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너미 이성경 대표 인터뷰_유치원생부터 ‘돌봄 교육'이 꼭 필요한 이유

2023-05-01

[이음의 탐구생활]  ‘기혼 여성의 삶' 탐구하는 ‘부너미' 이성경 대표 



📗 이음의 탐구생활

각자의 분야에서 학습과 교육, 놀이, 예술 및 사회이슈 등을 통해 스스로 탐구하고 즐거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만의 인사이트를 얻어가는 인터뷰 기획 코너



40대인 남편은 주말마다 요리를 전담한다. 초등학생 아이들과 함께 종류별로 김치를 담그고, 막걸리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집에서 막걸리를 만들기도 한다. 일주일에 세 번은 네 식구의 빨래를 맡는다. 


여기까지 들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남편을 ‘완벽한 남편'이라 치켜세운다. 하지만 ‘부너미’ 대표 이성경(39)씨는 말한다. 이 모든 장면은 아내인 자신이 가정 내 성평등을 위해 치열하게 분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남편과 같은 회사에서 같은 일을 했던 이성경씨는 사내 연애를 하다 2012년 결혼했다. 이듬해 첫째를 낳은 후 이씨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함께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는데 남편과 아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남편은 회사에서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갔고 이씨는 집에서 가사와 두 아이 육아를 전담했다. 남편은 회사에서, 이씨는 집에서 각자의 일을 했지만 임금노동과 돌봄 노동의 가치는 전혀 다르게 평가받았다. 밖에서는 육아하는 엄마를 ‘맘충'이라 불렀고, 남편조차 아내의 돌봄을 당연하게 여겼다. 억울함과 답답함에 네 식구 빨래를 혼자 하며 울었던 날이 많았다. 남편과 다투는 날이 늘었다.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은 다른 여성으로 빙의돼 겨우 하고 싶은 말을 내뱉는다. ‘84년생 이성경’은 소설 속 김지영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다. “유쾌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씨는 2017년 기혼여성의 삶을 탐구하는 모임 ‘부너미'를 결성한다. 세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가진 여성들과 가정 내 성평등을 주제로 함께 읽고 쓰고 듣고 말하기로 했다. 부너미는 나의 주변인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거대한 세상의 변화는 아주 사소한 곁에서부터 시작된다. 


10명 규모의 작은 독서모임으로 시작된 부너미는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2019)를 통해 결혼한 여성이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탐구했고, 이듬해 부부 사이 평등한 섹스와 관계에 대한 고민을 담은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2020년)를 출간했다. 그리고 지난 2월, 부너미의 세 번째 책 <우리 같이 볼래요?>(2023)가 나왔다. 26명의 기혼 여성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 이야기를 담았다. 이성경씨는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쓴 글을 실었다. 



자신만의 언어로 기혼 여성의 삶을 탐구하며 이씨의 삶은 바뀌었다. 성평등에 대한 글을 쓰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남편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혼란과 분노가 가득했던 마음에는 즐거움이 자리 잡았다. 이씨는 결혼 11년 만에 이제야 남편이 진정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4월 7일, 서울 은평구에서 이씨를 만나 성평등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다. 




📗 [부너미] 글을 쓸 때마다 삶이 변했다 

‘부너미'의 세 번째 책 <우리 같이 볼래요?>(이매진)가 지난 2월 출간됐어요. 부너미가 첫 모임을 한 게 2017년 말이더라고요. 6년 전 처음 모임을 시작할 때 세 번째 책까지 낼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셨나요?

“그때는 ‘책 한 권만 내보자’라는 생각이었어요. 공저를 작업하는 게 쉽지 않아서 매번 ‘이번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지' 했는데 세 권이나 나왔네요.”



두 아이의 엄마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어떻게 부너미를 시작하게 됐는지 말씀해 주세요.

“첫째 낳고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둘째 낳고는 몸도 너무 아프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남편과도 소통이 안 되고 친정엄마와도 소통이 안 되고 친정언니도 셋이나 있는데 소통이 안 되고 너무 답답했어요. 여러 독서모임, 페미니즘 모임을 찾아갔는데 거기서도 답답함을 느꼈어요. 기존 페미니즘 모임에는 비혼 여성이 많았는데 제 고민을 이야기했을 때 뭔가 제 인생이 망한 인생처럼 되는 거예요. 결론이 늘 ‘그러니까 결혼을 하면 안 된다니까’ 이렇게 끝나는 거죠. 


