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의 탐구생활]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을 바라보며 인생을 보내리라 꿈꾸며 기상학과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데이터와 모델링을 다루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기후가 ‘언젠가’ 위기가 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일상의 조건’을 뒤흔들기 시작한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본 사람이다.
조천호 박사는 30년 이상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한 대기과학자다. 연세대학교에서 기상학을 전공하고 국립기상연구소 연구원으로 출발해, 국립기상과학원 수석연구원과 연구부장을 거쳐 초대 원장까지 역임했다. 수치예보 모델링, 지구 기후 시스템 변화 분석, 폭염·열파 관측, 기후변화 영향 연구 등, 우리나라 기후 연구가 본격화되는 흐름의 한복판에서 기후 자료와 씨름해 온 연구자다.
1980년대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 박사는 이 위기를 단순한 “환경문제”로 보지 않는다. 불평등, 생산·소비 구조, 사회 시스템, 삶의 방식 전체를 다시 묻는 문제라고 말한다. 기후가 변하는 것은 단지 기온이 오르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명과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혼자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조천호 박사의 책상 위에는 늘 책이 쌓여 있다. 자연과학부터 사회과학, 역사, 철학, 심지어 시집까지. 그는 매일 1~2시간씩 책을 읽으며 중요한 문장들을 모듈처럼 정리한다. 마치 레고 블록을 하나씩 만들어 모으듯이. 그리고 글을 쓸 때가 되면, 그 ‘지식의 레고’들을 조립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두 개를 빌려오면 표절이지만, 여러 개를 빌려오면 리서치”라는 그의 말에는 겸손과 유머가 동시에 담겨 있다.
기후 위기를 사회정의의 문제로, 자연과학을 인문학적 통찰과 연결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배움에서 비롯된다. “배운다는 건 레고를 만드는 일이고, 평생학습은 그 레고를 조립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 그에게 배움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실천이다.

“기후는 성품이고 날씨는 기분입니다”
Q. 기상학자가 되고자 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거창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자연 자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고, 성적표를 놓고 맞춰보다 보니 기상학과에 가게 된 거죠. 그때만 해도 ‘기상학을 하면 잔디밭 위에 누워 푸른 하늘 쳐다보며 흰 구름 바라보다 인생 보내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막상 30년 넘게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하면서 잔디밭 위에서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구경한 날은 10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일은 날씨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짜면서, 모니터 앞에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오차를 줄이고 비교하는 일이었죠. 기상학은 ‘하늘 보는 낭만’이 아니라, 지구 하나만을 대상으로 끝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계산과 관측의 세계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만 해도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기상학과는 말 그대로 내일·모레 날씨 예측을 위한 물리학을 배우는 곳이었죠. 지금은 대기과학과에서 기후변화를 굉장히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기후변화 과학이라는 건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만들어져 왔고,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학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Q. 데이터를 보시면서 기후 위기가 ‘심상치 않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나요?
기후변화는 미세먼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는 위험이 아니에요. 대개 환경오염은 누리끼리한 먼지가 보인다든가, 물이 탁해진다든가,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위험을 인지하잖아요. 먼저 위험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과학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원인을 밝히는 식이죠.
그런데 기후변화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과학자들이 먼저 자료에서 이상 신호를 발견했고, 설명을 통해 “이게 앞으로 다가올 위험이다”라고 알려온 거예요. 제 몸으로 체감해서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면서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라고 느끼는 거죠.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고속도로 자동차 속도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워요. 1도 상승을 시속 100km로 달리는 거라고 가정해 봅시다. 0.5도, 0.6도, 0.7도씩 올라갈 때는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해요. 그런데 작년 기준으로 이미 1.3도까지 올랐거든요. 시속 130km로 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제한 속도 범위 안으로 이미 들어와 있는 거죠.
예전에는 “폭염이 좀 심하네, 그래도 에어컨 밑에 가 있으면 견딜 만하네”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어림도 없습니다. 여기서 0.1도씩 더 올라 1.4도, 1.5도가 되면 시속 140, 150, 160km로 올라가는 거예요. 지금부터는 0.1도 올라갈 때마다 기후 위기가 눈앞에서 현실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다가올 겁니다.
Q. 요즘 폭염과 한파가 동시에 심해진 것도 기후 위기의 증상인가요?
많은 분이 날씨와 기후를 헷갈리시는데, 쉽게 말하면 날씨는 ‘기분’이고 기후는 ‘성품’이에요. 날씨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 맑고 흐리고 비 오는 그때그때의 상태고, 기후는 그 날씨의 30년 평균치입니다.
