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천문학자 이명현 박사_ 평생학습은 평생 배우는 게 아니라 평생 궁금해지는 일

2026-02-03

[이음의 탐구생활] 천문학자이자 과학책방 ‘갈다’ 대표 이명현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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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천문학자는 몇 명이나 될까? 이명현 박사가 대학에 입학하던 1980년대 초, 전국의 천문학과는 서울대와 연세대 딱 두 곳뿐이었고, 그가 입학할 당시 학과에는 교수 3명뿐이었으며, 그가 속한 학년은 전국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인원이 천문학을 전공하던 시기였다. 지금 국내 천문학자는 대략 3,400명, 아마추어 천문가는 5~6만 명으로 추산되니, 그는 말 그대로 한국 현대 천문학과 함께 자라온 1세대 우주 과학자다.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한 그는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교에서 천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 후에는 네덜란드 캅테인 천문학연구소 연구원,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연세대학교 천문대 책임연구원과 천문우주학과 연구교수를 지내며 수십 년 동안 우주를 연구해 왔다. 전파망원경으로 은하와 외계 은하를 관측하고, 우주론과 외계 지적 생명체 탐색 프로젝트(SETI)에 참여하는 등 전형적인 연구자의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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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2010년경 갑작스러운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 기능의 절반 이상을 잃으면서, 연구실에서 한발 물러나 과학 커뮤니케이터이자 과학 문화 기획자의 길로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현재 그는 과학책방 ‘갈다(갈릴레오+다윈)’의 대표로, 국내외에서 강연과 북토크, 과학 여행을 기획하고, 미국 METI International 자문위원과 국내 SETI 관련 활동을 통해 여전히 우주와 외계 생명 연구의 논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이명현의 별 헤는 밤』,『이명현의 과학책방』,『외계생명체 탐사기』,『지구인의 우주공부』 등 여러 권의 과학 에세이와 교양서를 쓰며, 오로라와 개기일식을 따라 지구 곳곳을 누비는 과학 여행 기획자, 어른들을 위한 과학책 독서 모임 진행자, 과학과 인문학을 엮어 이야기하는 강연자로도 바쁘게 활동 중이다.


어릴 때 과학 잡지에서 본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 모집 공고 한 줄에 이끌려 초등학교 2~3학년 때 망원경을 들고 별을 보러 나가던 소년은, 그렇게 천문학자, 연구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서점 대표, 여행 기획자를 차례로 거치며 평생을 별과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은 "평생학습의 강박을 버리고, 마음이 가는 것을 따라가라"라고 말한다.


시대의 공기 속에서 별과 친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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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릴 때부터 별을 좋아하셨다고 하는데, 그 꿈을 어떻게 계속 유지하셨나요?

어릴 때는 누구나 뭔가 하나에 빠져 있잖아요. 저한테 그게 우연히 ‘별’이었어요. 초등학교 때 과학 잡지에서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가입했습니다. 주말마다 모여 망원경을 들고 밤하늘을 보러 나가고, 천체 사진을 찍고, 다른 과학 동아리 친구들과 섞여 지내다 보니, 별은 혼자 조용히 보는 대상이라기보다 함께 노는 친구처럼 느껴졌죠.

 

시대 분위기도 컸어요. 1969년에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제가 어릴 때는 그 여파가 남아 있던 시기라, 반 아이들 장래 희망 설문을 하면 70명 중 60명은 과학자, 그중 대부분이 천문학자나 우주비행사를 적을 정도였거든요. 왜 좋아했냐고 물으면 별이 특별해서라기보다, 그 시대와 친구들, 동아리의 공기 속에 녹아서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된 거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것 같아요.

 

천문학이라는 꿈을 현실로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비결’이라기보다, 그 분위기 속에 그냥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가입한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를 중·고등학교까지 쭉 했고, 그 동아리 친구들 대부분이 실제로 천문학·물리학·화학 전공으로 진학했거든요. 좋아하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천문학을 전공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겨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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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어린 시절 내내 별에 빠져 지내셨나요?

꼭 그렇지는 않았어요. 천문 동아리 말고도 보이스카우트, 문예부, 신문반, 교지 편집 같은 걸 초·중·고 내내 했어요. 처음에는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자주 가다가, 선생님 권유로 문예부와 교지 편집에 참여하게 됐고, 그게 경력이 되어 중·고등학교에서도 계속 교지와 신문을 만들게 됐죠.

