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손정현 드라마 감독_설레면 평생 하게 됩니다

2026-04-07

[이음의 탐구생활] 드라마 PD·작가 손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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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하이텔 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동료들과 책을 내기도 했던 한 청년이 군대를 다녀와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비디오방이 생겨나던 시절이었다. 밤낮이 바뀐 고시생 신세에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엄청 봤고, ‘저거보다 내가 잘할 것 같은데’ 싶었다. 뭔가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커지던 그 즈음, 고시 공부를 접고 나오는 길에 우연히 드라마 촬영 현장을 봤다. ‘저건 월급 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길이구나.’ 그때 문득 얻었던 깨달음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1995년 SBS에 입사한 손정현 감독은 이후 〈조강지처클럽〉, 〈보스를 지켜라〉, 〈키스 먼저 할까요?〉, 〈화양연화〉,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연출했다. 재직 중에는 직접 드라마 작가에도 도전해 여러 편을 써봤지만, 자신은 그 그릇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내려놓았다. 그렇게 23년간 현장을 누비던 사람이 어느 날 사표를 냈다. 안정적인 직위도, 익숙한 촬영 현장도, 탄탄한 선후배 네트워크도 두고 나왔다. 주변에서는 말렸다. 그러나 그는 나왔고, 이후의 삶이 오히려 더 풍성해졌다.

 

제일 먼저 책을 썼다.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작법서 《나는 왠지 대박날 것만 같아!》가 나왔다. 중학교 때 잡았다 놓았던 기타를 다시 잡았고, 드라마 현장에서 만난 인연들과 밴드를 결성해 공연 무대에도 섰다. 그리고 올해, 후배 감독 김재현 씨와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신간 《오케이, 컷! 이만 총총》을 펴냈다. 현장의 언어 ‘오케이, 컷’과 편지의 끝맺음 ‘이만 총총’을 나란히 붙인 제목처럼, 이 책은 드라마 현장에서 살아온 사람이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솔직한 이야기다.

 

SBS의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면 드라마 PD 절대 안 하겠다고. 야만과 폭력의 시대, 밤을 새우고 또 새우던 현장을 몸으로 겪어낸 사람의 말이었다. 지금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정착되면서 그때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손정현 감독은 판검사가 직업을 바꾸자 해도 안 바꾼다고 했다. 삼성 이재용 회장이 바꾸자 그러면 잠깐 생각해 보겠다는 농담을 덧붙이면서. 작품마다 전혀 다른 대본, 전혀 다른 배우, 전혀 다른 스태프와 만나는 설렘이 매번 새롭게 찾아오는 한, 이 직업을 놓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평생학습은 바로 그 설렘을 찾는 일이라고 말하는 손정현 감독과의 일문일답.

 


써봐야 알고, 해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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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드라마 PD라는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89학번이라 군대 다녀오고 나니 93년이 됐어요. 그때가 되면 남자들이 급해지거든요. 여학생들은 대학원도 가고 느긋한데, 남자들은 뭔가 해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일단 고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마침 그때가 비디오방이 처음 생기던 시절이었어요. 밤낮이 바뀐 고시생 신세에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엄청 봤거든요. 보다 보니까 ‘저거보다 내가 잘할 것 같은데’ 싶은 거예요. 영화 담론 문화도 막 생겨나던 때라 한번 시도해 볼까 했는데, 막상 선뜻 뛰어들지는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 두 달 만에 이 길은 아니다 싶어 고시 공부를 접고 나오는 길에, 신림동 고시촌 근처에서 SBS 드라마 촬영 현장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 장면을 보면서 딱 든 생각이 ‘저건 월급 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길이구나’였어요.

 

사실 영화 아카데미 다니는 선배 덕에 촬영장에 가본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보니 제일기획 출신 같은 쟁쟁한 사람들이 즐비한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졸업하고 부모님한테 ‘저 영화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너무 막막해 보였던 거죠.

