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가수 인순이_평생학습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

2024-07-02


[이음의 탐구생활] 가수 인순이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코너


가수 인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는 것이다. 팝, 발라드, 댄스, 디스코, 재즈, 트로트, 국악, 락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한다.

 

인순이를 보면서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그녀의 나이다. 인순이라는 가수를 오랫동안 보아왔기 때문에 나이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그녀를 보면 누가 그녀를 60대라고 생각하겠는가? 얼마 전 방영된 <골든 걸스>라는 프로그램에서 인순이의 그런 면이 압축적으로 드러났다.


다시 현역 걸그룹, <골든 걸스>

<골든 걸스>는 국내 최정상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인순이, 박미경, 신효범, 이은미 4명이 K-POP 최정상 프로듀서 박진영의 프로듀싱과 함께 걸그룹으로 컴백하는 여정을 그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인순이는 1957년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여기서 그녀의 나이를 의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골든 걸스> 멤버 4명 중 신체 나이가 가장 젊고 근력과 균형감 등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결국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걸그룹으로 변신하며 인순이는 나이를 잊은 현역 가수로 다시 한번 대중에게 주목받았다.


“각기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모여 함께 도전하고 서로를 응원하는 과정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체력적인 부분이 가장 힘들었지만요. 이번 출연을 통해 ‘포기하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게 되는데, <골든 걸스>를 통해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어요. 

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고 도전하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좌절의 시기, 내공 쌓아

주한미군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순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978년 ‘희자매’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다. 그 후 수많은 히트곡을 배출했지만 항상 정상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1984년 ‘밤이면 밤마다’로 7대 가수상을 받았지만, 그 후 내리막길을 걸어 밤무대 말고는 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시간을 좌절이나 방황으로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밴드를 결성하고 여러 장르의 노래를 연습하며 레퍼토리를 개발했다. 춤을 배우고 안무를 짜며 길거리에서 공연을 펼치길 수 년. 그렇게 쌓은 내공은 그녀에게 다시 무대에 설 기회가 왔을 때 폭발했다.

 

<열린음악회>에 출연해 그간 쌓아온 실력을 쏟아내며 관객을 사로잡고 다시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거기서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곡에 도전하다 2004년 래퍼 조피디(PD)와 만나 ‘친구여’라는 힙합곡으로 대박을 터뜨린 후 마침내 그녀의 인생 노래 ‘거위의 꿈’을 만나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처음 이 노래를 접했을 때 가사의 메시지가 너무 강렬하게 다가왔어요. '거위의 꿈'은 저의 인생과도 많이 닮아 있어요. 저 역시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달려왔거든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서 더 애착이 가요. 그리고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따돌림을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꼈던 인순이의 어릴 적 꿈은 수녀였다. 세상과 단절해 살고 싶은 마음이 담긴 꿈이기도 했다.

 

인순이는 자신이 겪었던 세상의 편견을 홀로 이겨내는 데 그치지 않고 10년 전 다문화 대안학교를 설립했다. 많이 배우지 못하고 사회적 소수자로 손가락질 받았던 인순이가 지금은 영원히 늙지 않는 현역 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다름 아닌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정신이 아닐까? 대중이 자신을 찾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우면서 스스로를 무장하며 ‘일신우일신’하는 인순이가 풀어놓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시대를 초월한 목소리를 가진 국민 가수

Q. 어릴 때 가수로 데뷔하셨는데 원래 노래를 잘 하셨어요?

어린 시절에는 수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특별히 노래를 잘하거나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저 가족이 먹고 살아야 하니까 일꾼의 한 사람으로 나왔던 것뿐이에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어서 처음에는 노래하는 것이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 역할을 찾게 된 것 같아요.



Q. 최근에도 여전히 바쁘게 활동하고 계시는데, 어떻게 그 에너지를 유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항상 바쁘게 지내는 게 저한테 에너지를 더 주는 것 같아요. 저는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것이 다가오면 빨리 받아들이고, 또 그에 맞춰 제 자신을 업데이트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를 들어, 가요 무대에서는 트로트를 부르고, 열린 음악회에서는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곡을 준비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저는 그런 상황에서도 재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새로운 옷을 보면 어떤 노래에 맞춰 입을지 생각하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즐깁니다.

 

최근에는 ‘조류 메들리’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거위의 꿈, 오리알이다, 부산 갈매기 등을 메들리로 만들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식으로 항상 새로운 것이 없을까? 고민하고 찾다 보니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더 힘이 나고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이에요.


Q. 다양한 활동을 하시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떻게 그런 균형을 유지하시나요?

저는 인기를 위해서만 활동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제 자신을 지키면서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고 합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서 따라가려고 하다 보면 저의 정체성을 잃게 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가수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해요. 매일 노래를 연습하고 새로운 창법에 도전하는 것도 제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예요.


 

노래도 트렌드가 있어서 창법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입을 크게 벌려서 노래하는 것이 당연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거든요. 40년 넘게 노래하면서 항상 그 시절이 요구하는 법을 제 나름대로 소화하려고 무척 노력하는 편입니다. 가수로서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이지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자 

Q.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요?

요즘 본캐, 부캐라는 말을 많이 하죠? 가수로 활동하면서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이 항상 똑같으면 금세 저라는 사람한테 질릴 거예요. 이런 사람일 때가 있고, 저런 사람의 모습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무대마다 다른 모습으로 서야 하기도 하고요. 그 모든 순간이 다 저라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도전하는 정신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주저하는 대신 그냥 해보는 거예요.