기분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야 정상입니다. 모두가 슬픈데 혼자 아무 느낌이 없다면 이상하잖아요. 날씨도 마찬가지예요. 여름에 맑은 날이 일주일 계속되면 폭염, 한 달이면 가뭄, 2~3년이면 사막이 되는 거죠. 비도 첫날은 단비지만, 일주일 내내 내리면 홍수가 납니다. 그래서 날씨는 변해야 정상입니다.
반면 성품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바뀌면 이상하다고 하잖아요. 기후도 그렇습니다. 날씨는 원래 변화가 정상인데 얘가 ‘지속’되려 해서 문제고, 기후는 유지되는 게 정상인데 얘가 ‘변화’가 일어나서 문제인 거예요.
요즘 여름이 1~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들 하죠. “지금 우리가 겪는 여름이 인생에서 제일 선선한 여름일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속도가 가속화됐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전체적으로 따뜻해지지만, 그렇다고 한파가 사라진 건 아니에요. 공기 중 온실가스가 충격을 받으면 진자운동처럼 진폭이 커지거든요. 평균은 올라가는데, 위·아래로 흔들리는 폭이 커지면서 폭염도, 한파도 더 강해지고 잦아지는 거죠.
우리가 체감하는 심각함은 ‘평균 기온’이 아니라 이런 극단적인 날씨에서 옵니다. 1.3도밖에 안 올랐는데 폭염 빈도는 예전보다 몇 배나 늘었어요. 이게 바로 기후위기의 얼굴입니다.

“절벽이 아니라 지뢰밭입니다”
Q. 파리 기후협정에서 말하는 1.5도, 2도를 넘으면 ‘기후 붕괴’가 온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상태인가요?
1.5도나 2도를 넘으면 기후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렇다고 그다음 날 인류가 절벽에서 떨어지듯 끝나는 건 아니에요. 차라리 그게 나을 정도로, 실제로는 식량도 물도 부족한 곳에서 살아남겠다고 버둥거려야 하는 훨씬 비참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저는 1.5도, 2도를 넘는다는 걸 ‘절벽 추락’이라기보다 ‘지뢰밭 진입’이라고 설명해요. 처음에는 발목지뢰를 밟을 수 있겠죠. 발목이 날아가도, 그 상태로 안으로 더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인류가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는 않거든요. 코로나19 때를 보세요. 위험이 명백해지자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 삶 전체가 순식간에 바뀌었잖아요. 기후위기가 그 정도로 피부에 와 닿으면, 결국 대응하게 될 거예요. 다만 온몸이 멀쩡할 때 굳이 지뢰밭에 들어갈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서 1.5도, 2도 선을 지키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위험은 아무리 커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도, 팬데믹도, 경제위기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복원이 됐죠. 그런데 기후변화는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회복이 안 됩니다. 이게 비극이에요. 지구에 등장했던 생물 종의 99.9%가 멸종했지만, 그건 대개 외부 환경 때문에 그랬죠. 지금 인류는 다릅니다. 스스로 자기 멸종의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주 특이한 종이에요.
Q. 경제적 영향도 클 것 같은데,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경제학자들이 이 부분을 많이 연구합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해 지구 평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면 우리나라 GDP가 20% 가까이 줄어들 거라고 해요.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분석을 보면 2050년에 우리나라 실질 소득이 약 14% 줄어든다고 하고요.
