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25 평생학습 대상 김영진 씨_매일 3시간씩 자투리 시간에 공부했어요.

2026-01-06

[인터뷰] 제2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국무총리상 김영진 씨

 

3787ad6095b29.jpg

지난 12월 8일, 제2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에서 김영진(61세) 씨가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그는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평생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어려운 형편 속 야간 공업고를 졸업한 뒤 현장 노동자로 시작해 100여 개가 넘는 기술자격과 학사·석사 학위, 그리고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의 인생 궤적은 그야말로 한 사람의 집념이 어떻게 평생학습으로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가난한 장남, 전기를 만나다

b0653a3b43bdc.jpg

김영진의 어린 시절은 팍팍했다. 경북 의성의 빈농 집안, 열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이미 일곱 남매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원래 우리가 10명이었는데 7명 먼저 보내고 지금은 3명 남았어요. 모친이 아직까지 살아 계시고 101세입니다.”

 

가난과 상실이 겹친 집안에서 장남이란, 어린 나이에도 ‘버텨야 하는 사람’을 의미했다. 그를 살린 것은 우연히 찾아온 전기였다.

 

“중학교 2학년 때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는데, 그 뒤로는 마을 자잘한 전기 공사를 제가 다 했어요. 이 집도 해주고 저 집도 해주고. 딱히 공부한 것도 아닌데 손재주가 좋았는지 전기 다루는 게 재미있었어요.

 

전기를 ‘직업’이 아니라 ‘재미있는 일’로 먼저 경험한 소년은, 자연스럽게 대구의 야간 공업고 전기과를 선택했다. 낮에는 아르바이트로 집에 돈을 보태고, 밤에는 공부를 하는 주경야독 끝에 그는 졸업 2주 전 현대중공업 전기 기술직에 합격했다. 당시 군 미필자가 기간산업체에서 병역특례 혜택을 받으려면 전기 직종의 경우 전기기능사 자격증이 필수였다. 그가 재학 중 각고의 노력 끝에 땄던 자격증 한 장이 취업과 병역특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해줬다. 그에게 기술은 가난을 벗어나는 유일한 사다리였던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0899ffc61e227.jpg

현대중공업에서의 첫 20년은 철판과 용접 가스, 먼지가 가득한 선박 내부에서의 시간이었다.

 

“선박 안에서 전기 공사 작업을 하면서 자욱한 용접 가스와 먼지 속에서 여름엔 더위, 겨울엔 추위와 싸우면서 위험하고 힘든 일을 반복했죠.”

 

입사 6년째인 1988년, 조선업계에 불황이 닥쳤다. 구조조정으로 많은 동료가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그에게는 전기기능사 자격증이 있었다. 엔진사업본부에서 전기기능사 자격증 소지자를 조건으로 인력을 받아줬다. 위기가 기회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엔진 가공공장은 선박 건조 현장보다 작업환경이 훨씬 나았다. 여기서 전기설비 유지보수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되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더 높은 등급의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는 자신을 ‘대단한 꿈이 있어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대로는 안 되겠다”라는 절박함 때문에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공부는 그에게 취미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었다.

 

‘집념·도전·노력’으로 만든 하루 3시간

f354bc01d52e3.jpg

그 후 본격적인 자격증 공부가 시작되었다. 첫 목표는 전기공사 산업기사였다. 고졸인 그에게 전문대학 수준의 공부는 쉽지 않았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해야 했다. 가장 힘든 건 졸음과의 싸움이었다.

 

“1987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3시간씩 자투리 시간에 공부했어요. 졸음이 오면 찬물에 발을 담근 채, 좌우명인 ‘집념, 도전, 노력’을 외치면서 버텼습니다.”

 

하루 3시간은 숫자로 보면 작아 보이지만, 1년이면 1,000시간이 넘고 10년이면 1만 시간을 훌쩍 넘는다. 그는 그 시간을 전기·전자·통신·기계·소방 등으로 분야를 넓혀 가며 쌓았다.

 

fc4e9409201c0.jpg

결과는 기록으로 남았다. 전기기능장, 전자기능장, 기술지도사, 전기기사, 소방설비기사, 전기·소방 특급 감리원 등 103개의 기술자격을 취득전국 최다 공인 기술자격 보유자가 되었다. 1999년 제26회 기능장 시험에서는 2,928명 중 최고점으로 전기공사기능장 전체 수석에 올랐고, ‘기술왕’으로 불리며 TV와 신문에 소개되었다.

