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창의노동자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

카피라이터로 10년 넘게 짧은 글을 써온 사람이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홍인혜 작가는 그 두 가지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짧고, 둘 다 핵심을 찌르고, 둘 다 한 문장의 무게가 크니까. 그런데 시 수업에 들어간 첫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시는 소통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소통이 생명인 카피라이터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는 한마디였다. 그로부터 등단까지 5년. 그 5년은 새로운 글쓰기를 배운 시간이 아니라, 15년간 몸에 밴 카피라이터의 습관을 빼내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이전의 나’를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홍인혜 작가의 삶은 그 지우기와 다시 쓰기의 반복이었다. 광고회사 TBWA에서 15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tvN 슬로건 “즐거움엔 끝이 없다”를 만들었고, 2007년부터 개인 홈페이지 ‘루나파크’에서 에세이 만화를 연재해 왔으며,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전세사기 경험을 담은 만화 <루나의 전세역전>은 개인 블로그에서 누적 462만 뷰를 기록했고, 드라마 제작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작가, 카피라이터, 만화가’를 나란히 적어 넣던 소녀는 그 꿈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세 가지를 동시에 안고 살면서 각각이 부딪치고 간섭하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다.
카피, 만화, 시. 이 세 가지가 주는 성취감은 “절묘하게 다 다르다”라고 홍인혜 작가는 말한다. 자유도, 경제적 보상, 대중의 시선이 정확히 엇갈리는 자리에 각각 놓여 있어서, 하나가 지칠 때 다른 하나가 숨 쉴 곳이 되어주었다. 20년 넘게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이 구조 자체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은 책으로 <루나의 전세역전>, <고르고 고른 말>, <혼자일 것 행복할 것>,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등이 있고, 올봄부터는 카카오 웹툰에서 생활 만화 ‘1인용 인생’(가제)을 정식 연재할 예정이다.
스스로를 ‘창의노동자’라 부르는 이 사람에게, 창작과 배움이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어떻게 부딪치고, 또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는지 물었다.
사기꾼 같은 기분에서 찾은 이름

Q. 카피라이터, 만화가, 시인이라는 각각의 타이틀 대신 ‘창의노동자’라는 이름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워낙 다방면의 일을 하다 보니까, 그때그때 자기소개가 달라지는 거예요. 어떤 자리에서는 “카피라이터예요” 하고, 다른 자리에서는 “만화 그려요” 하고. 그런데 이전에 카피라이터라고 소개했던 분을 다시 만났는데 제가 만화 얘기를 하니까, 무슨 사기꾼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고 매번 타이틀을 줄줄이 나열할 수도 없고요.
특히 ‘작가’나 ‘시인’은 스스로 입에 올리기가 쑥스러운 말이에요. “저는 작가입니다” 하면 뭔가 젠체하는 사람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의뢰를 받고 창작물을 납품하는 거에 가까워요. 신문에 칼럼도 쓰고, 잡지 삽화도 그리고, 교과서 삽화도 그리고. 지면을 주시면 거기에 맞춰 만들어 드리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작가’라는 말이 제 일의 실체와 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주변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친구들이 스스로를 ‘강의노동자’라고 부르는 걸 봤는데, 그게 너무 쿨한 거예요.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자기 일의 본질만 담아서 정의하는 방식. 저도 그렇게 해보자 싶었어요. 창의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으니까, ‘창의노동자’. 이 이름을 쓰기 시작하니까 어디 가서든 한마디로 설명이 되더라고요. 사기꾼 같은 기분에서 벗어난 셈이죠(웃음).
Q. 카피라이팅은 클라이언트의 언어, 만화는 대중과의 공감, 시는 자신의 내면. 같은 ‘글쓰기’인데 향하는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이 세 가지 사이를 오갈 때 어떤 전환이 일어나나요?
솔직히 스위치가 잘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어요. 다른 서버의 서브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느낌이랄까. 공개용 인스타 계정이랑 친구들끼리 뻘소리하는 비밀 계정이 따로 있잖아요? 카피라이터 모드와 시인 모드가 거의 그 정도로 다른 자아에 가까워요.
만화와 카피 사이의 전환은 그나마 어렵지 않아요. 둘 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까요. 진짜 어려운 건 시예요. 사실 이 어려움을 알기까지가 오래 걸렸어요. 카피라이터로 10년 넘게 일하고 나서, 인터뷰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은?” 하고 물으면 저도 별생각 없이 “언젠가 시를 쓰고 싶어요” 했거든요. 이렇게 짧은 글을 십수 년째 쓰고 있으니까, 언젠가 당연히 쓸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시 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180도 달랐어요. 광고회사 이름에 ‘커뮤니케이션’이 들어가는 곳이 정말 많잖아요. 카피는 소통이 생명이에요. 카피 회의에서 처음 나오면 무조건 잘리는 말이 “어려워”거든요. 너무 돌려썼어, 아무도 이해 못 해, 아웃. 그런데 시 수업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시는 소통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소통이 아니면 글을 왜 써요, 했더니, 오히려 그 불통과 불협화음에서 아름다움이 빚어진다고. 비밀 초대장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카피가 당위성까지 입혀서 “제발 이거 좀 봐주세요, 이렇게 예쁩니다” 하며 내미는 글이라면, 시는 증류해서 핵심만 딱 놓고 “읽을 테면 읽고, 해석하려면 하고, 말 테면 마세요” 하는 글이구나. ‘짧고 핵심적’이라는 것 외에는 전부 다른 글이었어요. 등단까지 5년이 걸렸는데, 돌아보면 새로운 걸 배운 5년이 아니라 카피라이터 끼를 빼는 데 5년을 쓴 거예요. 먹고살려면 카피는 계속 써야 하니까, 이 스위치를 익히는 데 그만큼 걸린 셈이죠.
그래서 지금도 카피 일이 몰릴 때는 시를 못 써요. 급하게 전환해야 할 때는 접신하는 무당이 제단에 도구를 갖다 놓듯이 나름의 장치를 마련해요. 와인, 음악, 낮잠, 불 다 끄고 촛불만 켜기. 상업적이고 이성적인 글을 쓰다가 시가 단박에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 시를 거의 못 쓰고 있어요. 다른 걸 쓰느라 뇌가 아직 동기화가 안 돼서.
같은 현실, 다른 이름

Q. TBWA에서 15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셨습니다. 같은 퇴사를 ‘도피’와 ‘졸사’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프리랜서로도 살아보고 싶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퇴사’라는 말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퇴’라는 글자를 생각해 보세요. 퇴학, 퇴소, 퇴교. 전부 못 마치고 중간에 잘렸다는 뉘앙스잖아요. 퇴사도 ‘사’에 ‘퇴’를 붙이니까, 마치 쫓겨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때 고 이외수 작가님의 배우자분이 ‘졸혼’이라는 개념을 쓰셨어요. 이혼이 아니라 졸혼. 충분히 결혼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졸업하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팩트는 이혼이랑 완전히 같은데, 정의만 바꿨을 뿐인데, 뭔가 전혀 다른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 싶었죠. “나는 졸사하는 거다.”