 

보이스카우트도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냥 한번 해볼까?” 하고 시작했는데, 대학 때까지 계속 이어졌고요. 특히 사춘기 때는 거의 문학만 읽었다고 해도 될 정도예요. 이광수, 채만식, 이청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집으로 전부 읽는 ‘전작 읽기’를 했고, 시도 김소월 등 당시 알려져 있던 시인들의 작품을 가능한 한 빠짐없이 찾아 읽으려고 했죠.

 

그때 쌓인 독서 경험이 지금도 글을 쓰거나 새로운 분야를 공부할 때, 어떻게 공부하면 되는지에 대한 감각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별도 보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친구들과 야영도 가던 게 다 연결돼 있었던 거죠.


Q. 막상 천문학과에 가셨을 때 어떠셨어요? 꿈에 그리던 별을 실컷 볼 수 있었나요?

아뇨. 전혀 달랐습니다. 저희가 하던 건 아마추어 천문, 그러니까 취미 활동이었거든요. 망원경 만들고, 천체 사진 찍고, 별자리를 외우는 걸 상상하며 들어갔는데, 실제로는 일반물리학·일반화학·미분·적분 같은 정통 이과 과목이 줄줄이 이어졌어요. 동기 셋이 같은 과로 입학했는데, 셋 다 “우리는 별 보러 왔는데 왜 수학과 물리만 하냐?”라며 크게 좌절했죠.

 

별을 좋아하는 마음과, 그걸 평생의 직업으로 삼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고 느꼈어요. 동물을 좋아하는 것과 수의사가 되는 게 다르듯이요. 그럼에도 끝까지 한 이유는 기본적으로 ‘내가 좋아서 고른 길’이라는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연구라는 게 거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주어진 질문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 만큼 쪼개서 하나씩 풀어가는 일입니다. 그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박사 논문이 되고, 연구자의 삶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습니다.


전문 언어를 일상 언어로 번역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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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금은 연구자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더 알려져 계시는데, 일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제가 직접 연구하는 생산자였다면, 지금은 다른 사람들이 해놓은 연구를 정리해 해설하고 전하는 ‘지식의 유통자’에 가깝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전문 언어를 일상 언어로 통역하는 사람이죠. 과학은 점점 더 세분되고, 이제는 과학자들끼리도 서로 분야를 잘 모를 정도거든요.

 

사람들이 제 설명을 듣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꾸준히 훈련을 했어요. 절대 ‘타고난 재능’은 아닌 것 같아요. 전문 용어를 먼저 꺼내버리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단어 자체가 일종의 장벽이 되거든요. 예를 들어 “블랙홀이 있습니다”라고 시작하면, 벌써 ‘나와는 상관없는 어려운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먼저 “빛조차 빠져나오지 못할 정도로 중력이 센 공간이 있다”라고 풀어서 설명하고,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진 뒤에 “그걸 블랙홀이라고 부른다”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리고 강연을 준비할 때 제 나름의 원칙이 있어요. 준비는 100을 하되, 발표 자료에는 80만 담고, 실제 현장에서는 그중 60 정도만 말하자. 그러면 말하지 않은 20~40이 제 안에 여유로 남고, 질문이 들어와도 제가 확실히 알고 있는 선 안에서 충분히 대응할 수 있죠. 핵심은 ‘모르는 걸 아는 척 늘어놓지 말고, 아는 것을 충실하게 전달하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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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학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할 때, 어떤 조언을 해주시나요?

예전 방식대로라면 “먼저 박사까지 해라, 그다음에 대중에게 말해라”였겠죠.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박사까지 가려면 10년, 15년이 걸리는데, 그 사이에 시대도, 플랫폼도, 사람들의 관심도 다 바뀌거든요. 그래서 저는 “관심이 있으면 일단 지금 당장 시작해라”라고 말해요.

 

다만 몇 년 활동해 보고 나서,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때 다시 학교에 돌아가 2년 정도 석사를 하든, 다른 분야를 공부하든, 중간중간 ‘충전의 시기’를 넣으라고 하죠. 평생 하나의 전공만 붙잡고 가는 시대가 아니라, 현장과 공부를 왔다 갔다 하는 순환 구조가 더 현실적인 길이라고 봅니다.

