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김월용 원장

인터뷰 당일은 김월용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의 취임 딱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4월 그의 취임은 평생교육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역대 원장은 대부분 교수나 정책 전문가 출신이었다.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로 학위를 받은 130만 학습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러니까 이 제도를 바닥에서 직접 밟고 올라온 현장의 학습자가 제도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 된 것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시절 지역 8개 대학의 캠퍼스를 시민에게 연 ‘인천시민대학 시민라이프칼리지’를 만들어 내 수강 신청 첫날 90% 마감이라는 기록을 남긴 이력까지. 평생교육을 온몸으로 알고, 실행까지 해낸 사람이 왔다는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0일, 그는 그 기대대로 뛰고 있었다. 취임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곧장 자신이 뛰어온 이야기를 꺼냈다. 교육예산 100조 시대에 성인 평생교육의 몫은 아직 1%에도 못 미친다는 것,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예산처를 설득하러 다녔다는 것. 실제로 인터뷰 당일에도 그의 발에는 운동화가 신겨 있었다. 그 발품의 결실이 이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100일 만에 진흥원의 보폭이 눈에 띄게 넓어진 것이다.
그 추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그의 이력이 말해준다. 쉰이 넘도록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장 한 장이 전부였다. 강원도 영월 산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여덟부터 여덟 해를 탄광 광부로 일했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도 세상이 요구하는 ‘증(證)’ 앞에서 번번이 이력서를 들고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그가 검정고시 책을 펼친 건 쉰여섯, 남들이 은퇴를 이야기하던 나이였다. 그해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한 번에 통과하고, 이듬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독학학위제와 학점은행제를 통해 1년 만에 155학점을 채워 학사모를 썼고, 정책학 석사를 거쳐 예순넷에는 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배움은 새로운 경력으로 이어졌다. 대학 강단에 섰고, 한국폴리텍대학교 경기‧인천권역대학장과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을 지냈으며, 마침내 자신에게 학위를 내어준 바로 그 제도의 책임자가 됐다. 마주 앉은 일흔의 원장은 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쉰여섯에 공부를 시작해 일흔에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평생학습의 힘입니다.”
그의 공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숲길을 한 시간 반씩 걷고, 잠들기 전까지 강의를 들으며 잠든다. 대화는 2,500년 전 철학자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다시 반도체 시장으로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원장님의 알고리즘이 궁금하다”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휴대폰 검색 기록을 열어 보였다. 반도체, 제주 날씨, 그리고 동네 냉면 맛집.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일동이 웃었다. 그런데 그 목록 사이사이에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 놓여 있었다. 관심은 사방으로 뻗어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자리는 하나였다.
그 자리에서 그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화두 역시 하나다. 배우러 오라고 하는 대신, 배움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겠다는 것. 취임 100일을 맞은 김월용 원장을 서울 강서구 마곡에 위치한 진흥원에서 만났다.
취임 100일, 신발 끈을 고쳐 매고

Q. 4월 취임 이후 오늘로 꼭 100일입니다. 그동안 사업부서별 업무보고와 국정과제 추진 상황을 직접 살피셨을 텐데요. 100일간의 소회, 그리고 ‘이건 좀 다르게 가야겠다’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큰 틀에서 보고를 받고 들여다보면서 솔직히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진흥원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해 주어진 여건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예산은 늘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줄어 있었고요.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신발 끈 고쳐 매고 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운동화 신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제일 먼저 꺼내는 얘기가 헌법 31조입니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는 5항보다 더 중요한 게 그 앞의 1항이에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지금 그 ‘모두’가 안 되고 있어요. 교육예산이 100조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공교육으로 가요. 국민의 70~80%가 넘는 성인들은 1%도 안 되는 예산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죠. 진흥원에 오는 몫은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고요. 이건 국가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겁니다.
북유럽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이 절반을 넘고, 예산 비중도 훨씬 높아요. 이것만 봐도 평생교육이 행복의 척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1950년대부터 공교육에 투자해서 이만큼 잘살게 됐다면, 이제는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잘사는 것과 행복한 건 다르더라고요. 행복하려면 스무 살 이후의 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손을 놓고 있었어요. 우리는 교육 투자를 스무 살까지에 다 몰아넣고,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그 뒤 오십 년은 그냥 두고 있는 게 현실이죠.
저희 진흥원은 2008년 설립 이후 국가 교육기관 가운데 예산과 인력 확대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사업인 학점은행제는 1998년 671명의 학습자로 시작해 현재 누적 학습자 수가 266만 명에 이르렀지만, 이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임하고는 예산처부터 교육부, 시·도평생교육진흥원, 대학까지 설득하러 뛰어다녔습니다. 물론 돈만 있다고 될 일은 아니에요. 결국 사람이 해야 하니까 직원들 사기부터 다시 세워야 하고, 대학이든 지자체든 문을 열어줘야 하고요. 그래도 그나마 내년부터는 예산이 좀 늘 것 같고, 오랜만에 인력 증원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김 원장의 지적은 실제 예산 구조와 숫자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2026년 교육부 예산 106조 3,000억 원 가운데 평생·직업교육 부문에 배정된 예산은 1조 2,000억 원이 채 안 되고, 그중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몫은 약 584억 원이다.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Q. 왜 이렇게까지 성인 교육이 뒷전으로 밀렸다고 보시나요.
목소리를 못 내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라고 하면 다들 국·영·수, 공교육만 떠올리잖아요. 정작 교육이 절실한 분들은 탄원서 한 장 쓸 줄 모르고, 디지털을 모르니 요청조차 못 해요. 그러니 예산과 정책이 목소리 나는 쪽으로만 쏠린 거죠.
그런데 이렇게 성인 교육이 소외되면서 생기는 문제가 예산 차원에서 끝나지 않아요. 지금 세대 갈등도 저는 결국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전 부모들은 스스로 배우지 못했다는 걸 아니까, 자식이 하는 말을 잘 몰라도 “그래, 네 말이 맞다”하고 들어줬어요. 그런데 지금 기성세대는 배운 세대예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있으니 “그거 틀리지 않아?” 하면서 부딪쳐요. 문제는 세상이 워낙 빨리 바뀌어서, 그 지식이 이미 낡은 지식이 됐다는 겁니다. 이건 세대 간의 ‘문명의 충돌’이에요.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세대가 교육에서 소외되니까 벌어지는 일이죠. 이걸 돈 몇 푼 쓴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성인 학습을 통해 낡은 지식을 계속 새로 채워주면서 평균적으로 녹여내야 하는 문제예요.
