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김탁환 소설가_곡성에서의 ‘두 번째 발아’… 소멸하는 곳은 서울

2023-02-27


[이음의 탐구생활] 농부 소설가 김탁환 작가가 말하는 ‘탐구하는 마음’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 코너




“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는다. 
익숙한 글감을 쓰면서 늙어가지 말고, 
내가 좋아하며 알고 싶은 세계로 삶을 옮긴 것이다.” 
-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 중에서




대도시에 산 지 20년, 다음 20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었다. 1996년 등단해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거짓말이다> 등 장편소설만 29편을 써낸 김탁환 소설가는 딱 일 년만 쉬어보기로 하고 작업실 밖으로 길을 나섰다. 

콘크리트 서울을 벗어나 종에서 횡이 아닌 횡에서 횡으로 걷다 당도한 곳은 전남 곡성. 지역 소멸이라는 말이 익숙해진 시대에 ‘이대로 소멸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었다. 

도시에서 온 소설가는 자신과 다르면서도 비슷한 삶을 살아온 농부 과학자 이동현을 만나 ‘두 번째 발아’의 함께 시간을 보낸다. 발아는 씨앗에서 싹이 튼다는 뜻이다. 친환경 농법으로 벼농사를 짓는 농부이자,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미생물 연구자인 이동현 대표는 2006년부터 곡성의 한 폐교에서 농업회사법인 ‘미실란'을 운영하고 있다. 미실란은 발아 현미를 연구하고 곡물을 가공하는 업체다. 


(왼쪽) 김탁환 작가     (오른쪽)이동현 대표


2018년 3월, 지인들과 미실란에 있는 ‘밥카페 반하다’에서 밥을 먹은 우연은 이동현 대표와의 ‘징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 후 이동현이라는 ‘문제적 인간'을 탐구하는 과정을 담은 르포형 에세이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2020년 출간)를 펴낸 김탁환 작가는 2021년 1월 삶의 터전을 곡성으로 옮겼다. 그가 말하는 네 번째 삶의 변곡점이었다. 

고전문학 연구자의 길을 걷다 “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날치떼"를 목도하고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한 순간, 대학교수로서의 안정적인 삶을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가 되어야겠다 결심한 순간, 세월호에 대한 소설을 써야겠다 결심한 순간 그리고 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곡성에서 살아야겠다 결심한 순간. 

남들이 모두 반대하는 결심의 순간에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탐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익숙한 글감”에 안주하지 않기 위해 삶을 바꾸려는 마음이 있었다. “삶이 바뀌지 않고는 글도 바뀌지 않”기에. 




지난 2월 16일, 곡성에서의 세 번째 봄을 맞는 김탁환 작가를 만났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달린 지 2시간 10분 만에 열차는 곡성역에 도착했다. 폐교를 개조한 미실란 건물 2층에는 김탁환 작가의 집필실 ‘달문의 마음'이, 1층에는 김탁환 작가와 이동현 대표가 함께 꾸려가고 있는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이 있다. 서점 입구 앞 칠판에는 손글씨로 ‘지역 소멸→지역 발전’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경남 진해가 고향인 50대 작가는 전라도 섬진강 들녘에서 오전에는 글을 짓고 오후에는 농사를 짓는 삶을 살고 있다. 초보 농사꾼이자 초보 마을소설가, 초보 마을책방지기로서 ‘처음’의 삶을 살고 있는 김탁환 작가에게 글과 몸과 마음을 쓰는 일상에 대해 물었다.   





안보다 밖이 훨씬 큰 곳



‘이음의 탐구생활’ 첫 번째 인터뷰이가 이정모 국립과천과학관장이었는데요. 이정모 관장과 인터뷰할 때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재임 시절 개최했던 프로그램에 김탁환 작가가 꾸준히 참여했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마지막 직장이 카이스트였어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있을 때, 가까이에서 과학자들을 만나면서 과학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어요. 그때는 자동차가 궁금하면 자동차 과학자 랩에 들어가서 물어보면 되고, 암이 궁금하면 암 다루는 과학자 랩에 찾아가면 됐거든요. 그렇게 3~4년을 보내다 소설가로서 작업을 제대로 하고 싶어서 퇴직하고 나오니까 뭔가 허전하더라고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하는 과학 강좌를 4년 정도 들었어요. 무슨 강의하는지 상관없이 목요일마다 계속 갔죠. 물리학, 생물학, 천문학… 덕분에 제가 과학을 굉장히 잘 아는 소설가가 됐어요. 아는 과학자들도 많아졌고요. 그때 만남이 인연이 돼서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첫 강연을 이정모 관장이 했어요.” 