사실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거든요. 제 인생을 부정하는 셈이니까요. 엄마들 모임에 가면 내가 유별난 사람이 되고, 비혼 여성 모임에서는 내가 망한 사람이 되고(웃음). 그렇다면 나처럼 성평등한 문화를 고민하는 페미니스트 엄마를 만나고 싶다, 거기에서 시작해서 지금까지 온 거죠. 6년 전, 페이스북에 ‘페미니즘 공부하고 싶은 엄마를 찾습니다'라고 글을 올렸어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딸로 살며 느낀 다양한 고민을 글로 소통하며 함께 페미니즘 공부하실 분을 모집한다고요.”


페이스북 글을 올렸을 때 반응이 어땠나요? 

“제가 그즈음 언론에 ‘맘충 사용을 멈춰주세요'라는 글을 기고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많은 분들이 공감을 해주셨어요. 덕분에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엄마를 찾는다고 했을 때 금세 10명이 모였어요. 종로의 한 스터디 카페에서 점심시간에 모임을 했는데 사는 곳도 다르고 각자 처한 상황도 다르지만 가정 내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때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 이해가 되더라고요. 


글을 쓸 때마다 삶이 변했어요. 부너미 멤버 중에 아내가 전업으로 돈을 벌고 남편이 주양육자인 분이 있었는데요. 그분 이야기 들으면서 남편과 소통하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남편 입장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함께 공부하고 글을 쓰며 각 가정의 일상이 변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걸 계속해야겠다 싶었죠. 첫 책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에서 가사와 돌봄에 대해 나름의 정리가 된 다음에는 ‘우리가 가사나 육아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몇 년을 싸우는데 왜 성관계에서의 불평등을 말하는 건 어려울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라는 책을 통해 우리의 몸과 성, 관계에 돌아봤죠. 프로젝트를 하나씩 할 때마다 삶이 다음 단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개선되는 느낌이 들어요.”


앞선 두 권의 책에는 ‘페미니스트'와 ‘섹스'라는, 한국 사회에서는 논쟁적일 수 있는 단어가 전면에 들어갔는데요. 이번 책은 이전 책에 비해서 조금 ‘독기’가 빠졌다고 할까요(웃음). 좀 더 친근하고 다정한 느낌이 듭니다. 

“정확히 보셨어요. 처음에는 정말 분노에 차서 공부를 시작했으니까 엄청 전투적이었어요. ‘이 불평등한 구조를 파악하고 말겠다!’‘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겠다!’라는 생각으로 페미니즘 책 쌓아놓고 세미나처럼 읽었어요. 서로 ‘집에서 이렇게 해봤더니 이런 반응이 있었다’고 공유하고요. 지금은 읽어야 하는 책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의 사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해요. 싸우는 전략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챙기고 나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까 더 고민하는 거죠. ‘걷는 부너미'(함께 걸으며 책 이야기, 사는 이야기 나누는 모임)도 그래서 추가로 생겨난 거고요. 그런 변화가 이 책에도 담긴 것 같아요. 


필진의 스펙트럼도 더 넓어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B급 시어머니'의 고백'이라는 글이 인상 깊었어요.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기는 어렵잖아요. 

“그 글을 쓴 ‘블랑'님은 ‘은평평생학습관'의 ‘은평우리동네배움터' 글쓰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났어요. 제가 영화 <B급 며느리>를 보고 글을 써달라고 부탁드렸죠. 며느리 이야기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잖아요. 고부 갈등이 아니라 고부 연대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블랑님이 기꺼이 쓰겠다고 하셔서 페미니스트 시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어요.”



📘 [집안의 성평등] 남편의 노동이 나를 돌본다는 느낌

기혼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만큼 부너미의 글에는 가족에 대한 솔직하고 내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성경님 남편분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남편은 제가 쓴 글을 볼 때마다 큰 깨달음을 얻어요. 저랑 말로 대화할 때는 큰 변화가 없다가 첫 번째 책, 두 번째 책 모두 나오자마자 정독하더라고요. 글을 읽은 후에 변화하려고 노력하고 주변에 추천도 하고요. 글이 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페미니스트도 결혼하나요?>를 보면 본인은 가사노동을 하지 않으면서 흰 빨래에 집착하는 남편분 모습이 나오는데요. 지금은 김장도 하고 막걸리도 담그는 남편이 됐어요. 가정 내 성평등을 위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그때 흰 빨래 싹 갖다 버렸잖아요(웃음). 신혼 초니까 10년 전이네요. 아내가 빨래를 해주면 고맙다고 해주지는 못할망정 남편이 ‘흰 빨래가 왜 안 하얗냐'고 이야기를 한다고?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나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남편 기분 상하지 않도록 ‘왜 돈을 이것밖에 못 벌어와?’라고 말하지 않는데 남편은 제 살림에 대해 ‘왜 이것밖에 못해? 왜 더 깨끗하게 못해?’라고 너무 당연하게 말을 하는 거예요. ‘도대체 나의 노동은 뭐지?’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당신은 흰 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말했어요.”