그런데 신기한 게, 저만의 조어일 뿐인데도, 그 말을 하고 나니까 진짜 덜 무서운 거예요. 쫓겨나는 게 아니라 졸업하는 거니까. 주변에서 퇴사한다고 하면 “졸사하는 거예요, 졸업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게 되고, 실제로 마지막 출근 날에는 친구들이 학사모와 꽃다발을 들고 회사 앞에 와서 졸업사진처럼 기념 촬영을 해줬어요.
먹고사는 방법이 언어인 사람이다 보니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해요. 같은 현실인데, 그걸 어떤 단어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요. 언어가 현실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언어가 현실의 무게를 바꿔버리는 순간이 있어요.
Q. MBTI가 INFP, 내향형이시라고요. 그런데 하시는 일은 전부 자기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 모순 속에서 어떤 긴장이 있나요?
심리학과를 나와서 이런 얘기를 좀 하게 되는데, 내향적인 것과 내성적인 것은 미묘하게 달라요. 내향적이라는 건 에너지의 방향이 안쪽을 향한다는 거예요. 여러 명 사이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주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경향성. 내성적인 건 사람 앞에 서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타는 거고요.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거죠.
이게 실제로 정말 미묘하게 작동하는데, 저는 20명 앞에서 강연하는 것도 이제는 안 떨려요.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와 가는 방향이 같아서 엘리베이터에 둘이 타는 순간, 거기서부터 진땀이 줄줄 나고 횡설수설하거든요(웃음). 왜냐하면 대중 앞에서 뭔가를 발표하는 건 치밀하게 생각한 내 내면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1 대 1로 관계를 맺으면서 실시간으로 치고받는 일이 아니거든요. 발표가 끝나면 ‘나 이제 혼자서 에너지 충전해야 되는데’ 하는 모드로 바뀌는데, 거기서 갑자기 누군가와 마주하면 회로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실제로 제 주변 창작자 중에 INFP가 정말 많아요. 혼자서 꼼지락꼼지락 자기 생각을 하다가, 그걸 또 뽐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 제가 1.5세대 생활만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사람들에게 통한 캐릭터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어요. 소심하고, 잘 상처받고, 말 잘 못하고, 화도 잘 못 내는 사람. 그런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말을 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내향적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안을 들여다본 사람이, 그 안에서 건져 올린 것을 내놓을 때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세 자식이 서로의 단무지가 되어주는 삶

Q. 세 가지 일이 주는 성취감이 각각 어떻게 다르고, 그 사이를 어떻게 돌려가며 사시나요?
카피는 자유라는 게 없어요. 100% 클라이언트, 돈 주는 사람 말에 맞춰야 해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죠. 대신 제가 하는 일 중에 경제적 부가가치가 제일 높고, 전 국민이 아는 문구를 쓸 수 있다는 남다른 성취감이 있어요.
만화는 그보다 훨씬 자유롭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어요. 광고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안 보고 싶어 해요. 그런데 만화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귀여워하고, 보고 싶은 마음으로 봐요. 마법 천자문이 잘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잖아요. 같은 내용인데 만화로 하면 무조건 좋아해요. 다만 에세이 만화다 보니 캐릭터가 바로 저 자신이에요. 이 캐릭터가 부도덕하면 곤란하니까, 늘 고운 말만 하게 되고 필터링을 많이 하게 되죠. 그게 또 다른 종류의 부자유예요. 시는 자유도가 최상이에요. 뼈가 튀기고 살이 찢기는 말을 써도 솔직히 사람들이 별로 안 보거든요(웃음). 아무도 모르는 자유. 대신 시 한 편 고료가 2만 5천 원에서 5만 원이에요. 시만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유는 없지만 돈과 사회적 성취감을 주는 일, 완전한 자유가 있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없는 일, 그 딱 중간에 있는 일. 예전에 누군가 “하나에 올인했으면 더 성취를 많이 했을 것 같지 않냐”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니었어요. 이건 짜장면과 단무지, 양꼬치와 칭따오 같은 거예요. 양꼬치만 먹으면 더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칭따오랑 같이 먹어야 오래 먹을 수 있거든요. 카피가 너무 힘들면 만화로 도피하고, 만화에서 필터링하느라 답답하면 시에서 날것으로 풀고, 시가 안 써지면 다시 카피로 돌아와서 이성적인 뇌를 쓰고. 이렇게 돌려 먹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안 질리고 20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래도 만약 세 가지 일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만화요. 밸런스가 딱 좋으니까. 근데 솔직히 만화만 했으면 비뚤어졌을 거예요. “왜 세상이 나를 몰라줘!” 하면서. 카피가 있으니까 숨 쉴 틈이 있고, 시가 있으니까 벗어날 곳이 있고.
그리고 제가 작품을 만들 때 제일 행복한 순간이 있는데, 만들어낸 직후 아직 아무도 안 봤을 때예요. 만화를 완성하고 오후 5시에 예약 업로드를 걸어놓잖아요. 아직 1시. 그 사이에 제가 만든 걸 보고 또 보고 또 봐요. 20년 그렸는데도 아직도 “재밌는데?” 이러면서요. 첫 번째 독자인 나만 봤을 때의 그 짜릿함. 올리면 5분 만에 반응이 보여요. 잘 되면 안심, 안 되면 망했다. 그것도 아직 모를 때, 그때가 제일 좋아요. 합격 발표 전날 밤 같은 거죠.
확정일자 하나가 생사를 갈랐다

Q. 전세사기를 겪으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말하면 당하는 동안에는 이걸로 뭘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요. 살아남아야 된다, 그 생각뿐이었죠. 살아남고 나서도 한 3년은 그냥 삭혔어요. 3년 당하고, 3년 삭히고. 거의 6년을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어요.
이게 왜 그러냐면, 전세사기라는 게 상황 설명만 30분이 걸려요. 집주인이 어떻게 했고, 근저당이 어떻게 걸려 있고, 대항력이 뭔지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한번 들어준 사람도 다음에 만나면 기억을 못 해요. 그럼 또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고. 그걸 반복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넌 만날 그 얘기밖에 안 하니?” 하거든요. 그리고 엄청나게 큰 고통 속에 있는 사람한테는, 걱정해 주는 말도 아파요. 어떤 사람은 별것 아닌 것처럼 “야, 법이 있잖아, 다 해결돼” 하는데 뭐가 해결돼요, 몇 억이 날아갔는데. 또 사랑하는 사람들, 부모님 같은 분들은 “너 다 날리는 거 아니냐, 브로커가 깡패 써서 쫓아낸대” 하면서 걱정을 해주는데, 그 걱정이 공포가 되는 거예요. 조심하라는데 뭘 어떻게 조심해요. 위로를 해도 무섭고, 걱정을 해도 무섭고. 그러니까 차라리 진짜 필요할 때 전문가한테 상담받고, 유튜브 보고, 경매 책 보고, 법원에 전화하는 게 낫겠다 싶은 거예요. 혼자서.