결국 어른이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가 전국학부모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애들은 매일 공부하는데 정작 학부모는 공부가 안 돼 있거든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이들 진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부모가 먼저 배워야 대화가 되니까요. 학부모 단체라고 하면 다들 정치색부터 떠올리고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이 첨예하게 충돌하는데, 저희는 그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인천에서 국가로… “소유가 아니라, 같이 쓰자”

김 원장은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시절 ‘인천시민대학 시민라이프칼리지’를 만든 주인공이다. 인천대·인하대·가천대 등 지역 8개 대학이 캠퍼스를 시민에게 열고, 20대부터 80대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강좌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 시민대학을 만들기 위해, 그는 대학 총장들을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열 번씩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Q. 인천에서 원장을 하시다가 국가 전체를 맡게 되셨습니다. 무엇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셨나요.
인천은 지방 행정이었고, 여기는 국가 교육 행정이에요. 국가진흥원과 시·도진흥원은 지휘·감독 관계도 아닙니다. ‘국가’가 붙었다고 뭐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천 때가 손발이 더 자유로웠습니다.
그래도 인천에서 성공했던 경험이 지금의 밑그림이 되었어요. 시민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서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특화된 플랫폼도, 콘텐츠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대학과 손잡고, 대학의 좋은 인프라를 시민에게 열었습니다. 핵심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같이 쓰자’라는 거예요. 대학이든 초·중·고든 여유 공간을 열자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인천시민대학은 지금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Q. 그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려 가시나요.
학령인구 고갈은 이미 20년 전부터 예견된 일입니다. 학생이라는 우물은 다 말랐는데, 배우고 싶어 하는 시민이라는 우물은 계속 넘쳐요. 하루에도 수많은 액티브 시니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분들을 교육하지 않으니 사회가 삐걱대는 거예요. 빈 대학 캠퍼스는 늘어나는데 말이죠. 평생교육은 살아 있으면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뒷방에 계신 어르신까지 모셔 나와야 해요.
그래서 방송통신대학도, 폴리텍대학도, 모든 대학을 하나의 플랫폼에 넣으려고 합니다. 시민이 자기 학습 이력을 들고, 여기서 배운 걸 저기 가서 이어서 배울 수 있게. 학습 계좌와 바우처를 들고 어디서나 원스톱으로 공부하는, 온라인 전 국민 평생학습 기본 시대를 여는 거죠. 하루아침에 되진 않아요. 하지만 지금부터 그 중요성을 붙들고 있으면, 지나고 나서 반드시 이뤄져 있을 겁니다.
겪어 본 사람만 아는 것

김 원장에게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는 정책 용어가 아니라 자신의 이력서다. 학점은행제는 학교 안팎의 다양한 학습을 학점으로 쌓아 학위로 인정받는 제도, 독학학위제는 대학에 다니지 않고도 단계별 국가 시험을 통과하면 학사 학위를 주는 제도다. 그는 이 제도로 1년 만에 155학점을 채워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두 제도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30만 명에 이른다.
Q.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 두 제도를 통해 학위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하십니다. 운영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점은요.
지금까지는 평생교육을 ‘이론’으로 깊이 공부한 분들이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걸 바닥에서 직접 ‘소비’해 본 사람이에요. 소비를 해 보니까 뭐가 좋고 뭐가 아쉬운지 정말 많이 알아요.
그래서 이걸 고도화하고 싶어요. 헌법 교육이나 민주시민 교육 같은 걸 넣어서 더 탄탄한 학습으로요. 130만 졸업생이 지금 어디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챙겨야 하고, 18만 평생교육사를 재교육해서 진짜 현장을 지도할 지도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평생교육 지도자를 전문으로 길러내는 대학원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곳이 없어요. 만들고 싶은 그림이 참 많습니다.
제가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를 거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에 이른 첫 사례입니다. 이 제도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원장으로 이 자리에 앉은 것도 제가 처음일 거예요. ‘평생교육을 통해서도 저렇게 성장하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남기고 싶습니다.
Q. 재직자 재교육이나 AI 교육도 이 제도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재직자 교육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현재로서는 온라인 교육밖에 없어요. 그런데 AI 맞춤형 교육이나 직무 재교육은 실습장이 있어야 하고 현장이 있어야 하거든요. 폴리텍대학이나 다른 대학들이 그런 인프라를 다 갖고 있는데, 아직 우리 영향이 거기까지는 잘 못 미치고 있습니다. 그게 제일 아쉬워요.
그래도 전국의 기업과 대학을 연계하면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이에요. 돈과 인력만 있으면 못 할 게 뭐 있겠습니까.
배우러 오라 하지 않고, 찾아가겠다

화제가 ‘디지털 격차’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가장 오래, 가장 뜨겁게 말했다.
Q. 취임사에서 ‘국가 디지털 평생교육 플랫폼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셨습니다. AI 시대, 진흥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이제 의식주에도 AI가 붙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입니다. 옛날 데스크톱 배우던 것처럼 어렵지도 않아요. 음성으로 다 되니까요. 그런데 배우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AI에도 윤리가 있고, 질문하는 기술이 있어요. 공부가 안 되어 있으면 AI도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저부터도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를 비롯해 여러 AI 매체를 두루 쓰고, 그것도 대부분 유료 버전으로 씁니다. 요즘은 눈으로 읽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되니까, 일흔에도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AI는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인 게 아니라, 국민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된 겁니다.
그래서 향후에는 독학학위제나 학점은행제에서 AI를 국민 필수 교양 과목으로 넣으려고 합니다. ‘학위를 받으려면 AI를 배워라’ 이렇게요. 거창하게 갈 것도 없어요. 한 집에 한 명씩이라도 AI를 다룰 줄 알면 세상이 달라지거든요. 예산이 반영되면 전국 대학을 활용해 국민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AI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도 진흥원과 협의해서 어디서든 배울 수 있게 장을 열 생각입니다.
