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 박인선 대표 인터뷰_“장애인은 무조건 받기만? 새로운 봉사문화 만들었죠”

2022-12-27


 ‘사단법인 반딧불이’ 박인선 대표 





아들은 발달장애인이었다. 아들 교육을 위해 여러 기관을 전전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기관에서조차 발달장애인을 꺼려 했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척박했던 시절이었다. 결국 ‘내가 직접 가르치자'는 생각으로 주변에 있는 문화 예술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2003년, ‘반딧불이’의 시작이었다.


“태권도나 미술 학원에 가보면 내 돈 주고 보내려고 해도 꺼리는 데가 많았어요. 또 아이가 반향어를 쓰니까 학부모들이 ‘쟤 때문에 안 보내고 싶다'는 무언의 압박이 들어왔다고 해요. 그래서 우리 아들 같은 애들을 데리고 수업을 해보자 싶었죠. 처음에는 강의실이 어딨어요. 남의 사무실 한쪽 구석에 책상 놓고 풍물 수업은 어느 회관에서, 수묵화는 또 다른 데서 돌아다니면서 했어요. 악기도 없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악기 빌려 쓰고 갖다주고요. 정말 무식하니까 용감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니까 했던 거죠. 그렇게 4~5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가 2007년에 넓은 공간으로 옮기면서 프로그램을 확장했어요.” 박인선 ‘사단법인 반딧불이' 대표 



2022년, 당시 10대였던 아들은 30대 중반이 되었고, 반딧불이는 용인시의 대표적인 장애인 평생교육시설로 성장했다. 반딧불이는 2021년 ‘제1회 경기도 평생학습 대상'에서 기관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2022년에는 ‘제19회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에서 사업 부문 최우수상인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반딧불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평생교육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엄마니까 용감해서 시작했죠”




지난 12월 8일 반딧불이를 찾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내리자 깔끔하고 널찍한 공간이 나타났다. 2년 전 재개발로 인해 터전을 옮겨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서 운명처럼 만난 곳이다. 건물주의 배려로 화장실 등에 장애인 편의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내부로 들어가자 곳곳에 사진, 그림, 시, 세라믹 페인팅, 각종 굿즈 등 학습자들이 만든 문화예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반딧불이의 슬로건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이다. 반딧불이에서는 다양한 문화예술 교육과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예술 교육은 공연을 중심으로 댄스, 합창, 칼림바, 기타, 농악, 연극, 난타 등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전문 난타공연팀인 반디스틱은 여러 지역에 초청되어 공연을 하기도 한다. 



2021년 제18회 반딧불이 정기예술제 영상 



평생 교육은 전시를 중심으로 초크 아트, 가죽 공예, 세라믹 페인팅, 나도 시인(글쓰기), 어반스케치, 나이스 빌리지(우리 마을 테마사진 )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올해부터 새롭게 사진편집자격증반을 운영하고 있는데 수업에서 배운 포토샵으로 장애인 학습자들이 액자, 마우스패드, 머그컵 등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고 용인시 캐릭터 굿즈샵인 ‘조아용 스토어'에도 납품을 했다. 


이외에도 반딧불이에서는 ▴ 성인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주간활동 서비스 ▴ 발달장애청소년을 위한 청소년 야간보호 사업 ▴ 부설 기관인 성문화 연구소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데 박인선 대표(61)의 아들이 강당 문을 열고 들어와 종이에 이름을 써달라 했다. 박 대표의 아들은 반딧불이에서 주간활동 서비스를 받고 있다. 


“얘는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이름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자기 나름의 손님 접대로 물 한 잔씩 가져다줘요. 이 아이가 나름대로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요즘 발달장애라고 하면 다 우영우 같은 줄 아는데 발달장애인은 백인백색으로 100명이면 100명 다 달라요.”


박 대표의 말처럼 박 대표의 아들은 취재진의 이름을 부르더니 물 한 잔씩 가져다주고는 쿨하게 다시 교실로 돌아갔다. 반딧불이를 운영한 지 올해로 20년 차인 박인선 대표에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평생교육에 대해 물었다. 




“장애인-비장애인 구분, 반딧불이에서는 없어요”




반딧불이의 슬로건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 인데요. 이렇게 슬로건을 정한 이유가 있을까요? 

