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안인모 인터뷰_“클래식 음악을 평생 친구로 두는 거죠.”

2023-04-04

[이음의 탐구생활]  피아니스트 겸 클래식 연구가 안인모가 말하는 ‘클래식의 즐거움’  



📗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 코너



예중, 예고, 음대를 거쳐 유학까지 전형적 코스를 밟아온 피아니스트 안인모는 귀국 독주회를 끝내자마자 덜컥 말하는 콘서트 ‘미락클(美樂클)’을 만든다. 연주만 해왔던 무대 위에서 수다 떨고 노래도 부르기 시작한 것. 떨리기보다는 마냥 즐겁고 신났다. 


피아노 치던 손으로 스크립트를 쓰고 마이크를 잡은 지 10년, 그는 여러 개의 이름표를 갖게 됐다. 피아니스트이면서 동시에 클래식 연구가로 팟캐스트, 유튜브 등 여러 플랫폼에서 ‘클래식이 알고 싶다’ 방송을 진행하고, 콘서트 가이드 겸 해설가로 무대 외에도 기업, 기관, 도서관 등 다양한 곳에서 클래식 강연을 진행하고 있는 까닭이다. 



“클래식 음악회는 진지하게 감상만 해야 된다는 관습, 전통, 형식 같은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딱딱하고 경직돼서 보는 게 아니라 즐겁게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사 번역도 요즘 말투로 친근하게 바꿔요. 굳이 지금 안 쓰는 고어에 얽매여 어렵게 번역할 필요 없으니까요. 지금 누가 ‘그대여 어찌하여’ 이렇게 말해요. 이런 게 혁명일 수 있어요.”


스스로 ‘혁명’이라 말하며 틀을 깨는 이유는 단 하나, 대중이 클래식을 ‘평생 친구’ 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이 알아가는 몰입의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내면을 강하게 키우는 힘, 상처받고 좌절했을 때 일어나게 하는 힘을 기르는 데도 도움된다고 말한다. 좌절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곡을 완성한 음악가의 숨은 노력과 시간이 응집된 결과물이 음악 그 자체인 이유다. 



이 때문에 그는 정말 음악가를 만난다는 생각으로 음악가의 삶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철학, 문학, 회화까지도 가리지 않고 두루 공부한다. 외국대학 도서관 사이트에서 논문도 찾아본다. 오직 음악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청중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다. 


피아니스트가 아닌 다른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는 그가 피아니스트로만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틀을 깨고 클래식 음악과 대중을 잇는 커넥터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월 13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클래식도 즐겁게 즐길 수 있을까?] 

Q. (3월 13일 인터뷰일 기준) 지난 주말 오류아트홀에서 클래식 콘서트 해설을 하셨더라고요. 공연은 잘 끝났나요? 

“심각하고 경직돼서 보는 게 아니라 즐겁게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신나게 만들어보자는 의미로 ‘신난다’와 ‘봄’을 합쳐 ‘봄 나는 클래식’이라고 제목을 붙여 공연을 준비했죠. 인생의 봄에 대해 이야기하고 곡 속의 봄을 만나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는데요. 다행히 365석이 모두 매진돼 즐겁게 공연 해설을 했습니다. 토요일 낮 공연이라 가족 단위 관객이 많았는데 초등학생들을 위해 홍난파 작곡가가 작곡한 ‘퐁당퐁당’, ‘무지개’처럼 변주곡 중에서도 일부러 봄 느낌 나는 동요를 선택했고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이번 음악회는 이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녁이 있는 삶’을 아무리 외쳐도 어떻게 직장인 아빠들이 저녁 8시에 아이와 함께 예술의 전당을 갈 수가 있겠어요. 없거든요. 근데 이번 음악회는 지역 주민들이 클래식 음악회를 쉽게 접하고 경험해보기를 바라는 차원에서 마련된 주말 낮 공연 음악회잖아요. 아빠도, 엄마도, 아이도, 할머니까지도 “클래식 음악회 가봤어”라고 자연스레 경험하고 말할 수 있도록.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클래식 음악회를 접했을 때도 어렵지 않고 좀 더 친근해지게 되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게 제 역할이기도 하고요.”