Q. 한편으로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취약계층이 오히려 더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찾아가는 교육’입니다.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이 약 350만 명이고, 일상에서 디지털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1,100만 명이 넘어요. AI 시대에는 이 격차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이건 옛날 문맹보다 더한 벽이에요.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과 IT 회사들은 AI를 중심으로 고객 서비스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보와 서비스 이용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AI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보세요, 배달이 안 되는 병원이나 미용실 같은 데를 빼고, 디지털로 못 넘어간 동네 가게는 다 문을 닫았잖아요. 경기가 좋지 않아서만이 아닙니다. 변화를 따라갈 교육이 없어서예요.
그래서 어디로 배우러 오시라고 할 게 아니라, 택배를 보내주듯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그 할머니가 ‘오케이’ 할 때까지요. 앱 몇 개 깔아드리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떠나고 나면 또 잊으시거든요. 될 때까지 곁에서 반복해서 가르쳐 드려야 해요. 제가 인천에 있을 때는 장학금 받는 학생들이 지역으로 내려가서, 손자가 할머니를 ‘알 때까지’ 가르쳐 드리는 걸 한번 시켜 본 적이 있어요. 그런 방식입니다.
산업 사회 전반도 바뀌어야 해요. 키오스크만 해도 젊은 사람만 대상으로 하지 말고, “카페라테 한 잔” 하고 말로 주문하면 말로 결제되는 걸 만들어 내야죠. 그런 게 왜 안 만들어지겠어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못 내서 그렇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은 현수막 한 장 쓸 줄 모르니 요구를 못 했고, 디지털을 모르는 분들은 아예 포기하고 “젊은이, 이것 좀 해줘” 하고 맙니다. 그런 분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이건 초격차의 문제입니다. 지금 안 하면 격차가 영영 벌어져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국민이 ‘오케이’ 할 때까지 들어가야 한다고요.
Q. 그 정도 규모라면 진흥원 혼자서는 벅찰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걸 진짜 통합하려면 결국 국가평생교육진흥청을 만들어야 해요. 병무청이나 교육청처럼 체계가 쫙 내려가야 통합이 되지, 지금처럼 지자체 따로, 교육청 따로, 대학 따로여서는 안 됩니다. 다들 선출직이라 국가가 강제로 묶기도 어렵고요. 최소 1~2조 원 예산은 있어야 전국 대학에 “이거 한번 해 보시죠”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예산으로는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교육부 장관님께도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자리를 지키거나 원장이라는 직함을 누리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일흔의 나이에 이 자리를 맡은 것은 평생교육을 위해 제대로 한번 일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용맹한 사자라도 큰 사냥은 혼자 해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사자가 물소 사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자 열세 마리가 세 시간에 걸쳐 물소 한 마리를 잡더라고요. 이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혼자 할 일이 아니에요. 인류가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서로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평생교육은 취미가 아니라 권리

Q. 평생교육을 여전히 ‘여유 있는 이들의 취미’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선입견과 격차를 없앨 방법은 무엇일까요.
격차를 ‘없앤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분들의 ‘니즈’를 존중해야 합니다. 취미로 하고 싶은 분은 취미로 하게 하고, 한글을 배우고 싶으면 한글을, 운동이나 영어나 AI를 배우고 싶으면 그걸 하게 해드리는 거예요. 평생교육은 스무 살까지 취업과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사람이, 이제 비로소 ‘나를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거든요.
인권이 발달한 나라들을 보면 취미 생활 하나도 인격권으로 존중해요. 강행규정 위반만 아니라면 뭘 배우고 싶든 다 열어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결국 예산이에요. 좀 더 넓게, 하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우리 행복지수가 왜 그렇게 낮겠어요? 저는 평생교육의 부재라고 봅니다.
Q. 앞서 헌법 31조의 ‘모든 국민’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모두’에는 어떤 분들까지 들어갑니까.
말 그대로 모두입니다. 어느 하나 빼놓을 수가 없어요. 스무 살 이후의 성인, 은퇴하신 어르신, 일하면서 다시 배워야 하는 재직자, 스마트폰조차 못 쓰시는 분들까지 다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에 한 분류가 더 있어요. 이주배경인구와 외국인 주민입니다. 이분들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우리는 300만 이주민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국가의 성장 동력도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중앙다문화교육센터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적과 출신이 다르더라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배움에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필요한 교육을 책임 있게 지원하겠습니다.
Q. 원장님께 평생교육은 결국 무엇이었습니까.
살아보니 사주팔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해 온 말과 선택, 습관이 쌓여 결국 내 인생이 됩니다. 인생의 답안지는 한참 뒤에야 받아보게 되거든요. 스무 살까지는 어느 대학에 갔느냐가 중요해 보이고, 서른에는 전공과 직업이, 마흔에는 가족과의 관계가, 예순이 되면 그 사람이 쌓아 온 지식과 곁에 둔 친구, 자녀와의 관계가 답안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일흔의 답안지는 무엇이냐고요? 지금 제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제가 걸어온 길, 그리고 사회에 무엇을 돌려주고 있는지가 답안지라고 생각합니다. 일흔의 나이에 여러 검증을 거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이라는 책임을 맡은 것도 제가 평생 배우며 살아온 과정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평생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더 배우는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잘못 든 길에서는 다시 방향을 잡게 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답으로 이끄는 힘입니다.
떠나도 지속적으로 잘 되는 것이 리더십
김 원장은 조직을 맡을 때마다 성적을 냈다. 한국폴리텍대학교 경기‧인천권역대학장 시절에도,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시절에도 최고 등급을 받았다.
Q. 일하시던 기관 모두 최고 등급을 받으셨습니다. 조직을 이끄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단 운이 좋았고, 다 직원들이 한 겁니다. 저는 직원들한테 늘 이렇게 말해요.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열심히 하다가 눈 떠 보면 우리가 최고에 있을 거다.” 경영평가라는 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정량 평가는 잘 나오게 돼 있고, 원장이 다른 짓 안 하면 정성 평가도 잘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매일 등수만 생각하고 있으면 정작 일이 안 됩니다. 애들한테도 그러잖아요. 시험 결과를 궁금해하지 말라고. ‘몇 점 맞을까, 몇 점 맞을까’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폴리텍대학에서도 꼴찌에서 1등으로 간 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간 거죠.