그러다 3년이 지나고 나니까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엄청난 경험을 나 혼자 알고 넘어가? 저는 인간이 제일 못 견디는 게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회사에서 고난도의 일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면 버텨요. 그런데 그것보다 덜 힘든 일인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그게 더 견딜 수 없어요. 같은 돈을 줘도 후자가 더 힘들어요. 의미가 주어지면 인간은 생각보다 맷집이 좋은데, 의미가 없으면 무너져요. 그래서 이걸 만화로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제 한풀이가 더 컸어요. 6년 동안 혼자 끙끙 앓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거죠.
Q. 생존을 위해 시작한 법률 독학이 ‘배움’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부분이 있나요?
이 질문을 보면서 진짜 맞네, 생각했어요. 우리가 불이 나도 완강기 쓸 줄 알고 모르고가 생사를 가를 수 있잖아요. 심폐소생술을 할 줄 모르고 알고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고요.
전세사기를 겪으면서 그 무게를 절실하게 느꼈어요. 조그만 지식 하나를 알고 모르고가 내 자산의 존폐를 움직이는 거예요. 진짜로요. 확정일자 받으라는 건 상식처럼 다들 얘기하는데, 제가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돌아보면 학교에서 배운 적은 없어요. 풍문으로, 거의 엄마가 말해서 알았을 뿐이에요. 근데 그것도 어디선가 배운 거잖아요. 나중에 집이 넘어가네 마네 할 때 그 확정일자 하나가 저의 유일한 대항력이더라고요. 그거 하나 없었으면 꼼짝없이 쫓겨났어요. 그 이후에도 나라에서 뭐가 날아왔을 때, 이걸 어떤 신고를 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고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집을 구해야 하잖아요. 빠르면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자취방을 얻는데, 고3까지 아무도 이걸 안 가르쳐 줘요. 어떤 앎은 정말로 생사를 바꿔요.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이건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Q. <루나의 전세역전>을 대형 플랫폼이 아닌 개인 블로그에서 무료로 연재하셨습니다. 그 선택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커질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2021년에 첫 회를 그렸는데, 그때만 해도 전세사기가 지금처럼 흔한 단어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좁고 개인적인 이야기, 한풀이에 가까운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 싶었죠. ‘그런 거 너나 당하지’ 하면서 아무도 안 보는 거 아닌가.
그런데 뜻밖에 모든 사람의 잠재적 공포였어요. 제가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빌라 전세사기가 빵빵 터지면서 갑자기 눈덩이처럼 커졌죠.
나중에 포털이나 대형 플랫폼에서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대부분 조건이 기존 것을 내리고 독점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 시점에서 고민을 좀 했어요. 저도 이걸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건데. 그런데 처음에 이걸 시작한 마음을 돌아보니, 나름 공익적인 마음이 있었거든요. 인기 좀 얻었다고 싹 내리고 “이제부터 유료입니다” 하면, 혹시 그 유료 때문에 못 봐서 사기당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그 생각이 드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블로그에 그냥 뒀어요.
중후반부에는 사명감도 생겼어요. 전세 제도가 우리나라에 있은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사기당했다는 사람만 점점 늘어나고, 뭔가 바뀌긴 바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무부에서 전세 관련 제도를 정비할 때 내부에서 제 만화를 보면서 허점을 파악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그분이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법이 바뀌는 데 0.1이라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웹툰 연재 제안보다 훨씬 뿌듯했어요.
한 가지 더. 이 만화를 ‘사기가 진행 중인’ 분들은 사실 읽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전세사기가 진행 중일 때 관련 정보는 찾아봤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 이야기는 못 보겠더라고요. 내 일도 힘든데 남의 힘든 얘기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잖아요. 저처럼 그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다 지나가고 한 몇 년 후에,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를 정리해야 할 때 보시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사전을 서핑하는 카피라이터

Q. 15년간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고수하시다가 손글씨를 ‘루나파크또박체’라는 디지털 폰트로 만드셨습니다. 이 결정의 의미를 들려주세요.
제 만화가 만화라고는 하지만, 사실 글의 비중이 70~90%에 달해요. 그러다 보니 글이 정말 중요한데, 내 이야기를 내가 하는 만화에 다른 폰트를 쓰면 내 만화가 아닌 것 같거든요. 딱 마음에 드는 폰트를 못 찾겠으니까 15~16년을 전부 손으로 썼어요. 그림도 아직 손으로 그리고요.
그런데 특히 회사 다니면서 만화를 그리던 시절에는 하루에 1~2시간밖에 시간을 못 내는데, 그 안에 손글씨까지 다 쓰다 보니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든 거예요. 폰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한글 폰트는 영어처럼 26자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수백 개의 조합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는데, 마침 한 디자인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셨어요.
인세 개념으로 수익을 조금 나누는 구조였는데, 솔직히 수익이 0원이어도 상관없었어요. 오리지널리티가 저한테 있으니까, 폰트가 세상에 나오는 것 자체가 슈퍼 이득이었죠. 실제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제 창작 인생에서는 전환점이었어요. <루나의 전세역전>은 이 폰트가 없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전세사기 이야기는 정보가 워낙 많아서 글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 양을 다 손글씨로 쓴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죠. 폰트 덕분에 작업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어요.
Q. 카피라이터이자 시인으로서, 언어를 갈고닦는 나름의 방법이 있으시다면요?
혼자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언어로 생각을 하니까요. 그리고 현실적인 팁 하나를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도 사전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핸드폰에 사전 앱이 세 개쯤 깔려 있어요.
보통 빨대, 물컵, 얼음 같은 단어를 사전에서 찾을 일은 없잖아요.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니까. 그런데 한번 찾아보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정의가 나오기도 해요. 재미있는 건 여기서부터예요. 예를 들어 생수 광고를 해야 하는데 테마가 ‘맑음’이라면, 머릿속에서는 맑다, 깨끗하다, 투명하다 이 정도에서 멈추거든요. 그런데 사전에서 ‘맑다’를 찾아 들어가면 유의어가 쭉 나와요. 그걸 타고 가면 또 다른 단어, 반의어를 누르면 또 다른 세계. 영어로 넘어가면 pure, clean, clear, crystal… 이렇게 타고 또 타고 가다 보면 생각이 확장되면서 평소에 안 쓰던 표현이 튀어나와요. 네이버 사전도 요즘은 유의어, 반의어, 오픈 사전까지 있어서 쫙 나오거든요. 사전 서핑이 일종의 취미이자 훈련이에요. 취미 삼아 해보시면 좋아요.
배움은 세상의 해상도를 높여준다

Q. “덕질은 늘 승리한다, 덕질불패”라고 하셨습니다. 배움과 덕질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덕질에는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는 사람은 장르만 바꿔서 평생 하고, 안 하는 사람은 그게 뭔지를 몰라요. 학교 다닐 때는 만화 덕질, 직장 들어가서는 시 덕질을 했죠. 광고회사가 엄청 터프하고 빡센데도, 퇴근하고 만원 전철 타고 강남에서 홍대까지 가서 시 수업을 들었어요. 5년 동안. 그게 덕질이 아니면 뭐겠어요.
기타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갑자기 기타가 너무 치고 싶은 거예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제가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분이 수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작업실에서 일대일로 배울 수 있는 기회. 송파에 살고 있었는데 기타를 배우러 영등포까지 매주 갔어요. 엄청 멀었는데, 좋아하는 밴드 기타리스트한테 기타 배울 기회가 얼마나 드물어요.