 

그런데 드라마 PD는 내가 좋아하는 영상 세계에 있으면서도 봉급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던 거예요. 그날부터 언론고시를 준비했는데, 공부가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어요. 영화, 연극, 음악, 미술을 두루 건드리는데 그게 딱 제 적성이더라고요. 그렇게 준비해서 1995년 SBS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드라마 PD로 살고 있습니다.

 

Q. SBS에 계실 때 직접 드라마 작가에도 도전하셨다고요. 어떤 경험이었나요?

가수 중에 싱어송라이터가 있잖아요. 작사도 하고 작곡도 하고. 영화 쪽에는 그런 분들이 계셨는데, 드라마 쪽에는 연출과 집필을 함께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래서 ‘내가 해보면 어떨까’ 싶었죠. 솔직히 말하면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어요. ‘내가 써도 이거보다 잘 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었으니까요.

 

막상 써보니 극화된 대본이라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어요. 쓰면서 글쓰기의 잔인한 고통이 뭔지 처음으로 알았고, 다 쓰고 나서 희열도 느꼈고, 무엇보다 내 한계를 확실히 알았어요. 그러고 나서 깨달았죠. 작가는 전생에 죄를 지어서 그 벌을 받듯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나 같은 사람이 할 게 아니구나.(웃음) 그래도 그 경험에 여한은 없어요.

 

오히려 그 경험이 연출자로서 저를 크게 바꿔놨어요. 작가가 그 신을 넣을 때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걸 몸으로 알게 됐거든요. 그 뒤로는 후배들한테 강하게 얘기해요. 작가의 글을 함부로 고치면 안 되고, 고치더라도 반드시 작가의 동의를 구하고 작가로 하여금 고치게 해야 한다고요. 직접 써봤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에요.

 

Q. 〈조강지처클럽〉부터 〈반짝이는 워터멜론〉까지 작품이 다양합니다. 스스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요?

〈반짝이는 워터멜론〉 촬영 전에 진수완 작가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어요. “당신의 가장 아픈 손가락 같은 작품이 뭐냐”고요. 그랬더니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하는 작품마다 잘 됐건 안 됐건 배우는 것들이 있어요. 늘 새로운 대본, 새로운 배우, 새로운 스태프와 만나는 게 이 직업이라 매너리즘에 빠지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굳이 애착이 가는 작품 하나를 꼽자면 〈화양연화〉예요. 1993년 데모 현장에서 처음 만난 첫사랑이 26년 만에 재회하는 이야기인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가장 빛나던 시절의 사랑과 그 이후 달라진 삶을 함께 담았어요.

 

오래전부터 한국 현대사의 결을 멜로 안에 녹여보고 싶다는 숙원이 있었는데, 전희영 작가님도 그게 자신의 숙원 사업이라고 해서 함께 시작했어요.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많이 풀어낸 작품이에요. 나중에 다시 보면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깊이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인데, 좀 루즈한 부분도 보이고 그게 못내 아쉽죠. 더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했던 마음이 있었는데, 어쩌면 그게 저의 오만이었던 것 같기도 해요.

 

Q. 2018년 SBS를 나와 프리랜서를 선언하셨을 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이 바닥에 큰 흐름이 두 번 있었던 것 같아요. 레거시 미디어에 있다가 종편으로 가는 첫 번째 물결이 있었고, 2018~2019년 즈음에 두 번째 물결이 왔어요. 아예 프리랜서로 나가는 흐름이었죠. 저도 그 흐름을 타고 나오게 됐어요. 나가라는 신호가 온 것 같다고 느꼈달까요. 가족한테는 미리 다 이야기했어요. 이런 장점이 있고, 이런 단점이 있고, 이런 리스크가 있다고. 예방접종을 맞힌 거죠.(웃음)

 

만족도는 솔직히 반반이에요. 조직에 있었으면 지금쯤 직위가 꽤 올라갔을 텐데, 싶다가도 있었으면 책을 못 썼겠다 싶고. 개인 시간이 생긴 게 너무 좋아, 했다가도 작품 하나 끝나고 나서 다음 론칭이 자꾸 어긋날 때는 또 불안하기도 하고. 그러다 또 그냥 견디다 보면 끊임없이 전화가 오더라고요. “감독님 요즘 뭐 하세요, 이 작품 어떠세요?” 그러면 또 감사하게 여기게 되고. 그렇게 반반인 마음이 계속 왔다 갔다 해요.