Q. 연주자이면서 동시에 콘서트 가이드 겸 클래식 해설가로 활동하고 계시죠. 다양한 곳에서 강연도 하시고요. 연주자로 활동하는 것만으로도 바쁘실 텐데 클래식 해설가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10년 전쯤 유학 끝내고 귀국 독주회를 하게 됐는데 ‘귀국 독주회’라는 말 자체가 너무 싫은 거예요. 미국에서 같이 유학했던 외국 친구들에게 너희도 귀국 독주회라는 게 있냐고 물어봤더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귀국을 신고하는 연주회라는 것 자체가 웃기고 말이 안되잖아요. 울며 겨자 먹기로 뻔한 타이틀을 해치운 다음 ‘피아노텔링’ 콘서트를 시작했어요. 피아노와 스토리텔링을 합쳐 제가 직접 말하는 공연을 하는 거예요. 때마침 청소년을 위한 해설이 있는 음악회 같은 게 붐을 일으킬 무렵이었는데, 해설이 있는 음악회는 뻔하니까 연주하면서 말하는 피아노텔링의 ‘미락(라)클 콘서트’를 만든 거죠. 아름다울 미(美), 즐거울 락(樂), 락이 음악 악도 되잖아요. ‘아름답고 즐거운 클래식’이라는 뜻의 ‘미락(라)클 콘서트’를 하면서 해설가로도 활동하게 됐죠. 


클래식 음악회는 진지하게 감상만 해야 된다는 관습, 전통, 형식 같은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그래서 콘서트 가이드로 해설할 때는 곡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해요. 주제 선율, 특정 멜로디에 집중해서 들어보라고 팁을 주기도 하고요.”



Q. 어떤 점을 중점에 두고 해설을 하시나요? 

“곡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포털에 검색하면 너무나 많아요. 내가 알고자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죠. 그런 것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연주자로서 이 곡을 만나서 다른 음악가와 협연하며 느낀 곡에 대한 해석, 느낌과 감정을 전하려고 해요. 지식과 정보가 아닌 느낌과 감정. 저의 해석이 곡을 감상하는데 참고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감상 포인트를 알려줬기 때문에 쉽게 들리고 마치 이해한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되죠. 그러면 곡에 확 빨려 들어 그 곡이 좋아지게 돼요. 클래식 곡이 하나 좋아졌다는 건 이미 클래식을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저는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식과 정보가 나를 빨려 들어가게 하지는 않잖아요. 


그림 보고 “이 그림 어때?”하고 물으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입을 닫거든요.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부터 먼저 알아본 다음에 얘기하죠. 우리가 발표하는 수업을 거의 안 받아왔기 때문인데 외국 사람들은 달라요. 자유롭게 다 얘기하거든요. 교육의 차이인데 음악은 더 하죠. “어떤 것 같냐”고 물으면 머리부터 긁적긁적하거든요. 이런 표현을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려고 하고 있고요. 해설할 때는 연주자 마인드뿐 아니라 잘 가르쳐야겠다는 교육자로서의 마인드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Q.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귀국 독주회 덕분에 새롭게 일할 수 있는 영역을 찾고, 그게 나에게 잘 맞는다는 걸 발견하게 된 거네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조성진, 임윤찬 씨가 할 연주회는 따로 있어요. 제가 그분들처럼 할 수는 없죠. 처음부터 불가능해요. 저는 그냥 한국에서 대학을 나왔잖아요. 교양과목도 들어야 하는 종합대학 말이에요. 진짜 음악만, 피아노만 24시간 치고 있어도 될까 말까 한 위치를 제가 꿈꿨던 거예요. 어렸을 때는 저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될 것이라고 꿈꿨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몰랐으니까요. 불가능한 꿈만 꾸고 있는 나를 깨워준 게 해설이고 팟캐스트 방송이었어요. 


이제 저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한 피아니스트들처럼 완전히 제 인생을 무대 위에 바쳐야 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고요. 그것보다는 사람들하고 연결돼 소통하고 나누는 지금 이 자리가 즐겁고 좋아요. 그러니까 나도 모르는 내 재능을 발견해주는 누군가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몰랐거든요. 강연 가면 사람들이 좋아해주지만 그건 연주가 좋기 때문이라 생각했지 제가 클래식을 통해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즐기고 소통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거든요.”



Q. 새로운 분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요? 연주는 줄곧 해왔지만 해설은 처음이었잖아요. 

“전혀 (두려움이) 없었어요. 보통 연주자들은 연주할 때는 안 떨리는데 인터뷰할 때 떨린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반대예요. 마이크 잡고 떨린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이게 천직인가 싶죠. 