우리가 기억하는 IMF 외환위기 때 개인 소득이 9% 정도 줄었습니다. IMF는 한 해 죽을 고생하고 끝났지만, 기후 위기는 ‘한 해’로 끝나는 일이 아니에요. 강도도 더 크고, 무엇보다 줄어든 상태가 계속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Q. 박사님 말씀을 듣다 보면, 기후 위기를 ‘환경’이 아니라 ‘가치’와 ‘교육’의 문제로 보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살았어요. “원하면 더 만들고, 더 개발하고, 더 소비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지속 가능한가?”를 제일 먼저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거예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뒤 한 번도 1순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를, 이제 가장 앞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볼게요. 옛날에 작은 배와 허술한 그물로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많이 안 잡혔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배를 크게 만들고, 그물을 촘촘하게 만들자 고기가 잘 잡히고 삶이 부유해졌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다시 바다에 나갔는데, 아무리 그물을 내려도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한 거예요. 바다에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양보다 우리가 더 많이 빼내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도 “배를 더 크게 만들자, 그물을 더 성능 좋게 만들자”라고 말하는 게 지금 인류가 하는 행동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거예요. 이제는 “저 바다에 고기가 충분히 남아 있나, 계속 잡아도 괜찮나”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 지구의 유한성이 지속 가능한가를 첫 번째 가치로 삼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게 오늘날 기후 위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새로운 가치 체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옛날에는 인간이 만든 세상이 작고, 지구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인간이 그 안에서 전쟁도 하고, 공장을 지어 오염도 시키고 했지만, 지구가 워낙 크니까 어떻게든 인간 세상을 품어줬어요. 그래서 “지구가 어떻게 될까?”라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세상이 지구보다 더 커져 버렸어요. 여기서부터 위기가 시작됩니다. 자연의 법칙은 물질과 에너지가 순환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세요. 에너지와 자원은 한 방향으로 고갈시키고, 온실가스·오염·폐기물은 한 방향으로 쌓기만 합니다. 순환이 아니라 ‘고갈과 누적’의 시스템이죠. 자연의 법칙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인간이 1년 동안 생산·소비·폐기하기 위해 필요한 지구가 1.8개라고 해요. 투자에 비유하면 우리가 원금을 그대로 두고 이자만 쓰는 게 아니라, 원금까지 까먹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금을 계속 까먹으면 어떻게 되죠? 파산이 올 날만 남는 거죠. 그게 바로 우리 아이들, 미래 세대가 맞닥뜨릴 현실입니다. 삶의 거주지 자체가 무너진 상태에서 생존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기성세대의 책임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Q. 이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려면, 우리 교육과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뭘 배워왔습니까? “경쟁에서 이겨라, 남보다 앞서라”라는 말이었죠. 줄 세우기, 등수 매기기 속에서 자라왔고, 지금도 우리 자식이 상위 10% 안에 들어가야 안심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코로나19 같은 물리적 한계 상황이 닥쳤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경쟁만 하던 사회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내 자식이 잘 살기 위해서라도,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네가 1등 해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를 배워야 합니다.
역사를 보세요.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든 큰 위기가 왔을 때, 경쟁해서 줄 세우기로 이겨낸 사례는 없습니다. 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경쟁만 가르치고 있어요. 이게 바뀌지 않으면, 기후 위기 같은 장기·복합 위기는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Q.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먼저 부모 세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아이만 살아남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기후 위기라는 폭풍 속에 인류가 들어왔는데, 누구는 항공모함을 타고 있고, 누구는 조그만 쪽배를 타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열대의 가난한 나라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산비탈이나 하천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 쪽방에 홀로 사는 노인들, 폭염 속에서 일당을 벌어야 하는 야외 노동자들입니다. 이분들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적도 없어요.
UN에서는 이걸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릅니다. 아무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만드는 구조죠. 결국 이 문제는 소수의 과잉된 욕망과 불평등 구조를 동시에 손대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의가 없이는 기후 위기 해결도 없다”라고 봅니다.
연대와 협력을 선택하면,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견뎌낼 힘이 생깁니다.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도 찾아낼 수 있고요.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조차 줄 세우기와 경쟁을 하면, 사회는 더 빨리, 더 깊게 무너집니다. 내 아이가 잘 살기를 바란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내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Q. 기후 위기는 세대 간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미세먼지는 한 번 배출되면 공기 중에서 길어야 일주일 정도 있다가 사라집니다. 우리 세대가 배출하고 우리 세대가 들이마시고, 우리 세대의 문제로 끝나는 거죠. 미래 세대와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는 다릅니다. 한 번 나오면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동안 공기 중에 남아요. 우리 세대가 화석연료를 태워서 엄청난 편익을 누렸죠. 그 결과로 나온 온실가스는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누적돼서 미래 세대에게 넘어갑니다. 미래 세대는 화석연료로 누린 편익은 하나도 없는데, 앞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모든 피해를 떠안아야 해요.
우리가 책임지지 않은 부분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됩니다. 특히 기성세대가 이 책임성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린 것만큼은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태도가 없으면, 이 문제는 계속 미래로 떠넘겨질 뿐입니다.
