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이종범 웹툰 작가, 프로듀서, 유튜버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
웹툰 작가, 대학교수, 유튜버, 드러머. 이종범 작가의 이력을 나열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2011년 심리학을 소재로 한 웹툰 <닥터 프로스트>로 10년 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청강문화산업대에서 2천 명이 넘는 학생을 가르쳤다. 현재는 웹툰 프로듀서로서 <역대급 영지 설계사>, <오늘만 사는 기사> 등 굵직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이종범의 스토리캠프’를 통해 15만 명이 넘는 구독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 하나, ‘스토리텔링’이다. 만화를 그리든, 강의하든, 팀을 이끌든,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매개로 세상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멈추지 않는 ‘덕질’이 있다. 우주가 궁금하면 천문학 강의를 듣고, 소방관 친구를 만나면 소방차 출동 시간을 관찰하며, 드럼이 치고 싶으면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다닌다. 그에게 공부란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일이다.
“학습이라는 말이 가진 오명을 벗겨야 해요. 내가 스스로 궁금해서 파고드는 걸 우린 학습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진짜 학습은 그쪽이에요.”
그가 말하는 평생학습은 ‘마르지 않는 덕질’이다. 나이 들어서도 손주의 행동이 궁금하면 발달심리학을 찾아보고, 은퇴 후에도 치킨이 좋으면 최고의 치킨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것. 마음이 이끄는 방향을 관찰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것이 그가 말하는 ‘배움의 본질’이다.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면 이종범이라는 존재는 작가이자 프로듀서이자, 평생학습자다. 덕질은 그의 에너지이자 철학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파고들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세상과 나누며 살아간다. 그에게 배움은 의무가 아니라 생존의 리듬이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몰입해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종범 작가가 말하는 ‘마르지 않는 덕질의 삶’이다.
첫 칭찬이 만든 만화가, 덕질이 키운 스토리텔러

Q. 만화가의 꿈은 언제부터였나요?
저는 사람이 첫 칭찬을 어디서 받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이나 음악 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첫 성취감이나 첫 칭찬이 그쪽에서 나와서 그 길로 간 경우가 많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만화였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친구분이 하는 서점에 절 데려가곤 하셨는데, 제가 만화책 앞에 앉아 얌전히 보고 있으니까 너무 편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서점이 제 놀이터가 됐죠. 다섯 살짜리가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보면 또래보다 잘 알 수밖에 없잖아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친구들이 ‘나도 그려줘!’ 하고 몰려왔고, 그 칭찬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받은 첫 성취감이 결국 평생의 방향을 정해준 셈이죠.
Q.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하셨는데, 공부도 잘하셨나 봐요. 명문대에 진학하신 걸 보면요. 특별한 비법이 있으셨나요?
어릴 때 동네에 만화를 그리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으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래야 부모님이 너를 못 말린다’라는 거예요. 그 말이 정말 강하게 남았어요. 그래서 전 공부를 만화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어요. 공부를 잘하면 만화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 생각이 저를 움직였죠.
그런데 공부를 오래 할 수가 없었어요. 만화를 그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빨리 잘하는 법’을 찾다가 효율적으로 공부할 방법을 찾게 됐어요. 전교 1등 하는 애들은 다 친구를 가르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따라 했어요. 이해 안 된다는 친구들에게 수학 문제나 개념을 설명하면서 공부했죠. 그러면 복습도 되고, 요점도 정리되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알게 돼요.
그렇게 하다 보니 ‘아, 나는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어요. 나중에 학원 강사를 오래 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에요. 결국 공부든 만화든,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는 게 진짜 공부라는 걸 그때 알았죠.

Q. 심리학 전공은 ‘덕질의 연장’이었다고 하셨죠. 대학 시절 어떤 배움이 지금의 작업에 영향을 줬나요?
심리학과를 노리고 간 건 아니에요. 그냥 인문학 전반이 궁금했어요. 문학, 철학, 사학, 사회학 뭐든 상관없었죠. 학부제였으니까 학점을 잘 받으면 전공을 정할 수 있었고, 저는 그냥 마음껏 배우고 싶었어요. 천문학과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다른 학교 수업도 몰래 들어가 보고요.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덕질’이었죠. ‘와, 우주 재밌다!’ 하면 파고들고, ‘이건 왜 이럴까?’ 하면 실험심리학을 설계해 보는 식이었어요. 그게 나중에 다 스토리의 재료가 되더라고요.
<닥터 프로스트>를 그릴 때 주인공이 상담가니까 상담심리를 새로 공부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전공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결국 작품이 저를 다시 배우게 만든 거죠. 작가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제 친구 중에 의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메디컬 웹툰 '중증외상센터'를 쓰거든요. 그 친구는 이비인후과 의사인데, 본인이 의사임에도 응급의학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려면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하더라고요. 전문가라도 작품을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새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심리학과 출신이지만 작품을 위해 다시 공부한 셈이죠.
가난이 가르쳐준 직업의 의미, 취재가 만든 이야기