평생교육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면 꼭 어떤 것을 목표로 해서 준비한다고 그게 반드시 이뤄지거나 되는 건 아니잖아요. 절대 인생이 그렇지 않잖아요. 어떤 인생이 계획대로만 되겠어요. 그러니까 이것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보다는 목표를 갖되 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준비하다 보면 그 안에서 다른 꿈으로도 발현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나의 재능을 발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또 다른 경험을 쌓다 보면 내가 생각지 못한 나의 어떤 다른 부분이 치고 올라올 수도 있는 거고요. 그래서 뭐든지 해보는 것, 도전해보고 시작해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 [클래식 음악을 탐구하는 마음]


Q. 2017년 9월부터 진행하는 팟캐스트 ‘클래식이 알고 싶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음악 분야 1위에 800개가 넘는 에피소드도 놀랍지만 저는 햇수로 7년째 매주 업로드라는 사실에 더 놀라운데요. 왜 클래식 음악 팟캐스트를 기획하게 되셨나요? 또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업로드를 지속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처음부터 팟캐스트를 하겠다고 계획한 건 전혀 아니었어요. (클래식 해설을 시작할 무렵인) 10년 전쯤 기업에서도 한창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려면 클래식을 알아야 한다면서 연수 프로그램에 클래식 강연이 포함되기 시작했거든요. 제가 해설가를 하고 있으니 강연을 많이 다녔고요. 그러다가 방송 제작사에서 ‘클래식이 알고 싶다’라는 방송을 같이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왔어요. 제가 활동하고 강연하는 모습을 본 누군가가 있어 시작하게 된 거죠. 


애초 계획은 매주 1개씩 12회, 3개월만 하는 거였어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으니 청취자들에게 “이제 우리 방송은 여기서 끝납니다”라는 말을 안하고 업로드를 하지 않았죠. 근데 댓글창이 난리가 난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애인과 헤어진 것 같다고요. 사람들이 느낀 상실감이 격렬했어요. 그때 안 하면 안되겠다고 크게 느꼈던 것 같아요. 다시 시작했죠. 


팟캐스트가 2만 개가 넘거든요. 근데 ‘클래식이 알고 싶다’ 방송이 시작한지 3주만에 음악 분야 1등을 했어요. 종합순위 40위까지 올라가고, 항상 100위 안에 있었죠. 그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어요. 칭찬받은 거잖아요. 이 일이 내 일이라는 사명감도 생겼고요. 그때부터 엄청 달렸습니다. 지금은 주 1회지만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일주일에 8번 방송을 했거든요. 차 안에서도 녹음하고요. 사람들의 반응도 엄청났어요. 하루에 댓글이 300개 이상씩 달릴 정도로요. 클래식을 원래 알던 사람들이 아닌데 완전히 빠져 있는 거예요. 그리고 루틴이 생겼죠. 매일 업로드되니까 출근 준비 화장하면서 듣거나 청소하는 시간에 설거지하면서 듣거나 등산하면서 듣는다는 식으로요. 사람들이 기다리는 걸 아니까 주변에서 이제 그만 쉬는 게 어떠냐 해도 안 쉰다고 하면서 계속 끌고 왔어요. 사람들하고 소통하고 나누는 걸 좋아하는데 이 방송은 딱 나를 위한 자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12회만 하려던 게 800회차까지 왔네요. 


클래식 곡은 다시 태어나서 100년을 더 살아도 해설을 다 못해요. 역사가 길다 보니 곡이 너무 많죠. 지금 만 5년 넘게 방송했는데도 아직도 소개를 못한 곡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빨리 더 많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너무 재밌고요. 그림도 못 그리고 뜨개질이나 리본 묶는 것처럼 아기자기하게 만드는 건 정말 못하거든요. 근데 직접 원고 쓰고 방송 콘텐츠 만드는 건 너무 좋고 재밌어요. 상상하면서 스크립트를 쓰며 신이 나서 달려가죠.”



Q. 음악가들의 삶과 음악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주는 유튜브 콘텐츠가 흥미로웠어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이 필요하셨을 텐데요. 무엇을 중점에 두고 공부하셨나요? 그렇게 탐구하고 알아가는 시간들이 본인의 삶에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합니다. 

“클래식 음악 역사에서는 너무 다 남자만 있어요. 그러다 보니 음악가의 삶에 나를 대입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대신 ‘내가 이런 남자랑 살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슈만 같은 남편을 뒀다면 나는 참고 살았을까’, ‘쇼팽의 연인 조르주 상드였다면 배신감 때문에 너무 화가 나지 않았을까’ 같은 상상을 많이 했어요.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음악가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것은 제가 늘 하는 일이니까요. 계속 상상해보려고 하죠. 


