 않아요. 중요한 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느냐예요.


Q. 결국 배움의 시작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일까요.


‘나는 누구냐’ 했을 때, 내가 나로 살고 있느냐가 중요해요. 사람들은 자꾸 남하고 비교해요.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배웠나, 더 가졌나, 더 높은 자리에 있나. 근데 막상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지’ 물어보면 답이 별로 없어요.


내가 나로 산다는 건 내가 하고자 하는 걸 하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남의 눈치 보면서 시키는 대로 살고 있으면 그건 내가 나로 사는 게 아니지.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세수하듯이, 밥해 먹듯이, 손을 움직이듯이 내가 나를 위해서 직접 해보는 것. 거기서 내가 보여요.


Q. 교육을 국가가 한다는 것, 그리고 미래 세대의 배움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이제 가르치는 시대가 아니에요. ‘저 별 좀 봐라, 같이 갈래?’ 할 수 있는 시대예요. 교육은 자극을 주는 거예요. 어디를 찔러서 거기서 피어나게 하느냐, 그 문제예요. 학교에서 악기 갖고 놀다가 음악에 관심이 가고, 영상에 관심이 가고, 그렇게 스스로 피어나는 건데 한 가지만 자꾸 시키니까 아이들이 아파 죽겠다고 하는 거예요.


예전에 제주도 영재 20명을 봐달라면서 ‘프로그램을 달라’더라고. 영재 교육에 무슨 프로그램이 있어요? 스무 명한테 똑같은 프로그램 하나를 들이미는 게 어떻게 영재 교육이에요. 20명이면 20사람을 따로 봐야지. 한 아이는 돌 앞에서 멈추고, 한 아이는 거울 앞에서 질문하고, 한 아이는 말없이 책장 사이를 돌아다녀요. 그 아이가 어디서 멈추는지를 보고, 거기에 맞춰서 건드려줘야 하는 거예요.


재료를 모르니까 도구를 못 쓰고, 도구를 못 쓰니까 만들 게 없어요. 손을 다룰 줄 알고, 도구를 다룰 줄 알고, 재료를 볼 줄 알면 그다음은 스스로 깨우쳐요. 그리고 스승이 서야 나라가 서요. 선생을 자꾸 흔들어버리니까 애들이 제 꼴이 안 나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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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끝으로, 평생 무언가를 배우고 익히려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는 것과 하는 건 달라요. 배웠으면 써먹어라. 난 알고 한 게 하나도 없어요. 하면서 배웠고, 배웠으니까 써먹었고, 써먹으니까 또 늘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창의적인 줄 알지만 난 행동적인 거예요. 했기 때문에 나온 거지.


배움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어야만 배움이 아니에요. 컵 하나를 다르게 써보고, 버려진 물건을 고쳐보고, 길을 걷다 돌멩이 하나를 다르게 보는 것도 배움이에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해본 만큼 더 보여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나씩 늘려가세요. 어제는 이미 갔고, 내일은 몰라요. 그러니까 오늘 시작하면 되는 거예요. 어쩔 수 없는 일은 없어요. 사람이 마음먹고 하는 일에 어쩔 수 없는 건 없어요.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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