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김다민 독립영화 감독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할 때 보통 우리는 가장 관객이 많이 든 유명한 영화를 찾는다. 요즘은 <서울의 봄>, <파묘> 같은 영화가 인기다. 영화라고 하면 큰 제작비가 든 상업영화를 먼저 떠올리지만, 상업영화의 다양성에서는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이 사건이나 역사에만 관심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일부만 관심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지만, 영화 소재로는 탐탁지 않아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이 틈새를 메워주는 것은 독립영화의 몫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나 다를 것이 없어요. 감독 입장에서는 똑같은 공을 들이거든요. 그런데 어렵게 만든 독립영화는 관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관객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니까 관객이 들지 않아서 금세 내리는 악순환이 많거든요. 한국 영화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독립영화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주제의 독립영화가 화제가 돼서 상업영화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지요.”
대작이 쏟아지는 가운데 독립영화로 개봉한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바로 그 다양성을 잘 드러낸 영화다. 영화는 유치원 나이의 어린 동춘이가 아빠의 휑한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빠, 대머리가 영어로 뭐에요?”라고.
당신이라면 어떤 답변을 하겠는가? 동춘의 엄마는 영어를 배울 때가 됐다며 학원을 보내는 것으로 답한다. 이때부터 동춘이는 또래 아이들처럼 각종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어, 수학, 과학, 심지어 페르시아어까지 각종 학원을 뺑뺑이 돌던 어린 소녀 동춘이가 어느 날 막걸릿병을 하나 손에 쥐게 되면서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이퍼 SF 영화로 크게 뻗어나간다.
자세한 줄거리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서 생략.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고 입을 모았다. 사교육의 피해자로 주인공 동춘이를 생각했다가도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며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넓은 질문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배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제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신 것 같아요.”
김다민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영화 경력이 짧은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학해 그 또래가 갖는 관심과 호기심에 대해 영화를 찍었다. 물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그 작품들이 성과로 인정되어 대학까지 진학했다.
그리고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소설로 먼저 썼더니 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으는 <살인자ㅇ난감> 대표 작가로 참여할 수 있었다. 순수한 동춘이부터 살인자 탕이까지 그녀의 손끝에서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평소 평생학습관을 즐겨 찾는다는 김다민 감독이 생각하는 배움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아이들이 묻는 ‘내가 왜 이걸 해야 하지?’라는 질문의 중요성
Q. 얼마 전 장편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개봉되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는데요, 사교육의 폐해를 꼬집는 영화인데 SF 영화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어요?
제가 평소 시간이 되면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강좌를 찾아 듣는 편이에요. 여러모로 삶에 도움이 되는 강좌가 많거든요. 수어나 힌디어, 뜨개질, 색칠하기 같은 것도 배우고 자전거도 거기서 배웠어요.
그러다 인천 연수구 동촌동(주인공 동춘이 이름을 여기서 따옴) 문화센터에서 막걸리 수업을 듣게 됐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는데요, 막걸리 강좌 때 조 모임을 짜서 막걸리를 숙성시켜야 했어요. 기포를 톡톡 터뜨리는 막걸리가 신기해서 막걸리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 동네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생들을 나르는 버스를 봤는데 학원 차량에 아이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도 재미있지만, 아이들이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게 만든 원리는 무엇일까도 궁금했어요. 두 지점이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저 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막걸리와 어린이가 함께 나오는 작품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라는 단편소설도 있던데 그것이 이 영화의 초고같은 것이었나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경기시나리오 공모전이 떠서 그때 생각한 것을 썼는데 대상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만에 썼기 때문에 다시 다듬어서 시나리오로 만들고 제작사를 찾아다녔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살인자ㅇ난감>의 각본 집필을 제안받아서 참여하게 됐어요.
