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에서 <재미난협동조합> 운영하는 임경환 학습자

제6회 <별랑 청소년 정책마당>에서 아이들의 발표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임경환 이사장
‘재미난’ 상상과 ‘재미난’ 실험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Raph Koster)는 2004년 출간한 『재미이론(A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에서 “재미란 뇌가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익히는 순간에 발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재밌지만,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면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재미있는 것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패턴과의 만남을 제공한다. 코스터는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건 사실 배움의 구조와도 일치한다. 재미와 학습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난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작명이 아닐 수 있다. 코스터의 언어로 풀면, 돈을 주고 물건을 받는 익숙한 거래의 패턴을 낯설게 비틀어 새로운 패턴과의 만남을 만들어 내는 실험.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사람들이 배우고 연결되는 과정. 그것이 <재미난협동조합>이 ‘재미’를 이름에 새겨 넣은 이유일지 모른다. 임경환 이사장은 <재미난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의 패턴들을 제안해 왔다.
전남 순천시 저전동 골목 안, 10평 남짓한 작은 카페 <재미난가게>에 그 실험이 있다. 이곳은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어른과 청소년이 음료와 책을 통해 응원과 감사를 주고받는 공간이기도 하고, 학교 밖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하룻밤을 기댈 수 있는 공유 주택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이외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실험을 유쾌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 임경환 이사장을 만나러 순천으로 향했다.

2026년 6월 26일, 순천에서 열렸던 제19차 마을교육활동가 대화 모임.
2020년부터 시작된 이 모임은 전국의 마을교육활동가들이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19번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모임이 특이한 점은 딱히 모임을 대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고, 더 특이한 점은 모두가 이 모임의 대표를 임경환 이사장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맡겨놓은 가게’에서 시작된 연결
<재미난가게>가 순천 저전동에 문을 연 것은 2023년 5월이다. <재미난협동조합>과 <디딤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공간은, 개장한 지 며칠도 안 돼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호주와 울산에서 각각 순천 청소년들을 위해 음료 쿠폰을 적립해 왔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다”라며 1만 원을 맡겨두기도 했다. 100원이 없어 빵을 못 사 먹는 누나를 위해 초등학생이 붙여 놓은 100원이 어느 날 여고생에게 전달되었고, 여고생은 다음과 같은 쪽지를 남겼다.
“네 덕분에 굶주린 학생 살맛 난다.”
임경환 이사장은 이 장면들을 담담하게, 그러나 눈을 빛내며 기록해 왔다. “돈은 돌고 돌아 제자리이지만, 그사이에 엄청난 마음들의 교환이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재미난가게>에서는 ‘맡겨놓은 현금’, ‘맡겨놓은 음료’, ‘맡겨놓은 책’이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주로 어른들이 맡겨놓고, 필요한 청소년들이 가져간다. 대상을 정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이 비현실적인 행위가 순천에서는 아무 때나 빈번하게,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매주 목요일에는 ‘100원 빵’을 판매한다. 예전에는 가게 2층 <재미난제과점>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이 직접 빵을 구웠다. 지금은 지역 후원자들이 재료비를 내고, 동네 학생들이 100원에 사 먹는다.
또한 <재미난가게>에서는 자체 제작한 ‘이로운 이용권’을 발행한다. 1장에 1만 원이지만 커피와 빵을 넘어, 이웃 시민들이 재능 기부로 진행하는 비폭력 대화, 천연 제품 만들기, 삶을 정리하는 인터뷰 등 다양한 일일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카페를 단독으로 빌릴 수도 있고, 콘서트 입장도 가능하다. 임경환 이사장은 이 이용권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관계망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재미난가게>의 궁극적 목표는 임경환 이사장의 말처럼, 화폐가 아니라 사람들의 품과 품을 교환하는 ‘타임뱅크 하우스’가 되는 것이다. 이 실험은 <재미난가게>에 머물지 않는다. 하룻밤 잘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유 주택 <공유공간 너머>, 급하게 소액이 필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빌려주는 <공동체 은행>까지, 임경환의 재미난 상상은 지금도 순천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 대단한 강의나 거창한 자격증이 아닐지 모른다. 재미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꺼이 손들고 참여해 줄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싹트는 곳. 그것이 평생학습이 숨 쉬는 공간이라면, <재미난가게>는 평생학습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임경환 이사장은 공동체의 리더보다는 감초를 자처한다. 앞에서 이끌기보다는 뒤를 힘 있게 받쳐준다. 모두가 몽상이라고 생각할 때, 그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니 죽도 밥도 안 되더라도 일단 저지르고 본다.