심지어 남편분은 자취를 오래 해서 살림력이 있는 분이었는데도 결혼 후 자연스레 살림은 여성의 일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맞아요. 본인이 혼자 살 때는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요리도 했는데 결혼을 했더니 아내가 아침을 차려주길 기대하다니. 참 희한했죠. 제가 지난주 토요일에 강의가 있었어요. 나갈 준비를 하는데 남편이 둘째랑 김장을 하는 거예요. 남편은 양념 준비하고 아들은 파랑 마늘 다듬고요. 그전에는 남편이 김장할 때 제가 같이 없으면 죄책감이 들고 미안했어요. 

그런데 지난주에는 그 장면을 보면서 죄책감보다 고마움이 더 크더라고요. ‘고마워, 얼른 갔다 올게' 말하고 나갔다 집에 돌아오니까 남편이 새로 담근 김치랑 수육을 내놓는데, 죄책감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그 김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더라고요. 10년간 남편의 살림력, 돌봄력이 많이 향상됐어요. 어떤 요리든 척척해요. 이제야 남편이 같이 사는 동반자라는 느낌이 들어요. 남편이 김치를 담그면 나는 다른 걸 하면서 분업하고, 남편이 담근 막걸리를 마시면 이 사람의 노동이 나를 돌본다는 느낌이 드니까 좋아요.”  


남편 분이 결혼 10년 만에 빨래를 하기 시작하셨다고요. 

“그동안 남편은 요리에 집중하고 빨래는 안 했는데 최근에 화, 목, 토는 자기가 맡아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한 번씩 남편이 빨래를 안 할 때도 있는데 예전만큼 화가 나지는 않아요. 이 사람이 나를 위해 다른 노동을 하고 다른 돌봄을 하는 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니까요. 부부 관계에 있어서 가사를 똑같이 나눠서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돌봄의 질이 중요한 것 같아요. ‘나 빨래 100번, 너 빨래 100번’ 이게 아니라 남편이 가정에서 저랑 똑같이 돌봄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고 그 돌봄을 서로 느끼는 게 중요한 거죠.”  


형식적이고 의무적으로 가사를 나누는 게 아니라 서로를 진심으로 돌보는 감각이 필요한 거네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돌봄노동을 할 때 억울하고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나를 돌보고 있고 나도 최선을 다해 이 사람을 돌보려 할 때 억울함이 해소되는 거죠. 남편이 ‘돕는 사람’의 위치에서 마치 자기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을 선심 쓰듯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스스로 해야 하는 내 일’로 생각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중요해요. 못 하면 미안하고, 해주면 고마운 줄 아는 돌봄을 대하는 자세요. ” 


다른 인터뷰에서 ‘아빠가 집안일을 잘한다는 기준이 너무 낮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남편이 김치를 담그고, 아내가 좋아하는 막걸리를 담그고, 주말에 요리를 전담하고… 주변에서 훌륭한 남편이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듣는데요. 요즘 학기 초라 학교에서 e알리미(모바일 가정통신문 서비스) 정말 많이 오거든요. 학부모 설문도 많고요. 아빠들이 그런 것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애들 숙제나 준비물을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보면 엄마랑 차이가 나죠. 아마 자신이 정말 훌륭하다고 믿는 ‘상위 1% 남편’도 아이 옷 사이즈가 몇인지, 신발 사이즈가 몇인지 아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계절에 맞게 옷장 정리를 하는 것도 엄마의 일인 경우가 많고요. 

이렇게 보이지 않는 가사노동이 셀 수 없이 많은데 눈에 보이는 요리, 청소 이런 것만 하면 훌륭하다는 칭찬을 받는 게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아빠들에게 일하는 아빠들끼리 서로 가사노동 얼마나 하는지 비교하지 말고 일하는 엄마랑 비교를 해보라고 해요. 일하는 엄마들은 요리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 공부 봐주고 학원 스케쥴 챙기고… 아이돌봄에 필요한 수많은 그림자 노동을 하는데 대부분의 일하는 아빠들은 그중 10%만 해도 대단한 아빠가 되는 거예요.” 