Q. 20대에는 드러머로 활동하셨죠. 음악이 아니라 만화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는요?
IMF 때 집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진짜 끼니를 걱정해야 했죠. 독립해서 만화를 준비하는데 가난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가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대신 직업관이 아주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어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그건 취미고, 돈을 받을 만큼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게 직업이구나.’ 음악 할 땐 그냥 내가 즐거웠으니까, 공연이 잘 안돼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만화는 달랐죠. 돈을 받는 이상, 감동이든 재미든 독자에게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직업 윤리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학생들 가르칠 때 만화가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한다고 얘기하면 “좋은 출발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거야.”라고 얘기해요. 거기에 뭔가가 더 더해져야 하거든요. 직업 윤리가 됐든 사명감이 됐든, 고통을 감수할 만한 몇 가지 이유가 더 필요하다고요. 실제로 만화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들부터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직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Q. <닥터 프로스트>는 한국 웹툰계에서 심리학을 전면에 내세운 첫 작품으로 꼽힙니다. 작품을 기획할 당시 어떤 문제의식과 준비 과정이 있었고, 취재나 자문을 통한 ‘현실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딱 정해진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사실은 그 반대였어요. 당시 제안한 작품들이 계속 거절당하니까 ‘그럼 뭐 하지?’ 하다가 생각난 게 <닥터 프로스트>였어요. (웃음) 마침 제가 심리학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한국 웹툰에는 전문 분야를 깊게 다루는 작품이 거의 없었어요. ‘틈새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제가 원래 좋아하던 드라마나 영화 중에도 심리학을 다룬 작품이 많았어요. ‘이걸 만화로 풀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렇게 도전하게 된 거예요.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상상’보다 ‘취재’를 믿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실제로 듣고 관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닥터 프로스트>를 할 때도 정신의학과 자문 선생님들을 만나서 수없이 물어봤어요. 특정 증세에 대해 공부하고, 환자의 케이스를 듣고, 심리적 반응을 비교해 보면서 이야기를 쌓아갔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캐릭터가 살아나요. 설정이 아니라 진짜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제가 어떻게 취재하는지를 설명 드릴게요. 예전에 제가 고등학생 때 과외하던 제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소방관이 됐어요. 결혼식에 초대하러 오길래 ‘소방관이라고? 그럼 물어봐야지!’ 싶어서 밥 먹으면서 계속 물어봤죠. ‘소방관은 일할 때 루틴이 어때요? 장비 망가지면 직접 사요? 근무 중엔 언제 쉬어요?’ 이런 식으로요. 들으면 들을수록 재밌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소방서가 보이면 가만히 못 있겠는 거예요. ‘저 차는 출동할 때 몇 초 걸릴까? 정말로 봉을 타고 내려올까?’ 관찰하게 되는 거죠. 그게 습관이 돼요.
저는 그렇게 ‘디깅’을 해요. 요즘 말로 하면 ‘덕질’이죠. 좋아서 파고드는 거예요. <닥터 프로스트>를 만들 때도 똑같았어요. 정신장애 증례집을 놓고 하나씩 읽으면서 ‘이건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궁금해지면 전문가에게 물어봤어요. 그러면 ‘이런 환자가 있었어요’, ‘이런 반응을 보였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거든요. 그 이야기가 쌓이면 어느새 서사가 되는 거예요.
저는 이야기의 재료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료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진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발견하는 게 핵심이에요. 독자가 ‘이 사람 진짜 있을 것 같다.’라고 느끼는 순간, 그게 현실감이고, 그게 스토리의 힘이죠.
한국이 만든 웹툰, 창작자들이 쓴 문법

Q. 한국이 만든 웹툰은 이제 세계적인 스토리텔링 산업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웹툰 프로듀서로 활동해 오시면서, 웹툰의 세계화 흐름을 직접 체감하셨을 텐데요. 작가님이 바라보는 웹툰의 진화 방향과,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웹툰만이 가진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K-웹툰’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그 말이 좀 이상해요. 웹툰을 만든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굳이 ‘K’를 붙일 필요가 없거든요. ‘K-김치’ 같은 느낌이랄까요? 웹툰은 종주국이 한국이에요. 세로로 만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굉장한 발명인지 한국 작가들이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저희가 만든 거니까요. 대중 매체 역사를 봤을 때 한국이 처음으로 발명한 최초의 콘텐츠가 웹툰이에요. 영화, 연극, 뮤지컬 모든 걸 다 봐도 한국이 만든 건 없거든요. 웹툰, 세로로 만화를 본다는 이 형식을 한국이 만든 거예요.
초기에는 작가 수가 적어서 다 모이면 밤새 토론했어요. ‘대사 풍선은 가운데 정렬이 좋을까?’ ‘기대감을 주려면 순서를 바꿔볼까?’ 이런 걸 밤새 실험했죠. 독자 반응을 보고 또 수정하고. 그렇게 쌓인 시행착오가 지금의 문법이 된 거예요. 우리 세대는 독자와 함께 문법을 만들어 온 세대예요. 그게 웹툰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Q.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서울웹툰아카데미’로 옮긴 이유는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6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학교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학생들이 있고, 교육자로서 배울 것도 많아요. 하지만 전임교수는 겸직이 어렵고 활동이 제한돼요. 라디오를 나가도 허락받아야 하고, 책을 써도 보고해야 하죠. 저는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니까 그게 답답했어요.
더 큰 이유는 ‘속도’였어요. 웹툰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하거든요. ‘이런 수업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해서 과목을 만들면 교육청 승인에 2~3년이 걸려요. 그럼 이미 시장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죠. 그때 청강대에서 초기에 웹툰 교육을 만들었던 교수님들이 ‘이제는 제도권 밖에서 제대로 해보자’라며 모였어요. ‘학위는 못 줘도 작가는 키울 수 있다.’라는 철학 아래 새로운 기관을 세운 거예요. 그게 서울웹툰아카데미예요. 저도 그 얘길 듣고 바로 합류했어요. ‘대박작이 석사고, 차기작이 박사다’라는 말을 그때 처음 했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 마음을 설명할 언어

Q. ‘이종범의 스토리캠프’는 작가님에게 또 다른 무대가 되었습니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연결된다는 확신은 어디서 왔나요?
저는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해보는 타입이에요. 인스타도 그랬고, 트위터도 그랬어요. 유튜브도 마찬가지였죠. 왜 그랬냐면 사람들이 제 만화를 볼 텐데, 그럼 사람들이 뭘 하는지 직접 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독자들이 어떤 플랫폼을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도 처음엔 그런 이유로 시작했어요.