“20년 전 처음 반딧불이를 만들 때만 해도 장애인은 장애인, 비장애인은 비장애인이었어요. 저는 우리 아이가 세상의 아이들과 어울렸으면 했어요. 그때부터 슬로건을 그렇게 잡고 봉사자를 모집했어요. 보통 봉사라고 하면 쓸고 닦는 봉사만 생각하지만 저는 봉사를 다르게 생각해요. 지금 에디터님이 마음이 힘들다면 차 한 잔 같이 하고 얘기 들어주는 그것도 저는 봉사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비장애인들이 우리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게 봉사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봉사자들을 함께 참여시켰어요. 풍물 수업에서 장애인들이 장구나 북 등을 치는데 옆에서 도와주면서 수업을 함께 하도록 한 거죠. 합창도 같이 소리를 모아보도록 했고요. 그러니까 봉사자들이 봉사 시간을 다 채우고 나서도 반딧불이에 찾아오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마음 속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장애인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 거죠.” 



봉사의 개념이 도와주는 게 아니라 활동을 같이, 함께 하는 거라고 보신 거네요? 

“‘도와준다'는 말은 수동적이에요. 장애인은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하고 비장애인은 도와준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다 못하지 않고 비장애인이라고 해서 다 잘하지 않거든요. 저희가 봉사자 교육을 할 때 무조건 도와주는 건 장애인을 두 번 좌절시키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일반 봉사자들은 장애인이라고 하면 다 떠먹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장애인이 숟가락을 입까지 가져가는 건 되는데 입에 넣는 게 어렵다면 그 부분만 도와주면 돼요. 안 되는 것을 도와주는 게 봉사지, 장애인은 가만히 입 벌리고 있고 비장애인이 다 도와주면 장애인들의 잔존 능력마저 없어져요.” 


반딧불이에 오는 장애인, 비장애인은 주로 어떤 분들인가요? 

“현재는 20~30대가 많고 주로 발달장애 친구들이 많아요. 매년 1, 2월 달에 학습자 모집을 해서 12월에 수료를 하는데요. 신변 처리를 스스로 할 수 있고 1년 정도 꾸준히 갈 수 있는 친구들을 받아요. 봉사자도 1년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친구들을 받으려 하는데 주로 청소년이 많고 성인 봉사자도 있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학습자도 봉사자도 이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상황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세상을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반딧불이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중요해요. 반딧불이 안에서는 장애인, 비장애인 없이 다 똑같이 사람이에요. 자기들끼리 카톡도 하고 전화도 해요. 저는 그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장애인, 봉사자 구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거죠. 장애인에게는 무조건 다 베풀어야 하고, 장애인은 무조건 받아야 하나요? 난타공연하는 반디스틱 팀이 외부에 나가서 공연을 했어요. 원천세 떼고 남은 돈을 반디스틱 친구들에게 N분의 1로 나눴어요. 출연료를 받으면서 아이들 자존감이 올라가는 거예요. 또 다른 애들은 ‘나도 잘해서 반디스틱팀에 들어가야지'라는 로망이 생기고요. 

(학습자들 명함 들고 와서 보여주며) 해마다 정기예술제를 할 때 전시와 공연을 하는데요. 올해 19회 정기예술제를 하면서 작품을 전시한 작가의 명함을 만들었어요. 여기에 ‘작가 : OOO’ 이렇게 적혀 있잖아요. 아이들의 이름을 새겨서 명함을 이만큼 만들어 줬어요. 자기가 그린 그림으로 달력을 만들고 엽서를 만들고 명함도 생기고… 얼마나 자신감이 생기겠어요. 내가 만든 게 작품화되고 예술제에서 팔리니까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학습자들이 어떤 활동을 가장 좋아하나요?

“아이들마다 달라요. 어떤 부모님은 이런 이야기도 해요. 평일에 학교 가자고 깨우면 안 일어나는데 (반딧불이 가는) 토요일 되면 새벽같이 일어나서 반딧불이 데려다 달라고 한다고요. 아이들은 칭찬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잘못된 건 이야기하고, 잘한 것에 대해서는 극대화하는 편이에요. 저 사람이 영혼 없이 하는지 진짜로 하는지 우리 애들이 더 잘 알거든요.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봐주면 되는 것 같아요. 우리 아들이 발달장애잖아요. 쟤한테 숫자 가르쳐주면, 물론 되는 애도 있겠지만 안 되는 걸 억지로 하게 하지 않고 그 아이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거예요.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내 생각을 주입하지 않는 거죠.”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뿐 아니라 기술 습득 및 취업 역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는데요.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고려하는 점이 있나요?