해보다 안 되면 ‘아 이건 나한테 안 맞는구나’하고 그만두면 돼요. 하지만 해보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골든 걸스를 제안받았을 때도 두려웠어요. 제가 나이도 제일 많고 이 나이에 걸그룹 안무를 소화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거든요. 그런데 일단 해본 거예요.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해낼 수 있었고 그럼 또 그 모습이 저의 또 다른 모습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순이라는 사람은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고, 그렇게 많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 축제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곡을 연습하지만, 올드팝도 함께 넣어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어릴 때 수녀가 되고 싶을 정도로 세상과 멀어지고 싶어 하셨는데요. 가수로 활동하면서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심지어는 교사들로부터도 차별을 받았어요. 그 당시만 해도 다르다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처음 무대에 설 때도 흑인 특유의 곱슬머리가 보이지 않도록 항상 두건을 썼었어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항상 어머니는 저에게 ‘너는 특별한 존재야’라고 자존감을 심어주셨어요. 그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죠.

 

그리고 음악에 빠져들면서 음악을 통해 제 감정을 표현하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어요. 음악은 저에게 세상과 소통하는 도구이자 제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는 제가 편견과 차별을 잊고 온전히 제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가끔은 힘들 때도 있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무대에 오르기 직전이었거든요. 눈앞이 막막했지만 그 순간 프로답게 무대를 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대에 올라서 웃고, 얘기하고 노래해야 했지요. 무대가 끝나고 내려오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네요.


교육을 통해 다문화 아이들의 미래를 밝히다

Q. 다문화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해밀학교 이사장도 맡고 계시는데요, 교육사업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2010년인가, 다문화 청소년들의 고등학교 졸업률이 28%밖에 안 된다는 소식을 듣고 놀란 적이 있어요. 저도 사춘기 때 힘든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다문화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이해하거든요. 다문화 청소년들이 겪는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줄이고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면 그 아이들의 미래가 더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몇 명의 아이들이라도 옆에서 도와주자는 생각으로 학교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60명의 아이들이 공부하고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Q. 학교 운영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나요?

해밀학교는 단순히 학문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에요. 이 학교는 아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다양한 문화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며, 사회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코딩 교육, 예술 교육, 체육 활동, 바둑 대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특히 코딩 교육은 아이들이 미래 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작했어요. 코딩은 문제 해결 능력과 논리적 사고를 키워줄 뿐만 아니라, 창의력도 함께 키워주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저희 학교를 졸업한 한 학생이 피부 미용 분야에 취업했다고 좋아하면서 학교로 찾아왔어요. 학교를 다닐 때는 언어 문제와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이 많았던 친구예요. 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항상 노력했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그 친구를 돕기 위해 한국어 수업을 강화하고 면접 준비와 자기소개서 작성 등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주었어요.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뤘다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Q. 바둑 대회도 열린다고 들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네, 바둑 대회는 아이들의 집중력과 전략적 사고를 키워주기 위해 기획한 프로그램이에요. 바둑뿐만 아니라 장기, 체스 등 다양한 보드게임 대회를 통해 아이들이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부터는 홍천군 대회로 확대해서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자 합니다. 이 대회를 통해 아이들이 서로 교류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효과도 얻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해외 대학 탐방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도 목표 중 하나입니다.


Q. 학교 운영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우리 학교는 기숙사 생활을 해요. 일단 입학하면 아이들이 24시간 학교에서 지내게 되기 때문에 학과 교사뿐만 아니라 기숙사 교사도 필요하고 일반 학교보다 시설도 더 많이 갖추어야 하지요.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려다 보니 처음에 무척 힘들었고 지금도 쉽지는 않아요.

 

하지만 많은 분들의 도움과 후원으로 점점 안정되었고, 지금은 교사들의 월급도 일부는 나라에서 지원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후원이 필요해요. 더 많은 지원이 있어야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으니까요.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삶을 채우다

Q.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문화 대안학교 설립에서 느꼈지만 배움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평생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입니다.

저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됐어요. 가수의 길을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했죠. 노래를 잘 부르기 위해서 다양한 음악 장르를 공부하고, 무대 퍼포먼스를 위해 춤과 연기를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고, 지금까지도 그 열정을 잃지 않고 있어요.

 

최근에는 건강을 위해 근력 운동과 요가를 배우고 있어요. 또, 코딩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기 위해 코딩 공부도 시작했어요. 그리고 다문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운영하면서 상담사 자격증과 코칭 자격증도 취득했지요.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큰 보람으로 다가와요.


Q. 선생님에게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요?

평생학습은 저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에요. 저는 배움이란 끝없는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해야 하는데, 그 중심에는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평생학습은 저에게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아요. 배움을 통해 저는 매 순간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배움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Q. 평생학습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호기심을 가지세요.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은 때때로 어려울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보람과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리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배우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처음에는 작은 목표를 세우고 천천히 접근해 보세요. 계속해서 배우다 보면 어느새 그 분야에서 자신감을 얻고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요. 그리고 제 배움의 경험을 아이들과 팬들에게도 나누고 싶습니다.

 

모두가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여러분도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배움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평생학습e음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강민구 (스튜디오보일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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