이동현 대표와 함께 생태책방 ‘들녘의 마음' 문을 연 지 1년이 조금 넘었어요. 인터뷰 전에 책방 들렀더니 책마다 작가님 추천사가 적혀 있더라고요. 매달 북토크를 열고 책방 뉴스레터도 보내고 계시는데요. 초보 책방지기로 보낸 지난 1년은 어땠나요? 

“재작년(2021년) 12월에 책방을 열어서 아직 망하지 않았죠(웃음). 생태와 관련된 책을 갖다 놓은 책방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책방에 온 사람들과 함께 생태적인 활동을 하고 관련된 책을 보고… 이곳은 (책방) 안보다 (책방) 밖이 훨씬 큰 곳이에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요. 아까도 다른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생태와 관련된 책방을 하고 싶다고 오셨더라고요.” 


책방 실무도 다 직접 하시나요? 

“500권 정도 되는 책을 제가 직접 고르고 추천사도 썼죠. 북토크 섭외하고 사회도 제가 보고요.”



이번 주 발송된 뉴스레터를 보니 이번이 곡성에서 맞는 세 번째 봄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2021년 1월 1일에 여기로 집필실을 옮겼죠. 2018년부터 서울에 살면서 곡성에 들락날락했어요. 어떤 곳인지 모르는데 ‘여기 좋네’ 하고 바로 내려올 수는 없잖아요. 곡성이 서울만 하거든요. 그런데 인구는 2만7천 명이에요. 미실란이 있는 곳은 평지인데, 곡성의 10분의 7 정도는 산이에요. 낮은 산. 곡성에 골짜기가 99개가 있는데 곡성에서 태어난 사람도 그 골짜기를 다 못 들어가 보고 죽는다고 해요. 그런 점이 매력적이었죠. 2020년 가을쯤 곡성에서 살기로 결정하고 읍내에 숙소 잡고 1월 1일부터 미실란 2층 집필실에 들어와서 꼬박 2년을 보냈습니다.”


서울에도 가끔 가시나요? 

“일주일에 닷새는 여기 있고 이틀은 서울 집에 갔다 오고, 5촌 2도라고 할까요. 2021년에 여기 오기 전에 서울에서의 모든 관계를 정리했어요. 모임, 방송출연, 글쓰기 강좌… 이제 서울에 가도 갈 데가 없어요(웃음). 서울에는 쉬러 가는 거죠. 작가는 집필실이 어디에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글도 여기에서 쓰고 일도 여기에서 하고요. 곡성에서 계속 일을 벌이고 있죠. 작년에 섬진강 생태판소리 한마당, 섬진강 마을 영화제를 열었는데 제가 판소리 한마당에서는 총감독, 영화제에서는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어요. 가을에 판소리 한마당이랑 영화제를 해야 하니까 봄부터 준비해야죠. 어제도 회의를 했어요.” 



서울을 벗어나 횡으로 횡으로 다니다 곡성에 정착하기로 하셨는데요.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글을 써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안 써지니까 시골에 와서 쓰고 다시 서울에 가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온 건 아니에요.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살아야겠다>(2018년 출간)를 쓰면서 생태, 바이러스, 전염병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농사를 지으면서 생태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싶은데 서울에 살면서는 한계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전에서 10년, 서울에서 10년. 대도시에서만 20년을 살았으니 이제 대도시에서는 안 살아도 되겠다 싶더라고요. 고향 진해는 통합 창원시가 돼서 대도시가 됐으니 갈 필요가 없어졌고요. 그러다 우연히 곡성에 왔는데 곡성은 뭐랄까요. 예전부터 의지가 굳은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에요. 주변 지역에 비해 관광지화도 덜 됐고요. 진짜 농촌 같아요. 여기 와서 보니까 20년, 30년 농촌 활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많더라고요.”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를 보면 “2018년 3월 1일, 미실란에 밥 먹으러 오지 않았더라도 나는 여기에 왔을 듯하고, 집필실을 옮겼을 듯하고, 생태책방을 만들자고 했을 듯하다"라는 문장이 있는데요. 이전부터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던 것이 이동현 대표와의 만남으로 이어진 거군요. 