Q.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질문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아이가 물으면 마땅히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무조건 ‘이게 맞아,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면 아이가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질문에 대해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하면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스스로 필요하면 해낼 테니까요. 주인공 동춘이도 7~8개가 넘는 학원을 다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까지 해내야 했던 이유를 막걸리가 알려줬을 때 행복해졌거든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감독이자 <살인자ㅇ난감> 집필 주인공
Q. 영화에 대한 평가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제 영화를 보고 이동진 평론가님과 정성일 평론가님이 굉장히 좋게 평가를 해주셨어요. 두 분 모두 제 영화가 좋았다며 관객과의 대화에 직접 참석해서 행사를 같이 해주셨을 때 ‘내가 참 잘했구나’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두 분이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와 비슷하다는 것이었어요. 그 영화가 나왔을 때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리메이크를 하고 있고 그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님이 그 영화를 통해 기대주가 되셨거든요. 제 영화가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저를 그런 기대주로 바라보고 응원해 주시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영광스럽습니다.
Q. 독립영화가 자본이 덜 든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만드는 데 품이 들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평생학습e음 독자들이 독립영화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CGV에 아트하우스라는 독립영화관이 있지만 모든 관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도 씨네큐브 광화문, 오르페오 한남처럼 몇 곳 없어요. 독립영화를 보고 싶다면 디트릭스라는 사이트에서 영화와 영화관을 검색해 보시면 찾을 수 있어요. 전국 독립영화관이 다 나와 있고 볼 수 있는 영화도 찾을 수 있습니다.
Q.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도 집필 작가로 참여하셨는데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집필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뇨. <살인자ㅇ난감>은 고등학생 때 아주 재밌게 본 웹툰이었어요. 저한테 집필 제안이 왔을 때 그때 생각이 나면서 왜 아직 영상화가 안 됐지? 하는 의문점이 들 정도였죠.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고 결국 재미있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둘 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지인들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훨씬 저 다운 이야기라고 말해주세요.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최선을 다하면 또 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을 느끼죠
Q. 감독님 이력을 보면 참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나와서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를 갔으니까요.
전 어릴 때부터 만화와 영화를 좋아했어요. 취미로 영화 시나리오를 읽었고요.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봤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저 장면을 표현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더라’, ‘기숙사 학교라서 굉장히 자유롭다더라’ 이런 말을 들으니 혹할 수밖에 없었어요.
Q.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4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미대를 갔어요. 그때 부모님이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하지만 결국 자식이 원하는 것을 못 하게 해봤자, 다 자기 뜻대로 하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아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빨리 느끼신 덕분에 저는 굉장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어요.
Q. 그런데 또 대학은 영화과가 아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가셨네요?
3년 동안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영화 찍는 일을 했어요. 작품도 여럿 만들었고요. 그런데 고3이 되고 보니 막상 영화과를 나온 영화감독님보다 영화가 아닌 다른 일을 배우다 감독님이 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정말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영화 찍은 경험을 살려서 갈 수 있는 수시 전형이 있어서 운 좋게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을 선택했던 것은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막상 대학에선 실험실에서 통제가 가능한 류의 결과물을 도출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함을 입증하거나 뇌인지 같은 학문을 주로 다루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선택한 문화인류학은 실험실이 아닌 사람 사이에서 작업을 하는 학문이었어요. 예를 들면 태안 같은 데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보는 작업들을 해야 되더라고요. 우리가 몰랐던 것에 대해 알려고 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들이 다큐멘터리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아예 문화인류학을 복수전공으로 했고 나중에 더 공부해 볼 생각도 있어요.
Q. 그럼 대학 때는 영화 관련 일을 하지 않았나요?
계속 영화 관련 일을 했어요. 휴학을 해가면서 영화 연출부에서 일했어요. 이번에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해준 제작사 안나푸르나도 그때 알게 된 인연이에요. 대학을 다니면서 직접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연출부 일을 했어요. 제가 평생교육 강좌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연출부 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악인전>, <박화영> 같은 작품의 연출부로 일하면서 계속 영화와 관계를 이어왔어요.
그리고 틈틈이 영화 연출부 일을 하다가 시간이 비면 그 시간에 뭐할까 하다가 평생교육관의 강좌를 들었던 거예요. 좋은 강좌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그렇게 연출부 일을 하면서 영화 <레슬러> 연출부 막내로 제작사 안나푸르나와 연이 닿았어요. 제 영화가 독립영화치고는 돈이 많이 든 편인데 그게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보니 촬영 시간을 길게 잡을 수밖에 없었고 CG에도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해준 제작사에도 감사한 마음이 커요.