📕 돌봄이 폭탄이 되지 않도록

돌봄노동이라는 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잘한 그림자 노동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아빠의 변화가 초등학교 4학년, 초등학교 2학년 두 아이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아이들이 성평등을 당연하게 생각해요. 저는 아이들에게 가족구성원들이 서로를 돌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린이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돌봄이 있어요. 가사노동도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할 수 있고, 오늘 마음이 어땠는지 가족의 감정을 돌볼 수도 있죠. 저는 아이들에게 돌봄과 가사가 습(習)이 되도록 교육을 하려 해요. 둘째는 어릴 때부터 김장에 참여하고 청소하고 빨래 개는 게 습관이 돼서 제가 빨래를 개어 주면 고마워해요. ‘엄마, 내 빨래 개어 줬네. 고마워'라고요. 9살인데 나를 돌보는 남의 노동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예요. 해마다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조금씩 더 생겨서 이제는 볶음밥도 할 줄 알아요. 남편과의 관계 변화가 아이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거죠. 저는 돌봄에 대한 교육이 어떤 교육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돌봄 노동의 가치가 저평가 돼있다 보니 어릴 때는 돌봄보다는 공부가, 커서는 돌봄보다는 돈 버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돌봄이 필요해요. 어른도 필요하고 어린이도 필요하죠. 스스로를 돌보고 서로를 돌봐야 해요. 저는 집에서 아이들에게 역할을 줘요. 둘째는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환경지킴이에요. 불필요한 불을 끄는 거죠. 재활용도 저 혼자 할 수 있지만 재활용하는 날을 정해서 종이 담당, 페트 담당 정해서 온 가족이 함께 재활용을 해요.”


“결혼 제도 안에서 성차별적인 상황을 깨트리겠다는 건 끊임없이 무너지는 일"이라면서 자신의 페미니즘을 ‘모순과 혼란의 페미니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셨는데요. 어떨 때 특히 모순과 혼란을 느끼셨나요? 

“엄마로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해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또 어느 순간에는 아이 낳기를 정말 잘했다, 아이가 주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감정도 느끼고…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내 삶을 멋지게 살 거야’라고 하면서도 가족들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가족들에게 더 시간을 써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이랬다저랬다 하는 거죠. 


그런데 이게 기혼 여성 페미니즘의 특징인 것 같아요. ‘나는 이렇다고 믿어!’ 쭉 밀고 나가는 게 쉽지 않고 ‘근데 그러면 또 어때?’ 이런 생각도 들고요. 어떨 때는 남편이 불쌍해요. 남성에게 경제적으로 많은 부담을 지우는 가부장 사회에서 남편이 일에 올인하려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깝다가도, 막상 제가 힘들 때는 ‘그래도 당신은 돈도 받고 인정도 받지 나는 돈도 못 벌고 인정도 못 받는다’는 분노가 생기고요. 기혼 여성이라는 위치가 모순과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계속 싸우길 잘했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만약 제가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주말에도 제가 요리를 하고 있을 거고 밖에 나갈 때도 죄책감을 느꼈을 거예요. 예전에는 오기로라도 요리를 안 하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가족을 위해서 맛있는 요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결혼 11년 만에 처음으로 들더라고요(웃음). 억울함과 답답함이 걷히니까 즐겁게 가사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돌봄의 가치를 비로소 인정받으니 돌봄이 즐거운 마음이 드는 것 아닐까요. 

“그동안은 가족 안에서 돌봄이 폭탄처럼 여겨졌다면 지금은 서로 잘 관계 맺기 위해 더 질 좋은 돌봄을 고민해요. 사실 남편은 스스로 억압을 갖고 있었어요. ‘아이가 둘 태어났으니까 이직해서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요. 그런데 저는 남편에게 그 에너지를 돌봄을 하는 데 더 쓰라고 지속적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더 많은 돈을 벌 고민을 할 시간에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요리를 할지 고민하라는 거죠.


처음에는 남편이 안 믿었어요. ‘그래도 돈을 더 많이 버는 게 좋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저는 예를 들어 남편이 월 500만 원을 혼자 버느라 저 혼자 돌봄을 다 감당하는 것보다, 남편과 제가 250만 원씩 나눠서 벌고 나눠서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욕구를 계속해서 이야기하니까 남편도 ‘이 사람도 이걸 진짜 원하는구나' 믿더라고요. 돌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노동에 대한 이야기도 같이 나눠야 해요.” 