2014~16년쯤에 만화가 지망생 중에 도서·산간 지역에 있거나 물어볼 데가 없는 분들이 많잖아요. 유튜브 라이브로 질문을 받아보자 싶어서 시작했는데, 그걸 한 7~8년 했어요. 그런데 만화가 지망생만 오는 곳이기 때문에 채널이 커질 수가 없더라고요. 7년째 됐는데 여전히 구독자가 2만 5천 명이었어요. ‘나 유튜브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안 커지지?’ 싶었죠. 그래서 상업 유튜브를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맞는지 확인도 하고 싶었고요. 그렇게 만든 게 지금의 스토리캠프예요.
여기서는 만화가 아닌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자고 생각했죠. 알고 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왜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걸 대신 언어로 정리해 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너 그 작품 좋아하는 이유, 이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해주는 거죠. 그 언어를 얻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이해하거든요. 그게 스토리캠프의 핵심이에요.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뭘까요?
좋은 이야기는 결국 ‘남의 삶을 살아보게 하는 것’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독자가 한 번쯤 다른 인생을 살아보게 만드는 거죠. 근데 그게 아무 삶이 아니에요. 어떤 삶을 살게 하고 싶은지가 제일 중요하죠. 독자를 어디에 태워서, 어디로 보낼 것인가. 이게 스토리텔링의 핵심이에요.
남의 삶이라는 게 꼭 행복하거나 멋진 삶만은 아니거든요. 고통스러운 삶일 수도 있죠. 사실 많은 고전들이 그런 방식이에요.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품들을 보면, 누가 그 인생을 직접 살아보고 싶겠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따라가죠.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 고통을 겪는 데 합당한 이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으니까요. 그만큼 가치 있는 걸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반대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죠. 둘 다 좋아요. 중요한 건, 독자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가예요.
캐릭터 얘기도 그 연장선이에요. 저희는 ‘이게 먹힌다’보다는 ‘이건 하면 안 된다’를 더 많이 고민해요. 피해 가야 할 지점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예를 들어 주인공은 악해도 돼요. 비열해도 되고, 폭력적이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짜증 나면 안 돼요. 비호감이 되면 안 되죠. 콘티 회의할 때 ‘야, 주인공이 나쁜 건 좋은데 동물 때리는 장면은 안 돼. 빼자’ 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그런 선이 있어요.
독자들은 원칙을 좋아해요. 악당이라도 원칙이 있으면 좋아하죠. 예를 들어 나쁜 짓을 해도 ‘나 지금 나쁜 짓 할 거야.’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캐릭터는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아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든지, 자신만의 룰을 지킨다든지. 그게 매력이에요. 결국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그리는 거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에요. 다른 삶을 체험하게 하되, 그 삶 속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 저는 그게 이야기의 품격이라고 생각해요.

Q. ‘덕질이 곧 공부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실 때 어떤 방식으로 몰입하고, ‘덕질’의 과정을 창작으로 바꾸시나요?
저는 되게 정직한 원천을 갖고 있어요. 뭔가 번쩍 ‘이거 해야겠다!’ 하고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파고들다 보면 나오는 거죠. ‘이건 진짜 의미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순간이 와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그 소재에 대한 덕질이에요. 덕질이 곧 공부거든요.
예를 들어 <닥터 프로스트>를 할 때도 처음엔 ‘심리학을 소재로 한 만화라니,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정신장애 증례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달라졌죠. 거기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환자들의 사례와 증세, 감정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저는 그걸 공부하고, 또 자문 선생님께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이 증상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 겪나요? 어떤 상황에서 이런 대화가 나와요?’ 그런 대화 속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나더라고요. 그렇게 구체적인 인간의 결을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된다.’라는 감각이 와요.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 만드는 건 영감이죠?’라고 물어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말해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삶을 이해하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왜 이 장면에 울고, 왜 이런 관계에 끌리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그게 심리학이에요. ‘사람이 어떤 삶을 못 살아서 이 이야기에 끌리는가?’, ‘어떤 결핍이 있어서 이 세계를 원하게 되는가?’, 그런 걸 들여다보는 과정이죠.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공부라고 말해요.
덕질의 핵심은 단순히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왜 좋은가?’를 파고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SF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보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왜 나는 이런 세계관이 좋지? 이 감정의 구조는 뭐지?’를 분석하죠. 그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 제 작품 속에 그 ‘좋음’의 본질이 녹아들어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이에요.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곧 공부고, 공부가 곧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이야기가 되거든요.
대체 가능성과 싸우는 시대, 마르지 않는 배움

Q. 요즘은 어떤 분야든 AI가 화두입니다. AI 시대, 웹툰 작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모든 업계가 결국 똑같다고 봐요. AI가 문제라기보다, 아직 자신을 증명해 내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는 시대인 거죠. 생각해 보면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신인 작가들은 늘 대체 가능성 속에서 작업해 왔어요. 다른 작가에게 밀리거나, 작품이 묻히거나, 플랫폼이 바뀌는 순간에도요. 그때도 다들 ‘이 시장에서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려면 뭘 해야 하나’를 고민했죠. 그게 결국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음악이든 영화든, 아직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 단계의 사람들은 원래 대체 위험이 높아요. 다만 예전엔 ‘다른 사람’에게 밀렸다면, 이제는 ‘기계’가 경쟁자가 된 거죠. 반대로 이미 자기 색깔을 보여준 사람들은 AI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대체될 대상이 아니라,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쪽으로 이동할 거예요. 예를 들어 콘티 작업을 보조받거나, 캐릭터 아이디어를 탐색할 때 AI를 실험적으로 쓰는 식이죠. AI는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효율화 도구’가 되지, ‘위협’이 되지 않아요.