 

그래도 나한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사람들만 자연스럽게 곁에 남는다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책을 쓸 수 있다는 것, 지금은 그것들이 사회적 지위보다 훨씬 큰 것이 됐어요.

 

솔직함이 가장 강한 언어이자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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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SBS를 나온 뒤 쓴 첫 책 《나는 왠지 대박날 것만 같아!》는 어떤 책인가요?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을 위한 책이에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강의를 하면서 나온 결과물이기도 해요. 그 교육원이 기초반, 연수반, 전문반, 창작반까지 있는데, 저는 전문반을 맡았어요. 기초·연수를 다 통과한 친구들이 오는 단계거든요. 그 친구들에게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었어요. “저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나요? 저 자질 있어 보여요?” 그럼 저는 “저한테 왜 물어봐요?”라고 되묻거든요. (웃음)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는 제가 판단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해보지 않으면 본인도 모르는 거고, 여한이 없을 때까지 해봐야만 알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남은 인생을 제가 참견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일도 있었어요. 전문반 친구 중에 솔직히 보면 글쓰기 자질이 좀 부족해 보이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웹소설 당선이 됐어요. 깜짝 놀랐어요. 그냥 초창기에 저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글쓰기를 정말 좋아하니까 결국 성과를 내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는 것, 여한이 없을 때까지 해봐야 안다는 것. 그 메시지를 담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Q. 신간 《오케이, 컷! 이만 총총》은 어떻게 시작된 책인가요?

이명세 감독님이 채호기 시인과 나눈 편지를 묶어 책으로 낸 적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서 좋다고 생각했는데, 워낙 거물급들의 이야기라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든 생각이, 드라마 감독들 사이에서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은 없구나, 우리는 조금 쉽게 접근해 보면 어떨까 하는 거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김재현 감독이 힘들다고 연락이 왔어요. 이 친구는 저랑 〈키스 먼저 할까요?〉를 함께 했던 후배인데, 사표를 낸다 뭐다 하면서 흔들리더라고요. 문자로 답하기엔 아쉬웠어요. 편지로 쓰면 생각할 시간도 생기고, 서로의 이야기가 더 잘 정리되는 것 같았어요. 나도 네 나이 때 그런 고민을 했다, 같은 길을 걸어왔으니 너무 돌아가지 않도록 방향타만 살짝 잡아주고 싶었고요.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게 처음엔 좀 창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글쓰기의 기본은 솔직함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냥 써 내려갔어요. 쓰다 보니 이 친구도 더 솔직하게 답했고, 그러면서 서로 더 가까워졌어요. 이 친구가 신춘 문예 당선 경력이 있어서 글을 잘 써요. 그래서 편지가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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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다면요?

‘드라마 PD도 별거 아닌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 그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화면 안에서 근사해 보이는 세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다른 세계 사람처럼 보기도 하는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지치고 흔들리는 것, 다 비슷하거든요.

 

후배한테 연출자는 서비스직이라고 말해줄 때가 많아요. 너무 감독이라고 목에 힘 주지 말고, 먼저 재미를 주고 그다음에 감동을 주면 제일 좋은 거라고요. 제가 좋아하는 후배 감독이 있는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찍은 유인식 감독이에요. 현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겨서 대본을 확 던졌더니 스태프들이 아무렇지 않게 “감독님, 대본 떨어졌어요” 하더래요. 화를 내도 아무도 긴장하지 않고 그냥 물건 떨어진 것처럼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그 친구도 그때 깨달은 거죠. 화내는 게 자기랑 안 어울린다는 걸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한테 얘기해요. 현장에서 평정심을 잃으면 결국 나만 손해라고요.

