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24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 대상 김상우_배움이 곧 삶이고, 나눔이 곧 행복이죠

2025-02-04



배움에는 끝이 없다. 그리고 배운 것을 나누는 삶은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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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우 씨는 30년간 군에서 복무하며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했다. 전역 후에는 초빙교수, 문해교사, 마을 이장, 안보 강사 등으로 활동하며 배움을 실천해왔다.


그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가 아니다.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신념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움을 이어가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2024년,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그의 노력은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는 대상 수상 이전에도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지방행정 발전 방안을 제시하고, 국방TV ‘베테랑’에 출연하며 예비역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2020년에는 ‘강원도 마을 행정의 달인’ 리더십 부문에 선정되며 리더십을 인정받기도 했다.

 

김상우 씨는 배움이 새로운 인연을 만든다고 믿는다. 십여 년 전, 감명 깊게 읽은 책의 독후감을 써서 저자에게 보냈는데, 그가 바로 잡코리아 창업자인 김승남 회장이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이 이어졌고, 그는 배움을 통해 예상치 못한 만남을 경험했다.

오늘도 그는 여전히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 ‘배움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그의 철학처럼, 그는 한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에게 희망을 주고, 군 경험을 대학생들에게 전하며,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는 지식과 행동이 함께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배우고, 나누고, 도전하라. 그러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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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학습을 넘어, 삶 자체를 배우고 나누는 데 헌신해 온 김상우 씨가 새로운 배움의 길 위에서, 세상에 더 많은 가치를 남기기 위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들은 못 갔지만, 나는 갔으니 최선을 다했죠.”


1954년, 전쟁이 끝난 지 불과 1년 뒤, 경기도 평택에서 태어난 김상우 씨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생존의 연속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강원도 원주 치악산이 고향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평택으로 내려와 피난살이를 시작했다.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고, 형들은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고 곧바로 밭일을 해야 했다. 김상우 씨도 당연히 같은 길을 걷게 될 줄 알았다.


“그때는 공부는커녕 밥 먹고 사는 게 급했어요. 형들은 초등학교만 나오고 농사일 돕느라 정신이 없었고, 나도 중학교는커녕 그냥 초등학교까지만 다닐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둘째 형이 동생만큼은 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부모님을 설득했다.

 

“형은 본인이 배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아쉬워했어요. 그래서 내 손을 잡고 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거죠.”

 

그 덕분에 김상우 씨는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닌다고 모든 것이 쉬웠던 것은 아니다. 그는 학업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했고, 학교에서는 괴롭힘을 당하기도 했다.

 

“그냥 맞고만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자기 방어 차원이었지만, 점점 더 진지해졌죠. 그러다 도장에서 ‘문무겸비(文武兼備)’라는 글귀를 봤어요.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 몸도 강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그 말이 가슴에 박혔어요.

 

그는 그렇게 신념을 만들었고, 그 신념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니, 기회를 붙잡은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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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졸업 후, 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김상우 씨. 우연히 신문에서 ‘3급 무선통신사 과정 모집 – 자격 취득 후 선박 근무 가능’이라는 광고를 보고 직업훈련소에 등록했다.

 

“그걸 본 순간, ‘이거다’ 싶었어요. 빨리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선박 근무? 좋지. 돈도 벌고, 세상도 보고. 그래서 바로 직업훈련소에 등록했어요. 근데 공부를 해보니 통신이라는 게 단순한 기술이 아니더라고요. 이건 시대를 바꾸는 중요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더 깊이 배우고 싶어졌어요.”

 

그렇게 훈련소를 다니면서 무선통신을 배우기 시작했고, 통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직업에 대해 더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때 또 하나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던 도장에서 학군장교(ROTC)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태권도를 가르치던 체육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오갔고, 그중에는 대학생들도 많았다. 어느 날, ROTC에 재학 중이던 한 대학생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사범님, 우리처럼 대학교에 가는 건 어때요? 군 장교가 되는 길도 열려 있는데.”

 

그 말을 들은 그는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대학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 국가예비고사도 치러야 했고, 입학시험도 봐야 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안 되잖아요. 내년을 기약하고 준비했어요. 결국 1년 후, 인하공업전문대학에 입학하게 됐죠. 사람들은 기회가 찾아와도 ‘나는 준비가 안 됐어’라면서 흘려보내요. 하지만 저는 그래요. 기회가 오면 붙잡고, 모자란 건 채워나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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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군에 입대할 시기가 됐을 때 신체검사 통지서를 받지 못했다. 직접 읍사무소에 찾아갔다가 우연히 ‘장교 모집’ 광고를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인생이 다시 한 번 바뀌는 순간이었다.