당시 그는 교직원 1,200명이 참여한 평가에서 95%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도 그 결과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자칫 자기 자랑처럼 들릴까 염려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Q. 그렇다면 원장님만의 리더십 원칙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리더십’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취임식과 직원 월례 조회 때도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러 왔습니다. 제 고객은 바로 직원 여러분입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그랬죠, 고객의 말은 옳다고. 옛날의 명령이나 지시가 지금은 갑질이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복종시키고 군림하는 게 리더십이 아니라, 직원 한 사람이라도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 저는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따르라”보다 “이 일을 함께 해볼까요?”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실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반말하지 않고,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정중하게 쓰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원장이 있을 때 잘 되는 게 아니라, 떠나고 나서도 잘 되는 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는 동안 시스템이 제대로 서 있으면 그다음은 알아서 굴러가니까요. 저는 리더십을 먼저 배운 사람이 아니라 팔로우십을, 남의 말을 들어 보고 따라 하는 걸 먼저 배운 사람입니다.
결국은 진심입니다. ‘저 원장이 진심이구나’ 하는 걸 직원들이 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결국은 알아가더라고요. 살아보니 거짓으로, 겉으로만 잘된 사람을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잠깐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어디선가 걸리더라고요.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 보여도 새는 법이 없다(천망회회 소이불실, 天網恢恢 疏而不失), 그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고전과 철학을 계속 공부해요. 공자와 맹자는 인과 의, 예를 가르쳤고, 묵자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며 서로를 두루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비자는 선의만으로 사회를 다스릴 수 없으니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고요. 그러나 어느 하나만으로 세상과 조직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 철학에서도 소피스트들이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을 중시했다면,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게 했습니다. 저 역시 고전과 철학을 통해 질문하며, 참 많은 답을 얻습니다.
전국을 평생교육 하나의 우산 아래로

Q. 2029년까지 임기를 마치실 무렵, “이것만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실 수 있는 대표 과제는 무엇인가요.
제가 놓고 가고 싶은 다리는 딱 하나입니다. 전국을 평생교육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모으는 것. 지금은 지자체 따로, 교육청 따로, 대학 따로 흩어져 있는 것을 진흥원 아래로 다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정주영 회장 같은 분도 그 시절에 평생학습이 있었다면 다 대학을 나오셨을 분들이잖아요. 그런 혜택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그 토대라도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겁니다.
저는 단거리 주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라톤 주자도 아니에요. 마라톤은 결국 혼자 완주해야 하잖아요. 저는 제가 완주할 주자가 아니라, 뛰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면 되는 계주 주자라고 생각해요. 잘 넘겨주는 것, 그게 제 몫입니다. 토양을 만들고 씨를 뿌려두면 열매는 그들이 거둬도 좋다는 마음이고요. 폴리텍대학에 있을 때 400억 예산을 받아 지은 교직원 아파트와 학생 기숙사가, 제가 떠난 지 4년 만에 완공돼서 지금 학생들이 입주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 보람이 있습니다. 다들 지금도 그때 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취임 100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1년은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울림이 있고, 예산도 조금씩 반영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이미 늦었다’며 배움의 문 앞에서 망설이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 자체가 위대한 학교입니다. 저는 지금도 등교 중이고요. 옛날엔 학벌을 봤지만, 이제는 실력을 보는 시대예요. 마지막 승부는 결국 실력이더라고요. 고쳐 쓰던 세상에서 이제는 버리는 세상이 됐는데, 버려지지 않으려면 평생교육을 달고 살아야 해요. 교육이 뒷받침된 사람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실수를 잘 안 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실천력을 기르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은 지식을 먼저 갖춘 뒤에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교육 없이 실천만 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거든요.
이미 늦었다고요? 마음속 한(恨)을 그저 한계(限)로만 받아들이면 거기에서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살피면, 한은 꿈이 되고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부모님이 저를 공부시키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제 가슴에 남은 한(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恨)이 다시 공부하게 한 꿈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막다른 골목에 설 때마다 그곳을 한계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으로 그었습니다. 돌아서기보다 그 자리를 제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제게 결핍은 주저앉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에너지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새로운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길 위에 선 것입니다. 시작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바다가 갈리듯 길이 열릴 거예요.
다만 그 말씀을 드리려면 저희가 먼저 문을 열어드려야겠죠. 망설이는 분께 “용기를 내세요” 하고 마는 건 무책임한 일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부터 배우면 되는지를 국가가 알려드려야 해요. 뒷방에 계신 어르신까지 다 모셔 나와서 대학으로 보내드리는 것,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문을 두드려 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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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가평생교육진흥원 김월용 원장
인터뷰 당일은 김월용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의 취임 딱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4월 그의 취임은 평생교육계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역대 원장은 대부분 교수나 정책 전문가 출신이었다.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로 학위를 받은 130만 학습자 가운데 한 사람이, 그러니까 이 제도를 바닥에서 직접 밟고 올라온 현장의 학습자가 제도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 된 것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 역사상 처음이다. 여기에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시절 지역 8개 대학의 캠퍼스를 시민에게 연 ‘인천시민대학 시민라이프칼리지’를 만들어 내 수강 신청 첫날 90% 마감이라는 기록을 남긴 이력까지. 평생교육을 온몸으로 알고, 실행까지 해낸 사람이 왔다는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100일, 그는 그 기대대로 뛰고 있었다. 취임 축하 인사를 건네자, 그는 곧장 자신이 뛰어온 이야기를 꺼냈다. 교육예산 100조 시대에 성인 평생교육의 몫은 아직 1%에도 못 미친다는 것,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예산처를 설득하러 다녔다는 것. 실제로 인터뷰 당일에도 그의 발에는 운동화가 신겨 있었다. 그 발품의 결실이 이제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했다. 100일 만에 진흥원의 보폭이 눈에 띄게 넓어진 것이다.