농업혁명, 증기기관, 산업혁명, 인터넷혁명 등 역사를 보면 늘 그랬어요. 지구를 행성 단위로 바꿔버리는 기술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항상 양극단으로 갈라지죠. 한쪽은 ‘이제 끝났다.’라며 두려워하고, 다른 한쪽은 ‘이게 전부를 바꿀 거야.’라며 환상에 빠져요. 그런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 ‘잘 모르겠는데 일단 갖고 놀아보자.’하는 사람들이 결국 살아남아요. AI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인생은 ‘대체 가능성과 싸우는 과정’이에요. 중요한 건 그 싸움의 본질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죠. 자신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세계관, 문체를 보여줄 수 있다면 AI는 적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 창작의 일부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AI 시대일수록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실패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내가 대체 불가능한 이유’를 발견하니까요.
Q. 작가님에게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평생학습을 ‘마르지 않는 덕질’이라고 말해요. 학습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오명을 좀 벗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궁금하기 전에 가르침을 받는 구조’ 속에 있었어요. 제도권 교육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누가 정해준 걸 외우고 시험을 보고, 그걸로 평가받는 구조요. 그러다 보니 ‘학습’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의무’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진짜 학습은 그 반대라고 봐요.
마음이 먼저 동해서 궁금해지는 거, ‘이건 왜 이럴까?’ 하는 그 순간부터가 진짜 학습의 시작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치킨에 빠졌어요. 그러면 ‘왜 어떤 브랜드는 더 바삭할까?’, ‘튀김옷이 이렇게 다르네?’ 이런 걸 찾아보게 되죠. 그게 바로 공부예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파고드는 거니까요. 저는 그게 진짜 배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기준에서 보면, 평생학습이 아닌 건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도,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찰하는 그 행위 자체가 평생학습이에요. 예를 들어 80살이 돼서 손주가 생겼다고 쳐요. 갑자기 ‘우유병은 왜 한 살 전에 떼야 하지?’, ‘첫째랑 둘째는 왜 성격이 이렇게 다를까?’하는 게 궁금해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발달심리학을 찾아보게 되겠죠. 전공할 때는 관심도 없던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읽게 되고요. 왜요? 사랑하는 손주 때문이니까요. 그게 바로 마음이 가는 공부예요.
결국 평생학습은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를 지켜보는 일’이에요. 체력은 줄어도, 마음이 가는 곳은 여전히 남아요. 그걸 따라가면 돼요. 그게 평생학습이죠. 반대로, 마음이 없는 공부라면 졸업하고 싶어질 거예요. 평생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싫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곧 평생학습’이라고 말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놓지 않고, 그걸 더 깊이 알고 싶어서 파고드는 것. 그게 결국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과 연결시키는 배움이거든요.

Q. 마지막으로, 평생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스토리텔링을 바라본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배우고, 창작하고, 나누는 과정을 삶의 일부로 여겨온 작가님에게 '배움'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
저는 누군가에게 책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대신 ‘요즘은 뭘 보고 있어요?’라고 물어보죠. 사람은 뭔가를 보고 있거든요. 그게 책이든, 유튜브든, 게임이든, 뭐라도요. 유튜브를 본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에요. 그걸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도 충분히 배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활자에서 멀어진 세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물어봐요. ‘활자에서 멀어지는 게 왜 불안하죠?’ 활자는 활자만 있었을 때 좋은 친구였어요. 세상이 활자 밖으로 확장됐는데, 왜 예전의 형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책을 읽느냐 마느냐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저급해지는 게 두렵다면, 왜 두려운지를 스스로 묻게 돼요.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은 편견을 덜고, 자기 마음을 이해하게 되죠. 저는 그게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이야기’라는 건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거든요. 지금은 AI도 창작의 도구로 쓰이잖아요. 저는 그걸 두려워하기보다 ‘이 레벨의 도구를 지금 어떻게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만들 때 AI를 대화 상대로 써보기도 하고, 콘티나 캐릭터 구상을 보조받기도 해요. 그게 지금 시대의 자연스러운 배움의 형태라고 생각해요.
배움이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일이라면, 스토리텔링도 그래요. 저는 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요. 그래서 다음엔 뭘 할지 저도 몰라요. 언젠가 할아버지가 돼서 게임 스트리머를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웃음) 게임도 좋아하고, 유튜브도 하니까요. 그때 제 마음이 거기에 가 있으면, 그냥 하는 거예요. 저는 배움이 그런 거라고 봐요. 계획보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 그게 제 스토리텔링이고, 제 평생학습이에요.
글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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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의 탐구생활] 이종범 웹툰 작가, 프로듀서, 유튜버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웹툰 작가, 대학교수, 유튜버, 드러머. 이종범 작가의 이력을 나열하면 “한 사람의 인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2011년 심리학을 소재로 한 웹툰 <닥터 프로스트>로 10년 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청강문화산업대에서 2천 명이 넘는 학생을 가르쳤다. 현재는 웹툰 프로듀서로서 <역대급 영지 설계사>, <오늘만 사는 기사> 등 굵직한 작품을 제작하고 있으며, 유튜브 채널 ‘이종범의 스토리캠프’를 통해 15만 명이 넘는 구독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모든 활동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 하나, ‘스토리텔링’이다. 만화를 그리든, 강의하든, 팀을 이끌든, 그는 언제나 ‘이야기’를 매개로 세상과 연결돼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멈추지 않는 ‘덕질’이 있다. 우주가 궁금하면 천문학 강의를 듣고, 소방관 친구를 만나면 소방차 출동 시간을 관찰하며, 드럼이 치고 싶으면 밴드를 결성해 공연을 다닌다. 그에게 공부란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가는 일이다.
“학습이라는 말이 가진 오명을 벗겨야 해요. 내가 스스로 궁금해서 파고드는 걸 우린 학습이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진짜 학습은 그쪽이에요.”
그가 말하는 평생학습은 ‘마르지 않는 덕질’이다. 나이 들어서도 손주의 행동이 궁금하면 발달심리학을 찾아보고, 은퇴 후에도 치킨이 좋으면 최고의 치킨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것. 마음이 이끄는 방향을 관찰하고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 그것이 그가 말하는 ‘배움의 본질’이다.
