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대구 수상자 4인 인터뷰
올해로 11회를 맞은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는 전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총 154명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이 가운데 경상북도 대구에서는 총 8명(시화 부문 5명, 엽서 부문 3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성인 문해교육 잠재수요자는 약 19만 3천여 명으로, 대구시 전체 인구(197만 2,678명)의 9.8%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구시는 잠재수요자의 문해능력 향상을 위해 약 80여 곳의 성인문해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평생학습진흥원의 문해 학습자들을 위한 교육 지원 사업을 통해 글을 배우고 수상의 기쁨까지 만끽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대구 수상자들을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한우연 님은 인터뷰 당일 병원 입원 중이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배우는 게 평생의 꿈”
글을 처음 배우러 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대구글사랑학교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박영자 할머니(71). 박영자 할머니는 직접 쓴 시 ‘내 마음의 꽃밭’으로‘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했다.
“코로나가 터져 집에서 노는데 지루한 기라. 그때 글을 배워볼까 생각했지. 맨날 속으로는 생각했는데 일하다 보니 공부 시기를 놓쳐 못하고 있다가 ‘나도 이제 할 거 다 했으니까 공부해야지’ 이번엔 진짜 한번 나가 봐야겠다 싶어 딸한테 한번 알아봐달라 했지."_박영자
청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최옥자 할머니(79). 최옥자 할머니는 직접 쓴 시 ‘아버님 성함’으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어려서 친구들은 학교 갈 적에 나는 학교 못 가고 보리밭 매고 있었다. 그때 공부하고 싶어 눈물이 막 나더라고. 그래도 그럭저럭 살다 결혼해서는 자식 낳아 놓고 시간도 안 되고 여유도 안 돼 공부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림하며 애들만 키웠거든. 애들 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아파서 대구로 이사를 왔고. 근데 치매로 고생하던 남편 죽고는 혼자 있는데 동네 아는 사람이 복지관 간다 하더라. “나도 갈래” 하고 따라 나섰다가 공부를 하게 됐지. 공부하는 게 나는 너무 재밌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내 혼자 간다 아이가.” _최옥자
팔십 평생 이름도 모르고 살다가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한 최옥자 할머니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니 머리에도 잘 들어오고 저장도 잘 된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만 89세로 수상자 중 가장 연장자인 한우연 할머니도 배우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대구내일학교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한우연 할머니(89). 한우연 할머니는 직접 쓴 시 ‘89세 입학하던 날’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사무총장상을 수상했다.
“글을 배우고 싶다고 딸에게 얘기했더니 딸이 인터넷 통해 공부하는 곳을 알려줘 입학하고 드디어 꿈을 이뤘습니다. 초등과정에 입학 원서를 내면서도 떨어질까 봐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합격하게 돼 너무 기뻤어요.” _한우연
대구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김경남(30) 씨. 경남 씨는 직접 쓴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엄마가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옆에서 배워야 한다고 계속 도와주셨어요. 처음에는 컴퓨터를 배웠는데 그곳에 계신 황인철 선생님이 점자를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선생님도 시각장애인이셨는데 혼자 왔다 갔다 이동도 다 하시고 컴퓨터도 하시고 책도 다 읽으시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점자를 배우러 가게 됐어요.” _김경남
“뭐시 부끄러워. 못 배웠던 글공부하겠다는데 뭐가 숭이야.”
하나같이 글을 배우고 싶었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늦게 글을 배운다는 것 때문에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밖에서는 누가 알까 부끄러운 점도 있었지만 학교 오면 아주 즐거워요. 다 똑같은 사람들이니 편안했고요.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를 써서 상까지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상도 받게 됐잖아요.” _박영자
최옥자 할머니는 질문을 던진 게 무색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이 강했다.
“뭐시 부끄러워. 하나도 안 부끄러워. 내가 못 배워서 지금 하고 싶은 공부하겠다는데 뭐가 숭이야. 나는 당당하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해. 씩씩하게. 하나하나 배우는 게 너무 즐겁고 재밌다고 말이야.” _최옥자
늦게 글을 배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들에게는 오히려 글을 몰랐던 때가 어렵고 부끄러운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글을 몰랐던 박영자 할머니는 “은행을 가도 마음대로 글을 쓸 줄 모르니 답답하고 불편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최옥자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택시가 바로 앞에 있어도 빈차인지 아닌지 모르니 그냥 잡으려고 “택시!” 소리부터 질렀다는 것이다.