 

“36살인가? 공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때 기사 자격증 따고 기능장 따고 이럴 때예요. 등산으로 치면 5부 능선 가기가 힘들거든요. 근데 5부 능선 가면 또 산을 오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단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서 포기하고 더 이상 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저한테 36살이 5부 능선이었어요. 그 이후로도 수많은 자격을 땄지만, 그때부터는 재미를 느낀 거죠.”

 

절박함으로 버티던 공부가 성취와 재미로 전환되자, 평생학습은 그의 삶 그 자체가 되었다.

 

40년에 걸친 학위, “50대가 공부하기 제일 좋은 때”

980f0302c3b58.jpg

“고등학교 졸업하고 20년 있다가 학점은행제로 학사 학위를 받고, 또 20년 있다가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고졸에서 석사까지 도합 40년이 걸린 셈입니다.”

 

38세에 전기공학 학사, 58세에 울산대학교 산업대학원 에너지관리 전공 공학석사.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저녁에 수업 마치면 11시입니다. 집에 오면 11시 반이고, 씻고 자면 자정 넘어야 잠자리에 들어요. 다음 날 현대중공업에 출근하려면 새벽 5시 40분에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원 2년이 한순간처럼 지나갔다”라고 말한다. 힘들었지만, 공부는 그의 자존감을 세워 주었다. 특히 석사는 ‘학력 콤플렉스’와의 싸움이기도 했다.


bdd39543ae3c5.jpg

“계속 가르치는 업무를 하다 보니, 학력 때문에 항상 기가 죽는 부분이 있었어요. 석사 학위를 딱 가지고 있으니까, 이제는 학력에 대한 콤플렉스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이 들어서 공부가 되겠냐?’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공부는 50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할 수 있는 신체적인 환경이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폴리텍 야간 과정에 50대 중반 학생들이 있는데, 젊은 사람들은 10분을 못 앉아 있어요. 그분들은 1~2시간씩 앉아 있습니다. 집념에서 경쟁이 안 돼요.”

 

실제로 그가 가르치는 폴리텍대학 야간과정에는 55세 현직 경찰이 있다. 그는 10개월 만에 전기기사 자격증에 1등으로 합격했다. 같은 반 50대 학생 4명 모두 성적이 좋다. 그가 말하는 평생학습의 조건은 ‘머리’보다 ‘집념’에 가깝다.

 

평생학습이 만든 ‘전화위복’

18662dc7f85ac.jpg

56세 무렵, 조선 경기 불황으로 현대중공업은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많은 동료가 회사를 떠나며 앞날을 걱정할 때, 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수십 년 쌓아 온 자격증과 공부가 있었다.

 

“조선 경기 불황으로 어쩔 수 없이 희망퇴직을 했습니다. 그런데 평생학습의 결과물인 다수의 자격증 덕분에 퇴직 1주일 만에 배터리솔루션즈에 입사해 전화위복이 됐습니다. 평생학습으로 준비를 해두면, 회사가 나를 버려도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합니다.

 

평생학습으로 쌓아 온 기술자격과 현장 경험 덕분에 연 매출 1,156억 원, 종업원 87명 규모의 중견기업에서 기술이사로 승진해 5년째 현장을 이끌고 있다.

 

현장에서의 성과와 꾸준한 자기 계발은 곧바로 또 다른 결실로 이어졌다. 2024년 9월, 김영진 씨는 대한민국 명장(전기직종)에 선정됐다. 94개 직종 가운데 직종별 최고 전문가를 뽑은 뒤, 그중 11등 안에 들어야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리로, 1차부터 4차까지의 시험과 인성 평가, 품평을 거쳐 최종 명단에 들었다. 2011년 동탑산업훈장에 이어 두 번째로 받은 최고의 영예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평생학습’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번 정점을 찍었다. 2025년 12월, 그는 제22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최고상인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조선소 현장 노동자에서 시작해 중견기업 기술이사이자 대한민국 명장, 그리고 국가가 인정하는 평생학습 실천자로 서기까지, 평생학습은 그에게 ‘두 번째 커리어’를 넘어 인생 2막 전체를 화려하게 열어준 셈이다.

 

“가르치는 일은 사명입니다”

 

0322486240262.jpg

현대중공업에서의 후반 20년은 직업훈련 교사로 보낸 시간이었다.