그때 태어나서 처음 기타를 샀거든요. 기타를 메고 서울을 횡단하는데, ABCD 코드도 못 치면서 무슨 뮤지션이 된 것 같은 거예요. 아무도 관심 없는데 나 혼자 거리의 악사가 된 것 같고. 한강변에서도 치고, 공원에서도 치고, 아파트에서 치면 뭐라고 할까 봐 밖에 나가서 치고.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아무도 가져오라고 안 했는데 기타를 메고 가서 “한 곡씩 들어야 한다”고(웃음). 친구들이 “운동권 선배가 맨날 기타 들고 다니듯이 넌 왜 어디를 가도 기타를 메고 다니냐”라고 했을 정도예요.
기타로 먹고살 것도 아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치고 돈도 쓰고, 생계랑은 완전히 무관한 일인데 그때 진짜 그 힘으로 살았거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옛날에는 음악을 들으면 그냥 “좋네” 했는데, 기타를 배우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서너 곡을 쳐봤더니 코드 진행이 다 같은 거예요. 아, 내가 이 진행 방식 자체를 좋아하는 거구나. 무슨 천기누설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배우기 전에는 뿌옇게 보이던 게, 배우고 나면 또렷해져요.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거죠.
약간 반쯤 진담으로 하는 말인데, 가계부에 주거비, 식비 같은 필수 항목이 있잖아요. 청소년한테는 교육비가 당연히 들어가는데, 성인한테는 안 넣어요.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저는 성인도 교육비를 필수 항목으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먹고살 것도 아닌데”라는 말, 진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엄마, 나 우쿨렐레 배워보고 싶어” 하면 “먹고살 것도 아닌데 왜 해?” 안 그러잖아요. “그래, 한번 해볼래?” 하잖아요. 그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시켜보잖아요. 그런데 왜 어른인 나 자신한테는 안 그러죠? 먹고살 것과 상관없이, 뭔가를 배우는 게 최고의 덕질이고, 그게 진짜 사는 재미예요.
Q.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오래 지속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제가 책에 쓰기도 한 말인데, ‘좋다’는 형용사지만 ‘좋아하다’는 동사란 말이에요. 여기서 좀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좋다고 느끼는 건 별 노력이 필요 없어요. 그냥 좋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좋아하려면 노력을 해야 해요. 동사니까 액션이 필요한 거예요. 가만히 있는다고 어떤 대상이 계속 새롭게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저도 늘 포기 1순위가 운동인데, 운동을 좋아하기가 정말 쉽지 않잖아요. 힘드니까. 그래서 유치하지만 레깅스라도 새로 사고, 물통이라도 바꾸고, 같이 가는 친구를 만들고, 억지로 비싼 데 등록해서 포기 못 하게 만들고. 스스로 배수진을 치는 거죠. 좋아함을 유지하기 위한 크고 작은 액션들.
물론 그럼에도 정말 안 맞는 건 있어요. 그때는 빨리 손을 놓고 다른 걸 찾는 게 나아요. 안 맞는 걸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그 피로가 다른 좋아하는 것까지 잡아먹거든요.
1인용 인생, 그다음 토끼

Q. 지금 가장 쫓고 있는 토끼는 무엇인가요?
아직 어디에도 말 안 한 건데요(웃음). 올봄 4월 말부터 카카오 웹툰에서 생활 만화를 정식 연재해요. 제목은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1인용 인생’이에요. 혼자서 삶을 돌파해 나가는 이야기예요.
만화를 거의 20년 그렸는데, 정식 플랫폼 연재는 사실 처음이에요. 그동안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까 어떻게 보면 블로거인 거잖아요. 맨날 “재야의 만화가”라고 농담했는데, 좀 더 작품다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전세 역전도 카카오 웹툰에 재오픈하면서 새 만화와 함께 준비하고 있어서, 지금은 원고를 열심히 그리고 있어요. 20년 해놓고 이제야 정식 웹툰 작가라고 하면 좀 부끄럽지만(웃음).
Q. 끝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특히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싫어하기가 너무 쉬운 시절이에요. 유행하는 말이 전부 ‘손절’, ‘극혐’이잖아요. 조금만 엇대도 극혐, 손절. 그래서 오히려 뭔가를 좋아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내가 뭔가에 약간이라도 흥미가 생겼다면, 그걸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 하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우쭈쭈 해주세요.
어른들은 나 자신한테는 왜 그렇게 가혹한지…. 이를테면 꽃꽂이가 배우고 싶은데, 꽃값도 비싸고 수강료도 만만치 않으니까 주저해요. 거기에 ‘이걸로 꽃집 할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겹치면 못 배우는 거죠.
그런데 용기를 내서 ‘이번 달 내 교육비’라고 책정하고 등록해 보세요. 한 달 내내 “이번 주 토요일에 꽃 만지러 간다” 하면서 신나고, 집에 오는 길에 꽃다발 들고 오면서 기쁘고, 일주일 내내 꽂아두면서 좋고. 그다음부터는 거리를 지나갈 때 “저건 라넌큘러스야, 저건 이렇게 잘라야 돼” 이런 걸 알게 되고, 친구 생일에 꽃시장 가서 직접 만들어줄 수도 있고. 배우기 전에는 그냥 예쁜 꽃이었는데, 배우고 나면 세상의 해상도가 달라져요.
힘들거나 안 맞으면 그냥 그만두고 다른 걸 해보면 돼요. 아이가 울면서 “엄마, 정말 못하겠어” 하면 “알았어, 그만해” 하잖아요. 나한테도 그러면 돼요.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거 해봐. 인생 짧으니까.”
배움은 나를 우쭈쭈 해주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키우는 아이처럼 가르쳐 주는 것. 그러니까 성인도 교육비 책정하시고, 뭐든 한번 배워보시길 바랍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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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의 탐구생활] 창의노동자 루나파크 홍인혜 작가
카피라이터로 10년 넘게 짧은 글을 써온 사람이 시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홍인혜 작가는 그 두 가지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짧고, 둘 다 핵심을 찌르고, 둘 다 한 문장의 무게가 크니까. 그런데 시 수업에 들어간 첫날,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시는 소통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소통이 생명인 카피라이터에게는 세상이 뒤집히는 한마디였다. 그로부터 등단까지 5년. 그 5년은 새로운 글쓰기를 배운 시간이 아니라, 15년간 몸에 밴 카피라이터의 습관을 빼내는 시간이었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이전의 나’를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홍인혜 작가의 삶은 그 지우기와 다시 쓰기의 반복이었다. 광고회사 TBWA에서 15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며 tvN 슬로건 “즐거움엔 끝이 없다”를 만들었고, 2007년부터 개인 홈페이지 ‘루나파크’에서 에세이 만화를 연재해 왔으며, 2018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전세사기 경험을 담은 만화 <루나의 전세역전>은 개인 블로그에서 누적 462만 뷰를 기록했고, 드라마 제작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작가, 카피라이터, 만화가’를 나란히 적어 넣던 소녀는 그 꿈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세 가지를 동시에 안고 살면서 각각이 부딪치고 간섭하는 것을 온몸으로 겪었다.