그 추진력이 어디서 나오는지는 그의 이력이 말해준다. 쉰이 넘도록 그의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장 한 장이 전부였다. 강원도 영월 산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열여덟부터 여덟 해를 탄광 광부로 일했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도 세상이 요구하는 ‘증(證)’ 앞에서 번번이 이력서를 들고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그가 검정고시 책을 펼친 건 쉰여섯, 남들이 은퇴를 이야기하던 나이였다. 그해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한 번에 통과하고, 이듬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독학학위제와 학점은행제를 통해 1년 만에 155학점을 채워 학사모를 썼고, 정책학 석사를 거쳐 예순넷에는 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배움은 새로운 경력으로 이어졌다. 대학 강단에 섰고, 한국폴리텍대학교 경기‧인천권역대학장과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을 지냈으며, 마침내 자신에게 학위를 내어준 바로 그 제도의 책임자가 됐다. 마주 앉은 일흔의 원장은 이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러나 힘주어 말했다.
“쉰여섯에 공부를 시작해 일흔에 여기까지 왔으니, 이건 평생학습의 힘입니다.”
그의 공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숲길을 한 시간 반씩 걷고, 잠들기 전까지 강의를 들으며 잠든다. 대화는 2,500년 전 철학자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다시 반도체 시장으로 거침없이 넘나들었다. “원장님의 알고리즘이 궁금하다”라고 하자 그는 웃으며 휴대폰 검색 기록을 열어 보였다. 반도체, 제주 날씨, 그리고 동네 냉면 맛집. “이상한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일동이 웃었다. 그런데 그 목록 사이사이에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함께 놓여 있었다. 관심은 사방으로 뻗어 있어도, 결국 돌아오는 자리는 하나였다.
그 자리에서 그가 가장 오래 붙들고 있는 화두 역시 하나다. 배우러 오라고 하는 대신, 배움이 닿지 않는 곳으로 직접 찾아가겠다는 것. 취임 100일을 맞은 김월용 원장을 서울 강서구 마곡에 위치한 진흥원에서 만났다.
Q. 4월 취임 이후 오늘로 꼭 100일입니다. 그동안 사업부서별 업무보고와 국정과제 추진 상황을 직접 살피셨을 텐데요. 100일간의 소회, 그리고 ‘이건 좀 다르게 가야겠다’ 싶었던 부분이 있다면요.
큰 틀에서 보고를 받고 들여다보면서 솔직히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진흥원이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많은데, 그에 비해 주어진 여건이 너무 부족했거든요. 예산은 늘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줄어 있었고요. 그래서 취임 첫날부터 신발 끈 고쳐 매고 뛰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운동화 신고 있습니다. (웃음)
제가 제일 먼저 꺼내는 얘기가 헌법 31조입니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는 5항보다 더 중요한 게 그 앞의 1항이에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지금 그 ‘모두’가 안 되고 있어요. 교육예산이 100조가 넘는데, 그 대부분이 공교육으로 가요. 국민의 70~80%가 넘는 성인들은 1%도 안 되는 예산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 셈이죠. 진흥원에 오는 몫은 그중에서도 극히 일부고요. 이건 국가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겁니다.
북유럽처럼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들은 성인의 평생학습 참여율이 절반을 넘고, 예산 비중도 훨씬 높아요. 이것만 봐도 평생교육이 행복의 척도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1950년대부터 공교육에 투자해서 이만큼 잘살게 됐다면, 이제는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잘사는 것과 행복한 건 다르더라고요. 행복하려면 스무 살 이후의 교육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거기에 손을 놓고 있었어요. 우리는 교육 투자를 스무 살까지에 다 몰아넣고,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그 뒤 오십 년은 그냥 두고 있는 게 현실이죠.
저희 진흥원은 2008년 설립 이후 국가 교육기관 가운데 예산과 인력 확대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은 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 사업인 학점은행제는 1998년 671명의 학습자로 시작해 현재 누적 학습자 수가 266만 명에 이르렀지만, 이에 걸맞은 예산과 인력은 거의 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취임하고는 예산처부터 교육부, 시·도평생교육진흥원, 대학까지 설득하러 뛰어다녔습니다. 물론 돈만 있다고 될 일은 아니에요. 결국 사람이 해야 하니까 직원들 사기부터 다시 세워야 하고, 대학이든 지자체든 문을 열어줘야 하고요. 그래도 그나마 내년부터는 예산이 좀 늘 것 같고, 오랜만에 인력 증원도 될 것 같습니다. 이제야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죠.
김 원장의 지적은 실제 예산 구조와 숫자를 통해 더욱 선명하게 확인된다. 2026년 교육부 예산 106조 3,000억 원 가운데 평생·직업교육 부문에 배정된 예산은 1조 2,000억 원이 채 안 되고, 그중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의 몫은 약 584억 원이다.
헌법 제31조
①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⑤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Q. 왜 이렇게까지 성인 교육이 뒷전으로 밀렸다고 보시나요.
목소리를 못 내기 때문입니다. 교육이라고 하면 다들 국·영·수, 공교육만 떠올리잖아요. 정작 교육이 절실한 분들은 탄원서 한 장 쓸 줄 모르고, 디지털을 모르니 요청조차 못 해요. 그러니 예산과 정책이 목소리 나는 쪽으로만 쏠린 거죠.
그런데 이렇게 성인 교육이 소외되면서 생기는 문제가 예산 차원에서 끝나지 않아요. 지금 세대 갈등도 저는 결국 교육의 문제라고 봅니다. 예전 부모들은 스스로 배우지 못했다는 걸 아니까, 자식이 하는 말을 잘 몰라도 “그래, 네 말이 맞다”하고 들어줬어요. 그런데 지금 기성세대는 배운 세대예요. 자기가 알고 있는 게 있으니 “그거 틀리지 않아?” 하면서 부딪쳐요. 문제는 세상이 워낙 빨리 바뀌어서, 그 지식이 이미 낡은 지식이 됐다는 겁니다. 이건 세대 간의 ‘문명의 충돌’이에요. 변화의 속도를 못 따라가는 세대가 교육에서 소외되니까 벌어지는 일이죠. 이걸 돈 몇 푼 쓴다고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성인 학습을 통해 낡은 지식을 계속 새로 채워주면서 평균적으로 녹여내야 하는 문제예요.