그의 삶의 태도를 보면 이종범이라는 존재는 작가이자 프로듀서이자, 평생학습자다. 덕질은 그의 에너지이자 철학이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파고들어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그 의미를 세상과 나누며 살아간다. 그에게 배움은 의무가 아니라 생존의 리듬이다.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몰입해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하는 일, 그것이 바로 이종범 작가가 말하는 ‘마르지 않는 덕질의 삶’이다.
Q. 만화가의 꿈은 언제부터였나요?
저는 사람이 첫 칭찬을 어디서 받느냐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영화 하는 친구들이나 음악 하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첫 성취감이나 첫 칭찬이 그쪽에서 나와서 그 길로 간 경우가 많거든요. 저한테는 그게 만화였어요.
어릴 때 어머니가 친구분이 하는 서점에 절 데려가곤 하셨는데, 제가 만화책 앞에 앉아 얌전히 보고 있으니까 너무 편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서점이 제 놀이터가 됐죠. 다섯 살짜리가 만화책을 그렇게 많이 보면 또래보다 잘 알 수밖에 없잖아요.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친구들이 ‘나도 그려줘!’ 하고 몰려왔고, 그 칭찬이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받은 첫 성취감이 결국 평생의 방향을 정해준 셈이죠.
Q.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만화를 좋아하셨는데, 공부도 잘하셨나 봐요. 명문대에 진학하신 걸 보면요. 특별한 비법이 있으셨나요?
어릴 때 동네에 만화를 그리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그분이 저한테 그러셨어요. ‘만화를 계속 그리고 싶으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래야 부모님이 너를 못 말린다’라는 거예요. 그 말이 정말 강하게 남았어요. 그래서 전 공부를 만화를 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어요. 공부를 잘하면 만화를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그 생각이 저를 움직였죠.
그런데 공부를 오래 할 수가 없었어요. 만화를 그려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빨리 잘하는 법’을 찾다가 효율적으로 공부할 방법을 찾게 됐어요. 전교 1등 하는 애들은 다 친구를 가르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따라 했어요. 이해 안 된다는 친구들에게 수학 문제나 개념을 설명하면서 공부했죠. 그러면 복습도 되고, 요점도 정리되고, 내가 뭘 모르는지도 알게 돼요.
그렇게 하다 보니 ‘아, 나는 설명을 잘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도 깨달았어요. 나중에 학원 강사를 오래 하게 된 것도 그 덕분이에요. 결국 공부든 만화든,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이해하는 게 진짜 공부라는 걸 그때 알았죠.
Q. 심리학 전공은 ‘덕질의 연장’이었다고 하셨죠. 대학 시절 어떤 배움이 지금의 작업에 영향을 줬나요?
심리학과를 노리고 간 건 아니에요. 그냥 인문학 전반이 궁금했어요. 문학, 철학, 사학, 사회학 뭐든 상관없었죠. 학부제였으니까 학점을 잘 받으면 전공을 정할 수 있었고, 저는 그냥 마음껏 배우고 싶었어요. 천문학과 수업도 들으러 다니고, 다른 학교 수업도 몰래 들어가 보고요. 공부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덕질’이었죠. ‘와, 우주 재밌다!’ 하면 파고들고, ‘이건 왜 이럴까?’ 하면 실험심리학을 설계해 보는 식이었어요. 그게 나중에 다 스토리의 재료가 되더라고요.
<닥터 프로스트>를 그릴 때 주인공이 상담가니까 상담심리를 새로 공부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전공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었어요. 결국 작품이 저를 다시 배우게 만든 거죠. 작가에게는 이런 일이 자주 있어요. 제 친구 중에 의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메디컬 웹툰 '중증외상센터'를 쓰거든요. 그 친구는 이비인후과 의사인데, 본인이 의사임에도 응급의학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려면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하더라고요. 전문가라도 작품을 위해서는 다른 분야를 새로 공부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심리학과 출신이지만 작품을 위해 다시 공부한 셈이죠.
Q. 20대에는 드러머로 활동하셨죠. 음악이 아니라 만화를 ‘직업’으로 택한 이유는요?
IMF 때 집이 완전히 무너졌어요. 진짜 끼니를 걱정해야 했죠. 독립해서 만화를 준비하는데 가난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가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고요. 대신 직업관이 아주 구체적으로 자리 잡았어요. 그때 깨달은 게 있어요. ‘내가 즐거우면 그건 취미고, 돈을 받을 만큼의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면 그게 직업이구나.’ 음악 할 땐 그냥 내가 즐거웠으니까, 공연이 잘 안돼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만화는 달랐죠. 돈을 받는 이상, 감동이든 재미든 독자에게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직업 윤리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학생들 가르칠 때 만화가 너무 좋고 재미있어서 한다고 얘기하면 “좋은 출발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거야.”라고 얘기해요. 거기에 뭔가가 더 더해져야 하거든요. 직업 윤리가 됐든 사명감이 됐든, 고통을 감수할 만한 몇 가지 이유가 더 필요하다고요. 실제로 만화를 너무 사랑하는 친구들부터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직업이라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Q. <닥터 프로스트>는 한국 웹툰계에서 심리학을 전면에 내세운 첫 작품으로 꼽힙니다. 작품을 기획할 당시 어떤 문제의식과 준비 과정이 있었고, 취재나 자문을 통한 ‘현실감’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딱 정해진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사실은 그 반대였어요. 당시 제안한 작품들이 계속 거절당하니까 ‘그럼 뭐 하지?’ 하다가 생각난 게 <닥터 프로스트>였어요. (웃음) 마침 제가 심리학을 전공했잖아요. 그런데 그때 한국 웹툰에는 전문 분야를 깊게 다루는 작품이 거의 없었어요. ‘틈새가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제가 원래 좋아하던 드라마나 영화 중에도 심리학을 다룬 작품이 많았어요. ‘이걸 만화로 풀면 어떨까?’ 싶었어요. 그렇게 도전하게 된 거예요.