재미없어도 필요한 공부를 해두면 언젠가는 꼭 도움이 되더라고요
Q. 책 읽기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세요?
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보는 편이에요. 전공 관련된 어려운 책들도 뒤져서 많이 보고 머리 아플 때는 에세이류나 SF소설을 보고요. 국회도서관에 가면 한 층 전체가 잡지로 가득한 곳이 있어요. 그래서 국회도서관에 가서 제가 원하는 주제의 책을 가득 쌓아놓고 봅니다.
Q. 공부하는 것이 지금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저는 한 번도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한 적이 없었어요. 이게 공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고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똑같은 책을 공부 때문에 읽으라고 하면 재미없어져요. 똑같은 소설도 숙제 때문에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없는데 우연히 읽게 되면 재밌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접해보면 정말 재미있게 느껴져요.
Q.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노력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저도 대학교 다닐 때 모든 게 재밌었던 것 아니었어요. 도대체 이걸 왜 해야 되는지…. 제게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만 읽으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했거든요. 어떻게든 다 읽고 치워놓고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른 일을 하던 중에 문득 제가 어렵게 읽었던 책과 관련된 무언가가 나왔을 때 그때 정말 반갑거든요. 도움도 되고요.
공부가 항상 재미있다기보다는 제가 궁금한 것을 해소할 때 재미있다는 거예요. 호기심을 갖고 꾸준히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은 공부가 재미있다, 없다와 상관없는 것 같아요.
Q. 감독님에게 배움은 무엇인가요?
배움이란 결국 경험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사안들을 보기도 하고 살면서 뭔가 궁금한 것도 많이 생기고 하는데 결국 이것이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을 보면 제가 봤던 책이나 한 번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을 때 굉장히 상세하게 저장이 되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제가 관심이 있었거나 제가 읽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마주하면 뭔가 링크가 된다고 할까요?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읽거나 보지만 어느 순간에 그게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배움이란 이처럼 단기간에 내가 무언가를 배워서 무언가를 해냈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다양하게 엮이면서 언젠가는 나의 경험치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감독님은 지금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하세요?
영화 하나는 찍어낸 정도까지는 경험치를 쌓았다?(웃음)
Q. 끝으로 저희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립영화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독립영화는 마니아층이 있어요. 한 작품을 보고 또 보다 이 감독이 이것을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지? 하면서 다른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세요.
그리고 많은 독립영화관에서 감독과 관객의 대화 시간을 운영하고 있어서 감독을 직접 만날 수도 있어요. 이 마니아층이라고 하는 분들이 우리나라 독립영화계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루에 50명, 100명이라도 꾸준히 보는 분이 계시면 상영 기간이 연장되고 그렇게 연장해서 두 달, 석 달 가기도 해요.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이 많아질수록 한국의 영화가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거예요. 이 글을 읽으신 독자님들도 집 가까운 곳에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라는 영화가 상영되는지 찾아보시고 한 번이라도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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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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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할 때 보통 우리는 가장 관객이 많이 든 유명한 영화를 찾는다. 요즘은 <서울의 봄>, <파묘> 같은 영화가 인기다. 영화라고 하면 큰 제작비가 든 상업영화를 먼저 떠올리지만, 상업영화의 다양성에서는 한계가 있다. 모든 사람이 사건이나 역사에만 관심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일부만 관심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지만, 영화 소재로는 탐탁지 않아서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이 틈새를 메워주는 것은 독립영화의 몫이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상업영화나 독립영화나 다를 것이 없어요. 감독 입장에서는 똑같은 공을 들이거든요. 그런데 어렵게 만든 독립영화는 관객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에요. 관객을 만날 기회가 부족하니까 관객이 들지 않아서 금세 내리는 악순환이 많거든요. 한국 영화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독립영화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어요. 다양한 주제의 독립영화가 화제가 돼서 상업영화로도 인정받을 수 있다면 정말 좋지요.”