“이름을 써야 되는데 글자가 삐뚤삐뚤 잘 안돼. 아무리 잘 쓰고 싶어도 주눅이 들어서 쓰라고 하면 더 잘 안 되고, 의기소침해지고 말이야.” _최옥자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으니 늘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간판에 어려운 낱말이 쓰여 있으면 이해할 수 없으니 답답했고요.” _한우연
김경남 씨도 점자를 알기 전까지 대화하는데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겨 불편을 겪었다.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괜찮은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한 글자 한 글자 물어봐도 도통 모르겠고. 그때가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통화할 때도 많이 알아듣기 어렵고요. 책도 읽을 수가 없었어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시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알려주잖아요. “몇 페이지 살펴보세요. 밑줄 친 단어가 중요해요.”라고요. 근데 저는 밑줄 친 게 무엇인지 몇 페이지인지도 모르거든요.” _김경남
“용기가 생기고 행복한 사람이 됐다는 마음”
반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돼 좋은 점을 물었더니 인터뷰에 참여한 세 명의 얼굴이 모두 밝아졌다. 박영자 할머니와 한우연 할머니가 심리적 측면의 변화를 말했다면 최옥자 할머니는 물리적 측면의 변화를, 김경남 씨는 사회적 측면의 변화를 언급했다.
“글을 읽고 쓰게 되니 용기가 많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기고. 그러니까 노력해서 무엇이든 끝까지 한번 해보려 합니다.” _박영자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이 들어요. 남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고 대답할 수 있게 되니 좋습니다.” _한우연
“요즘 영어 알파벳도 배우거든요. 그러니까 KTX 기차를 타도 좌석 번호가 A인지 B인지 다 알 수 있어 너무 좋죠.” _최옥자
“가장 좋은 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잖아요. 근데 점자 배우기 위해 복지관에 오면 언니,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또래와 어울릴 수 있으니 너무 즐겁죠.” _김경남
김경남 씨의 대답에 박영자, 최옥자 할머니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같이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자, 한우연, 최옥자 할머니와 김경남 씨는 글을 배운 것에 그치지 않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시를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글이 삶 속에 들어오자 자연스레 그 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시가 쓰여졌다. 이들의 지나온 삶을 담아낸 시는 ‘제11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박영자 할머니의 시 ‘내 마음의 꽃밭’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상, 최옥자 할머니의 시 ‘아버님 성함’과 김경남 씨의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 한우연 할머니의 시 ‘89세 입학하던 날’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상을 수상했다.
“오늘도 배움의 길에서 내 마음의 꽃밭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일흔 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생에 봄꽃이, 마음에 꽃밭이 가득 폈다고 표현한 박영자 할머니. 할머니가 시를 쓰면서 직접 그린 꽃밭의 꽃들은 할머니 미소를 연상케 할 만큼 활짝 피어 해사한 웃음을 짓고 있다. 꽃이 밝게 웃고 있는 그림이 인상적인 데 반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두웠던 마음”이라고 표현된 시 구절이 유독 눈에 띄어 물었다.
“배우지 못한 마음이 항시 가슴 속에 있으니까 아쉽고 어두운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지. 그래도 언젠가는 배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글을 배우게 됐고. 꽃이 피면 아름답고 웃음이 나잖아. 근데 꽃이 질 때는 또 우는 거야.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 꼭 내 인생 같아 말이 되는 것 같더라고. (눈물) 그래도 밝게 많이 배워서 꼭 꽃같이 한번 살아보겠다는 마음, 그리고 글을 배우면서 행복해진 내 인생,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고 당당해진 모습을 써보고 싶었지.” _박영자
박영자 할머니는 시라는 것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이 그저 나오는 대로 썼을 뿐인데 상까지 받게 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가르쳐주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고 표현했다. 앞으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계속 배우고 싶다는 게 바람이자 목표다.
“팔십 평생에 처음 보고 불러보는
우리 아버님 존함 석자를 길에서 끌어안고
목을 놓아 불러보고 읽었다”
“글자를 알고 시를 썼더니 상도 받고 꽃다발도 받고 주변 축하도 많이 받으면서 참말로 행복했다”는 최옥자 할머니는 글을 배우고 나서야 알게 된 아버님 존함 석자를 처음으로 불러보던 날을 떠올려 시를 썼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교육의 기회를 접하지 못해 가족의 이름조차 적지 못했던 서러움을 글에 담았다.