 

군대에서도 계속 배웠어요. 그게 저를 살렸죠.


우연히 본 장교 모집 공고. 그는 모집 마감 이틀 전이라는 사실을 알고 급히 지원했다. 이 선택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1975년 그는 장교 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했다. 입대 후 광주 보병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훈련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특히 비 오는 날 젖은 모래 가마니를 들고 달리는 시험에서는 탈락 직전까지 몰렸다.

 

훈련이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손목에 다이아몬드 문양을 새기며 끝까지 버텼어요. 나는 나중에 5만 광촉(光燭)에 빛나는 육군 소위가 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어요.”

 

그렇게 혹독한 훈련 끝에 1976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군에서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통신병과를 선택했고 이후 끊임없이 연구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특히 그는 C4I 시스템(Command, Control, Communications, Computers & Intelligence(지휘, 통제, 통신, 컴퓨터 & 정보 시스템))을 다루면서 정보통신 기술이 군의 핵심이 될 것임을 깨달았다.

 

“군대에서는 전장 환경에서 통신망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특히 1990년대 이후에는 전쟁도 정보전으로 바뀌었죠. 저는 그 변화를 직접 경험하면서 ‘정보통신이 군의 핵심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깊이 배우고 싶었죠.”

 

그는 최신 통신 기술과 군사 작전에서의 활용 방안을 연구하며 점점 더 전문성을 갖췄다. 어느 날, 중요한 작전 중 통신 장비가 고장 났다. 상부에서는 즉각적인 해결을 요구했다. 그는 직접 장비를 분해하고 원인을 분석해 단 몇 시간 만에 복구했다. 그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작전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그는 부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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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가장 크게 배운 건 ‘버티는 법’이었어요. 그리고 내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거. 몸이 힘들다고, 정신적으로 지친다고 주저앉으면 끝이에요. 하지만 거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면, 새로운 길이 열리더라고요.

 

군 생활을 하면서 그는 단순히 군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민간 대학 위탁 교육생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그는 고민하지 않고 지원했고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

 

사실 군대에 있으면서도 계속 배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내가 멈춰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대학에 가기로 했어요. 단순한 군인이 아니라,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워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그러나 대학 생활은 쉽지 않았다.

 

“첫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이 그러는 거예요. ‘재수생 손 들어봐’, ‘삼수생 손 들어봐’ 하다가 나한테 ‘자네는 몇 수 했나?’ 묻더라고요. 그래서 ‘18수입니다’ 했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다 뒤돌아보면서 ‘뭐야, 학부형인가?’ 하는 표정을 짓더라고요.”

 

그는 그렇게 38세의 나이에 대학생이 되었고, 결국 3년 내내 수석을 차지하며 졸업했다.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나이가 문제가 아니에요. 배우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곳이 학교고, 그곳이 배움의 현장이에요. 내가 배울 수 있는 한, 나는 배우는 걸 멈추지 않을 거예요.

 

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후, 아주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에서 C4I 시스템을 전공하며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배운 것을 나누는 것이 또 다른 배움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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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김상우 씨는 30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결심했다. 군에서의 삶을 충분히 경험한 그는,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배운 것을 나누고 싶었다.

 

“30년을 채우면 보훈 훈장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걸 포기했죠. 사실 전역하면 연금도 줄어들고, 혜택도 많지 않았어요. 근데 군에서 더 머물러야 할 이유보다, 밖에서 더 하고 싶은 일이 많았어요. 저는 항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그는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기보다 새로운 도전을 원했다. 특히 그는 군에서의 경험을 활용해 교육자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고민했다. 군 생활 동안 그는 다양한 교육 과정을 거쳤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며 장병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중, 원주의 한 대학에서 ‘국방정보통신과’ 초빙교수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을까?”

 

망설이던 그였지만, 군에서 배운 경험을 학생들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지원했고, 여러 경쟁자들 사이에서 당당히 초빙교수로 선발되었다. 그가 쌓아온 학문적 성취와 끊임없는 배움이 결국 그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처음 강단에 섰을 때를 기억해요. 학생들이 저를 쳐다보는데, 군대와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군에서는 명령하면 따라야 했지만,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진짜 배우고 싶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고민했어요. ‘어떻게 하면 더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는 실전적인 수업을 진행했다. 이론뿐만 아니라, 군에서 실제로 활용되는 정보통신 시스템과 사례 중심으로 강의를 구성했다. 그의 강의 방식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그는 대학에서 인정받는 교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평생학습과 지역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싶었다.