카피, 만화, 시. 이 세 가지가 주는 성취감은 “절묘하게 다 다르다”라고 홍인혜 작가는 말한다. 자유도, 경제적 보상, 대중의 시선이 정확히 엇갈리는 자리에 각각 놓여 있어서, 하나가 지칠 때 다른 하나가 숨 쉴 곳이 되어주었다. 20년 넘게 세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었던 비결은 재능이 아니라, 이 구조 자체에 있었다고 고백한다.
지은 책으로 <루나의 전세역전>, <고르고 고른 말>, <혼자일 것 행복할 것>,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등이 있고, 올봄부터는 카카오 웹툰에서 생활 만화 ‘1인용 인생’(가제)을 정식 연재할 예정이다.
스스로를 ‘창의노동자’라 부르는 이 사람에게, 창작과 배움이 한 사람의 삶 안에서 어떻게 부딪치고, 또 어떻게 서로를 지탱하는지 물었다.
Q. 카피라이터, 만화가, 시인이라는 각각의 타이틀 대신 ‘창의노동자’라는 이름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워낙 다방면의 일을 하다 보니까, 그때그때 자기소개가 달라지는 거예요. 어떤 자리에서는 “카피라이터예요” 하고, 다른 자리에서는 “만화 그려요” 하고. 그런데 이전에 카피라이터라고 소개했던 분을 다시 만났는데 제가 만화 얘기를 하니까, 무슨 사기꾼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렇다고 매번 타이틀을 줄줄이 나열할 수도 없고요.
특히 ‘작가’나 ‘시인’은 스스로 입에 올리기가 쑥스러운 말이에요. “저는 작가입니다” 하면 뭔가 젠체하는 사람 같아서요.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의뢰를 받고 창작물을 납품하는 거에 가까워요. 신문에 칼럼도 쓰고, 잡지 삽화도 그리고, 교과서 삽화도 그리고. 지면을 주시면 거기에 맞춰 만들어 드리는 일이죠. 그러다 보니 ‘작가’라는 말이 제 일의 실체와 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주변에 대학에서 가르치는 친구들이 스스로를 ‘강의노동자’라고 부르는 걸 봤는데, 그게 너무 쿨한 거예요. 아무런 가치 판단 없이, 자기 일의 본질만 담아서 정의하는 방식. 저도 그렇게 해보자 싶었어요. 창의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으니까, ‘창의노동자’. 이 이름을 쓰기 시작하니까 어디 가서든 한마디로 설명이 되더라고요. 사기꾼 같은 기분에서 벗어난 셈이죠(웃음).
Q. 카피라이팅은 클라이언트의 언어, 만화는 대중과의 공감, 시는 자신의 내면. 같은 ‘글쓰기’인데 향하는 방향이 전혀 다릅니다. 이 세 가지 사이를 오갈 때 어떤 전환이 일어나나요?
솔직히 스위치가 잘될 때도 있고 잘 안될 때도 있어요. 다른 서버의 서브 계정으로 로그인하는 느낌이랄까. 공개용 인스타 계정이랑 친구들끼리 뻘소리하는 비밀 계정이 따로 있잖아요? 카피라이터 모드와 시인 모드가 거의 그 정도로 다른 자아에 가까워요.
만화와 카피 사이의 전환은 그나마 어렵지 않아요. 둘 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까요. 진짜 어려운 건 시예요. 사실 이 어려움을 알기까지가 오래 걸렸어요. 카피라이터로 10년 넘게 일하고 나서, 인터뷰 마지막에 “앞으로의 계획은?” 하고 물으면 저도 별생각 없이 “언젠가 시를 쓰고 싶어요” 했거든요. 이렇게 짧은 글을 십수 년째 쓰고 있으니까, 언젠가 당연히 쓸 수 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시 수업에 들어가는 순간 180도 달랐어요. 광고회사 이름에 ‘커뮤니케이션’이 들어가는 곳이 정말 많잖아요. 카피는 소통이 생명이에요. 카피 회의에서 처음 나오면 무조건 잘리는 말이 “어려워”거든요. 너무 돌려썼어, 아무도 이해 못 해, 아웃. 그런데 시 수업에서 선생님이 그러시는 거예요. “시는 소통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소통이 아니면 글을 왜 써요, 했더니, 오히려 그 불통과 불협화음에서 아름다움이 빚어진다고. 비밀 초대장 같은 거라고 하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카피가 당위성까지 입혀서 “제발 이거 좀 봐주세요, 이렇게 예쁩니다” 하며 내미는 글이라면, 시는 증류해서 핵심만 딱 놓고 “읽을 테면 읽고, 해석하려면 하고, 말 테면 마세요” 하는 글이구나. ‘짧고 핵심적’이라는 것 외에는 전부 다른 글이었어요. 등단까지 5년이 걸렸는데, 돌아보면 새로운 걸 배운 5년이 아니라 카피라이터 끼를 빼는 데 5년을 쓴 거예요. 먹고살려면 카피는 계속 써야 하니까, 이 스위치를 익히는 데 그만큼 걸린 셈이죠.
그래서 지금도 카피 일이 몰릴 때는 시를 못 써요. 급하게 전환해야 할 때는 접신하는 무당이 제단에 도구를 갖다 놓듯이 나름의 장치를 마련해요. 와인, 음악, 낮잠, 불 다 끄고 촛불만 켜기. 상업적이고 이성적인 글을 쓰다가 시가 단박에 나오지는 않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 시를 거의 못 쓰고 있어요. 다른 걸 쓰느라 뇌가 아직 동기화가 안 돼서.
Q. TBWA에서 15년간 카피라이터로 일하셨습니다. 같은 퇴사를 ‘도피’와 ‘졸사’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게 된 사이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프리랜서로도 살아보고 싶고, 다른 길을 모색하고 싶다는 생각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퇴사’라는 말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퇴’라는 글자를 생각해 보세요. 퇴학, 퇴소, 퇴교. 전부 못 마치고 중간에 잘렸다는 뉘앙스잖아요. 퇴사도 ‘사’에 ‘퇴’를 붙이니까, 마치 쫓겨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때 고 이외수 작가님의 배우자분이 ‘졸혼’이라는 개념을 쓰셨어요. 이혼이 아니라 졸혼. 충분히 결혼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졸업하는 거다. 가만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팩트는 이혼이랑 완전히 같은데, 정의만 바꿨을 뿐인데, 뭔가 전혀 다른 지평이 열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자 싶었죠. “나는 졸사하는 거다.”
그런데 신기한 게, 저만의 조어일 뿐인데도, 그 말을 하고 나니까 진짜 덜 무서운 거예요. 쫓겨나는 게 아니라 졸업하는 거니까. 주변에서 퇴사한다고 하면 “졸사하는 거예요, 졸업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게 되고, 실제로 마지막 출근 날에는 친구들이 학사모와 꽃다발을 들고 회사 앞에 와서 졸업사진처럼 기념 촬영을 해줬어요.
먹고사는 방법이 언어인 사람이다 보니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해요. 같은 현실인데, 그걸 어떤 단어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마음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요. 언어가 현실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언어가 현실의 무게를 바꿔버리는 순간이 있어요.