 

“20년은 현장에서 있었고, 20년은 남을 가르치는 직업훈련을 했습니다. 가르치는 일은 사명감이 없으면 못 합니다. 사명감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장 보람된 일이죠.”

 

현대중공업 사내 기술교육원에서 그는 약 3,000명의 기술 연수생을 양성해 취업률 90%를 기록했다. 전기과는 ‘실무를 가장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다’라는 소문이 나 경쟁률이 10대 1을 넘기도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이들을 짧은 기간에 성장시킬 수 있었을까.

 

그는 자신의 방법을 “스파르타식이지만 애정을 담은 방식”이라고 표현한다. 학생들이 “내가 이 말을 들을 만하다”라고 납득할 수 있을 만큼, 그는 먼저 자신의 노력과 진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혹독한 훈련 속에서도 제자들은 그를 ‘가장 믿을 수 있는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2cd965c91456f.jpg

“자격증 시험에는 쉬운 문제가 50%입니다. 어려운 것부터 붙잡지 말고 쉬운 것 위주로 공부하라고 말합니다. 자신감이 생기면 어려운 것도 풀 수 있게 되니까 너무 어려운 문제로 끙끙 앓지 말고 쉬운 문제부터 도전하라고 하지요.

 

지금도 그는 한국폴리텍대학 울산캠퍼스에서 산학 겸임 교수로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직접 집필한 실무형 교재로 전기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기산업기사 취득률 40%(전국 1위), 취업률 84.5% 달성에 기여해 학교가 3년 연속 취업 성과 우수대학에 선정되는 데 힘을 보탰다.

 

19권의 책, 4천 시간의 기술 나눔

652d86eb5d9a1.jpg

김영진의 평생학습은 강의실을 넘어 책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전기 기술 관련 저서를 19권 집필해 ISBN을 받고 출간했습니다. 사진 찍고 편집하고, 디자인까지 제가 다 했습니다.”

 

현장 사진, 고장 사례, 해결 절차를 꼼꼼히 정리한 책들은 폴리텍대학과 마이스터고, 직업훈련 기관에서 실무 교재로 활용되고 있다. 그는 요즘도 공장 자동화 관련 책 두 권을 집필 중이다.

 

그의 나눔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직업전문학교 컨설팅 328시간, 학생 진로 멘토링 314시간, 장애인 시설 보수 및 봉사 550시간, 정신지체장애인 시설 정기 후원 13년, 중소기업 기술 전수 2,266시간 등, 4천 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기술 나눔’에 쓰였다. 이 활동으로 그는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 및 ‘우수산업현장교수’로 선정되었다.

 

f54b77a64e146.jpg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의 ‘오픈 소스’ 철학이다.

 

“제가 힘들게 만든 양식, 보고서를 다 오픈해 버립니다. 제가 그걸 하나 만들기 위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한두 시간 만에 쉽게 하면, 그게 제 보람입니다.”

 

많은 전문가가 자신의 노하우를 감추려 할 때, 그는 “노하우 공개가 나의 보람”이라고 말한다. 평생학습의 끝은 ‘나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함께 쓰는 지식’이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평생학습은, 저승 가서도 공부하는 마음”


 f1eff8a5f1566.png 

마지막으로 평생학습의 의미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평생학습은 끝이 없는 공부입니다. 저승에 가서도 공부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까지라면 ‘공부 예찬’에 가깝지만, 그는 곧바로 방향을 바꾼다.

 

4eb6233f0f879.jpg

“근데 자기만의 공부만 하면 그건 학습이 아니죠. 배운 만큼 사회에 기여하고,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진짜 평생학습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자신이 만든 양식과 보고서, 교재를 산업인력공단 게시판과 강의 현장에 아낌없이 올려둔다. 남들이 “경쟁력이 줄어든다”라고 만류해도, 그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자신의 보람이라고 말해버린다.

 

경북 산골에서 전선 몇 가닥을 만지던 소년은, 이제 수십 년의 공부와 나눔 끝에 대한민국 명장으로 서 있다. 김영진의 삶은 거창한 계획보다, 하루 3시간의 집념과 “배운 것은 나누어야 한다”라는 믿음이 평생학습을 어떻게 완성해 가는지 보여주는 살아 있는 사례다.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


가슴 따뜻한 인터뷰, 평생교육 생생한 소식들... 

매달 메일로 편하게 받아보세요.

▶이음레터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