 

“마을을 바꾸는 것도 결국 공부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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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역 후 강원도 인제군에 정착했다. 원래 연고가 있던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인제군이 가진 자연환경과 조용한 분위기에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전역 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육군과학화훈련단’이 인제에 위치해 있던 점도 영향을 미쳤다. 오랜 세월 다양한 지역을 거쳐 온 그는 전국을 27번이나 이사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정착하고 싶었다.

 

“전국을 떠돌면서 살았어요. 군 생활을 하면서도 제대로 한곳에 오래 있지 못했죠. 그런데 인제에 오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라고요. 여기가 내가 새로운 시작을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가 인제에서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을 주민들이 그를 찾아왔다. 이장(里長) 자리를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워서 거절했다. 그는 행정 경험도 없었고, 지역 출신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민하다 보니 ‘내가 하면 바뀔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군대에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해냈는데, 마을을 바꾸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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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결국 2015년부터 2021년까지 이장을 맡아 마을을 변화시키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의 목표는 두 가지였다. 첫째,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 둘째, 주민 간의 화합을 이루는 것. 그는 가장 먼저 ‘마을 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마을 청소의 날을 지정해 주민들이 함께 모여 마을을 정리하도록 했고, 노후한 마을회관을 보수해 어르신들을 위한 쉼터를 마련했다.

 

“사람들이 처음엔 회의적이었어요. 그런데 눈에 보이는 변화가 생기니까 다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주민 화합을 위한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마을 신문을 발간하고 외부 강사를 초청해 주민 교육을 실시하고 다른 마을의 성공 사례를 배우고 적용했다. 그의 노력은 2015년 인제군 ‘행복마을만들기’ 우수마을 선정, 2016년 강원도 ‘기업형 새농촌 사업’ 우수마을 선정 (5억 원 지원), 2020년 마을 게이트볼장 개장 (6억 원 지원) 등 다양한 결실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하면 좋겠다’고 설득하고, 함께하다 보니 사람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죠. 결국, 마을을 바꾸는 건 행정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더라고요.

 

“배움은 삶을 바꾸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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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장 역할도 하면서 문해교사로도 활약했다. 그가 문해교사가 된 것은 우연이었다. 2013년 마을 이장이 그를 찾아와 마을회관에서 컴퓨터 교육을 해주던 여군 장교가 전출을 갔다며 강의를 대신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컴퓨터 교육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마을회관을 찾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글도 모르는데, 무슨 컴퓨터야?”

 

한 할머니가 조용히 내뱉은 말이었다. 순간 김상우 씨는 멈칫했다. 그는 어르신들이 컴퓨터를 배운다고 해서 당연히 한글도 읽고 쓸 줄 알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래, 한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컴퓨터를 배우겠어?”

 

그는 컴퓨터 강의를 맡는 대신, 이들에게 먼저 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 마을에서 ‘인제군 문해교사 양성과정’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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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문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어요. 문맹(文盲)이라는 말은 익숙했는데, ‘문해(文解)’라는 단어는 처음 들었죠. 국문학을 전공한 저도 몰랐던 단어였으니, 다른 사람들도 ‘문화해설사의 줄임말인가?’ 혹은 ‘문예(文藝)를 잘못 적은 건가?’라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그렇게 문해교사 양성과정을 마친 후, 그는 대한노인회 인제지회의 소개로 경로당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그가 교재와 필기구를 들고 경로당에 들어가자, 한 어르신이 다가와 물었다. “뭘 팔러 왔느냐?”

 

또 다른 경로당에서는 노인회장이 그를 향해 말했다. “요즘 세상에 한글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처음에는 배움을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글을 모른다는 것이 마치 수치인 것처럼 여겨졌고, 일부는 수업을 듣는 걸 꺼렸다.

 

그때 깨달았어요. 단순히 글자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분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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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르신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일상 속 글자 찾기’부터 시작했다. 또 단순한 글자 교육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교육을 목표로 삼았다. 은행 서류 작성법, 간단한 편지 쓰기 등 실생활에 적용되는 학습을 진행하면서 어르신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대화형 수업을 진행했다. 그의 노력은 2024년 ‘대한민국평생학습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이 수상이 학습자들과 지역사회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다.

 

“어르신들이 자기 이름을 쓸 수 있을 때,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를 읽을 수 있을 때, 은행에서 본인 이름을 적을 수 있을 때… 그때마다 저는 보람을 느껴요. 배움이란 게 결국 삶을 바꾸는 힘이잖아요.

 

현재 그는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지금도 전국의 노인대학을 다니며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그의 목표는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변하는 순간을 만드는 것이다. 동시에 평생학습을 실천하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나이는 상관없어요. 배우면 변할 수 있어요. 그리고 변하면 삶이 달라져요. 저는 그걸 경험했고, 그래서 끝까지 배움을 이어갈 겁니다.

 

그의 도전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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