Q1.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순천에서 살고 있는 임경환입니다. 순천에 산지는 14년 정도 되었고요. 순천은 아무 연고가 없었는데, 순천에서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순천에 살고 있습니다. 순천에 와서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곳이 <순천언론협동조합>이었고, 그 조합원들 덕분에 순천에 잘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조합원들 일부가 <재미난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난협동조합>이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를 위탁하게 되면서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재미난가게>를 하게 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참 사연이 긴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공감유랑>이라고 2011년 학교 밖 아이들과 1년 동안 직접 경비를 벌어가며 전국을 여행하기도 하고, 또 장수 번암에 살면서 이남곡 선생님이 진행하셨던 <연찬>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일본에서 무소유 공동체를 지향하는 <에즈원커뮤니티> 등을 방문하며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공유공간 너머>를 만들었지요. 전 <공유공간 너머>를 단지 주택이 아니라 상점으로 실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때쯤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마을이 청소년들에게 환대의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재미난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Q2. <재미난가게>에는 ‘맡겨놓은 현금’, ‘맡겨놓은 음료’, ‘맡겨놓은 책’이 있는데요. 이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나요?
이 아이디어는 춘천의 마을 교육 활동가, 윤요왕 선생님이 먼저 생각해 낸 것이고 저는 따라 했어요. 윤요왕 선생님도 이탈리아에서 들은 얘기래요. 윤요왕 선생님은 춘천에서 맡겨놓은 카페에서 맡겨놓은 음료를 했는데, 저는 그것을 맡겨놓은 현금과 맡겨놓은 책까지 확장한 것이죠.
이것을 하자고 했을 때 다들 좋아하셨어요. 좋은 일이니까요. 맡겨놓은 현금을 할 때는 조금 의견들이 달랐어요. “돈을 가게에 붙여 놓으면 누가 유리문을 깨고 가져가지 않겠냐”, “아이들에게 괜히 돈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 등등 이견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운영자들에게 “일단 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바꾸는 건 어떠냐?”라고 제안했고, 아직까지 유리문을 깨고 돈을 가져간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붙어 있는 5만원을 두 번 누군가가 떼어간 적이 있었는데, 떼어간 사람이 메모를 남겼어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다음에 꼭 갚는다고 하고 가져간 것 같아요. 그럴 때 운영자들은 “떼어갈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떼여갔겠지요, 다시 붙여 놓지 않을까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큰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 사람들에게 이 가게가 또 다른 학습의 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맡겨놓은 책은 독립 서점 <책방심다>에서 사장님이 티켓 10장을 가져오면서 이 티켓을 <재미난가게>에 오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어요. 그 티켓을 가져오면 아이들이 그곳에서 선택할 책을 공짜로 준다면서. 그렇게 해서 생겨났어요. 그래서 맡겨놓은 책방은 독립 책방 <서성이다>까지 확장되었고요. 청소년들이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순천을 그런 도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Q3. 매주 목요일 ‘100원 빵’을 판매하고, 2층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운영했던 <재미난제과점>도 있는데, 청소년에 특별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음…. 잘은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었고, 잠깐 교단에도 있었고, 학교를 나와서도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했고, 지금도 마을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계속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있네요. 점점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줄어들고는 있지만요.
저는 2011년에 학교 밖 청소년들 18명과 버스 한 대를 타고 전국을 유랑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내가 청소년들을 여전히 학생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한 인간, 한 인격체로서 대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많은 걸 배우게 되었어요.


2011년 공감유랑 버스를 운전하던 당시의 임경환 이사장,
자세한 내용은 뉴스타파의 ‘목격자들’을 꼬옥~ 참조 (https://newstapa.org/article/vqxWK)
청소년들은 만나면 에너지가 느껴져요. 그리고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그 순수함이 너무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만나고 싶어지고요.