“네. 이동현 대표와 저는 이렇게 저렇게 비슷한 길을 계속 가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지점에서는 만날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세계를 알고 싶은 마음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읽으면서 이동현 대표와 작가님 사이의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존중이 느껴졌습니다. 책에서 작가님이 이동현 대표가 쓴 논문을 다 읽었다는 대목에서 놀랐어요. 

“<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펴냈을 때 미실란이 설립된 지 15년 정도 됐을 때인데요. 처음에 제가 이동현 대표를 두세 번 인터뷰했는데 계속 대답이 다르더라고요. 15년 동안 자기가 뭘 했는지 정리가 하나도 안 된 거죠. 숫자가 계속 다르고요. 보통 사람들도 그렇기는 하지만 이동현 대표는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더 심했어요. 직진만 하면서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제가 정리를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성을 해야 약점이 뭐고 강점이 뭔지 알 수 있는데 그걸 정리하지 않으면 약점이 계속 반복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정리가 중요하죠. 이동현 대표에 대한 글을 쓰면서 이동현 대표가 쓴 논문을 찾아봤어요. 그때 과학자들과 친한 게 엄청 도움이 됐죠. 그렇게 논문을 읽고 이동현 대표를 만나면 논의의 수준이 훨씬 높아져요. 제 이해도도 높아지고요. 처음에는 이 대표가 벼 품종을 툭툭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직접 벼농사를 짓고 품종에 대해 알고 나니까 눈을 감아도 딱 떠오르는 거죠.” 



책 출간 이후 두 분이 전국을 돌며 북토크도 많이 하셨잖아요. 

“100번 정도 했을 거예요. 북토크 다니면서 제가 곡성에 오기로 결정한 거예요. <아름다움은…>을 쓰면서 미실란의 15년은 이제 정리가 됐고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했을 때 문화예술, 철학 이런 부분이 취약했던 거죠. 예술가 한 명이 내려와 같이 살면서 그 부분을 담당하는 게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 그래도 저는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 입장에서는 되게 고맙죠. 

만약 제가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 농사지으러 갔다면 엄청 고생했을 거예요. 지금은 연착륙인 거죠. 이동현 대표는 저한테 농사를 가르치고, 저는 이동현 대표한테 글을 가르치고. 서로 스승이면서 제자인 관계예요. 뉴스레터도 제가 이동현 대표를 엄청 강하게 트레이닝 시켜서 지금은 이동현 대표 글 솜씨가 많이 좋아졌어요(웃음).” 



과학자 정재승님과 <눈먼 시계공>이라는 장편 소설을 함께 쓰고, 소리꾼 최용석님과 ‘창작집단 싸목싸목'을 결성해 판소리극을 만들기도 하셨어요. 농부과학자 이동현님과의 만남까지, 계속해서 융합하는 삶을 살고 계시는데요.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서는 힘, 해보지 않았던 것을 시도하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소설가하고는 협업을 안 하죠. 욕망이 비슷한 사람, (협업을) 안 해도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면 안 해요. 어떤 세계를 좋아하고 알고 싶다면 그 세계를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뭔가를 같이하는 것 같아요. 제가 혼자 농사 책을 읽고 혼자 고민해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지만, 이동현 대표와 함께 농사를 배워보고 내 텃밭에 가서 실습도 해보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고. 이렇게 하면 제일 빨리 알게 되죠. 

정재승 선생과 책 쓸 때 좋았던 게, 뇌 과학에서 지금 연구되고 있는 가장 심각하고 최고 수준의 질문, 연구 현황을 알게 된다는 거죠. 제가 알아야 같이 쓸 수 있으니까 저도 공부를 해야 하고요. 지금 이동현 대표와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사만 짓는 게 아니라 그걸로 어떻게 부가 가치를 창출하느냐까지 함께 배우고 있어요. 이동현 대표를 안 만났다면 하나하나 따로따로 알게 됐을 것들을 한번에 압축적으로 배우고 있는 거죠.”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니 다른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배우더라도 기본적으로 내가 충실히 공부를 해야 더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기본적인 태도인 것 같아요. 사실 책을 미리 읽고 준비하는 것은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개똥벌레’ 노래를 만든 한돌 작가가 쓴 책을 보니까 한돌 선생은 A라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산을 넘어가요. 종로에서 만난다고 하면 일산에서 종로까지 5시간을 걸려서 가는 거죠. 이 사람이 나랑 어떻게 알게 됐는지 생각하고, 내 안에 더러운 욕망이 있는지 살펴 보고. 그렇게 준비하고 가서 만난다는 거예요. 저도 이동현 대표를 만날 때 그렇게 걸어가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요.” 