Q. MBTI가 INFP, 내향형이시라고요. 그런데 하시는 일은 전부 자기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 모순 속에서 어떤 긴장이 있나요?
심리학과를 나와서 이런 얘기를 좀 하게 되는데, 내향적인 것과 내성적인 것은 미묘하게 달라요. 내향적이라는 건 에너지의 방향이 안쪽을 향한다는 거예요. 여러 명 사이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주는 것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걸 좋아하는 경향성. 내성적인 건 사람 앞에 서면 부끄러워서 얼굴이 타는 거고요.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거죠.
이게 실제로 정말 미묘하게 작동하는데, 저는 20명 앞에서 강연하는 것도 이제는 안 떨려요. 그런데 강연이 끝나고 누군가와 가는 방향이 같아서 엘리베이터에 둘이 타는 순간, 거기서부터 진땀이 줄줄 나고 횡설수설하거든요(웃음). 왜냐하면 대중 앞에서 뭔가를 발표하는 건 치밀하게 생각한 내 내면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 거지, 1 대 1로 관계를 맺으면서 실시간으로 치고받는 일이 아니거든요. 발표가 끝나면 ‘나 이제 혼자서 에너지 충전해야 되는데’ 하는 모드로 바뀌는데, 거기서 갑자기 누군가와 마주하면 회로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죠.
실제로 제 주변 창작자 중에 INFP가 정말 많아요. 혼자서 꼼지락꼼지락 자기 생각을 하다가, 그걸 또 뽐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 제가 1.5세대 생활만화를 처음 시작했을 때 사람들에게 통한 캐릭터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어요. 소심하고, 잘 상처받고, 말 잘 못하고, 화도 잘 못 내는 사람. 그런 사람도 어딘가에서는 말을 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내향적이기 때문에 오래도록 안을 들여다본 사람이, 그 안에서 건져 올린 것을 내놓을 때 깊이가 있는 것 같아요.
Q. 세 가지 일이 주는 성취감이 각각 어떻게 다르고, 그 사이를 어떻게 돌려가며 사시나요?
카피는 자유라는 게 없어요. 100% 클라이언트, 돈 주는 사람 말에 맞춰야 해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죠. 대신 제가 하는 일 중에 경제적 부가가치가 제일 높고, 전 국민이 아는 문구를 쓸 수 있다는 남다른 성취감이 있어요.
만화는 그보다 훨씬 자유롭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다른 게 하나 있어요. 광고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안 보고 싶어 해요. 그런데 만화는 같은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이 귀여워하고, 보고 싶은 마음으로 봐요. 마법 천자문이 잘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잖아요. 같은 내용인데 만화로 하면 무조건 좋아해요. 다만 에세이 만화다 보니 캐릭터가 바로 저 자신이에요. 이 캐릭터가 부도덕하면 곤란하니까, 늘 고운 말만 하게 되고 필터링을 많이 하게 되죠. 그게 또 다른 종류의 부자유예요. 시는 자유도가 최상이에요. 뼈가 튀기고 살이 찢기는 말을 써도 솔직히 사람들이 별로 안 보거든요(웃음). 아무도 모르는 자유. 대신 시 한 편 고료가 2만 5천 원에서 5만 원이에요. 시만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다고 봐요.
그러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유는 없지만 돈과 사회적 성취감을 주는 일, 완전한 자유가 있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없는 일, 그 딱 중간에 있는 일. 예전에 누군가 “하나에 올인했으면 더 성취를 많이 했을 것 같지 않냐”라고 물은 적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니었어요. 이건 짜장면과 단무지, 양꼬치와 칭따오 같은 거예요. 양꼬치만 먹으면 더 많이 먹을 것 같지만, 칭따오랑 같이 먹어야 오래 먹을 수 있거든요. 카피가 너무 힘들면 만화로 도피하고, 만화에서 필터링하느라 답답하면 시에서 날것으로 풀고, 시가 안 써지면 다시 카피로 돌아와서 이성적인 뇌를 쓰고. 이렇게 돌려 먹으면서 살았기 때문에 오히려 안 질리고 20년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래도 만약 세 가지 일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꼭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만화요. 밸런스가 딱 좋으니까. 근데 솔직히 만화만 했으면 비뚤어졌을 거예요. “왜 세상이 나를 몰라줘!” 하면서. 카피가 있으니까 숨 쉴 틈이 있고, 시가 있으니까 벗어날 곳이 있고.
그리고 제가 작품을 만들 때 제일 행복한 순간이 있는데, 만들어낸 직후 아직 아무도 안 봤을 때예요. 만화를 완성하고 오후 5시에 예약 업로드를 걸어놓잖아요. 아직 1시. 그 사이에 제가 만든 걸 보고 또 보고 또 봐요. 20년 그렸는데도 아직도 “재밌는데?” 이러면서요. 첫 번째 독자인 나만 봤을 때의 그 짜릿함. 올리면 5분 만에 반응이 보여요. 잘 되면 안심, 안 되면 망했다. 그것도 아직 모를 때, 그때가 제일 좋아요. 합격 발표 전날 밤 같은 거죠.
Q. 전세사기를 겪으며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도 기록을 멈추지 않으셨어요.
솔직히 말하면 당하는 동안에는 이걸로 뭘 만들겠다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어요. 살아남아야 된다, 그 생각뿐이었죠. 살아남고 나서도 한 3년은 그냥 삭혔어요. 3년 당하고, 3년 삭히고. 거의 6년을 아무한테도 말을 안 했어요.
이게 왜 그러냐면, 전세사기라는 게 상황 설명만 30분이 걸려요. 집주인이 어떻게 했고, 근저당이 어떻게 걸려 있고, 대항력이 뭔지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한번 들어준 사람도 다음에 만나면 기억을 못 해요. 그럼 또 처음부터 설명해야 하고. 그걸 반복할 수가 없어요. 사람들이 “넌 만날 그 얘기밖에 안 하니?” 하거든요. 그리고 엄청나게 큰 고통 속에 있는 사람한테는, 걱정해 주는 말도 아파요. 어떤 사람은 별것 아닌 것처럼 “야, 법이 있잖아, 다 해결돼” 하는데 뭐가 해결돼요, 몇 억이 날아갔는데. 또 사랑하는 사람들, 부모님 같은 분들은 “너 다 날리는 거 아니냐, 브로커가 깡패 써서 쫓아낸대” 하면서 걱정을 해주는데, 그 걱정이 공포가 되는 거예요. 조심하라는데 뭘 어떻게 조심해요. 위로를 해도 무섭고, 걱정을 해도 무섭고. 그러니까 차라리 진짜 필요할 때 전문가한테 상담받고, 유튜브 보고, 경매 책 보고, 법원에 전화하는 게 낫겠다 싶은 거예요. 혼자서.
그러다 3년이 지나고 나니까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 엄청난 경험을 나 혼자 알고 넘어가? 저는 인간이 제일 못 견디는 게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회사에서 고난도의 일을 해도 사람들이 알아주면 버텨요. 그런데 그것보다 덜 힘든 일인데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면 그게 더 견딜 수 없어요. 같은 돈을 줘도 후자가 더 힘들어요. 의미가 주어지면 인간은 생각보다 맷집이 좋은데, 의미가 없으면 무너져요. 그래서 이걸 만화로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제 한풀이가 더 컸어요. 6년 동안 혼자 끙끙 앓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거죠.