 

Q. 요즘 강연장 분위기는 어떤가요?

확실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부모님들이 아이들 공부를 위해 강연장에 오는 경우가 많았고, 뒷자리에서 대충 듣는 분위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부모님들이 오히려 더 집중해서 듣고, 더 재미있어하십니다. 과학이 ‘아이들 성적을 위한 것’에서 ‘어른들이 자기 재미로 찾아오는 것’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과학책방 ‘갈다’에서 오로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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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학책방 ‘갈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 공간은 원래 저희 가족의 집이었어요. 부모님이 한동안 비폭력대화센터가 사용하도록 빌려주셨는데 그분들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면서 제가 이 공간을 사용하게 됐어요. 그때 마침 제주도로 출장을 가는 길에 장대익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공간을 과학 관련 공간으로 써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서울로 돌아와 이정모 관장, 정재승 교수, 김상욱 교수 등과 함께 모여 상의하다 나온 결론이 책방이었습니다. 다들 어릴 때 한 번쯤 ‘책방 주인’을 꿈꿨던 사람들이기도 했고요. 처음 아이디어를 낼 때는 대여섯 명이었는데,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합류했어요.

 

이름도 금세 지었어요. 다들 의견을 내던 중에 모임에 늦었던 장대익 교수가 문자로 ‘갈다’를 제안했거든요. ‘갈아엎다’, ‘파내다’라는 우리말 동사갈다이면서 갈릴레오와 다윈의 성을 겹쳐 놓은 이름이라는 뜻도 있다면서요. 투표를 통해 갈다가 제일 많은 표를 얻어서 결정된 거예요. 그렇게 과학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유튜버 등 100여 명이 출자한 ‘주식회사 갈다’가 됐습니다.

 

그런데 책방은 우리가 하는 많은 활동 중 하나일 뿐이고, 사실은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람들이 서로 협업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플랫폼에 더 가깝습니다. 과학책 북토크, 독서 모임, 과학 여행 등을 열고 과천과학관이나 여러 국제 연구소와 협업하기도 해요. 과학을 우리 생활 가까이 끌어들이는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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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로라 여행도 하신다고요?

요즘에는 주로 오로라와 개기일식을 중심으로 한 과학 여행을 많이 합니다. 사진 속 오로라는 색감이 아주 또렷하지만, 실제 눈으로 보면 사진만큼 선명한 색은 아닙니다. 대신 온 하늘에 입체적으로 펼쳐지고 끊임없이 모양이 바뀌는 모습을 몸 전체로 느끼게 되죠. 색깔의 강도보다 규모와 입체감, 움직임이 주는 감정이 훨씬 큽니다.

 

오로라 앞에서 우는 분들도 많아요. 사람들은 머릿속으로는 알록달록한 하늘을 상상하면서 오는데, 막상 가서 보면 상상과 현실이 어긋나는 지점에서 오는 감정, 그리고 ‘내가 지금 지구라는 행성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이 현상을 보고 있다’라는 실감이 합쳐지면서, 어떤 분들은 그냥 소리도 못 내고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Q. 국내에서는 어떤 과학 여행을 하시나요?

국내 과학 여행도 1년에 열댓 번 정도 하는데 나로우주센터와 발사장, 여러 천문대, 과학 시설 등을 소규모로 찾아다니는 투어예요. 참가자들은 직접 현장을 보고, 연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뉴스로만 보던 과학’이 실제로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체감하게 됩니다.


유한성을 자각하고, 더 너그러워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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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심근경색을 겪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큰 병을 겪은 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셨나요?

아닙니다. 저는 사춘기 때 이미 삶과 죽음, 유한성에 대해 나름 결론을 내렸고 그 틀 안에서 계속 살아왔거든요.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무렵까지 죽음, 나는 누구인가 같은 질문으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결국 ‘죽음은 피할 수 없고, 삶은 유한하다’라는 너무 당연한 결론에 도달했죠. 그 이후로 모든 것은 미완으로 남을 수밖에 없으니,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병은 그 생각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병 이후로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졌어요. 누가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혀도, 조금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어차피 너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 이상하게 분노보다는 연민이 앞섭니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분노하지 않게 되었고요. 대신에 정말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는 미련을 많이 두지 않게 됐어요. 굳이 서로를 바꾸려 애쓰기보다, 맞는 사람들과 충실하게 지내고 안 맞으면 놓아주는 편을 택하게 되더라고요.

