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도서평론가 이권우_평생학습, 책 읽기로 시작합시다

2024-01-02

[이음의 탐구생활]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통계청은 ‘사회조사’의 일환으로 2년마다 독서인구 비율을 설문 조사한다. 13세 이상 대한민국 인구 가운데 종이책·전자책·오디오북을 통틀어 지난 1년 동안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사람의 비율을 추정한 것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60%를 웃돌던 독서인구 비율이 2021년 45.6%까지 떨어졌다. 독서량도 줄고 있다.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2011년 12.8권에서 2021년 7.0권으로 줄었다. ‘책을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독서인구 1인당 평균 독서 권수는 같은 기간 20.8권에서 15.2권으로 감소했다. 책을 읽는 사람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독서인구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게 무슨 큰 문제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입니다. 정보는 학(學)이고 지식은 실습이 돼야 하는데 너무 학에만 머무는 경향이 있어요. 정보가 무르익어서 지식이 돼야 창의성의 핵심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독서가 필요한 겁니다. 앞으로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교육이나 독서 환경은 그런 면을 담아내지 못하는 면이 있습니다. 창의성이 아닌 당장 써먹을 정보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고 있거든요. 당장 써먹을 사람을 고용해서 10년 정도 써먹다가 쓸모없으면 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해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이런 흐름은 고용의 안정성을 파괴해서 사회적 불안요소가 되는 지경까지 가게 됩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단순히 독서인구의 감소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과 관련 있기 때문에 책 읽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도서평론가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서평 전문 잡지 <출판 저널> 편집장 시절 방송에서 출판 평론을 하다가 독자들이 과연 출판사에 대해 궁금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인기 도서를 단순히 소개하기보다 책 한 권을 제대로 소개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고. 함께 프로그램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반대했지만, 그가 밀어붙이자 마지못해 시도했는데 의외로 청취자의 반응이 좋았다. 


그 후 그는 스스로를 도서평론가로 칭하며 책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왔다. 서산이라는 시골 깡촌에서 살며 할 일이 책 읽기밖에 없어서 책 읽는 재미를 일찌감치 느꼈다지만 그는 대학도 책만 죽어라 읽어보고 싶어서 경희대 국문과로 들어갈 정도로 독서에 진심이었다. 그런데 문학도일 것만 같은 그가 의외로 과학계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다. 그의 친구인 이정모 펭귄각종과학관 관장은 그를 일컬어 “과학자는 아니지만, 과학자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이하 APCTP)에서 웹진을 만들 당시 이권우 도서평론가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며 과학계의 인맥을 넓혔던 것이다. 


“거기서 일할 때 지금은 스타인 정재승 교수, 김성욱 교수 같은 분을 만났어요. 그런데 과학도 역시 인간을 다루는 학문이에요. 인문학이 힘겹게 일궈낸 성과를 과학이 쉽게(?) 설명하는 면이 있지요. 특히 뇌과학 같은 분야는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책 이야기만 하면 흥이 오르는 이권우 도서평론가는 올해 환갑을 맞아 친구들과 책을 주제로 전국 곳곳에서 환갑잔치를 벌이고 있다. 이른바 ‘환갑삼이’라고 하는 북 콘서트를 전국 동네 책방, 도서관 등에서 열며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책, 서점, 도서관이라는 매개를 통해 먹고 살아온 자신이 이제는 책, 서점, 도서관에 도움이 되는 작은 일을 할 뿐이라는 이권우 도서평론가를 만났다. 


환갑 맞아 20년 지기들과 전국을 돌며 환갑잔치를 벌이다


Q. ‘환갑삼이 전국투어’를 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무엇을 하는 투어인가요?

전 국립과천과학관 관장이자 현 ‘펭귄각종과학관’ 이정모 관장, 과학책방 ‘갈다’의 이명현 대표와 제가 20년 지기 친구예요. 아직도 궁금한 게 많고 할 일도 많은 것 같은데 환갑이라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이왕 닥쳐온 환갑을 재밌게 보내보자고 작년 연말쯤 술 마시다 의기투합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의 공통점이 책을 좋아하고 서점과 도서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전국 작은도서관과 동네 책방 같은 곳을 돌아다니며 책 이야기를 해보자고 한 거죠. 교통비와 숙박비를 제외하고는 비용도 받지 않기로 했어요. 이 관장이 페이스북에 신청자를 받겠다고 올렸는데 순식간에 신청이 차더라고요. 처음엔 10번만 하기로 했다가 자꾸 횟수가 늘더니 22번을 하게 됐습니다. ‘환갑삼이’라는 것은 우리 셋 모두 성이 이씨인데다 올해 환갑이라는 걸 담은 이름이에요. 1월에 시작해서 12월까지 1년을 사람들과 신나게 책 이야기하며 보냈습니다. 