“일흔아홉 살에 영감님 돌아가시고 가족증명서를 떼니까 우리 아버지 성함이 있는 기라. 내가 아버지 성함을 그때 알았다. 길에 나와서 다리 뻗고 막 울었지. 내 살아낸 걸 그대로 썼거든. 이래 상 받을 줄 꿈에도 몰랐지.” _최옥자
팔십에 공부하는 게 스스로 참 대견스럽다는 최옥자 할머니는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적어 책을 내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할머니는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내 등대가 되어 환한 빛으로 앞을 비추어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네”
김경남 씨의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 |
김경남 씨는 점자를 배우기 전 어둡고 답답했던 기억과 점자를 배우면서 느끼게 된 환희를 시에 담았다. 수상 소식을 듣고는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좋아하겠다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엄마에게 알렸더니 “야, 니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말하지. 시상식은 언젠데” 카더라고요. 태풍으로 시상식을 못 가 엄마가 더 아쉬워할 만큼 좋아하셨어요.”
김경남 씨의 시에는 점자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지 잘 드러나 있다.
“점자는 습기에 약하고 물에 닿으면 쏙 숨어버려요. 아주 작고요. 근데 제가 뇌종양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 손끝과 발끝이 둔해지다 보니 과연 점자를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근데 점자는 정말 알면 알수록 빠져들고 좋은 친구예요. 그래서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점자를 배우면 생활이 즐거워진다고요.”_김경남
김경남 씨는 점자가 환한 빛으로 앞을 비춰 길잡이가 되어 줬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아직 점자가 적용되지 않는 곳도 많다 보니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음료수를 예로 들었다. “음료수는 다 음료 혹은 탄산음료라고 점자가 적혀 있는데 무슨 맛인지 정확하게 내용이 표현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는 김경남 씨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 물었다. 다른 수상자들처럼 더 배우고 싶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자격증도 따고 싶고 대학교에 가보고 싶어요. 대학교에 가면 사회복지나 아동복지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고요.” _김경남
“봄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난 나의 마음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라"
한우연 할머니는 자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여든아홉 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할머니는 너무 많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젊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봐 항상 미안했지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우지 못한 한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처음 입학하던 날, 봄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난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 시를 썼다.
“아이들은 여덟 살, 꽃피는 3월에 입학하는데 저는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입학해 감회가 남다릅니다.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열심히 가방 메고 어린 아이가 되어 학교에 다니는 행복한 내 모습이 참 좋습니다.” _한우연
한우연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힘에 부칠 때도 많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한 중학교까지 졸업하는 게 목표다.
인터뷰를 끝내며 배우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거나 상황 상 어려워 배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전해달라는 질문을 건네자 박영자, 최옥자 할머니, 그리고 김경남 씨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배우러 나와 보면 너무 좋아. 공부하러 오면 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모르면 몰라서 서로 웃고.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겁고 편안하니 한번 같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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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정진
photographer 이민정
design 이해선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대구 수상자 4인 인터뷰
올해로 11회를 맞은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에는 전국에서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해 총 154명이 수상의 영예를 누렸다. 이 가운데 경상북도 대구에서는 총 8명(시화 부문 5명, 엽서 부문 3명)의 수상자가 배출됐다. 2020년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대구지역 성인 문해교육 잠재수요자는 약 19만 3천여 명으로, 대구시 전체 인구(197만 2,678명)의 9.8%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구시는 잠재수요자의 문해능력 향상을 위해 약 80여 곳의 성인문해교육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구평생학습진흥원의 문해 학습자들을 위한 교육 지원 사업을 통해 글을 배우고 수상의 기쁨까지 만끽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대구 수상자들을 만나 소감을 들어봤다.
*한우연 님은 인터뷰 당일 병원 입원 중이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배우는 게 평생의 꿈”
글을 처음 배우러 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이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대구글사랑학교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박영자 할머니(71). 박영자 할머니는 직접 쓴 시 ‘내 마음의 꽃밭’으로‘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했다.