대작이 쏟아지는 가운데 독립영화로 개봉한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바로 그 다양성을 잘 드러낸 영화다. 영화는 유치원 나이의 어린 동춘이가 아빠의 휑한 정수리를 쳐다보다가 질문을 던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아빠, 대머리가 영어로 뭐에요?”라고.
당신이라면 어떤 답변을 하겠는가? 동춘의 엄마는 영어를 배울 때가 됐다며 학원을 보내는 것으로 답한다. 이때부터 동춘이는 또래 아이들처럼 각종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그렇게 영어, 수학, 과학, 심지어 페르시아어까지 각종 학원을 뺑뺑이 돌던 어린 소녀 동춘이가 어느 날 막걸릿병을 하나 손에 쥐게 되면서 이야기는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하이퍼 SF 영화로 크게 뻗어나간다.
자세한 줄거리는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서 생략.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들은 다들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줬다고 입을 모았다. 사교육의 피해자로 주인공 동춘이를 생각했다가도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으며 살고 있는가? 내가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이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넓은 질문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배움이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싶었어요. 다행히 많은 분들이 제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신 것 같아요.”
김다민 감독이 첫 장편영화를 만들었다고 해서 영화 경력이 짧은 것은 아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로 진학해 그 또래가 갖는 관심과 호기심에 대해 영화를 찍었다. 물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앞뒤 생각하지 않고 지금,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그 작품들이 성과로 인정되어 대학까지 진학했다.
그리고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소설로 먼저 썼더니 요즘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으는 <살인자ㅇ난감> 대표 작가로 참여할 수 있었다. 순수한 동춘이부터 살인자 탕이까지 그녀의 손끝에서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평소 평생학습관을 즐겨 찾는다는 김다민 감독이 생각하는 배움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Q. 얼마 전 장편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개봉되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는데요, 사교육의 폐해를 꼬집는 영화인데 SF 영화이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으셨어요?
제가 평소 시간이 되면 시청이나 구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강좌를 찾아 듣는 편이에요. 여러모로 삶에 도움이 되는 강좌가 많거든요. 수어나 힌디어, 뜨개질, 색칠하기 같은 것도 배우고 자전거도 거기서 배웠어요.
그러다 인천 연수구 동촌동(주인공 동춘이 이름을 여기서 따옴) 문화센터에서 막걸리 수업을 듣게 됐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는데요, 막걸리 강좌 때 조 모임을 짜서 막걸리를 숙성시켜야 했어요. 기포를 톡톡 터뜨리는 막걸리가 신기해서 막걸리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어느 날 그 동네에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학생들을 나르는 버스를 봤는데 학원 차량에 아이들이 줄지어 오르는 모습이 보이더라고요. 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원리도 재미있지만, 아이들이 버스에 오를 수밖에 없게 만든 원리는 무엇일까도 궁금했어요. 두 지점이 닮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저 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막걸리와 어린이가 함께 나오는 작품을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영어로 뭐게요 대머리가>라는 단편소설도 있던데 그것이 이 영화의 초고같은 것이었나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경기시나리오 공모전이 떠서 그때 생각한 것을 썼는데 대상을 받았습니다. 일주일 만에 썼기 때문에 다시 다듬어서 시나리오로 만들고 제작사를 찾아다녔지만, 선뜻 나서는 곳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살인자ㅇ난감>의 각본 집필을 제안받아서 참여하게 됐어요.
Q.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질문에 대해 진중하게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른들은 아이가 물으면 마땅히 서로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답을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무조건 ‘이게 맞아, 이게 정답이야’라고 말하면 아이가 납득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질문에 대해 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하면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스스로 필요하면 해낼 테니까요. 주인공 동춘이도 7~8개가 넘는 학원을 다니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까지 해내야 했던 이유를 막걸리가 알려줬을 때 행복해졌거든요.