Q4. ‘이로운 이용권’은 단순한 카페 이용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개념으로 만드신 건가요?
‘이로운 이용권’은 처음에 <재미난가게>를 시작할 때 초기 인테리어 비용을 마련하려고 만든 거였어요. 일일주점 표 팔듯이요. 그런데 그때 뭔가 돈을 내면 음료와 공간을 빌려줄 테니 이용권을 사라고 말하는 것이 좀 별로였어요. 그러던 차에 우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재능도 살 수 있을까 생각해서 그러면 이용권 티켓에 <재미난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재능도 넣어보자고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어요.
이 티켓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거를 만들자, 다른 분들이 자기도 재능을 내놓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이용권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로운 이용권’을 산 사람들이 이 티켓을 계기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부목사님 한 분은 티켓을 10장 사서 청소년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해요. 아직도 그 티켓이 종종 카페에 들어오곤 합니다.
제가 다른 지역 강의 다닐 때 우리 이 티켓으로 지역 간 교류를 해 보자는 제안도 하고, 그래서 이를테면 충주 청소년들이 이 티켓을 한 장 들고 오면 우리 지역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그 청소년들이 우리 지역에서 잘 있다 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거죠.
예전에는 “카카오 선물 대신 ‘이로운 이용권’을”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저를 포함한 조합원분들이 여력이 없기도 했고, 타임뱅크 전문가를 불러서 공부도 하고 이래저래 해 보았지만, 지속 가능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꼭 다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일 중 하나에요


<재미난가게>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이로운 이용권’ (사진: 희망제작소 제공)
Q5. <재미난가게> 외에도 공유 주택 <공유공간 너머>, <공동체 은행>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계신 데요. 이 모든 것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있다면?
<공유공간 너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소유에 대한 관념을 뒤집어 보자는 뜻에서 시작했어요. “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그런데 점점 실험을 해 보니까 “타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로 귀결되더라고요. 이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소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더라고요. <공동체 은행>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가?”도 마찬가지고요.
<재미난가게>도 영업 공간이지만 사람들에게 비밀번호를 막 알려주고 그래요.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지 않냐고 몇몇 운영자들이 이야기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예요. 우리가 계속 누군가를 믿지 못해서 장치들을 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인 것 같아요.
꼭 순천이라는 지역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순천이라는 지역을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순천 지역 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을 제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Q6. ‘재미난 실험’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을 텐데요.
어려움이라, 사실 큰 어려움은 없어요, 시의원 나가려고 하냐 정도의 오해? 뭐 이런 것은 사소하고, 사실 <재미난가게>는 지금 정년퇴직하신 분들이 재능 기부로 운영하고 있고, 도시재생 건물을 이용하고 있기에 임대료는 엄청 낮아서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구조로 운영해 가고 있어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이러한 실험에 동참하게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이런 고민들은 있어요. <재미난가게>가 청소년들에게 좀 더 열려 있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공동체 은행>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순천을 떠난다면 다음에 누가 이 활동을 이어서 할 수 있을까? 뭐, 이 정도의 고민은 있습니다.
Q8. 마지막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평생학습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평생학습이란 무엇이다.”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것은 잘 모르겠고요. 그냥 자기 옆에 있는 사람, 자기 옆에 있는 사물, 자기 옆에 있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 평생학습의 시작인 것 같아요. 궁금하면 배우고 싶잖아요? 그리고 궁금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가까운 것들이 소중한 대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저는 그게 평생학습 태도라고 생각해요.

글·사진·인터뷰 편집위원 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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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에서 <재미난협동조합> 운영하는 임경환 학습자
제6회 <별랑 청소년 정책마당>에서 아이들의 발표를 보며 활짝 웃고 있는 임경환 이사장
게임 디자이너 라프 코스터(Raph Koster)는 2004년 출간한 『재미이론(A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에서 “재미란 뇌가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익히는 순간에 발생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처음에는 낯설어서 재밌지만,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면 지루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짜 재미있는 것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패턴과의 만남을 제공한다. 코스터는 게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건 사실 배움의 구조와도 일치한다. 재미와 학습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난협동조합>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작명이 아닐 수 있다. 코스터의 언어로 풀면, 돈을 주고 물건을 받는 익숙한 거래의 패턴을 낯설게 비틀어 새로운 패턴과의 만남을 만들어 내는 실험. 그리고 그 낯섦 속에서 사람들이 배우고 연결되는 과정. 그것이 <재미난협동조합>이 ‘재미’를 이름에 새겨 넣은 이유일지 모른다. 임경환 이사장은 <재미난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의 패턴들을 제안해 왔다.