저는 작품을 만들 때 ‘상상’보다 ‘취재’를 믿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실제로 듣고 관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닥터 프로스트>를 할 때도 정신의학과 자문 선생님들을 만나서 수없이 물어봤어요. 특정 증세에 대해 공부하고, 환자의 케이스를 듣고, 심리적 반응을 비교해 보면서 이야기를 쌓아갔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캐릭터가 살아나요. 설정이 아니라 진짜 사람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와요.
제가 어떻게 취재하는지를 설명 드릴게요. 예전에 제가 고등학생 때 과외하던 제자가 있었는데, 나중에 그 친구가 소방관이 됐어요. 결혼식에 초대하러 오길래 ‘소방관이라고? 그럼 물어봐야지!’ 싶어서 밥 먹으면서 계속 물어봤죠. ‘소방관은 일할 때 루틴이 어때요? 장비 망가지면 직접 사요? 근무 중엔 언제 쉬어요?’ 이런 식으로요. 들으면 들을수록 재밌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소방서가 보이면 가만히 못 있겠는 거예요. ‘저 차는 출동할 때 몇 초 걸릴까? 정말로 봉을 타고 내려올까?’ 관찰하게 되는 거죠. 그게 습관이 돼요.
저는 그렇게 ‘디깅’을 해요. 요즘 말로 하면 ‘덕질’이죠. 좋아서 파고드는 거예요. <닥터 프로스트>를 만들 때도 똑같았어요. 정신장애 증례집을 놓고 하나씩 읽으면서 ‘이건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궁금해지면 전문가에게 물어봤어요. 그러면 ‘이런 환자가 있었어요’, ‘이런 반응을 보였죠’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시거든요. 그 이야기가 쌓이면 어느새 서사가 되는 거예요.
저는 이야기의 재료가 결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료를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진짜 인간의 감정과 행동을 발견하는 게 핵심이에요. 독자가 ‘이 사람 진짜 있을 것 같다.’라고 느끼는 순간, 그게 현실감이고, 그게 스토리의 힘이죠.
Q. 한국이 만든 웹툰은 이제 세계적인 스토리텔링 산업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웹툰 프로듀서로 활동해 오시면서, 웹툰의 세계화 흐름을 직접 체감하셨을 텐데요. 작가님이 바라보는 웹툰의 진화 방향과, 다른 매체와 비교했을 때 웹툰만이 가진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K-웹툰’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저는 그 말이 좀 이상해요. 웹툰을 만든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굳이 ‘K’를 붙일 필요가 없거든요. ‘K-김치’ 같은 느낌이랄까요? 웹툰은 종주국이 한국이에요. 세로로 만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가 얼마나 굉장한 발명인지 한국 작가들이 제일 잘 알고 있어요. 저희가 만든 거니까요. 대중 매체 역사를 봤을 때 한국이 처음으로 발명한 최초의 콘텐츠가 웹툰이에요. 영화, 연극, 뮤지컬 모든 걸 다 봐도 한국이 만든 건 없거든요. 웹툰, 세로로 만화를 본다는 이 형식을 한국이 만든 거예요.
초기에는 작가 수가 적어서 다 모이면 밤새 토론했어요. ‘대사 풍선은 가운데 정렬이 좋을까?’ ‘기대감을 주려면 순서를 바꿔볼까?’ 이런 걸 밤새 실험했죠. 독자 반응을 보고 또 수정하고. 그렇게 쌓인 시행착오가 지금의 문법이 된 거예요. 우리 세대는 독자와 함께 문법을 만들어 온 세대예요. 그게 웹툰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Q.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고 ‘서울웹툰아카데미’로 옮긴 이유는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에서 6년간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학교는 정말 좋은 곳이에요. 학생들이 있고, 교육자로서 배울 것도 많아요. 하지만 전임교수는 겸직이 어렵고 활동이 제한돼요. 라디오를 나가도 허락받아야 하고, 책을 써도 보고해야 하죠. 저는 해보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니까 그게 답답했어요.
더 큰 이유는 ‘속도’였어요. 웹툰 시장은 너무 빠르게 변하거든요. ‘이런 수업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해서 과목을 만들면 교육청 승인에 2~3년이 걸려요. 그럼 이미 시장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죠. 그때 청강대에서 초기에 웹툰 교육을 만들었던 교수님들이 ‘이제는 제도권 밖에서 제대로 해보자’라며 모였어요. ‘학위는 못 줘도 작가는 키울 수 있다.’라는 철학 아래 새로운 기관을 세운 거예요. 그게 서울웹툰아카데미예요. 저도 그 얘길 듣고 바로 합류했어요. ‘대박작이 석사고, 차기작이 박사다’라는 말을 그때 처음 했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Q. ‘이종범의 스토리캠프’는 작가님에게 또 다른 무대가 되었습니다. 처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사람들이 ‘이야기’를 통해 연결된다는 확신은 어디서 왔나요?
저는 새로운 게 나오면 일단 해보는 타입이에요. 인스타도 그랬고, 트위터도 그랬어요. 유튜브도 마찬가지였죠. 왜 그랬냐면 사람들이 제 만화를 볼 텐데, 그럼 사람들이 뭘 하는지 직접 해봐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독자들이 어떤 플랫폼을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소통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유튜브도 처음엔 그런 이유로 시작했어요.