Q. 영화에 대한 평가가 참 좋은 것 같아요
제 영화를 보고 이동진 평론가님과 정성일 평론가님이 굉장히 좋게 평가를 해주셨어요. 두 분 모두 제 영화가 좋았다며 관객과의 대화에 직접 참석해서 행사를 같이 해주셨을 때 ‘내가 참 잘했구나’하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두 분이 말씀해 주셨던 이야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구를 지켜라>라는 영화와 비슷하다는 것이었어요. 그 영화가 나왔을 때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미국에서 리메이크를 하고 있고 그 영화를 만든 장준환 감독님이 그 영화를 통해 기대주가 되셨거든요. 제 영화가 어떤 영역에도 속하지 않는 영화일 수도 있지만 저를 그런 기대주로 바라보고 응원해 주시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영광스럽습니다.
Q. 독립영화가 자본이 덜 든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만드는 데 품이 들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평생학습e음 독자들이 독립영화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CGV에 아트하우스라는 독립영화관이 있지만 모든 관에 있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에도 씨네큐브 광화문, 오르페오 한남처럼 몇 곳 없어요. 독립영화를 보고 싶다면 디트릭스라는 사이트에서 영화와 영화관을 검색해 보시면 찾을 수 있어요. 전국 독립영화관이 다 나와 있고 볼 수 있는 영화도 찾을 수 있습니다.
Q. 넷플릭스 <살인자ㅇ난감>에도 집필 작가로 참여하셨는데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와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집필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아뇨. <살인자ㅇ난감>은 고등학생 때 아주 재밌게 본 웹툰이었어요. 저한테 집필 제안이 왔을 때 그때 생각이 나면서 왜 아직 영상화가 안 됐지? 하는 의문점이 들 정도였죠. 특별히 어려움은 없었고 결국 재미있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리고 둘 다 시나리오를 썼지만, 지인들은 <막걸리가 알려줄거야>가 훨씬 저 다운 이야기라고 말해주세요.
Q. 감독님 이력을 보면 참 특이하신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고등학교를 나와서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연세대학교를 갔으니까요.
전 어릴 때부터 만화와 영화를 좋아했어요. 취미로 영화 시나리오를 읽었고요.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를 봤을 때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떻게 저 장면을 표현했는지를 찾아보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그런데 애니메이션 고등학교에 가면 ‘영화를 찍을 수 있다더라’, ‘기숙사 학교라서 굉장히 자유롭다더라’ 이런 말을 들으니 혹할 수밖에 없었어요.
Q.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요?
4살 터울의 언니가 있는데 미대를 갔어요. 그때 부모님이 굉장히 반대를 하셨어요. 하지만 결국 자식이 원하는 것을 못 하게 해봤자, 다 자기 뜻대로 하는 구나 하는 것을 깨달으신 것 같아요. 강요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빨리 느끼신 덕분에 저는 굉장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어요.
Q. 그런데 또 대학은 영화과가 아닌 연세대학교 심리학과를 가셨네요?
3년 동안 친구들이랑 자유롭게 영화 찍는 일을 했어요. 작품도 여럿 만들었고요. 그런데 고3이 되고 보니 막상 영화과를 나온 영화감독님보다 영화가 아닌 다른 일을 배우다 감독님이 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리고 그때 정말 공부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침 영화 찍은 경험을 살려서 갈 수 있는 수시 전형이 있어서 운 좋게 대학을 갈 수 있었습니다.
심리학을 선택했던 것은 사람을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막상 대학에선 실험실에서 통제가 가능한 류의 결과물을 도출해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함을 입증하거나 뇌인지 같은 학문을 주로 다루더라고요.
그런데 우연히 선택한 문화인류학은 실험실이 아닌 사람 사이에서 작업을 하는 학문이었어요. 예를 들면 태안 같은 데 가서 직접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새롭게 보는 작업들을 해야 되더라고요. 우리가 몰랐던 것에 대해 알려고 한다든지 하는 그런 작업들이 다큐멘터리와 많이 닮았어요. 그래서 아예 문화인류학을 복수전공으로 했고 나중에 더 공부해 볼 생각도 있어요.
Q. 그럼 대학 때는 영화 관련 일을 하지 않았나요?
계속 영화 관련 일을 했어요. 휴학을 해가면서 영화 연출부에서 일했어요. 이번에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해준 제작사 안나푸르나도 그때 알게 된 인연이에요. 대학을 다니면서 직접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연출부 일을 했어요. 제가 평생교육 강좌를 들을 수 있었던 이유도 연출부 일을 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악인전>, <박화영> 같은 작품의 연출부로 일하면서 계속 영화와 관계를 이어왔어요.