“코로나가 터져 집에서 노는데 지루한 기라. 그때 글을 배워볼까 생각했지. 맨날 속으로는 생각했는데 일하다 보니 공부 시기를 놓쳐 못하고 있다가 ‘나도 이제 할 거 다 했으니까 공부해야지’ 이번엔 진짜 한번 나가 봐야겠다 싶어 딸한테 한번 알아봐달라 했지."_박영자
청곡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최옥자 할머니(79). 최옥자 할머니는 직접 쓴 시 ‘아버님 성함’으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어려서 친구들은 학교 갈 적에 나는 학교 못 가고 보리밭 매고 있었다. 그때 공부하고 싶어 눈물이 막 나더라고. 그래도 그럭저럭 살다 결혼해서는 자식 낳아 놓고 시간도 안 되고 여유도 안 돼 공부하고 싶은 걸 포기하고 살림하며 애들만 키웠거든. 애들 다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이 아파서 대구로 이사를 왔고. 근데 치매로 고생하던 남편 죽고는 혼자 있는데 동네 아는 사람이 복지관 간다 하더라. “나도 갈래” 하고 따라 나섰다가 공부를 하게 됐지. 공부하는 게 나는 너무 재밌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무리 덥거나 추워도 내 혼자 간다 아이가.” _최옥자
팔십 평생 이름도 모르고 살다가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한 최옥자 할머니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니 머리에도 잘 들어오고 저장도 잘 된다”고 신이 나서 말했다. 만 89세로 수상자 중 가장 연장자인 한우연 할머니도 배우는 게 평생의 꿈이었다고 말했다.
대구내일학교에서 문해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한우연 할머니(89). 한우연 할머니는 직접 쓴 시 ‘89세 입학하던 날’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유네스코한국위원회사무총장상을 수상했다.
“글을 배우고 싶다고 딸에게 얘기했더니 딸이 인터넷 통해 공부하는 곳을 알려줘 입학하고 드디어 꿈을 이뤘습니다. 초등과정에 입학 원서를 내면서도 떨어질까 봐 가슴 졸이며 기다렸는데 합격하게 돼 너무 기뻤어요.” _한우연
대구광역시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점자교육 수업을 듣고 있는 김경남(30) 씨. 경남 씨는 직접 쓴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로 ‘제11회 성인 문해교육 시화전’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엄마가 힘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옆에서 배워야 한다고 계속 도와주셨어요. 처음에는 컴퓨터를 배웠는데 그곳에 계신 황인철 선생님이 점자를 한번 배워보지 않겠냐고 했어요. 선생님도 시각장애인이셨는데 혼자 왔다 갔다 이동도 다 하시고 컴퓨터도 하시고 책도 다 읽으시는 게 너무 신기했거든요. 그래서 점자를 배우러 가게 됐어요.” _김경남
“뭐시 부끄러워. 못 배웠던 글공부하겠다는데 뭐가 숭이야.”
하나같이 글을 배우고 싶었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그러나 늦게 글을 배운다는 것 때문에 남들 시선이 부담스러운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밖에서는 누가 알까 부끄러운 점도 있었지만 학교 오면 아주 즐거워요. 다 똑같은 사람들이니 편안했고요.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죠. 처음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시를 써서 상까지 받을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이렇게 상도 받게 됐잖아요.” _박영자
최옥자 할머니는 질문을 던진 게 무색할 정도로 공부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이 강했다.
“뭐시 부끄러워. 하나도 안 부끄러워. 내가 못 배워서 지금 하고 싶은 공부하겠다는데 뭐가 숭이야. 나는 당당하게 공부하러 간다고 말해. 씩씩하게. 하나하나 배우는 게 너무 즐겁고 재밌다고 말이야.” _최옥자
늦게 글을 배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이들에게는 오히려 글을 몰랐던 때가 어렵고 부끄러운 시절이었는지 모른다. 글을 몰랐던 박영자 할머니는 “은행을 가도 마음대로 글을 쓸 줄 모르니 답답하고 불편했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최옥자 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택시가 바로 앞에 있어도 빈차인지 아닌지 모르니 그냥 잡으려고 “택시!” 소리부터 질렀다는 것이다.
“이름을 써야 되는데 글자가 삐뚤삐뚤 잘 안돼. 아무리 잘 쓰고 싶어도 주눅이 들어서 쓰라고 하면 더 잘 안 되고, 의기소침해지고 말이야.” _최옥자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얘기할 수 없으니 늘 부끄러운 삶을 살았습니다. 간판에 어려운 낱말이 쓰여 있으면 이해할 수 없으니 답답했고요.” _한우연
김경남 씨도 점자를 알기 전까지 대화하는데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겨 불편을 겪었다.