Q.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지금 우리가 태우는 화석연료는 ‘과거의 햇빛’입니다. 수억 년 전 나무가 광합성으로 저장한 에너지죠. 지구상 모든 화석연료를 합친 에너지양이 태양이 5일 동안 비추는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해요. 반대로 인류가 1년 동안 쓰는 에너지양은 태양이 1시간만 비춰도 충분하고, 전력은 10분이면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인류는 과거의 햇빛이 아니라, 지금 비치는 햇빛을 써야 합니다. 저는 이걸 ‘문명사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만 년 전 채집에서 농업으로 바뀌면서 같은 땅에서 100배 식량을 얻었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50배 에너지를 더 쓰게 됐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기후 불안정이죠. 이제는 화석연료를 캐러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시대에서, 자기 집 지붕에서 태양을 수확하는 ‘에너지 농사’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잠재력은 큽니다. 공공건물 옥상, 주차장, 철도·도로변 등 공공용지가 많아요. 국가가 공공 개발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그 이윤을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면, 지역 소멸 문제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완화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신안군이 재생에너지 수익을 주민에게 배분하면서, 군 단위에서 드물게 인구가 늘고 있다는 사례도 있잖아요.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력을 많이 쓰는 시설이니,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가야 합니다. 호남처럼 태양광 발전이 넘쳐나는데 송전선 용량 문제로 전기를 다 못 내보내는 곳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면, 생산된 전력을 현장에서 바로 쓰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겠죠. “전문 인력이 안 따라간다”라는 논리는, 원격 업무가 일상이 된 시대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Q. 박사님의 글쓰기를 보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독특하게 융합돼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글쓰기가 가능한가요?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건지는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이미 우리는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넘어서는 욕망을 쏟아냈고, 이대로 가면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게 자연과학의 진단이죠.
저는 이 둘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 자연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요한 록스트룀 같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지구 한계선 개념 등을 제 나름의 틀 속에서 결합해 글을 써왔어요. 처음 책을 냈을 때 “이런 글은 처음 본다”라는 반응이 있었는데, 사회와 자연을 동시에 다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독창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이미 좋은 연구와 글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한두 개만 빌려오면 표절이지만, 여러 개를 빌려오면 리서치다.”(웃음) 중요한 건 많이 읽고, 서로 다른 분야의 생각들을 잘 엮어보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박사님께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배운다는 건 레고 블록을 만드는 일이고, 평생학습은 그 레고를 조립하는 일입니다. 레고 블록이 많을수록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블록을 많이 만들어두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한두 시간은 책을 꼭 읽습니다. 어떤 책은 3시간 만에 후루룩 넘어가고, 어떤 책은 한 달 내내 붙잡고 있어요. 시집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언젠가 쓸 데가 있겠다” 싶으면 따로 모아둡니다. 글을 읽다가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아이들이 레고 블록 하나를 만드는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모듈로 만드는 거죠.
처음엔 좋은 문장들을 워드에 일일이 쳐서 넣었는데 너무 느리더라고요. 지금은 복사·붙여넣기 덕분에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1~2년 모아두고 나니까, 보고서를 쓰거나 짧은 시간에 설득해야 할 때 정말 유용했어요. 나중에 글을 쓸 때는 그 레고들을 색깔과 모양에 맞춰 조립하면 하나의 글이 됩니다. 독자 눈에 잘 들어올 것들을 앞에 배치하고, 더 좋은 블록이 생기면 바꾸고요. 이렇게 레고를 조립하듯 지식을 엮어가는 과정, 그게 제게 평생학습이고, 또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Q.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문제입니다. 식량, 물, 보건, 생태… 안 걸리는 영역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세대 안에서 끝나지 않아요. 우리 세대가 화석연료를 태워서 누린 편익의 대가를,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기성세대가 책임성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덜 책임진 만큼, 우리 아이들과 손주 세대가 그 짐을 더 져야 하거든요. 동시에 이건 소수의 과잉된 욕망이 빚어낸 위기이기도 합니다. 정의 없이, 연대와 협력 없이 이 위기를 풀 수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혼자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법, 기술을 더 높이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감각입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배워라. 다시 연결하라. 다시 함께 살아라.”
레고 블록이 많으면 많을수록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듯, 우리도 매일 조금씩 배우며 ‘지식의 레고’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레고들을 조립해, 기후 위기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지혜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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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의 탐구생활]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
푸른 하늘 아래 흰 구름을 바라보며 인생을 보내리라 꿈꾸며 기상학과에 입학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실상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데이터와 모델링을 다루는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기후가 ‘언젠가’ 위기가 될 문제가 아니라 이미 ‘우리 일상의 조건’을 뒤흔들기 시작한 현실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먼저 들여다본 사람이다.