전남 순천시 저전동 골목 안, 10평 남짓한 작은 카페 <재미난가게>에 그 실험이 있다. 이곳은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어른과 청소년이 음료와 책을 통해 응원과 감사를 주고받는 공간이기도 하고, 학교 밖 청소년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하룻밤을 기댈 수 있는 공유 주택으로 이어지는 통로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이외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실험을 유쾌하게 이어가고 있는 사람. 임경환 이사장을 만나러 순천으로 향했다.
2026년 6월 26일, 순천에서 열렸던 제19차 마을교육활동가 대화 모임.
2020년부터 시작된 이 모임은 전국의 마을교육활동가들이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19번째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이 모임이 특이한 점은 딱히 모임을 대표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고, 더 특이한 점은 모두가 이 모임의 대표를 임경환 이사장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재미난가게>가 순천 저전동에 문을 연 것은 2023년 5월이다. <재미난협동조합>과 <디딤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공간은, 개장한 지 며칠도 안 돼 특별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호주와 울산에서 각각 순천 청소년들을 위해 음료 쿠폰을 적립해 왔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이 “힘든 사람에게 힘이 되고 싶다”라며 1만 원을 맡겨두기도 했다. 100원이 없어 빵을 못 사 먹는 누나를 위해 초등학생이 붙여 놓은 100원이 어느 날 여고생에게 전달되었고, 여고생은 다음과 같은 쪽지를 남겼다.
“네 덕분에 굶주린 학생 살맛 난다.”
임경환 이사장은 이 장면들을 담담하게, 그러나 눈을 빛내며 기록해 왔다. “돈은 돌고 돌아 제자리이지만, 그사이에 엄청난 마음들의 교환이 일어난다”라는 것이다. <재미난가게>에서는 ‘맡겨놓은 현금’, ‘맡겨놓은 음료’, ‘맡겨놓은 책’이 언제나 누군가를 기다린다. 주로 어른들이 맡겨놓고, 필요한 청소년들이 가져간다. 대상을 정하지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이 비현실적인 행위가 순천에서는 아무 때나 빈번하게,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매주 목요일에는 ‘100원 빵’을 판매한다. 예전에는 가게 2층 <재미난제과점>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이 직접 빵을 구웠다. 지금은 지역 후원자들이 재료비를 내고, 동네 학생들이 100원에 사 먹는다.
또한 <재미난가게>에서는 자체 제작한 ‘이로운 이용권’을 발행한다. 1장에 1만 원이지만 커피와 빵을 넘어, 이웃 시민들이 재능 기부로 진행하는 비폭력 대화, 천연 제품 만들기, 삶을 정리하는 인터뷰 등 다양한 일일 클래스에 참여할 수 있다. 카페를 단독으로 빌릴 수도 있고, 콘서트 입장도 가능하다. 임경환 이사장은 이 이용권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관계망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재미난가게>의 궁극적 목표는 임경환 이사장의 말처럼, 화폐가 아니라 사람들의 품과 품을 교환하는 ‘타임뱅크 하우스’가 되는 것이다. 이 실험은 <재미난가게>에 머물지 않는다. 하룻밤 잘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공유 주택 <공유공간 너머>, 급하게 소액이 필요한 사람에게 조건 없이 빌려주는 <공동체 은행>까지, 임경환의 재미난 상상은 지금도 순천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 대단한 강의나 거창한 자격증이 아닐지 모른다. 재미난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데 기꺼이 손들고 참여해 줄 사람들이 모이는 곳, 그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싹트는 곳. 그것이 평생학습이 숨 쉬는 공간이라면, <재미난가게>는 평생학습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Q1.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순천에서 살고 있는 임경환입니다. 순천에 산지는 14년 정도 되었고요. 순천은 아무 연고가 없었는데, 순천에서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순천에 살고 있습니다. 순천에 와서 제일 먼저 문을 두드린 곳이 <순천언론협동조합>이었고, 그 조합원들 덕분에 순천에 잘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 조합원들 일부가 <재미난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협동조합 조합원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재미난협동조합>이 <순천풀뿌리교육자치협력센터>를 위탁하게 되면서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가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재미난가게>를 하게 된 배경을 거슬러 올라가자면 참 사연이 긴데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공감유랑>이라고 2011년 학교 밖 아이들과 1년 동안 직접 경비를 벌어가며 전국을 여행하기도 하고, 또 장수 번암에 살면서 이남곡 선생님이 진행하셨던 <연찬>에 참여하기도 하고, 또 일본에서 무소유 공동체를 지향하는 <에즈원커뮤니티> 등을 방문하며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공유공간 너머>를 만들었지요. 전 <공유공간 너머>를 단지 주택이 아니라 상점으로 실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때쯤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을 하게 되면서 마을이 청소년들에게 환대의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재미난가게>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Q2. <재미난가게>에는 ‘맡겨놓은 현금’, ‘맡겨놓은 음료’, ‘맡겨놓은 책’이 있는데요. 이 아이디어는 어디서 왔나요?