Q. 생존을 위해 시작한 법률 독학이 ‘배움’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부분이 있나요?
이 질문을 보면서 진짜 맞네, 생각했어요. 우리가 불이 나도 완강기 쓸 줄 알고 모르고가 생사를 가를 수 있잖아요. 심폐소생술을 할 줄 모르고 알고가 사람의 목숨을 좌우할 수도 있고요.
전세사기를 겪으면서 그 무게를 절실하게 느꼈어요. 조그만 지식 하나를 알고 모르고가 내 자산의 존폐를 움직이는 거예요. 진짜로요. 확정일자 받으라는 건 상식처럼 다들 얘기하는데, 제가 그걸 어디서 배웠는지 돌아보면 학교에서 배운 적은 없어요. 풍문으로, 거의 엄마가 말해서 알았을 뿐이에요. 근데 그것도 어디선가 배운 거잖아요. 나중에 집이 넘어가네 마네 할 때 그 확정일자 하나가 저의 유일한 대항력이더라고요. 그거 하나 없었으면 꼼짝없이 쫓겨났어요. 그 이후에도 나라에서 뭐가 날아왔을 때, 이걸 어떤 신고를 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뒤집히고요.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집을 구해야 하잖아요. 빠르면 대학교 1학년 때 서울에서 자취방을 얻는데, 고3까지 아무도 이걸 안 가르쳐 줘요. 어떤 앎은 정말로 생사를 바꿔요. 그때 좀 충격을 받았어요. 이건 학교에서 가르쳐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Q. <루나의 전세역전>을 대형 플랫폼이 아닌 개인 블로그에서 무료로 연재하셨습니다. 그 선택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커질 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어요. 2021년에 첫 회를 그렸는데, 그때만 해도 전세사기가 지금처럼 흔한 단어가 아니었거든요. 너무 좁고 개인적인 이야기, 한풀이에 가까운 이야기를 누가 읽겠어 싶었죠. ‘그런 거 너나 당하지’ 하면서 아무도 안 보는 거 아닌가.
그런데 뜻밖에 모든 사람의 잠재적 공포였어요. 제가 올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빌라 전세사기가 빵빵 터지면서 갑자기 눈덩이처럼 커졌죠.
나중에 포털이나 대형 플랫폼에서 제안이 왔어요. 그런데 대부분 조건이 기존 것을 내리고 독점으로 가는 거잖아요. 그 시점에서 고민을 좀 했어요. 저도 이걸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온 건데. 그런데 처음에 이걸 시작한 마음을 돌아보니, 나름 공익적인 마음이 있었거든요. 인기 좀 얻었다고 싹 내리고 “이제부터 유료입니다” 하면, 혹시 그 유료 때문에 못 봐서 사기당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그 생각이 드니까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던 대로 블로그에 그냥 뒀어요.
중후반부에는 사명감도 생겼어요. 전세 제도가 우리나라에 있은 지가 얼마나 오래됐는데, 사기당했다는 사람만 점점 늘어나고, 뭔가 바뀌긴 바뀌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법무부에서 전세 관련 제도를 정비할 때 내부에서 제 만화를 보면서 허점을 파악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그분이 듣기 좋으라고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법이 바뀌는 데 0.1이라도 기여했다고 생각하면 웹툰 연재 제안보다 훨씬 뿌듯했어요.
한 가지 더. 이 만화를 ‘사기가 진행 중인’ 분들은 사실 읽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전세사기가 진행 중일 때 관련 정보는 찾아봤지만, 다른 사람의 고통 이야기는 못 보겠더라고요. 내 일도 힘든데 남의 힘든 얘기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잖아요. 저처럼 그런 일을 겪으신 분들이 다 지나가고 한 몇 년 후에, 자기 마음이 어땠는지를 정리해야 할 때 보시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Q. 15년간 아날로그 작업 방식을 고수하시다가 손글씨를 ‘루나파크또박체’라는 디지털 폰트로 만드셨습니다. 이 결정의 의미를 들려주세요.
제 만화가 만화라고는 하지만, 사실 글의 비중이 70~90%에 달해요. 그러다 보니 글이 정말 중요한데, 내 이야기를 내가 하는 만화에 다른 폰트를 쓰면 내 만화가 아닌 것 같거든요. 딱 마음에 드는 폰트를 못 찾겠으니까 15~16년을 전부 손으로 썼어요. 그림도 아직 손으로 그리고요.
그런데 특히 회사 다니면서 만화를 그리던 시절에는 하루에 1~2시간밖에 시간을 못 내는데, 그 안에 손글씨까지 다 쓰다 보니 너무 오래 걸리고 힘든 거예요. 폰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한글 폰트는 영어처럼 26자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수백 개의 조합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는데, 마침 한 디자인회사에서 프로젝트를 제안해 주셨어요.
인세 개념으로 수익을 조금 나누는 구조였는데, 솔직히 수익이 0원이어도 상관없었어요. 오리지널리티가 저한테 있으니까, 폰트가 세상에 나오는 것 자체가 슈퍼 이득이었죠. 실제로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제 창작 인생에서는 전환점이었어요. <루나의 전세역전>은 이 폰트가 없었으면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전세사기 이야기는 정보가 워낙 많아서 글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 양을 다 손글씨로 쓴다고 생각하면 아찔하죠. 폰트 덕분에 작업 속도가 두 배는 빨라졌어요.
Q. 카피라이터이자 시인으로서, 언어를 갈고닦는 나름의 방법이 있으시다면요?
혼자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요. 언어로 생각을 하니까요. 그리고 현실적인 팁 하나를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도 사전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핸드폰에 사전 앱이 세 개쯤 깔려 있어요.
보통 빨대, 물컵, 얼음 같은 단어를 사전에서 찾을 일은 없잖아요. 누구나 다 아는 말이니까. 그런데 한번 찾아보면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정의가 나오기도 해요. 재미있는 건 여기서부터예요. 예를 들어 생수 광고를 해야 하는데 테마가 ‘맑음’이라면, 머릿속에서는 맑다, 깨끗하다, 투명하다 이 정도에서 멈추거든요. 그런데 사전에서 ‘맑다’를 찾아 들어가면 유의어가 쭉 나와요. 그걸 타고 가면 또 다른 단어, 반의어를 누르면 또 다른 세계. 영어로 넘어가면 pure, clean, clear, crystal… 이렇게 타고 또 타고 가다 보면 생각이 확장되면서 평소에 안 쓰던 표현이 튀어나와요. 네이버 사전도 요즘은 유의어, 반의어, 오픈 사전까지 있어서 쫙 나오거든요. 사전 서핑이 일종의 취미이자 훈련이에요. 취미 삼아 해보시면 좋아요.