“옆에 있는 사람과 대화할 때는 괜찮은데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한 글자 한 글자 물어봐도 도통 모르겠고. 그때가 진짜 너무 힘들더라고요. 통화할 때도 많이 알아듣기 어렵고요. 책도 읽을 수가 없었어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시험 문제를 이런 식으로 알려주잖아요. “몇 페이지 살펴보세요. 밑줄 친 단어가 중요해요.”라고요. 근데 저는 밑줄 친 게 무엇인지 몇 페이지인지도 모르거든요.” _김경남
“용기가 생기고 행복한 사람이 됐다는 마음”
반대로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돼 좋은 점을 물었더니 인터뷰에 참여한 세 명의 얼굴이 모두 밝아졌다. 박영자 할머니와 한우연 할머니가 심리적 측면의 변화를 말했다면 최옥자 할머니는 물리적 측면의 변화를, 김경남 씨는 사회적 측면의 변화를 언급했다.
“글을 읽고 쓰게 되니 용기가 많이 생기게 된 것 같아요. 무엇이든 배울 수 있겠다는 마음가짐도 생기고. 그러니까 노력해서 무엇이든 끝까지 한번 해보려 합니다.” _박영자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이 들어요. 남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고 대답할 수 있게 되니 좋습니다.” _한우연
“요즘 영어 알파벳도 배우거든요. 그러니까 KTX 기차를 타도 좌석 번호가 A인지 B인지 다 알 수 있어 너무 좋죠.” _최옥자
“가장 좋은 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 너무 심심하잖아요. 근데 점자 배우기 위해 복지관에 오면 언니, 오빠도 있고 동생도 있고 또래와 어울릴 수 있으니 너무 즐겁죠.” _김경남
김경남 씨의 대답에 박영자, 최옥자 할머니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같이 배우면서 느끼는 즐거움을 이미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영자, 한우연, 최옥자 할머니와 김경남 씨는 글을 배운 것에 그치지 않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시를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글이 삶 속에 들어오자 자연스레 그 동안 살아온 방식대로 시가 쓰여졌다. 이들의 지나온 삶을 담아낸 시는 ‘제11회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박영자 할머니의 시 ‘내 마음의 꽃밭’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상, 최옥자 할머니의 시 ‘아버님 성함’과 김경남 씨의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는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 한우연 할머니의 시 ‘89세 입학하던 날’은 유네스코한국위원회 사무총장상을 수상했다.
“오늘도 배움의 길에서 내 마음의 꽃밭을
가꾸어 가고 있습니다”
박영자 할머니의 시 ‘내 마음의 꽃밭’
일흔 살 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인생에 봄꽃이, 마음에 꽃밭이 가득 폈다고 표현한 박영자 할머니. 할머니가 시를 쓰면서 직접 그린 꽃밭의 꽃들은 할머니 미소를 연상케 할 만큼 활짝 피어 해사한 웃음을 짓고 있다. 꽃이 밝게 웃고 있는 그림이 인상적인 데 반해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두웠던 마음”이라고 표현된 시 구절이 유독 눈에 띄어 물었다.
“배우지 못한 마음이 항시 가슴 속에 있으니까 아쉽고 어두운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지. 그래도 언젠가는 배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렇게 글을 배우게 됐고. 꽃이 피면 아름답고 웃음이 나잖아. 근데 꽃이 질 때는 또 우는 거야.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면 꼭 내 인생 같아 말이 되는 것 같더라고. (눈물) 그래도 밝게 많이 배워서 꼭 꽃같이 한번 살아보겠다는 마음, 그리고 글을 배우면서 행복해진 내 인생, 자신감과 용기가 생기고 당당해진 모습을 써보고 싶었지.” _박영자
박영자 할머니는 시라는 것도 모르고 배운 적도 없이 그저 나오는 대로 썼을 뿐인데 상까지 받게 되니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했다. 가르쳐주신 선생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도 잊지 않고 표현했다. 앞으로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계속 배우고 싶다는 게 바람이자 목표다.