소설 안과 밖 인물들에 대한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님은 ‘사람을 탐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매혹시키는 ‘문제적 인간’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을까요? 좀 바보 같은 사람들일까요?(웃음)

“저는 기본적으로 과잉돼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람이 고민을 계속하다 보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을 넘어가 버리잖아요. 넘어가면 과잉이 됐다고 하고요. 이 사람이 왜 그렇게 넘어갔을까, 그런 지점이 보이면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그냥 자기 것만 챙겨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넘어가는 사람들인 거죠.”


작가님 집필실 이름이 ‘달문의 마음’입니다. 달문 역시 과잉된 인물인 것 같은데요. 작가님 소설 속 수많은 캐릭터 중 달문을 집필실 이름에 내건 이유가 있을까요?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 보셨어요? 저는 그걸 딱 보니까 저 사람은 달문인데 싶더라고요. 제가 세월호, 메르스를 거치면서 ‘그래도 세상이 살만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는데 그걸 소설과 캐릭터로 표현한 게 <이토록 고고한 연예>이고, 달문이라는 인물이에요. ‘달문의 마음'이라는 게 자기반성적 의미도 있죠. 작가들 중 다수는 자기 집필실에 책이 많고 책을 읽고 있으면 자기가 잘 살고 있다고 착각을 하거든요. 그런데 달문은 자기 이름도 못 쓰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인데 선하게 살았잖아요. 작업실로 올라오면서 경계하는 거죠. 책을 많이 읽고 활자를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고 해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요.”



사람 아닌 낯선 존재들과의 만남


 

교수를 그만두고, 세월호에 관한 소설을 쓰고, 곡성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세상 사람들이 말리는 선택을 여러 번 내리셨는데요. 선택의 순간마다 작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이나 가치는 무엇이었나요?

“그것도 제가 어느 지점에서 과잉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소설을 하나도 안 썼지만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제 인생의 첫 번째 큰 고민이었어요. 소설을 읽고 연구하면서 20대를 보냈는데 남이 쓴 글을 읽으면서 70~80년을 산다는 게 너무 고통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제가 소설가가 되겠다 그러니까 ‘그럼 소설 쓴 걸 보자’고 하는데 소설 쓴 게 없는 거죠. 일단 써봐야 알 수 있으니까요. 

대학교수 그만둘 때도 이걸 그만두고 전업작가가 되겠다고 하니까 ‘네가 전업 작가해서 먹고 살 수 있냐’고 하는데, 그것도 해봐야 아는 거죠. 곡성에 올 때도 ‘너 농사 한 번도 안 지어봤는데 할 수 있냐’, ‘그러다 농사도 안 되고 소설도 안 되고 인생 망친다’고 하는데 제가 농사를 짓는다는 걸 증명할 수 없는 거죠. 항상 갭이 있는 거예요. 늘 그랬던 것 같아요. 

작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실패한다는 문장도 있지만, 실패가 두려워서 안 하면 한이 되니까요. 그게 저한테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이 오면 제가 과격해져요. 설득이 안 되는 거죠.” 



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데 실패하는 것이 두려워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는 글이 곧 삶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일과 이야기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며 살아가시나요?

“장편 작가는 작품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 두 시간대를 살아야 해요. 그 시간대를 살아가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살아가는 공간이 있으니 시간, 공간, 인간이 각각 두 개가 있는 거죠. 이게 헷갈리면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래서 제가 나누는 방식은, 오전에는 소설 속 시간대로 살아요. 새벽부터 쓰기 시작해서 오후 2시까지 쓰고, 오후 2시 이후에는 현재의 시간대로 사는 거죠. 

그러니까 여기에서 농사짓는 게 가능한 거예요. 아침에 딱 집중해서 글쓰고 오후에는 육체 노동 엄청 하고 사람이 아닌 존재들도 만나고요. 제가 작업량을 비교해 보니까 서울에서만큼 쓰더라고요. 요즘 집 앞 텃밭을 가꾸고 있는데요. 100평 정도 텃밭에 배추, 상추, 당근, 양파, 시금치 등을 심었는데 이게 벼농사랑 달리 물을 계속 물을 주고 호미를 쥐고 매일 뭔가를 해야 하더라고요. 똑같이 심었는데 이 작물은 잘 자라고 이 작물은 망하는 걸 보면서 배움에는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텃밭 농사하면서 확 농부 마인드로 바뀌었어요.”  