부부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니까 많은 대화와 협의가 필요할 것 같네요. 남편분은 돌봄에 에너지를 더 쓰게 된 상황에 대해 만족하시나요?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해요. 주말마다 요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주말에 뭐 먹고 싶어' 물어보고 아이들과 먹거리를 매개로 계속 소통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편이 엄마와도 원래는 형식적으로 통화를 했는데 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엄마, 우리 어렸을 때 해줬던 고등어 조림 어떻게 하는 거지? 레시피가 뭐야?’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게 되더라고요. 협동조합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막걸리 만들기를 배우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됐고요. 돌봄을 하는 것이 본인에게도 좋다는 것을 느낀 것 같아요.”




📒 [곁에서 세상으로] 학교로, 도로로, 멈추지 않고

남편 분이 돌봄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성경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셨어요. 2019년부터 성평등교육활동가로서 성교육, 성평등교육, 폭력예방 통합교육을 하고 계시는데요. 성평등교육 활동가가 되기로 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남매를 키우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성평등교육, 성교육을 가정에서 많이 했어요. 아이에게 신체접촉이 있을 때는 ‘안아도 돼?’‘손잡아도 돼?’ 물어봐야 한다고 동의교육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갔는데 아무도 안 물어보고 그냥 만진다는 거예요. 가정 내에서만 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공동체 문화가 함께 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또 한 가지는, 부너미가 <당신의 섹스는 평등한가요?> 출판 프로젝트 할 때 우리가 몸과 성에 대해 너무 모른 채 어른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왜 우리는 우리 삶이랑 직접적으로 연관도 없는 미적분도 배우고 원소 주기율표도 배우는데 내가 평생 살아가는 데 영향을 미치는 몸과 성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을까 싶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몸과 성에 대해 모르는 채로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초중고 학교 현장에 가서 교육을 하고 있어요. 양육자 교육을 하기도 하고요.” 


성평등교육활동가 모임 ‘모들'을 결성해서 <포괄적 성교육>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어요. 포괄적 성교육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성교육이라고 하면 사춘기 성지식만을 생각하는데 포괄적 성교육에서는 몸과 성을 둘러싼 사회의 법과 제도부터 사랑과 우정의 경계는 무엇인지, 동의를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거절은 어떻게 할 것인지, 시기별로 어떤 몸의 변화가 있는지 등 다양한 측면을 촘촘하게 배워요.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존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지식, 정보, 기술 태도를 배우는 거죠. 이런 교육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과 양육자를 대상으로 성평등교육을 하면서 ‘곁을 바꾸는 페미니즘'의 곁이 점차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사 생활을 해보니까 어떠세요? 

“글의 매력은 한 번 글을 써놓으면 많은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는 것인데 강사를 하면서 개별적인 존재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아요. 사랑과 우정의 경계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어른들은 스킨십이라고 답하는데 아동 청소년들은 놀라운 이야기를 많이 해요. 어떤 친구는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말을 예쁘게 할 때 그게 사랑인 것 같다고 말하고, 또 어떤 친구는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욕을 할 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강사 활동을 하는 게 양육자로서도 좋아요. 아이들이 몸과 성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때 정말 편하게 물어보거든요.”


부너미는 또 다른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다음 출판 주제는 ‘도로 위의 불평등, 도로 위의 자유'예요. 기혼 여성들은 운전하면 ‘김여사’라는 말을 듣는 혐오의 대상이 되잖아요. 여성이 운전을 하더라도 동네에서만 타라고 경차를 사준다거나, 남편이 타던 차가 낡으면 아내에게 주고 남편은 새로운 차를 사는 등 화가 나는 상황이 계속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남편이 아내에게 운전대를 안 넘겨주기도 하고요. 왜 여성들은 도로에서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운전할 기회를 빼앗길까. 자동차가 기혼 여성의 삶을 집이나 동네로 제한을 하게 되는 상황을 보면서, 도로 위에서 기혼 여성들이 좀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공간을 확장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끝으로, 앞으로 성경님의 목표가 있다면요? 

“주변에 생계의 어려움이나 소통의 어려움 등 여러 이유로 성평등 활동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성평등한 사회를 상상하고, 글 쓰고, 목소리 내는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동안은 엄마들을 주로 만났다면 앞으로는 비혼 여성, 기혼 남성, 결혼 이주 여성 등 저와 삶의 결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요. 누구를 만나도 페미니즘, 몸과 성, 불평등을 주제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ditor  홍현

photographer 이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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