Q. 북 콘서트에서는 주로 어떤 내용을 다루시나요?

함께 다니는 두 사람이 과학자라서 주로 과학을 다루고 있습니다. 평소 제가 만나지 못했던 청춘들을 만나는 거예요. 저는 주로 인문 청춘을 만났는데 북 콘서트에는 과학 청춘들이 와요. 두 사람 모두 과학계에서 유명하니까 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두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고 와요. 그래서 이 사람들을 이 관장 표현에 따르면 ‘은혜받으려고 온 신도’들이라고 했어요. 


주제는 특별히 정하지 않고 아침을 먹으면서 작은 서점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정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해요. 책 이야기부터 인공지능, 뇌과학, 기후위기, 챗GPT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오랜 시간 서로 알아 온 신뢰가 있어서 합이 잘 맞는 편이죠. 


Q. 선생님께서는 관객들과 주로 무엇에 관해 말씀하셨어요?

저한테는 책 이야기를 가장 많이 물어봐요.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 같은 거죠. 하지만 요즘 과학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인간이에요. 옛날에는 과학이라고 하면 물리, 화학을 떠올리겠지만 요즘은 뇌과학, 진화, 인공지능, 기후위기 같은 것으로 과학이 넓어졌는데 결국 모두 인간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인간의 영역으로 인문학적인 접근을 제가 하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지고 재미있어져요. 


책 읽기의 달인,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Q. 선생님은 평생 책을 읽어오셨는데요, 어릴 때부터 독서를 유난히 좋아하셨어요?

제가 어릴 때는 지금과 달리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 애니메이션 같은 게 없었잖아요? 아무래도 지금보다 책과 친해지기 더 나은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책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에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폭넓은 독서를 하지는 못했어요. 방학이면 밥 한 숟가락 던다고 외갓집에 우릴 보내야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거기 가면 외삼촌하고 이모가 버리고 간 책들이 있어서 방학 내내 그 책을 봤어요. 


집에서 책을 사줄 형편이 못되니까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지요. 박정희 정권 때 국민들 교양을 쌓는다고 자유교양문고 같은 게 나왔는데 그 책이 저한테는 샘물 같았어요. 모든 도서관에 자유교양문고가 있었으니까 정말 열심히 읽었습니다. 제가 독후감 쓰는 법을 배운 것은 춘천의 학교였어요. 집안 사정상 1년 동안 추천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독서교육이라고 시킨 게 독후감 쓰기였거든요. 그리고 어머니가 어려운 형편에도 월부로 도서전집을 사주셨던 것이나, 만화방도 저를 책벌레로 키우는 바탕이 됐던 것 같아요. 


Q. 의외네요. 그렇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데는 다독이 중요한 게 아닌가 봅니다. 

요즘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는데 독서론을 이야기하는 책은 드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책 많이 읽히는 노하우 같은 책만 있지 내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왜 많은 책을 읽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책은 찾기 힘든 게 사실이에요.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쏟아질 때는 필요한 정보만을 가려내는 독서법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것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든 ‘깊고 느리게 읽기’라는 근본정신을 잊으면 안 됩니다. 어떤 계기가 됐든 한 권의 책을 감명 깊게 읽으면 그 책을 쓴 지은이의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지거나 같은 주제를 다룬 책을 읽고 싶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책 한 권을 만나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인생의 책 한 권을 만나게 되면 그때부터 독서의 세계가 다르게 펼쳐질 겁니다. 


Q.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데도 깊이 읽기가 필요한가요?

그건 아닙니다. 어리면 어릴수록 다독이 필요하고 나이가 들면서 정독하는 게 좋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는 많은 간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어릴수록 더 많은 것을 읽어서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이 좋은 겁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많이 읽는 것으로 해결이 안 됩니다. 체력적 한계도 있잖아요? 저는 요즘 전자책도 많이 보는데 누워서 읽다가 허리가 아파서 오래 못 보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이가 들면 많이 읽기보다 깊이 읽기가 더 중요한 겁니다. 인생의 책 한 권이 있는 분이라면 이제 두 번째 인생의 책 찾기에 도전해보세요. 


당신에게는 인생의 책 한 권이 있습니까? 