 

강의할 때도 이 유한성이 작동해요. 강의 2시간, 이건 아주 유한한 시간이잖아요. 그 안에 모든 걸 다 집어넣으려고 하면 서로 괴롭습니다. ‘이 시간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머지는 미련 없이 내려놓자’라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죠. 삶 전체도 비슷한 것 같아요. 모든 걸 다 할 수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것, 지금 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포기하는 식입니다.


도파민이 이끄는 공부, 형식을 낮추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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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과학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시작하라고 조언하시나요?

요즘 같으면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우주먼지 현자타임즈’를 하는 주범 박사, ‘안될과학’을 하는 항성 씨 같은 친구들의 채널은 최신 천문학 논문과 우주과학 이슈를 아주 친절하면서도 재미있게 풀어내거든요.

 

처음부터 책으로 들어가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도파민, 그러니까 재미와 호기심이 먼저 나오는 경험이에요. 그게 있어야 계속해서 찾아보게 되거든요. 유튜브로 재미를 느끼고 나면, 어느 순간, 조금 더 깊이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데, 그때 책으로 넘어가면 됩니다.

 

책으로 넘어가고 싶어졌을 때는 청소년용 과학 교양서를 많이 권해요. ‘~가 궁금한 10대’ 같은 시리즈나,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같은 시리즈들이요. 겉으로는 청소년 대상이지만, 내용은 성인 과학 교양서와 거의 같고, 다만 표현과 서술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은 정도예요. 어른들에게도 학습 만화나 그래픽 노블로 시작해도 된다고 봅니다. 어떤 분야든 처음에는 형식을 낮추는 게 중요해요. 중요한 건 첫 경험에서의 즐거움이지, 가장 두꺼운 전문서를 읽는 게 아니니까요.


한 시기에 한 가지를,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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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평생학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평생학습’이라는 말에 너무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국의 제도권 교육은 대체로 ‘궁금해지기 전에 가르침을 받는 구조’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습’이라는 단어에 자연스럽게 ‘의무’, ‘해야 하는 것’이라는 느낌이 붙어 버렸습니다.

 

저는 진짜 학습은 그 반대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마음이 먼저 움직여서 ‘이건 왜 이럴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는 순간이 출발점이에요. 요즘 치킨에 빠져 있다면, ‘왜 어떤 브랜드는 더 바삭하지?’, ‘튀김옷이 왜 이렇게 다르지?’를 찾아보는 것도 공부입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파고드는 것, 그게 공부죠.

 

사람이 10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그 긴 시간을 동일한 속도로, 같은 방식으로 공부하면서 버티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40대, 50대, 60대처럼 10년 단위로 나눠서 ‘이 시기에는 이 테마를 한번 깊게 파보자’라고 정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모든 걸 다 갖춰야 한다’가 아니라, ‘한 시기에 한 가지를 제대로 집중해서 즐겨본다’는 감각인 것 같아요.

 

저도 한 시기에 하나를 깊게 파고들고, 그걸 오래 우려먹다가, 또 다른 시기에 또 한 번 집중해서 공부하는 편입니다. 사춘기 때는 문학에 빠져 살았고 대학과 유학 시절에는 천문학 공부에 몰입했죠. 요즘은 주로 미술과 문학을 봅니다. 베를린에 가서는 브레히트가 살던 집을 찾아가 보고, 네덜란드에서는 몬드리안과 에셔를 중심으로 미술관을 돌았어요. 올해는 김환기와 윤동주처럼 별과 관련된 이미지와 텍스트를 많이 남긴 예술가들을 천천히 보고 있고요.

 

Q. 하고자 했다가 금방 그만두는 것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에게는요?

평생학습의 장점은, 더 이상 성적표로 평가받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어린 시절의 습관 때문에 끝까지 잘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에게 줍니다. 저는 오히려 그 자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해보니까 재미없으면, 1시간 듣고 그만둬도 괜찮다고요. 일단 도전해 보고, 내 마음이 안 움직이면 편하게 접고, 다른 걸 또 해보면 됩니다. 평생학습은 성과를 내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즐거움을 찾아가는 긴 탐색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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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끝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평생학습을 ‘끝까지 잘해야 하는 과제’로 보기보다, 유한한 시간 동안 진짜 내 마음이 가는 걸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완성에 대한 조바심 대신, ‘이건 왜 이럴까?’ 하고 스스로 묻고 찾아보는 순간들을 많이 누리셨으면 해요. 그게 치킨의 바삭함이든, 한 편의 시든, 밤하늘의 별이든 상관없이요.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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