이 아이디어는 춘천의 마을 교육 활동가, 윤요왕 선생님이 먼저 생각해 낸 것이고 저는 따라 했어요. 윤요왕 선생님도 이탈리아에서 들은 얘기래요. 윤요왕 선생님은 춘천에서 맡겨놓은 카페에서 맡겨놓은 음료를 했는데, 저는 그것을 맡겨놓은 현금과 맡겨놓은 책까지 확장한 것이죠.
이것을 하자고 했을 때 다들 좋아하셨어요. 좋은 일이니까요. 맡겨놓은 현금을 할 때는 조금 의견들이 달랐어요. “돈을 가게에 붙여 놓으면 누가 유리문을 깨고 가져가지 않겠냐”, “아이들에게 괜히 돈을 가져가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것이 교육적이지 않다” 등등 이견이 있었어요. 그때 저는 운영자들에게 “일단 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바꾸는 건 어떠냐?”라고 제안했고, 아직까지 유리문을 깨고 돈을 가져간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데 붙어 있는 5만원을 두 번 누군가가 떼어간 적이 있었는데, 떼어간 사람이 메모를 남겼어요.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다음에 꼭 갚는다고 하고 가져간 것 같아요. 그럴 때 운영자들은 “떼어갈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떼여갔겠지요, 다시 붙여 놓지 않을까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큰 변화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그 사람들에게 이 가게가 또 다른 학습의 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맡겨놓은 책은 독립 서점 <책방심다>에서 사장님이 티켓 10장을 가져오면서 이 티켓을 <재미난가게>에 오는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어요. 그 티켓을 가져오면 아이들이 그곳에서 선택할 책을 공짜로 준다면서. 그렇게 해서 생겨났어요. 그래서 맡겨놓은 책방은 독립 책방 <서성이다>까지 확장되었고요. 청소년들이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순천을 그런 도시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지요.
Q3. 매주 목요일 ‘100원 빵’을 판매하고, 2층엔 학교 밖 청소년들이 운영했던 <재미난제과점>도 있는데, 청소년에 특별히 집중하는 이유가 있나요?
음…. 잘은 모르겠는데, 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하고 싶었고, 잠깐 교단에도 있었고, 학교를 나와서도 학교 밖 청소년들과 함께 했고, 지금도 마을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걸 보니 계속 청소년들과 함께 하고 있네요. 점점 청소년들과 직접 만나는 시간을 줄어들고는 있지만요.
저는 2011년에 학교 밖 청소년들 18명과 버스 한 대를 타고 전국을 유랑한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내가 청소년들을 여전히 학생으로 바라보고 있구나, 한 인간, 한 인격체로서 대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때 많은 걸 배우게 되었어요.
2011년 공감유랑 버스를 운전하던 당시의 임경환 이사장,
자세한 내용은 뉴스타파의 ‘목격자들’을 꼬옥~ 참조 (https://newstapa.org/article/vqxWK)
청소년들은 만나면 에너지가 느껴져요. 그리고 아직 제도화되지 않은 그 순수함이 너무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만나고 싶어지고요.