콘텐츠 만들 때는 아무도 모르는 곡을 소개하기도 해요. ‘한국인이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클래식 100곡’ 이런 건 너무 뻔하잖아요. 그런 것도 하겠지만, 이름 모를 작곡가의 어떤 곡, 가슴을 울리는 곡을 소개하기도 해요. 물론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안 들어요. 어쩔 수 없죠. 다만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꺼내 알리는 것도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큰 의미가 담긴 곡일 테니까요.”



Q. 자주 찾아보거나 참고하는 책도 있으시겠네요. 

“우리나라 포털은 절대 검색해보지 않아요. 사실 확인이 안된 것들이 그대로 복사, 붙여넣기로 복제돼 있거든요. 위키피디아나 외국 대학 사이트를 주로 활용해요. 인디애나 음악대학, 이스트만 음악대학 도서관 사이트에 오픈된 논문들을 보면 양질의 좋은 정보들이 아주 많거든요. 


물론 가사 풀이할 때는 참고해요. 제가 일일이 독일어사전을 찾아볼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노래 가사를 바꿀 때도 현대식으로 하려고 해요. 고전 시이고 고어로 이뤄지다 보니까 ‘그러랴’, ‘그대는 어찌하여’, ‘하느냐’ 같이 평소 안 쓰는 말투가 많거든요. ‘지저귀는 구나’는 ‘지저귀니’로 친근하게 바꿔서 같은 시지만 친구가 읊조리는 것처럼 바꿔요. 번역자들이 하는 것은 일대일 직역이잖아요. 저는 그것부터 싫은 거예요. 꼭 지금 안 쓰는 말투로 번역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게 혁명일 수 있겠죠.” 



Q. ‘말러는 누구인가’ 유튜브 영상 클로징에서 “지나치게 가벼워지고 쉽게 즐기는 것에 몰두하는 사회 분위기가 걱정스럽다”면서 요즘 세태에 경각심을 주는 멘트로 마무리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메시지를 전달할 때 특히 염두에 두는 가치나 철학이 있으신가요? 

“겉으로 보이는 삶에만 치중하다 보니 가벼워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앗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면을 치유하는데 신경 쓰지 않으니 자아가 튼튼하게 자랄 시간을 갖지 못해 유리 멘털이 되고, 무력감이나 좌절감도 쉽게 느끼는 것 같고요.


저는 내면을 강하게 키우는 데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게 도움된다고 생각해요. 비참한 삶을 산 음악가도 사실 알고 보면 유리 멘털이었거든요. 음악가 자신도 곡을 쓰면서 좌절했다가 일어났다가, 또 다시 좌절했다가 일어나죠. 그렇게 다져진 시간을 음악으로 만날 수 있고요. 음악가의 삶을 알고 상상해보며 듣다 보면 각자의 삶을 의미 있게 채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메시지를 전하죠. 


제가 느끼고 염두에 두는 걸 메시지에 담으려 하는 편이에요. 플라스틱 시대를 살고 있고, 너무 이기적이고 비인간적인 세상을 사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평화와 인류애, 화합처럼 클래식 음악이 담고 있는 메시지를 알려주려 하죠. 그러면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이유]


Q. 팟캐스트를 시작할 무렵인 2017년 즈음을 2023년 현재와 비교했을 때, 클래식을 대중이 인식하는 정도가 달랐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팟캐스트를 진행해오는 몇 년 간 클래식을 대하는 대중의 변화를 체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첫째로는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점이에요. 다만 팬이 생겼다고 그들이 클래식을 좋아한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클래식 애호가라고도 할 수 없고요. 2015년 조성진 씨가 쇼팽 콩쿠르 1등을 했어요. 조성진 씨 팬들이 생겼죠. 근데 그들은 조성진 씨 연주에 갈 뿐, 서울시향(시립교향악단) 연주에는 안 가요. 서울시향 연주회에 조성진 씨가 협연한다면 가겠죠. 세계적 아티스트들이 미디어에도 계속 언급되면서 클래식 공연 티케팅으로 이어진 건 맞아요. 예전엔 초대권 줘도 안 갔거든요. 보통 클래식 음악회는 초대권 받아 가는 거 아니냐는 생각을 많이 했으니까요.


양극화도 심해졌어요. 콩쿠르 입상자가 아니면 티켓이 아예 안 팔려요. 기폭제가 된 건 코로나고요. 온라인 생중계를 보면서 사람들이 연주의 질적 차이를 다 알아버린 거예요. 이름 있는 연주자들의 자본력이 있는 음악회만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겠죠.