조천호 박사는 30년 이상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한 대기과학자다. 연세대학교에서 기상학을 전공하고 국립기상연구소 연구원으로 출발해, 국립기상과학원 수석연구원과 연구부장을 거쳐 초대 원장까지 역임했다. 수치예보 모델링, 지구 기후 시스템 변화 분석, 폭염·열파 관측, 기후변화 영향 연구 등, 우리나라 기후 연구가 본격화되는 흐름의 한복판에서 기후 자료와 씨름해 온 연구자다.
1980년대 이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가속화되면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위험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조 박사는 이 위기를 단순한 “환경문제”로 보지 않는다. 불평등, 생산·소비 구조, 사회 시스템, 삶의 방식 전체를 다시 묻는 문제라고 말한다. 기후가 변하는 것은 단지 기온이 오르는 현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문명과 공동체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혼자 살아남는 법이 아니라, 함께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조천호 박사의 책상 위에는 늘 책이 쌓여 있다. 자연과학부터 사회과학, 역사, 철학, 심지어 시집까지. 그는 매일 1~2시간씩 책을 읽으며 중요한 문장들을 모듈처럼 정리한다. 마치 레고 블록을 하나씩 만들어 모으듯이. 그리고 글을 쓸 때가 되면, 그 ‘지식의 레고’들을 조립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두 개를 빌려오면 표절이지만, 여러 개를 빌려오면 리서치”라는 그의 말에는 겸손과 유머가 동시에 담겨 있다.
기후 위기를 사회정의의 문제로, 자연과학을 인문학적 통찰과 연결하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바로 이런 끊임없는 배움에서 비롯된다. “배운다는 건 레고를 만드는 일이고, 평생학습은 그 레고를 조립하는 일”이라고 말하는 기후과학자 조천호 박사. 그에게 배움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지구를 물려주기 위한 실천이다.
“기후는 성품이고 날씨는 기분입니다”
Q. 기상학자가 되고자 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사실 거창한 계기는 없었어요. 그냥 자연 자체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었고, 성적표를 놓고 맞춰보다 보니 기상학과에 가게 된 거죠. 그때만 해도 ‘기상학을 하면 잔디밭 위에 누워 푸른 하늘 쳐다보며 흰 구름 바라보다 인생 보내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웃음)
그런데 막상 30년 넘게 국립기상과학원에서 일하면서 잔디밭 위에서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구경한 날은 10일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했던 일은 날씨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을 짜면서, 모니터 앞에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오차를 줄이고 비교하는 일이었죠. 기상학은 ‘하늘 보는 낭만’이 아니라, 지구 하나만을 대상으로 끝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는 계산과 관측의 세계입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1980년대만 해도 ‘기후변화’라는 단어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기상학과는 말 그대로 내일·모레 날씨 예측을 위한 물리학을 배우는 곳이었죠. 지금은 대기과학과에서 기후변화를 굉장히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기후변화 과학이라는 건 1980년대 이후 서서히 만들어져 왔고, 지금도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는 학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Q. 데이터를 보시면서 기후 위기가 ‘심상치 않다’라고 느끼신 순간이 있었나요?
기후변화는 미세먼지처럼 눈에 바로 들어오는 위험이 아니에요. 대개 환경오염은 누리끼리한 먼지가 보인다든가, 물이 탁해진다든가, 몸이 안 좋아지는 걸 느끼면서 위험을 인지하잖아요. 먼저 위험이 일어나고, 그다음에 과학 자료를 들여다보면서 원인을 밝히는 식이죠.
그런데 기후변화는 순서가 반대입니다. 과학자들이 먼저 자료에서 이상 신호를 발견했고, 설명을 통해 “이게 앞으로 다가올 위험이다”라고 알려온 거예요. 제 몸으로 체감해서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면서 ‘이건 뭔가 심상치 않다’라고 느끼는 거죠.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고속도로 자동차 속도에 비유하면 이해가 쉬워요. 1도 상승을 시속 100km로 달리는 거라고 가정해 봅시다. 0.5도, 0.6도, 0.7도씩 올라갈 때는 위험을 잘 인지하지 못해요. 그런데 작년 기준으로 이미 1.3도까지 올랐거든요. 시속 130km로 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제한 속도 범위 안으로 이미 들어와 있는 거죠.