결국 어른이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저희가 전국학부모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애들은 매일 공부하는데 정작 학부모는 공부가 안 돼 있거든요.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이들 진로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부모가 먼저 배워야 대화가 되니까요. 학부모 단체라고 하면 다들 정치색부터 떠올리고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이 첨예하게 충돌하는데, 저희는 그 사이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고 배우는 자리를 만드는 겁니다.
김 원장은 인천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시절 ‘인천시민대학 시민라이프칼리지’를 만든 주인공이다. 인천대·인하대·가천대 등 지역 8개 대학이 캠퍼스를 시민에게 열고, 20대부터 80대까지 실생활에 필요한 강좌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 시민대학을 만들기 위해, 그는 대학 총장들을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열 번씩 직접 찾아가 설득했다.
Q. 인천에서 원장을 하시다가 국가 전체를 맡게 되셨습니다. 무엇이 가장 다르게 느껴지셨나요.
인천은 지방 행정이었고, 여기는 국가 교육 행정이에요. 국가진흥원과 시·도진흥원은 지휘·감독 관계도 아닙니다. ‘국가’가 붙었다고 뭐든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인천 때가 손발이 더 자유로웠습니다.
그래도 인천에서 성공했던 경험이 지금의 밑그림이 되었어요. 시민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어디서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특화된 플랫폼도, 콘텐츠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대학과 손잡고, 대학의 좋은 인프라를 시민에게 열었습니다. 핵심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같이 쓰자’라는 거예요. 대학이든 초·중·고든 여유 공간을 열자는 거죠. 그렇게 시작된 인천시민대학은 지금도 아주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Q. 그 모델을 전국으로 확산하겠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그려 가시나요.
학령인구 고갈은 이미 20년 전부터 예견된 일입니다. 학생이라는 우물은 다 말랐는데, 배우고 싶어 하는 시민이라는 우물은 계속 넘쳐요. 하루에도 수많은 액티브 시니어가 쏟아져 나오는데, 이분들을 교육하지 않으니 사회가 삐걱대는 거예요. 빈 대학 캠퍼스는 늘어나는데 말이죠. 평생교육은 살아 있으면 늙지 않는다는 겁니다. 뒷방에 계신 어르신까지 모셔 나와야 해요.
그래서 방송통신대학도, 폴리텍대학도, 모든 대학을 하나의 플랫폼에 넣으려고 합니다. 시민이 자기 학습 이력을 들고, 여기서 배운 걸 저기 가서 이어서 배울 수 있게. 학습 계좌와 바우처를 들고 어디서나 원스톱으로 공부하는, 온라인 전 국민 평생학습 기본 시대를 여는 거죠. 하루아침에 되진 않아요. 하지만 지금부터 그 중요성을 붙들고 있으면, 지나고 나서 반드시 이뤄져 있을 겁니다.
김 원장에게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는 정책 용어가 아니라 자신의 이력서다. 학점은행제는 학교 안팎의 다양한 학습을 학점으로 쌓아 학위로 인정받는 제도, 독학학위제는 대학에 다니지 않고도 단계별 국가 시험을 통과하면 학사 학위를 주는 제도다. 그는 이 제도로 1년 만에 155학점을 채워 학위를 받았다. 지금까지 두 제도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30만 명에 이른다.
Q.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 두 제도를 통해 학위를 받은 당사자이기도 하십니다. 운영에서 보완이 필요하다고 보시는 점은요.
지금까지는 평생교육을 ‘이론’으로 깊이 공부한 분들이 정책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이걸 바닥에서 직접 ‘소비’해 본 사람이에요. 소비를 해 보니까 뭐가 좋고 뭐가 아쉬운지 정말 많이 알아요.
그래서 이걸 고도화하고 싶어요. 헌법 교육이나 민주시민 교육 같은 걸 넣어서 더 탄탄한 학습으로요. 130만 졸업생이 지금 어디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챙겨야 하고, 18만 평생교육사를 재교육해서 진짜 현장을 지도할 지도자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평생교육 지도자를 전문으로 길러내는 대학원이 따로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곳이 없어요. 만들고 싶은 그림이 참 많습니다.
제가 학점은행제와 독학학위제를 거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에 이른 첫 사례입니다. 이 제도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 원장으로 이 자리에 앉은 것도 제가 처음일 거예요. ‘평생교육을 통해서도 저렇게 성장하고 새로운 길을 열 수 있구나’ 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를 하나 남기고 싶습니다.
Q. 재직자 재교육이나 AI 교육도 이 제도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재직자 교육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현재로서는 온라인 교육밖에 없어요. 그런데 AI 맞춤형 교육이나 직무 재교육은 실습장이 있어야 하고 현장이 있어야 하거든요. 폴리텍대학이나 다른 대학들이 그런 인프라를 다 갖고 있는데, 아직 우리 영향이 거기까지는 잘 못 미치고 있습니다. 그게 제일 아쉬워요.
그래도 전국의 기업과 대학을 연계하면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는 영역이에요. 돈과 인력만 있으면 못 할 게 뭐 있겠습니까.
화제가 ‘디지털 격차’에 이르자 그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이 대목에서 그는 가장 오래, 가장 뜨겁게 말했다.
Q. 취임사에서 ‘국가 디지털 평생교육 플랫폼 구축’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셨습니다. AI 시대, 진흥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이제 의식주에도 AI가 붙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입니다. 옛날 데스크톱 배우던 것처럼 어렵지도 않아요. 음성으로 다 되니까요. 그런데 배우는 게 능사가 아니에요. AI에도 윤리가 있고, 질문하는 기술이 있어요. 공부가 안 되어 있으면 AI도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저부터도 챗지피티(ChatGPT), 제미나이(Gemini)를 비롯해 여러 AI 매체를 두루 쓰고, 그것도 대부분 유료 버전으로 씁니다. 요즘은 눈으로 읽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되니까, 일흔에도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그러니 이제 AI는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인 게 아니라, 국민 누구나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된 겁니다.
그래서 향후에는 독학학위제나 학점은행제에서 AI를 국민 필수 교양 과목으로 넣으려고 합니다. ‘학위를 받으려면 AI를 배워라’ 이렇게요. 거창하게 갈 것도 없어요. 한 집에 한 명씩이라도 AI를 다룰 줄 알면 세상이 달라지거든요. 예산이 반영되면 전국 대학을 활용해 국민 누구나 무료로 배울 수 있는 AI 콘텐츠를 개발하고, 시·도 진흥원과 협의해서 어디서든 배울 수 있게 장을 열 생각입니다.