Q. “덕질은 늘 승리한다, 덕질불패”라고 하셨습니다. 배움과 덕질의 경계는 어디인가요?
덕질에는 유전자가 있다고 생각해요. 하는 사람은 장르만 바꿔서 평생 하고, 안 하는 사람은 그게 뭔지를 몰라요. 학교 다닐 때는 만화 덕질, 직장 들어가서는 시 덕질을 했죠. 광고회사가 엄청 터프하고 빡센데도, 퇴근하고 만원 전철 타고 강남에서 홍대까지 가서 시 수업을 들었어요. 5년 동안. 그게 덕질이 아니면 뭐겠어요.
기타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갑자기 기타가 너무 치고 싶은 거예요. 인터넷에서 찾아봤더니, 제가 좋아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분이 수업을 하시는 거예요. 그분의 작업실에서 일대일로 배울 수 있는 기회. 송파에 살고 있었는데 기타를 배우러 영등포까지 매주 갔어요. 엄청 멀었는데, 좋아하는 밴드 기타리스트한테 기타 배울 기회가 얼마나 드물어요.
그때 태어나서 처음 기타를 샀거든요. 기타를 메고 서울을 횡단하는데, ABCD 코드도 못 치면서 무슨 뮤지션이 된 것 같은 거예요. 아무도 관심 없는데 나 혼자 거리의 악사가 된 것 같고. 한강변에서도 치고, 공원에서도 치고, 아파트에서 치면 뭐라고 할까 봐 밖에 나가서 치고. 친구 집에 놀러 갈 때 아무도 가져오라고 안 했는데 기타를 메고 가서 “한 곡씩 들어야 한다”고(웃음). 친구들이 “운동권 선배가 맨날 기타 들고 다니듯이 넌 왜 어디를 가도 기타를 메고 다니냐”라고 했을 정도예요.
기타로 먹고살 것도 아니고, 하루에 몇 시간씩 치고 돈도 쓰고, 생계랑은 완전히 무관한 일인데 그때 진짜 그 힘으로 살았거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여요. 옛날에는 음악을 들으면 그냥 “좋네” 했는데, 기타를 배우고 나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 서너 곡을 쳐봤더니 코드 진행이 다 같은 거예요. 아, 내가 이 진행 방식 자체를 좋아하는 거구나. 무슨 천기누설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배우기 전에는 뿌옇게 보이던 게, 배우고 나면 또렷해져요.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지는 거죠.
약간 반쯤 진담으로 하는 말인데, 가계부에 주거비, 식비 같은 필수 항목이 있잖아요. 청소년한테는 교육비가 당연히 들어가는데, 성인한테는 안 넣어요. 필수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저는 성인도 교육비를 필수 항목으로 넣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먹고살 것도 아닌데”라는 말, 진짜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만약 자식을 키우는 부모가 “엄마, 나 우쿨렐레 배워보고 싶어” 하면 “먹고살 것도 아닌데 왜 해?” 안 그러잖아요. “그래, 한번 해볼래?” 하잖아요. 그 아이의 미래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일단 시켜보잖아요. 그런데 왜 어른인 나 자신한테는 안 그러죠? 먹고살 것과 상관없이, 뭔가를 배우는 게 최고의 덕질이고, 그게 진짜 사는 재미예요.
Q.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채로 오래 지속하는 비결이 있다면요?
제가 책에 쓰기도 한 말인데, ‘좋다’는 형용사지만 ‘좋아하다’는 동사란 말이에요. 여기서 좀 생각해 볼 게 있어요. 좋다고 느끼는 건 별 노력이 필요 없어요. 그냥 좋으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좋아하려면 노력을 해야 해요. 동사니까 액션이 필요한 거예요. 가만히 있는다고 어떤 대상이 계속 새롭게 좋아지지는 않거든요.
저도 늘 포기 1순위가 운동인데, 운동을 좋아하기가 정말 쉽지 않잖아요. 힘드니까. 그래서 유치하지만 레깅스라도 새로 사고, 물통이라도 바꾸고, 같이 가는 친구를 만들고, 억지로 비싼 데 등록해서 포기 못 하게 만들고. 스스로 배수진을 치는 거죠. 좋아함을 유지하기 위한 크고 작은 액션들.
물론 그럼에도 정말 안 맞는 건 있어요. 그때는 빨리 손을 놓고 다른 걸 찾는 게 나아요. 안 맞는 걸 끝까지 붙잡고 있으면 그 피로가 다른 좋아하는 것까지 잡아먹거든요.
Q. 지금 가장 쫓고 있는 토끼는 무엇인가요?
아직 어디에도 말 안 한 건데요(웃음). 올봄 4월 말부터 카카오 웹툰에서 생활 만화를 정식 연재해요. 제목은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1인용 인생’이에요. 혼자서 삶을 돌파해 나가는 이야기예요.
만화를 거의 20년 그렸는데, 정식 플랫폼 연재는 사실 처음이에요. 그동안 제 블로그에 올렸으니까 어떻게 보면 블로거인 거잖아요. 맨날 “재야의 만화가”라고 농담했는데, 좀 더 작품다운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전세 역전도 카카오 웹툰에 재오픈하면서 새 만화와 함께 준비하고 있어서, 지금은 원고를 열심히 그리고 있어요. 20년 해놓고 이제야 정식 웹툰 작가라고 하면 좀 부끄럽지만(웃음).
Q. 끝으로, 평생학습e음 독자들에게, 특히 새로운 시작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즘 싫어하기가 너무 쉬운 시절이에요. 유행하는 말이 전부 ‘손절’, ‘극혐’이잖아요. 조금만 엇대도 극혐, 손절. 그래서 오히려 뭔가를 좋아하기가 어렵죠. 그런데 내가 뭔가에 약간이라도 흥미가 생겼다면, 그걸 우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 이거 좋아하는 것 같아” 하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을 우쭈쭈 해주세요.
어른들은 나 자신한테는 왜 그렇게 가혹한지…. 이를테면 꽃꽂이가 배우고 싶은데, 꽃값도 비싸고 수강료도 만만치 않으니까 주저해요. 거기에 ‘이걸로 꽃집 할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겹치면 못 배우는 거죠.
그런데 용기를 내서 ‘이번 달 내 교육비’라고 책정하고 등록해 보세요. 한 달 내내 “이번 주 토요일에 꽃 만지러 간다” 하면서 신나고, 집에 오는 길에 꽃다발 들고 오면서 기쁘고, 일주일 내내 꽂아두면서 좋고. 그다음부터는 거리를 지나갈 때 “저건 라넌큘러스야, 저건 이렇게 잘라야 돼” 이런 걸 알게 되고, 친구 생일에 꽃시장 가서 직접 만들어줄 수도 있고. 배우기 전에는 그냥 예쁜 꽃이었는데, 배우고 나면 세상의 해상도가 달라져요.
힘들거나 안 맞으면 그냥 그만두고 다른 걸 해보면 돼요. 아이가 울면서 “엄마, 정말 못하겠어” 하면 “알았어, 그만해” 하잖아요. 나한테도 그러면 돼요. “안 맞으면 그만두고 다른 거 해봐. 인생 짧으니까.”
배움은 나를 우쭈쭈 해주는 것이에요. 내가 나를, 키우는 아이처럼 가르쳐 주는 것. 그러니까 성인도 교육비 책정하시고, 뭐든 한번 배워보시길 바랍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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