2014~16년쯤에 만화가 지망생 중에 도서·산간 지역에 있거나 물어볼 데가 없는 분들이 많잖아요. 유튜브 라이브로 질문을 받아보자 싶어서 시작했는데, 그걸 한 7~8년 했어요. 그런데 만화가 지망생만 오는 곳이기 때문에 채널이 커질 수가 없더라고요. 7년째 됐는데 여전히 구독자가 2만 5천 명이었어요. ‘나 유튜브 잘하는 것 같은데 왜 안 커지지?’ 싶었죠. 그래서 상업 유튜브를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내가 정말 잘하는 게 맞는지 확인도 하고 싶었고요. 그렇게 만든 게 지금의 스토리캠프예요.
여기서는 만화가 아닌 ‘이야기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자고 생각했죠. 알고 보니 사람들은 자기가 왜 어떤 이야기에 끌리는지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걸 대신 언어로 정리해 주는 게 제 역할이에요. ‘너 그 작품 좋아하는 이유, 이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해주는 거죠. 그 언어를 얻는 순간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이해하거든요. 그게 스토리캠프의 핵심이에요.
Q.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은 뭘까요?
좋은 이야기는 결국 ‘남의 삶을 살아보게 하는 것’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독자가 한 번쯤 다른 인생을 살아보게 만드는 거죠. 근데 그게 아무 삶이 아니에요. 어떤 삶을 살게 하고 싶은지가 제일 중요하죠. 독자를 어디에 태워서, 어디로 보낼 것인가. 이게 스토리텔링의 핵심이에요.
남의 삶이라는 게 꼭 행복하거나 멋진 삶만은 아니거든요. 고통스러운 삶일 수도 있죠. 사실 많은 고전들이 그런 방식이에요.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품들을 보면, 누가 그 인생을 직접 살아보고 싶겠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걸 따라가죠. 이유가 있으니까요. 그 고통을 겪는 데 합당한 이유,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으니까요. 그만큼 가치 있는 걸 경험하게 해주기 때문이에요. 요즘은 반대로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삶’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죠. 둘 다 좋아요. 중요한 건, 독자를 어디로 데려가고 싶은가예요.
캐릭터 얘기도 그 연장선이에요. 저희는 ‘이게 먹힌다’보다는 ‘이건 하면 안 된다’를 더 많이 고민해요. 피해 가야 할 지점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예를 들어 주인공은 악해도 돼요. 비열해도 되고, 폭력적이어도 괜찮아요. 그런데 짜증 나면 안 돼요. 비호감이 되면 안 되죠. 콘티 회의할 때 ‘야, 주인공이 나쁜 건 좋은데 동물 때리는 장면은 안 돼. 빼자’ 이런 얘기를 자주 해요. 그런 선이 있어요.
독자들은 원칙을 좋아해요. 악당이라도 원칙이 있으면 좋아하죠. 예를 들어 나쁜 짓을 해도 ‘나 지금 나쁜 짓 할 거야.’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캐릭터는 오히려 더 인기가 많아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든지, 자신만의 룰을 지킨다든지. 그게 매력이에요. 결국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그리는 거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의 조건이에요. 다른 삶을 체험하게 하되, 그 삶 속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이 있는 것. 저는 그게 이야기의 품격이라고 생각해요.
Q. ‘덕질이 곧 공부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실 때 어떤 방식으로 몰입하고, ‘덕질’의 과정을 창작으로 바꾸시나요?
저는 되게 정직한 원천을 갖고 있어요. 뭔가 번쩍 ‘이거 해야겠다!’ 하고 떠오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그냥 파고들다 보면 나오는 거죠. ‘이건 진짜 의미 있는 것 같은데’ 하는 순간이 와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구상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게 그 소재에 대한 덕질이에요. 덕질이 곧 공부거든요.
예를 들어 <닥터 프로스트>를 할 때도 처음엔 ‘심리학을 소재로 한 만화라니, 가능할까?’ 싶었어요. 그런데 정신장애 증례집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서 달라졌죠. 거기에는 실제로 존재했던 환자들의 사례와 증세, 감정의 흐름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저는 그걸 공부하고, 또 자문 선생님께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이 증상은 실제로 어떤 사람이 겪나요? 어떤 상황에서 이런 대화가 나와요?’ 그런 대화 속에서 한 사람의 이야기가 살아나더라고요. 그렇게 구체적인 인간의 결을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이야기가 된다.’라는 감각이 와요.
사람들이 종종 ‘이야기 만드는 건 영감이죠?’라고 물어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말해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삶을 이해하는 일이에요. 사람들이 왜 이 장면에 울고, 왜 이런 관계에 끌리는지를 생각하다 보면, 그게 심리학이에요. ‘사람이 어떤 삶을 못 살아서 이 이야기에 끌리는가?’, ‘어떤 결핍이 있어서 이 세계를 원하게 되는가?’, 그런 걸 들여다보는 과정이죠.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공부라고 말해요.
덕질의 핵심은 단순히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아니라, ‘왜 좋은가?’를 파고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SF물을 좋아한다고 하면, 그냥 보는 데서 끝나지 않아요. ‘왜 나는 이런 세계관이 좋지? 이 감정의 구조는 뭐지?’를 분석하죠. 그 과정을 거치면 나중에 제 작품 속에 그 ‘좋음’의 본질이 녹아들어요.
이야기를 만든다는 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기술’이에요.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곧 공부고, 공부가 곧 창작이라고 생각해요. 좋아하는 걸 깊이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이야기가 되거든요.