“팔십 평생에 처음 보고 불러보는
우리 아버님 존함 석자를 길에서 끌어안고
목을 놓아 불러보고 읽었다”
최옥자 할머니의 시 ‘아버님 성함’
“글자를 알고 시를 썼더니 상도 받고 꽃다발도 받고 주변 축하도 많이 받으면서 참말로 행복했다”는 최옥자 할머니는 글을 배우고 나서야 알게 된 아버님 존함 석자를 처음으로 불러보던 날을 떠올려 시를 썼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남편에 대한 그리움뿐만 아니라 어려웠던 가정형편으로 교육의 기회를 접하지 못해 가족의 이름조차 적지 못했던 서러움을 글에 담았다.
“일흔아홉 살에 영감님 돌아가시고 가족증명서를 떼니까 우리 아버지 성함이 있는 기라. 내가 아버지 성함을 그때 알았다. 길에 나와서 다리 뻗고 막 울었지. 내 살아낸 걸 그대로 썼거든. 이래 상 받을 줄 꿈에도 몰랐지.” _최옥자
팔십에 공부하는 게 스스로 참 대견스럽다는 최옥자 할머니는 그 동안 살아온 인생을 적어 책을 내는 게 앞으로의 목표다. 할머니는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내 등대가 되어 환한 빛으로 앞을 비추어
나의 길잡이가 되어주네”
김경남 씨의 시 ‘섬세하고 예민한 내 친구 점자’
김경남 씨는 점자를 배우기 전 어둡고 답답했던 기억과 점자를 배우면서 느끼게 된 환희를 시에 담았다. 수상 소식을 듣고는 가장 먼저 엄마를 떠올렸다. “엄마가 좋아하겠다 생각이 들었죠. 실제로 엄마에게 알렸더니 “야, 니 그런 게 있으면 빨리 말하지. 시상식은 언젠데” 카더라고요. 태풍으로 시상식을 못 가 엄마가 더 아쉬워할 만큼 좋아하셨어요.”
김경남 씨의 시에는 점자가 얼마나 예민하고 섬세한지 잘 드러나 있다.
“점자는 습기에 약하고 물에 닿으면 쏙 숨어버려요. 아주 작고요. 근데 제가 뇌종양 항암치료를 받고 있어 손끝과 발끝이 둔해지다 보니 과연 점자를 배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근데 점자는 정말 알면 알수록 빠져들고 좋은 친구예요. 그래서 저와 같은 친구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요. 점자를 배우면 생활이 즐거워진다고요.”_김경남
김경남 씨는 점자가 환한 빛으로 앞을 비춰 길잡이가 되어 줬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아직 점자가 적용되지 않는 곳도 많다 보니 개선됐으면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음료수를 예로 들었다. “음료수는 다 음료 혹은 탄산음료라고 점자가 적혀 있는데 무슨 맛인지 정확하게 내용이 표현되면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점자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게 됐다는 김경남 씨의 다음 목표가 궁금해 물었다. 다른 수상자들처럼 더 배우고 싶다는 대답이 이어졌다.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자격증도 따고 싶고 대학교에 가보고 싶어요. 대학교에 가면 사회복지나 아동복지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고요.” _김경남
“봄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난 나의 마음
죽을 때까지 기억하고 간직하고 싶어라"
한우연 할머니의 시 ‘89세 입학하던 날’
한우연 할머니는 자녀들의 응원을 받으며 여든아홉 살에 학교에 입학했다. 할머니는 너무 많은 나이에 학교를 다니다 보니 젊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될까 봐 항상 미안했지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배우지 못한 한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처음 입학하던 날, 봄꽃처럼 행복하게 피어난 마음을 간직하고 싶어 시를 썼다.
“아이들은 여덟 살, 꽃피는 3월에 입학하는데 저는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입학해 감회가 남다릅니다.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열심히 가방 메고 어린 아이가 되어 학교에 다니는 행복한 내 모습이 참 좋습니다.” _한우연
한우연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힘에 부칠 때도 많지만 건강이 허락되는 한 중학교까지 졸업하는 게 목표다.
인터뷰를 끝내며 배우고 싶지만 주저하고 있거나 상황 상 어려워 배우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 전해달라는 질문을 건네자 박영자, 최옥자 할머니, 그리고 김경남 씨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배우러 나와 보면 너무 좋아. 공부하러 오면 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라 모르면 몰라서 서로 웃고.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즐겁고 편안하니 한번 같이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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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정진
photographer 이민정
design 이해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