“프로그램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똑같은 프로그램을 몇 년씩 하고 계속 투자해야 내 것으로 습득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러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한두 개씩 시도하는 거죠. 올해 시작한 사진편집자격증반은 2020년에 했던 가벼운 체험 프로그램에서 발전한 거예요.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을까 했는데 액자도 만들고 머그잔도 만들고 하다 보니 수료증, 감사패 등 주문 제작이 들어오기도 해요. 

저는 아이들에게 최대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해요.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니까요. 신규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싶을 때는 방학 때 특강을 해요. 새롭게 시도를 해보면서 아이들 반응을 보고 선생님이 아이들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는지 봐요. 아이들 눈빛만 봐도 반응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아이들 눈만 보고 가요.” 





“지역 사회에 녹아드는 장애인 평생교육”




반딧불이에서는 배움뿐만 아니라 나눔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요. 나눔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는 계속 나누려고 해요. 매년 10월에 정기 예술제를 열어서 전시회와 공연 콘서트를 열고요. 공연 봉사도 함께 해요. 예술제에 올렸던 무대 그대로 장애인 시설에 가서 무대를 올려요. 공연도 하고 봉사도 하는 거죠. 해를 거듭할수록 아이들이 무대를 즐겨요. 초크아트로 만든 메뉴판을 카페에 기부하고, 우드 펜을 깎아서 지역 사회에 기부를 하기도 했어요.”


코로나19로 인한 영향은 없었나요?

“코로나19 때문에 다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모이지도 마라, 프로그램도 하지 마라. 저는 그걸 역으로 하려고 했어요. 하자, 해보자 그런데 우리가 지킬 건 지키면서 하자. 하루 두 번씩 건물 소독을 하고 손 씻기 하고 마스크 철저히 쓰고. 딱 일주일 문 닫은 것 제외하고는 프로그램도 다 운영했고 예술제도 했어요. 공연은 비대면 무관중으로 했고요. 우리 애들은 갈 데가 없잖아요. 저는 안 되면 되게 하고 방법을 찾으려 했어요. 장애인들이 우리 안에서는 고립이 안 됐으면 했어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할 텐데 어떻게 마련하셨나요?

“무조건 도와달라고 하기보다는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용인시, 경기도 등 공모사업에 다양하게 지원했죠. 용인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함께 일하는 우리 귀한 직원들의 헌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입구에 보니까 ‘나이스(NICE)'라는 문구가 크게 있더라고요. 이번 정기예술제 타이틀도 ‘나이스 페스티벌'이고요. 어떤 의미인가요?

“해마다 연말이면 어떤 슬로건으로 한 해를 운영할까 고민해요. 작년에는 올 라이트(All light)였어요. ‘모두가 빛'이라는 거죠. 나이스는 <놀면 뭐하니> 아시죠? 거기에서 SG 워너비 진호가 “나이스!”라고 하잖아요. 거기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내년 슬로건은 ‘예스 위 캔(Yes We can)'이에요. 저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데요. 얼마 전에 누군가를 만났는데 그분이 그러더라고요. 20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반딧불이를 어떻게 운영하고 싶냐고요. 

저는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봤어요. 여자가, 그것도 장애인들을 데리고 무슨 일을 하냐고요. 두고 보자는 사람도 있었고 방관자도 있었고 훼방자도 있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니까 ‘저 사람은 뭔가 있어'라고 하고, 20년이 되니까 ‘역시 반딧불이야'라고 하더라고요. 내년에 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큰 에너지가 있을 것 같아요. 20년 전엔 ‘나는 할 수 있다'였지만 이제는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스 위 캔’이에요.” 



반딧불이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어느날 제가 없어졌을 때 우리 아이가 방황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지역 사회와 어울려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궁극적 목표예요. 이렇게 굿즈를 만드는 것도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고, 비장애인들한테도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위한 거고요. 반딧불이가 장애인들의 문화예술 공간을 넘어서 장애인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평생교육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잖아요. 장애인들이 지역 사회와 함께하는 평생교육공동체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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