또 다른 점은 영화, 드라마에 클래식 전공자 캐릭터가 급증했다는 거예요. ‘사랑의 불시착’, ‘신성한 이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드라마에 음악 전공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했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였던 케이트 블란쳇도 영화 ‘타르’에서 지휘자로 열연했고요. 팬텀싱어처럼 쇼 프로그램에도 클래식 연주자들이 나오고요. 그 동안 대중이 클래식을 인지하는 진입장벽이 높았고 음악회 가기도 어려웠는데 이제 드라마, 영화, 예능, 쇼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으니 확실히 클래식이 가까이 있다고 인식하게 된 것 같아요. 클래식 연주자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같이 어우른다고요.”



Q. 대중이 클래식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비가 오면 귀찮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감성이 폭발하는 사람이 있죠. 귀찮은 사람은 인생이 메말라 있는 거예요. 저는 업적, 경력, 돈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으로 채워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 한 번뿐인 인생인데 비가 올 때 어땠는지 느끼는 게 인간다운 삶이라고 생각해요. 비가 오면 귀찮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매일 보던 하늘을 달라 보이게 만들고,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클래식인 것 같아요. 클래식은 수백 년을 이어온 장인 정신으로 만든 음악이잖아요. 작곡가도, 연주자도, 오디오 제작자도 장인정신으로 지속가능한 감동을 주려고 피나는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기에 음악이 주는 감동과 영감이 남다르다고 생각해요. 


연주자가 힘들게 닦은 기교로 아주 어려운 곡을 끝내고 나면 여러 감동이 있거든요. 청중들은 클라이맥스를 거쳐 어려운 임무를 해낸 연주자 편이 되고요. 청중이 함께 기쁨의 결말에 도달하게 하고, 환희를 느끼게 하는 힘이 클래식에 있다고 생각해요. 


또 상처받고 좌절했을 때 일어나게 하는 힘을 줄 수도 있고요. 음악가들이 유난히 비참한 삶을 살았잖아요. 불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지금 내 좌절은 아무 것도 아니구나’, ‘우리는 지구의 먼지일 뿐’이라는 게 무척 와닿아요. 세상은 넓고 불행한 사람은 정말 많고요. 각자의 삶은 다르다는 걸 객관화해서 보게 되는 면도 있어요.”



Q. 서울자유시민대학 등 평생교육 분야에서 클래식 강의를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평생교육에 있어서의 예술분야의 교육은 어떤 역할을 한다고 보시나요? 

“클래식 음악을 평생친구로 두는 거죠. 클래식에 몰입해서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무엇을 하더라도 클래식이 가질 수 있는 영감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제 역할이 중요하죠. 도슨트가 그림 해설할 때 정보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느낀 느낌을 청중에게 전달해주면 그 사람이 그림에 더 가까워질 수 있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예요. 


제 유튜브 영상 중 ‘말러는 누구인가’도 말러가 어떤 사람인지를 요약해준 거잖아요. 20분 동안 보고 듣고 나면 말러가 어려운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사람들도 호기심이 생기게 되고요. 그런 지점에서 저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Q. 다방면에서 활동하시는 걸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의 연결을 통한 ‘확장하는 삶’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계시는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몰입하는 삶과 음악 스토리텔러로서 확장하는 삶 중 어떤 것에 더 즐거움을 느끼시나요? 

“피아노 연주만을 삶의 99퍼센트로 채우고 살아가는 인생을 꿈꿨지만 지금은 아닌 게 다행이에요.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요. 클래식 가이드로 해설을 하면서부터는 (연주하는) 손가락보다 (말하는) 입을 통해 훨씬 즐거워요. 말러가 지휘할 줄 아는 작곡가였는데 작곡도 할 줄 아는 지휘자로 인식된 것처럼 저 또한 해설할 줄 아는 피아니스트였는데 언젠가 피아노칠 줄 아는 해설가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 걸요. 계획은 전혀 없어요. 다만 순간순간에 충실할 뿐이죠.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클래식이 알고 싶다’ 방송은 30년 하기로 청취자들과 약속돼 있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하나만 업로드 해도 되니까 오래만 해달라는 게 부탁이었어요. 그래서 30년 방송 약속 했어요. 5년 했으니까 앞으로 25년 남았네요. 30년이라니 ‘평생방송’ 아니겠어요. (웃음) 



editor  이정

photographer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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