Q4. ‘이로운 이용권’은 단순한 카페 이용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떤 개념으로 만드신 건가요?
‘이로운 이용권’은 처음에 <재미난가게>를 시작할 때 초기 인테리어 비용을 마련하려고 만든 거였어요. 일일주점 표 팔듯이요. 그런데 그때 뭔가 돈을 내면 음료와 공간을 빌려줄 테니 이용권을 사라고 말하는 것이 좀 별로였어요. 그러던 차에 우리 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재능도 살 수 있을까 생각해서 그러면 이용권 티켓에 <재미난협동조합> 조합원들의 재능도 넣어보자고 한 거예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어요.
이 티켓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데 매개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이거를 만들자, 다른 분들이 자기도 재능을 내놓고 싶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이용권이 만들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로운 이용권’을 산 사람들이 이 티켓을 계기로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결과를 낳았어요. 부목사님 한 분은 티켓을 10장 사서 청소년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해요. 아직도 그 티켓이 종종 카페에 들어오곤 합니다.
제가 다른 지역 강의 다닐 때 우리 이 티켓으로 지역 간 교류를 해 보자는 제안도 하고, 그래서 이를테면 충주 청소년들이 이 티켓을 한 장 들고 오면 우리 지역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그 청소년들이 우리 지역에서 잘 있다 갈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거죠.
예전에는 “카카오 선물 대신 ‘이로운 이용권’을”이라는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지만, 저를 포함한 조합원분들이 여력이 없기도 했고, 타임뱅크 전문가를 불러서 공부도 하고 이래저래 해 보았지만, 지속 가능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젠가는 꼭 다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일 중 하나에요
<재미난가게>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이로운 이용권’ (사진: 희망제작소 제공)
Q5. <재미난가게> 외에도 공유 주택 <공유공간 너머>, <공동체 은행>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계신 데요. 이 모든 것들이 지향하는 방향이 있다면?
<공유공간 너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소유에 대한 관념을 뒤집어 보자는 뜻에서 시작했어요. “이 집은 누구의 집인가?” 그런데 점점 실험을 해 보니까 “타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로 귀결되더라고요. 이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소유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공간에 들어오는 것은 결국 신뢰의 문제더라고요. <공동체 은행>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줄 수 있는가?”도 마찬가지고요.
<재미난가게>도 영업 공간이지만 사람들에게 비밀번호를 막 알려주고 그래요. 비밀번호를 바꿔야 하지 않냐고 몇몇 운영자들이 이야기했지만, 아직까지 그대로예요. 우리가 계속 누군가를 믿지 못해서 장치들을 하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여지를 없애는 일인 것 같아요.
꼭 순천이라는 지역에 갇힐 필요는 없지만, 순천이라는 지역을 한정해서 이야기하면 순천 지역 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망을 만드는 것을 제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Q6. ‘재미난 실험’을 하다 보면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을 텐데요.
어려움이라, 사실 큰 어려움은 없어요, 시의원 나가려고 하냐 정도의 오해? 뭐 이런 것은 사소하고, 사실 <재미난가게>는 지금 정년퇴직하신 분들이 재능 기부로 운영하고 있고, 도시재생 건물을 이용하고 있기에 임대료는 엄청 낮아서 큰 비용이 들지 않는 구조로 운영해 가고 있어서 유지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하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이러한 실험에 동참하게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이런 고민들은 있어요. <재미난가게>가 청소년들에게 좀 더 열려 있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공동체 은행>에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순천을 떠난다면 다음에 누가 이 활동을 이어서 할 수 있을까? 뭐, 이 정도의 고민은 있습니다.
Q8. 마지막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이사장님이 생각하시는 평생학습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저는 “평생학습이란 무엇이다.”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것은 잘 모르겠고요. 그냥 자기 옆에 있는 사람, 자기 옆에 있는 사물, 자기 옆에 있는 모든 것을 궁금해하는 것이 평생학습의 시작인 것 같아요. 궁금하면 배우고 싶잖아요? 그리고 궁금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내 가까운 것들이 소중한 대상이 되어가는 것 같아요. 멀리 있는 것을 동경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저는 그게 평생학습 태도라고 생각해요.
글·사진·인터뷰 편집위원 채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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