그리고 틈틈이 영화 연출부 일을 하다가 시간이 비면 그 시간에 뭐할까 하다가 평생교육관의 강좌를 들었던 거예요. 좋은 강좌가 정말 많아요. 그리고 그렇게 연출부 일을 하면서 영화 <레슬러> 연출부 막내로 제작사 안나푸르나와 연이 닿았어요. 제 영화가 독립영화치고는 돈이 많이 든 편인데 그게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보니 촬영 시간을 길게 잡을 수밖에 없었고 CG에도 공을 많이 들였거든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해준 제작사에도 감사한 마음이 커요.
Q. 책 읽기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세요?
네. 책 읽는 것을 좋아해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보는 편이에요. 전공 관련된 어려운 책들도 뒤져서 많이 보고 머리 아플 때는 에세이류나 SF소설을 보고요. 국회도서관에 가면 한 층 전체가 잡지로 가득한 곳이 있어요. 그래서 국회도서관에 가서 제가 원하는 주제의 책을 가득 쌓아놓고 봅니다.
Q. 공부하는 것이 지금도 그렇게 재미있다고 하니까 신기하네요
저는 한 번도 공부하는 것을 재미있어한 적이 없었어요. 이게 공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고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재미있어지는 것 같아요. 똑같은 책을 공부 때문에 읽으라고 하면 재미없어져요. 똑같은 소설도 숙제 때문에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없는데 우연히 읽게 되면 재밌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접해보면 정말 재미있게 느껴져요.
Q.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노력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저도 대학교 다닐 때 모든 게 재밌었던 것 아니었어요. 도대체 이걸 왜 해야 되는지…. 제게는 좀 어렵게 느껴지는 책들만 읽으라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했거든요. 어떻게든 다 읽고 치워놓고 한참 잊어버리고 있다가 다른 일을 하던 중에 문득 제가 어렵게 읽었던 책과 관련된 무언가가 나왔을 때 그때 정말 반갑거든요. 도움도 되고요.
공부가 항상 재미있다기보다는 제가 궁금한 것을 해소할 때 재미있다는 거예요. 호기심을 갖고 꾸준히 무언가를 찾아보려고 하는 것은 공부가 재미있다, 없다와 상관없는 것 같아요.
Q. 감독님에게 배움은 무엇인가요?
배움이란 결국 경험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사안들을 보기도 하고 살면서 뭔가 궁금한 것도 많이 생기고 하는데 결국 이것이 기억으로 저장되는 과정을 보면 제가 봤던 책이나 한 번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을 때 굉장히 상세하게 저장이 되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제가 관심이 있었거나 제가 읽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을 마주하면 뭔가 링크가 된다고 할까요?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읽거나 보지만 어느 순간에 그게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배움이란 이처럼 단기간에 내가 무언가를 배워서 무언가를 해냈어가 아니라 그 과정이 다양하게 엮이면서 언젠가는 나의 경험치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렇다면 감독님은 지금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였다고 생각하세요?
영화 하나는 찍어낸 정도까지는 경험치를 쌓았다?(웃음)
Q. 끝으로 저희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독립영화를 많이 사랑해 주세요. 독립영화는 마니아층이 있어요. 한 작품을 보고 또 보다 이 감독이 이것을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지? 하면서 다른 작품을 찾아보기도 하세요.
그리고 많은 독립영화관에서 감독과 관객의 대화 시간을 운영하고 있어서 감독을 직접 만날 수도 있어요. 이 마니아층이라고 하는 분들이 우리나라 독립영화계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하루에 50명, 100명이라도 꾸준히 보는 분이 계시면 상영 기간이 연장되고 그렇게 연장해서 두 달, 석 달 가기도 해요.
독립영화에 관심을 가진 분이 많아질수록 한국의 영화가 더 다양해지고 풍부해질 거예요. 이 글을 읽으신 독자님들도 집 가까운 곳에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라는 영화가 상영되는지 찾아보시고 한 번이라도 봐주시길 부탁드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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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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