Q. 그렇다면 선생님에게 인생의 책은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어요. 그때 제 인생의 책을 만났는데 게오르크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이었습니다. 그 책을 읽고 받았던 충격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요. 그 책을 읽으면서 왜 일하는 사람이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는지 깨달았고 교조주의에 빠지지 않고 변화의 물결을 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중용의 정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2의 인생의 책도 만났습니다. 바로 맹자입니다. 요즘 세상의 변화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Q. 맹자의 책에서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으신 건가요?

요즘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가 대단히 큰 위기에 빠져 있고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집단적 노력이 필요한데 그것을 저는 새로운 사회 계약이라고 표현합니다. 기후위기 같은 인류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사회 계약을 해야 합니다. 한 사회에는 항상 서로 갈등하고 대결하는 집단이 있게 마련입니다. 새로운 사회에 필요한 최소 윤리가 무엇이냐에 동의해야 갈등은 줄이고 개혁에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최대가 아니라 최소 윤리입니다. 


맹자의 책에 이런 철학이 깔려 있습니다. 내가 선한 행동을 하면 나한테 선하게 돌아오고 내가 나쁘게 행동하면 나한테 나쁜 행동이 돌아온다는 기본 윤리를 지키는 겁니다. 맹자의 철학에 나오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사회관계에서 구현된다면 갈등은 줄어들고 사회가 더 나아질 겁니다. 소외된 사람, 아픈 사람을 보호하자는 최소 윤리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이런 최소 윤리가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에 요즘 맹자를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Q. 최소 윤리가 필요한 시대라는 말씀이시군요.

세상을 바꾸자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어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절망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아예 그런 감정조차 없어서 더 위험한 사회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는 데 실패했다면 이젠 나부터 바꿔보자는 겁니다. 그동안 세상을 바꾸자는 최대 윤리를 추구했는데 실패한 거니까 나부터 바꾸는 데 필요한 최소 윤리에 서로 동의를 만들어가는 겁니다.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하는데, 각자 자기 안에서부터 변화를 시작하면 각자도생이 모이고, 또 모인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세상을 바꿀 수 없던 시대에 좌절과 절망하는 대신 새로운 담론으로 또 노력해보자는 것이죠. 여기에 독서가 필요해집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동의를 못 할 겁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처럼 문제의식이 있어서 읽거든요. 


나이 들수록 자존감 높여주는 평생학습이 필요합니다


Q. 선생님께서는 기술이 아니라 지식을 쌓고 자기 토양을 쌓는 식으로 평생학습이 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설명을 해주세요.

기술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이 아니에요. 자존심이 상한다고 표현하지만, 자존감에 대해서는 자존감이 높다, 낮다라고 합니다. 자존감이 있어야 세상이 나를 어떻게 대하든 애써서 버텨내고 회복 탄력성을 갖게 됩니다. 인문적 교양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거예요. 특히 50세 이상이 되면 자존감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나이 들면 사람이 위축되거든요. 체력적으로도 예전 같지 않고요. 젊은 층과 이야기할 때 나이 든 우리보고 ‘꼰대’라고 무시하고 비아냥거릴 때 자존감이 확 떨어집니다. 


젊은이들이 신조어를 쓸 때 우리가 못 알아듣는다고 그럴 때 자존감이 있는 사람은 그냥 아이들이라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자존감이 낮으면 ‘얘들이 나를 무시하네’라고 화를 내게 돼요. 그럼 복수하고 싶어지고, 이것이 세대 갈등이나 사회 갈등으로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먹고 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평생학습을 통해 자존감을 키워야 합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대기업 임원으로 있다가 경비 일을 하더라도 자기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부심을 느끼게 되거든요. 


Q.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저는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열심히 책을 읽는 사람이에요. 나이가 들면 재미를 못 느끼게 된다고 말하는 분들도 많으세요. 그런데 저는 재미를 못 느끼면 제 인생은 끝난다고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쓴 서평을 보고 한 유명한 소설가가 저한테 ‘늘 이렇게 새로운 것을 알았네’라고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사실이에요. 


예를 들어 최근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고 <러시아 지정학 아틀라스>를 읽으며 그 전쟁에 대해 새로운 것을 알게 됐어요. ‘왜 우크라이나가 그렇게 잘 버티지?’라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종교적인 면에서 우크라이나가 매우 독립성이 강한 역사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 책을 보고, 제가 새롭게 알게 된 거잖아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것으로만 해석할 게 아니라 종교적인 면에서 해석하게 되면 정말 재밌어요. 늘 재미있고 그게 책을 읽게 하는 힘이죠. 그래서 죽을 때까지 흥미롭게 책을 대하고 거기서 재미를 찾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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