Q. 요즘은 어떤 분야든 AI가 화두입니다. AI 시대, 웹툰 작가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저는 모든 업계가 결국 똑같다고 봐요. AI가 문제라기보다, 아직 자신을 증명해 내지 못한 사람들이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는 시대인 거죠. 생각해 보면 AI가 등장하기 전에도 신인 작가들은 늘 대체 가능성 속에서 작업해 왔어요. 다른 작가에게 밀리거나, 작품이 묻히거나, 플랫폼이 바뀌는 순간에도요. 그때도 다들 ‘이 시장에서 내가 유일한 존재가 되려면 뭘 해야 하나’를 고민했죠. 그게 결국 지금도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음악이든 영화든, 아직 자신을 증명하지 못한 단계의 사람들은 원래 대체 위험이 높아요. 다만 예전엔 ‘다른 사람’에게 밀렸다면, 이제는 ‘기계’가 경쟁자가 된 거죠. 반대로 이미 자기 색깔을 보여준 사람들은 AI를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들은 대체될 대상이 아니라, AI를 창작 도구로 활용하는 쪽으로 이동할 거예요. 예를 들어 콘티 작업을 보조받거나, 캐릭터 아이디어를 탐색할 때 AI를 실험적으로 쓰는 식이죠. AI는 그들의 손에 들어가면 ‘효율화 도구’가 되지, ‘위협’이 되지 않아요.
농업혁명, 증기기관, 산업혁명, 인터넷혁명 등 역사를 보면 늘 그랬어요. 지구를 행성 단위로 바꿔버리는 기술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항상 양극단으로 갈라지죠. 한쪽은 ‘이제 끝났다.’라며 두려워하고, 다른 한쪽은 ‘이게 전부를 바꿀 거야.’라며 환상에 빠져요. 그런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 ‘잘 모르겠는데 일단 갖고 놀아보자.’하는 사람들이 결국 살아남아요. AI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인생은 ‘대체 가능성과 싸우는 과정’이에요. 중요한 건 그 싸움의 본질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죠. 자신이 가진 고유한 이야기, 세계관, 문체를 보여줄 수 있다면 AI는 적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 창작의 일부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AI 시대일수록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실패해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내가 대체 불가능한 이유’를 발견하니까요.
Q. 작가님에게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요?
저는 평생학습을 ‘마르지 않는 덕질’이라고 말해요. 학습이라는 말이 갖고 있는 오명을 좀 벗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우리는 ‘궁금하기 전에 가르침을 받는 구조’ 속에 있었어요. 제도권 교육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누가 정해준 걸 외우고 시험을 보고, 그걸로 평가받는 구조요. 그러다 보니 ‘학습’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의무’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진짜 학습은 그 반대라고 봐요.
마음이 먼저 동해서 궁금해지는 거, ‘이건 왜 이럴까?’ 하는 그 순간부터가 진짜 학습의 시작이에요. 예를 들어 내가 요즘 치킨에 빠졌어요. 그러면 ‘왜 어떤 브랜드는 더 바삭할까?’, ‘튀김옷이 이렇게 다르네?’ 이런 걸 찾아보게 되죠. 그게 바로 공부예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파고드는 거니까요. 저는 그게 진짜 배움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기준에서 보면, 평생학습이 아닌 건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도,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관찰하는 그 행위 자체가 평생학습이에요. 예를 들어 80살이 돼서 손주가 생겼다고 쳐요. 갑자기 ‘우유병은 왜 한 살 전에 떼야 하지?’, ‘첫째랑 둘째는 왜 성격이 이렇게 다를까?’하는 게 궁금해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발달심리학을 찾아보게 되겠죠. 전공할 때는 관심도 없던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을 읽게 되고요. 왜요? 사랑하는 손주 때문이니까요. 그게 바로 마음이 가는 공부예요.
결국 평생학습은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느냐를 지켜보는 일’이에요. 체력은 줄어도, 마음이 가는 곳은 여전히 남아요. 그걸 따라가면 돼요. 그게 평생학습이죠. 반대로, 마음이 없는 공부라면 졸업하고 싶어질 거예요. 평생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싫을 거고요.
그래서 저는 ‘덕질이 곧 평생학습’이라고 말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놓지 않고, 그걸 더 깊이 알고 싶어서 파고드는 것. 그게 결국 나를 성장시키고, 세상과 연결시키는 배움이거든요.
Q. 마지막으로, 평생학습이라는 관점에서 스토리텔링을 바라본다면 어떤 의미일까요? 배우고, 창작하고, 나누는 과정을 삶의 일부로 여겨온 작가님에게 '배움'은 어떤 형태로 남아 있나요?
저는 누군가에게 책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대신 ‘요즘은 뭘 보고 있어요?’라고 물어보죠. 사람은 뭔가를 보고 있거든요. 그게 책이든, 유튜브든, 게임이든, 뭐라도요. 유튜브를 본다고 해서 나쁜 게 아니에요. 그걸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도 충분히 배움의 한 형태라고 생각해요.
활자에서 멀어진 세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저는 오히려 이렇게 물어봐요. ‘활자에서 멀어지는 게 왜 불안하죠?’ 활자는 활자만 있었을 때 좋은 친구였어요. 세상이 활자 밖으로 확장됐는데, 왜 예전의 형식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책을 읽느냐 마느냐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봐요. 저급해지는 게 두렵다면, 왜 두려운지를 스스로 묻게 돼요.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은 편견을 덜고, 자기 마음을 이해하게 되죠. 저는 그게 배움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리텔링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이야기’라는 건 세상을 이해하는 또 다른 방식이거든요. 지금은 AI도 창작의 도구로 쓰이잖아요. 저는 그걸 두려워하기보다 ‘이 레벨의 도구를 지금 어떻게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만들 때 AI를 대화 상대로 써보기도 하고, 콘티나 캐릭터 구상을 보조받기도 해요. 그게 지금 시대의 자연스러운 배움의 형태라고 생각해요.
배움이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가는 일이라면, 스토리텔링도 그래요. 저는 늘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가요. 그래서 다음엔 뭘 할지 저도 몰라요. 언젠가 할아버지가 돼서 게임 스트리머를 하고 있을 수도 있죠. (웃음) 게임도 좋아하고, 유튜브도 하니까요. 그때 제 마음이 거기에 가 있으면, 그냥 하는 거예요. 저는 배움이 그런 거라고 봐요. 계획보다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 그게 제 스토리텔링이고, 제 평생학습이에요.
글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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