 

그리고 저는 제 작품을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에게 2만 원을 드려야겠다는 농담을 자주 해요. 그건 제 후배 경험인데요,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옆에 있는 사람이 자신과 친한 웹툰 작가의 작품을 열심히 보더래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해줬더니 “그분한테 2만 원 드려.” 그러더라는 거예요. (웃음) 내 작품을 봐주는 사람 한 명 한 명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거예요. 연출자도 결국 그 사람들한테 뭔가를 드리는 사람이라는 거고요.

 

한편으로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드리고 싶었어요. 강신주 박사가 “인문학의 기본은 솔직함”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아요. 저 같은 사람도 솔직하게 쓰니까 책이 두 권이나 나왔거든요. 잘 쓰는 것보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 먼저라는 메시지가 두 권 모두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설렘은 찾는 게 아니라 해봐야만 만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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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내 마음이 동하느냐’입니다. 프리랜서니까 웬만하면 하려고 해요. 그런데 대본을 읽는데 작가의 메시지가 너무 약해 보이거나, 마음에 닿는 게 없으면 이상하게 확 안 당겨져요. 반대로 이 작품은 나를 움직인다 싶으면, 캐스팅이 내 성에 안 차더라도 끝까지 애정을 갖고 하게 되거든요.

 

이게 단순히 감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에요. 드라마 제작을 보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대본과 캐스팅이 사실상 80%를 결정해요. 뒤의 메이킹 과정은 그걸 좀 더 풍성하게 완성하는 작업이고요. 그러니까 처음 대본을 읽을 때 내 가슴이 뛰지 않으면, 그 긴 제작 과정을 버텨낼 동력이 없어요. 감독이 작품에 애정이 없으면 현장에서도 다 드러나거든요. 결국 시청률이 어떻게 되든, 내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끝까지 제대로 만들 수 있어요.

 

〈폭삭 속았수다〉나 〈나의 아저씨〉처럼 업계에서도 질투가 날 만큼 잘 만든 작품들이 있잖아요. 드라마 PD들은 남의 작품을 까칠하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드라마들은 그걸 이기고 결국 팬심으로 보게 만드는 힘이 있어요. 그 힘이 어디서 나오느냐, 결국 대본과 배우예요. 그리고 그 대본에 처음부터 마음이 움직였던 감독이 있었다는 거고요.

 

Q. OTT 시대, K-드라마가 전 세계로 퍼지는 지금을 드라마 PD로서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기회가 넓어진 건 맞아요. 예전에는 드라마와 영화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어요. 드라마 PD는 영화 쪽에서 우습게 알고, 영화 감독은 드라마 쪽에서 목에 힘 준다고 보고. 그런데 지금은 그 경계가 거의 없어졌어요. OTT가 그 벽을 허문 거죠.

 

그런데 동시에 역설적인 현상이 생겼어요. 제작사도 어렵고 연출자들도 어려워질수록 상대적으로 플랫폼의 힘이 세지는 거예요. 콘텐츠를 만드는 쪽이 을이 되는 구조예요. 편성 기준이 엄격해지고, 캐스팅도 따지고, 대본도 따지고, 연출자가 누구냐도 따지게 됐어요. 제가 한창 할 때만 해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문턱이 훨씬 높아진 거예요. 거기다 영화 쪽에서도 드라마로 넘어오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연출자 풀이 커졌거든요. 결국 빈익빈 부익부가 심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예요.

 

그러면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뭐냐. 저는 장항준 감독을 보면서 생각해요. TV 패널 출연료만으로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데도 영화에 대한 미련을 놓지 않고 꾸역꾸역 따박따박 해오다가 〈왕과 사는 남자〉로 대박이 났잖아요. 아무도 예상 못 했는데. 그게 결국 포기하지 않는 것의 위대함이 아닐까요.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화려한 전략보다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것, 그게 이 시대에도 통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대박이 언제 어떻게 터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Q. 드라마 PD를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예전에 미당 서정주 선생이 하셨던 인터뷰 기사에서 봤던 표현이 기억나네요. 시인이 되려면 어떤 자질이 있어야 하느냐는 질문이었는데 “심장에 물기가 있어야 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분 자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서 저는 그 표현이 정말 좋았어요. 인간에 대한 연민과 공감 능력을 그렇게 표현한 거거든요. 드라마 PD도 마찬가지예요. 심장에 물기가 없으면 결국 화면에도 드러나요. 대본을 읽어도 뭔가 안 닿고, 배우와 소통도 안 되고, 결국 시청자한테도 전달되기 힘들어지거든요.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그 물기는 배워서 생기는 게 아니에요. 제 생각에 드라마를 찍는 사람에게는 그게 먼저예요.