곡성 군민들을 대상으로 ‘김탁환의 이야기학교’를 운영하고 계시는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10주 과정으로 봄, 가을 4번을 했어요. 주민등록상 곡성군민만 들을 수 있고요. 한 반에 12명인데 수강생 절반 이상이 농부예요. 글을 한 번도 안 써본 분들이죠. 중학생부터 7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분들이 계세요. 2021년에 처음 이야기학교를 시작할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저도 의욕이 넘치다 보니까 잘 가르치려고 서울에서 직장인 가르치듯이 했더니 수강생들이 두려워하더라고요(웃음). 지금은 타협해서 덜 가르치니까 너무 좋아해요. 어떤 식으로 뭘 가르쳐야 하는지도 경험이 필요한 것 같아요.”


글쓰기 수업할 때 특별히 강조하는 게 있으신가요?

“생활 글을 쓰라고 해요.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것, 일상 속에서 만나는 것에 대해 쓰라고요. 딸기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딸기에 대해, 토란 농사짓는 사람에게는 토란에 대해 쓰라고 하는데 30년 동안 토란을 키웠으면 정말 잘 쓰죠. 우리는 토란을 먹기만 하지, 토란을 어떻게 심고 키우고 그런 건 하나도 모르잖아요. 특히 농부들은 식물에 대한 묘사력이 정말 뛰어나요. 깜짝깜짝 놀라요. 자기가 잘 쓰는 줄을 모르니까 써와서 쭈뼛쭈뼛 발표하면 제가 칭찬을 막 해주죠. 수강생들이 쓴 글을 곡성군에서 문집으로 엮어주고요.” 



곡성에서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요. 이동현 대표님과 함께 만들고 계신 ‘생태학교'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여기 와서 이동현 대표와 미실란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쭉 봤잖아요. 모내기, 벼 베기 실습도 하고 미생물 수업도 하고 섬진강 가서 쓰레기 줍기도 하는데 이걸 그때그때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미실란 생태학교’라는 이름으로 크게 묶었어요. 미실란 생태학교 안에서 판소리 축제도 하고 영화제도 하고 음악회도 하고 글쓰기 수업도 하는 거죠. 

걷기 학교도 준비했는데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못 했어요. 여기에서 구례 지나서 하동까지 걷고 싶어요. 저는 이미 답사를 했어요. 하동 화개 장터까지. 이틀을 걸려서 갔다 왔어요. 사람들이 물어봐요. 차 타고 30분이면 가는데 왜 걸어서 갔냐고요(웃음). 걸어봐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걸어야 좋겠다는 답이 나오니까요. 길은 다 짜놨으니 올해는 가을에 해보려고요.”



들으면 들을수록 작가님은 ‘지독한 경험주의자’라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미실란 생태학교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얻어갔으면 하시나요?

“가장 기본적인 건, 이질감을 느끼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와서 사람 아닌 존재들을 만날 수 있게 됐으면 해요. 중학생들이 농촌 체험하러 오면 쉬는 시간 되잖아요. 놀아라, 들판에 풀어놓으면 다 스마트폰 해요. 사람 아닌 존재와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저는 오히려 소멸하는 곳은 서울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에는 다른 것은 소멸하고 사람만 있잖아요. 사람이 너무 과밀화돼있는 상태니까 관계에 대한 고민도 지나치게 많고요. 농촌에서 사람을 덜 만나고 사람 아닌 낯선 존재와 연결되면서 이런 공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노력을 통해 지역 소멸을 막을 수 있고, 바로 희망으로 연결되고. 그렇게는 생각 안 해요. 절망이 훨씬 많죠. 그래도 가만히 놔두면 기하급수적으로 나빠질 것 같은데 이렇게 하면 조금씩 덜 천천히 나빠질 수 있지 않을까요?”


가을에 걷기 학교 하면 꼭 와보고 싶네요. 끝으로, 곡성에서 어떤 마을 소설가가 되고 싶으세요?

“그동안 한국 소설가들이 시골에 있는 레지던시에서 글만 쓰다 떠나거나, 시골에서 글감만 찾아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저는 책방 하는 시간 동안은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마을 사람들과 모내기부터 문화제 등 여러 일을 하고 싶고요. 곡성이라는 대학에서 2학년을 마쳤고 이제 3학년을 시작한 거예요. 더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배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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