Q. 한편으로는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취약계층이 오히려 더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큽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찾아가는 교육’입니다. 기본적인 디지털 기기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 성인이 약 350만 명이고, 일상에서 디지털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1,100만 명이 넘어요. AI 시대에는 이 격차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이건 옛날 문맹보다 더한 벽이에요.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과 IT 회사들은 AI를 중심으로 고객 서비스를 재편하고 있습니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은 더 많은 기회를 얻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정보와 서비스 이용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AI 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보세요, 배달이 안 되는 병원이나 미용실 같은 데를 빼고, 디지털로 못 넘어간 동네 가게는 다 문을 닫았잖아요. 경기가 좋지 않아서만이 아닙니다. 변화를 따라갈 교육이 없어서예요.
그래서 어디로 배우러 오시라고 할 게 아니라, 택배를 보내주듯 우리가 찾아가야 합니다. 그 할머니가 ‘오케이’ 할 때까지요. 앱 몇 개 깔아드리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떠나고 나면 또 잊으시거든요. 될 때까지 곁에서 반복해서 가르쳐 드려야 해요. 제가 인천에 있을 때는 장학금 받는 학생들이 지역으로 내려가서, 손자가 할머니를 ‘알 때까지’ 가르쳐 드리는 걸 한번 시켜 본 적이 있어요. 그런 방식입니다.
산업 사회 전반도 바뀌어야 해요. 키오스크만 해도 젊은 사람만 대상으로 하지 말고, “카페라테 한 잔” 하고 말로 주문하면 말로 결제되는 걸 만들어 내야죠. 그런 게 왜 안 만들어지겠어요.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못 내서 그렇습니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은 현수막 한 장 쓸 줄 모르니 요구를 못 했고, 디지털을 모르는 분들은 아예 포기하고 “젊은이, 이것 좀 해줘” 하고 맙니다. 그런 분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이건 초격차의 문제입니다. 지금 안 하면 격차가 영영 벌어져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국민이 ‘오케이’ 할 때까지 들어가야 한다고요.
Q. 그 정도 규모라면 진흥원 혼자서는 벅찰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걸 진짜 통합하려면 결국 국가평생교육진흥청을 만들어야 해요. 병무청이나 교육청처럼 체계가 쫙 내려가야 통합이 되지, 지금처럼 지자체 따로, 교육청 따로, 대학 따로여서는 안 됩니다. 다들 선출직이라 국가가 강제로 묶기도 어렵고요. 최소 1~2조 원 예산은 있어야 전국 대학에 “이거 한번 해 보시죠” 할 수 있어요. 지금 우리 예산으로는 컨트롤 타워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교육부 장관님께도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자리를 지키거나 원장이라는 직함을 누리려고 온 사람이 아닙니다. 일흔의 나이에 이 자리를 맡은 것은 평생교육을 위해 제대로 한번 일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용맹한 사자라도 큰 사냥은 혼자 해내기 어렵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서 사자가 물소 사냥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사자 열세 마리가 세 시간에 걸쳐 물소 한 마리를 잡더라고요. 이 일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절대 혼자 할 일이 아니에요. 인류가 오늘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서로 협력했기 때문입니다.
Q. 평생교육을 여전히 ‘여유 있는 이들의 취미’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이런 선입견과 격차를 없앨 방법은 무엇일까요.
격차를 ‘없앤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분들의 ‘니즈’를 존중해야 합니다. 취미로 하고 싶은 분은 취미로 하게 하고, 한글을 배우고 싶으면 한글을, 운동이나 영어나 AI를 배우고 싶으면 그걸 하게 해드리는 거예요. 평생교육은 스무 살까지 취업과 시험을 위해 공부하던 사람이, 이제 비로소 ‘나를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거든요.
인권이 발달한 나라들을 보면 취미 생활 하나도 인격권으로 존중해요. 강행규정 위반만 아니라면 뭘 배우고 싶든 다 열어드려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결국 예산이에요. 좀 더 넓게, 하고 싶은 대로 쓸 수 있게 해줘야 해요. 우리 행복지수가 왜 그렇게 낮겠어요? 저는 평생교육의 부재라고 봅니다.
Q. 앞서 헌법 31조의 ‘모든 국민’을 강조하셨습니다. 그 ‘모두’에는 어떤 분들까지 들어갑니까.
말 그대로 모두입니다. 어느 하나 빼놓을 수가 없어요. 스무 살 이후의 성인, 은퇴하신 어르신, 일하면서 다시 배워야 하는 재직자, 스마트폰조차 못 쓰시는 분들까지 다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에 한 분류가 더 있어요. 이주배경인구와 외국인 주민입니다. 이분들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우리는 300만 이주민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분들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국가의 성장 동력도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중앙다문화교육센터를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국적과 출신이 다르더라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배움에 소외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분들도 대한민국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필요한 교육을 책임 있게 지원하겠습니다.
Q. 원장님께 평생교육은 결국 무엇이었습니까.
살아보니 사주팔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내가 해 온 말과 선택, 습관이 쌓여 결국 내 인생이 됩니다. 인생의 답안지는 한참 뒤에야 받아보게 되거든요. 스무 살까지는 어느 대학에 갔느냐가 중요해 보이고, 서른에는 전공과 직업이, 마흔에는 가족과의 관계가, 예순이 되면 그 사람이 쌓아 온 지식과 곁에 둔 친구, 자녀와의 관계가 답안지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일흔의 답안지는 무엇이냐고요? 지금 제 곁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 제가 걸어온 길, 그리고 사회에 무엇을 돌려주고 있는지가 답안지라고 생각합니다. 일흔의 나이에 여러 검증을 거쳐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이라는 책임을 맡은 것도 제가 평생 배우며 살아온 과정의 결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에게 평생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더 배우는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선택을 가능하게 하고, 잘못 든 길에서는 다시 방향을 잡게 하며,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답으로 이끄는 힘입니다.