 

그리고 어떻게 드라마 PD가 될 수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데요, 솔직히 말하면 가장 빠른 지름길은 아직도 방송국 공채입니다. 영화 쪽으로 가는 방법도 있는데, 그 과정을 버텨내려면 집에서 서포팅이 있어야 해요. 아니면 조감독을 오래 하면서 성실함으로 인정받아 기회를 잡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어떤 루트든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결국 남더라고요. 그게 전제가 안 되면 어떤 루트도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강의에서 자꾸 받는 질문이 있어요. “저 이거 언제까지 해야 되나요?” 저는 그 질문에 “여한이 없을 때까지 해보세요”라고 해요. 해봐야 알거든요. 저도 드라마 작가에 직접 도전해 보고 나서야 아니구나 싶었고, 그 여한이 없어지고 나서 연출자로 더 확실해졌으니까요.

 


배운다는 건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아가는 과정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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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손정현 감독님에게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그리고 직접 실천하고 있는 배움의 습관이 있다면요?

결혼할 때 박재동 화백이 주례를 서주셨어요. 그분이 했던 주례사에서 딱 한 마디가 지금도 기억나요. “평생 공부해라.” 그것만 기억에 남아요.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왜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알 것 같아요.

 

배운다는 건 반드시 자격증을 따거나 무언가를 성취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알아가는 과정 자체가 배움이더라고요. 드라마도, 기타도, 강의도, 편지를 쓰는 것도 전부 그래요. 하다 보면 더 잘하고 싶어지고, 더 잘하다 보면 더 즐거워지고, 그게 평생 이어지는 거예요.

 

그러려면 일단 뭔가를 계속 쌓아가는 습관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메모를 많이 해요. 예전엔 ‘좋은 건 잊혀지지 않는다’는 건방짐이 있었는데, (웃음) 나이 들수록 놓치는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지금은 핸드폰에 바로 남겨요. 길 가다 좋은 문구, 책 읽다 마음에 닿는 문장들을요. 누군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모든 쓰기는 읽기에 대한 고백이다’라고요. 읽어둔 것들이 쌓여야 쓸 것들이 생긴다는 말인데, 책 쓸 때 실제로 많이 도움이 됐어요.

 

Q. 평생 배우며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그리고 앞으로 가장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일단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해봐야 알거든요. 해보다가 어느 순간 딱 걸리는 게 있어요. ‘아, 나 이거 평생 할 수 있겠다’는 감이 오는 순간이요. 그게 올 때까지 해보는 거예요.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애쓰지 말고요.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했을 때 조 매든 감독이 라인업 카드에 썼던 말이 있어요. ‘Be present, not perfect!’.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현재를 살아라!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그걸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너무 완벽하려고 스트레스받다 보면 정작 지금을 놓치거든요.

 

연출로는 시간을 이기는 드라마를 하고 싶어요. 〈모래시계〉가 지금도 회자되는 것처럼,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 꺼내보는 드라마요. 글 쪽으로는 드라마 명대사를 통해 삶을 이야기하는 책도 머릿속에서 굴러가고 있어요. 힘든 친구에게, 좌절한 취준생에게, 드라마 속 대사로 편지를 쓰는 형식을 생각하고 있어요. 좋은 편지처럼, 쓸 준비가 됐을 때 시작하려고 합니다.

 

결국 평생학습이란 게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아요.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을 찾고, 찾았으면 계속하는 것. 설레면 평생 하게 되거든요. 그게 드라마든, 기타든, 편지든, 책이든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다 보니 저도 앞으로 할 평생학습이 많네요.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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