Q. 일하시던 기관 모두 최고 등급을 받으셨습니다. 조직을 이끄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일단 운이 좋았고, 다 직원들이 한 겁니다. 저는 직원들한테 늘 이렇게 말해요. “평가에 연연하지 말고, 열심히 하다가 눈 떠 보면 우리가 최고에 있을 거다.” 경영평가라는 게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정량 평가는 잘 나오게 돼 있고, 원장이 다른 짓 안 하면 정성 평가도 잘 나오게 돼 있어요. 그런데 매일 등수만 생각하고 있으면 정작 일이 안 됩니다. 애들한테도 그러잖아요. 시험 결과를 궁금해하지 말라고. ‘몇 점 맞을까, 몇 점 맞을까’ 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안 되거든요. 폴리텍대학에서도 꼴찌에서 1등으로 간 건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간 거죠.
당시 그는 교직원 1,200명이 참여한 평가에서 95%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도 그 결과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자칫 자기 자랑처럼 들릴까 염려된다며 멋쩍게 웃었다.
Q. 그렇다면 원장님만의 리더십 원칙은 무엇입니까.
사실 저는 ‘리더십’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취임식과 직원 월례 조회 때도 이렇게 말했어요. “저는 여러분에게 보고하러 왔습니다. 제 고객은 바로 직원 여러분입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가 그랬죠, 고객의 말은 옳다고. 옛날의 명령이나 지시가 지금은 갑질이 될 수 있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복종시키고 군림하는 게 리더십이 아니라, 직원 한 사람이라도 남몰래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는 것, 저는 그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를 따르라”보다 “이 일을 함께 해볼까요?”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실장님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반말하지 않고, 메시지 하나를 보낼 때도 정중하게 쓰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원장이 있을 때 잘 되는 게 아니라, 떠나고 나서도 잘 되는 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있는 동안 시스템이 제대로 서 있으면 그다음은 알아서 굴러가니까요. 저는 리더십을 먼저 배운 사람이 아니라 팔로우십을, 남의 말을 들어 보고 따라 하는 걸 먼저 배운 사람입니다.
결국은 진심입니다. ‘저 원장이 진심이구나’ 하는 걸 직원들이 아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지만, 결국은 알아가더라고요. 살아보니 거짓으로, 겉으로만 잘된 사람을 저는 한 번도 못 봤어요. 잠깐 잘 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어디선가 걸리더라고요.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 보여도 새는 법이 없다(천망회회 소이불실, 天網恢恢 疏而不失), 그 말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도 고전과 철학을 계속 공부해요. 공자와 맹자는 인과 의, 예를 가르쳤고, 묵자는 침략전쟁에 반대하며 서로를 두루 사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비자는 선의만으로 사회를 다스릴 수 없으니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보았고요. 그러나 어느 하나만으로 세상과 조직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 철학에서도 소피스트들이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을 중시했다면, 소크라테스는 끊임없는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게 했습니다. 저 역시 고전과 철학을 통해 질문하며, 참 많은 답을 얻습니다.
Q. 2029년까지 임기를 마치실 무렵, “이것만은 분명히 달라져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실 수 있는 대표 과제는 무엇인가요.
제가 놓고 가고 싶은 다리는 딱 하나입니다. 전국을 평생교육이라는 하나의 우산 아래로 모으는 것. 지금은 지자체 따로, 교육청 따로, 대학 따로 흩어져 있는 것을 진흥원 아래로 다 들어오게 하는 거예요. 정주영 회장 같은 분도 그 시절에 평생학습이 있었다면 다 대학을 나오셨을 분들이잖아요. 그런 혜택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도록, 그 토대라도 만들어 놓고 가겠다는 겁니다.
저는 단거리 주자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마라톤 주자도 아니에요. 마라톤은 결국 혼자 완주해야 하잖아요. 저는 제가 완주할 주자가 아니라, 뛰다가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면 되는 계주 주자라고 생각해요. 잘 넘겨주는 것, 그게 제 몫입니다. 토양을 만들고 씨를 뿌려두면 열매는 그들이 거둬도 좋다는 마음이고요. 폴리텍대학에 있을 때 400억 예산을 받아 지은 교직원 아파트와 학생 기숙사가, 제가 떠난 지 4년 만에 완공돼서 지금 학생들이 입주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런 보람이 있습니다. 다들 지금도 그때 제 얘기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취임 100일밖에 안 됐는데 벌써 1년은 된 것 같아요. 그만큼 울림이 있고, 예산도 조금씩 반영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이미 늦었다’며 배움의 문 앞에서 망설이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생 자체가 위대한 학교입니다. 저는 지금도 등교 중이고요. 옛날엔 학벌을 봤지만, 이제는 실력을 보는 시대예요. 마지막 승부는 결국 실력이더라고요. 고쳐 쓰던 세상에서 이제는 버리는 세상이 됐는데, 버려지지 않으려면 평생교육을 달고 살아야 해요. 교육이 뒷받침된 사람은 어디 가서 무엇을 하든 실수를 잘 안 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지식이 있는 사람은 실천력을 기르고, 실천력이 강한 사람은 지식을 먼저 갖춘 뒤에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교육 없이 실천만 하면 위험하기 짝이 없거든요.
이미 늦었다고요? 마음속 한(恨)을 그저 한계(限)로만 받아들이면 거기에서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잘 살피면, 한은 꿈이 되고 마침내 꽃을 피웁니다. 부모님이 저를 공부시키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제 가슴에 남은 한(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恨)이 다시 공부하게 한 꿈이 되었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저는 막다른 골목에 설 때마다 그곳을 한계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으로 그었습니다. 돌아서기보다 그 자리를 제 무대로 만들었습니다. 제게 결핍은 주저앉게 하는 이유가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가장 큰 에너지였습니다.
그러니 지금 새로운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길 위에 선 것입니다. 시작하는 순간, 신기하게도 바다가 갈리듯 길이 열릴 거예요.
다만 그 말씀을 드리려면 저희가 먼저 문을 열어드려야겠죠. 망설이는 분께 “용기를 내세요” 하고 마는 건 무책임한 일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부터 배우면 되는지를 국가가 알려드려야 해요. 뒷방에 계신 어르신까지 다 모셔 나와서 대학으로 보내드리는 것,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니 망설이지 마시고 문을 두드려 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하겠습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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