예전에는 “폭염이 좀 심하네, 그래도 에어컨 밑에 가 있으면 견딜 만하네”라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이제부터는 어림도 없습니다. 여기서 0.1도씩 더 올라 1.4도, 1.5도가 되면 시속 140, 150, 160km로 올라가는 거예요. 지금부터는 0.1도 올라갈 때마다 기후 위기가 눈앞에서 현실이 무너지는 방식으로 다가올 겁니다.
Q. 요즘 폭염과 한파가 동시에 심해진 것도 기후 위기의 증상인가요?
많은 분이 날씨와 기후를 헷갈리시는데, 쉽게 말하면 날씨는 ‘기분’이고 기후는 ‘성품’이에요. 날씨는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것, 맑고 흐리고 비 오는 그때그때의 상태고, 기후는 그 날씨의 30년 평균치입니다.
기분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해야 정상입니다. 모두가 슬픈데 혼자 아무 느낌이 없다면 이상하잖아요. 날씨도 마찬가지예요. 여름에 맑은 날이 일주일 계속되면 폭염, 한 달이면 가뭄, 2~3년이면 사막이 되는 거죠. 비도 첫날은 단비지만, 일주일 내내 내리면 홍수가 납니다. 그래서 날씨는 변해야 정상입니다.
반면 성품은 어느 날 갑자기 확 바뀌면 이상하다고 하잖아요. 기후도 그렇습니다. 날씨는 원래 변화가 정상인데 얘가 ‘지속’되려 해서 문제고, 기후는 유지되는 게 정상인데 얘가 ‘변화’가 일어나서 문제인 거예요.
요즘 여름이 1~2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들 하죠. “지금 우리가 겪는 여름이 인생에서 제일 선선한 여름일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속도가 가속화됐기 때문입니다. 겨울은 전체적으로 따뜻해지지만, 그렇다고 한파가 사라진 건 아니에요. 공기 중 온실가스가 충격을 받으면 진자운동처럼 진폭이 커지거든요. 평균은 올라가는데, 위·아래로 흔들리는 폭이 커지면서 폭염도, 한파도 더 강해지고 잦아지는 거죠.
우리가 체감하는 심각함은 ‘평균 기온’이 아니라 이런 극단적인 날씨에서 옵니다. 1.3도밖에 안 올랐는데 폭염 빈도는 예전보다 몇 배나 늘었어요. 이게 바로 기후위기의 얼굴입니다.
“절벽이 아니라 지뢰밭입니다”
Q. 파리 기후협정에서 말하는 1.5도, 2도를 넘으면 ‘기후 붕괴’가 온다고 하셨는데, 그게 어떤 상태인가요?
1.5도나 2도를 넘으면 기후가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거죠. 그렇다고 그다음 날 인류가 절벽에서 떨어지듯 끝나는 건 아니에요. 차라리 그게 나을 정도로, 실제로는 식량도 물도 부족한 곳에서 살아남겠다고 버둥거려야 하는 훨씬 비참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저는 1.5도, 2도를 넘는다는 걸 ‘절벽 추락’이라기보다 ‘지뢰밭 진입’이라고 설명해요. 처음에는 발목지뢰를 밟을 수 있겠죠. 발목이 날아가도, 그 상태로 안으로 더 들어가지는 않을 거라고 저는 봅니다. 인류가 그렇게까지 어리석지는 않거든요. 코로나19 때를 보세요. 위험이 명백해지자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 등 삶 전체가 순식간에 바뀌었잖아요. 기후위기가 그 정도로 피부에 와 닿으면, 결국 대응하게 될 거예요. 다만 온몸이 멀쩡할 때 굳이 지뢰밭에 들어갈 이유는 없잖아요. 그래서 1.5도, 2도 선을 지키자는 겁니다.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한 위험은 아무리 커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도, 팬데믹도, 경제위기도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복원이 됐죠. 그런데 기후변화는 본격적으로 일어나면 회복이 안 됩니다. 이게 비극이에요. 지구에 등장했던 생물 종의 99.9%가 멸종했지만, 그건 대개 외부 환경 때문에 그랬죠. 지금 인류는 다릅니다. 스스로 자기 멸종의 조건을 만들어가고 있는, 아주 특이한 종이에요.
Q. 경제적 영향도 클 것 같은데,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경제학자들이 이 부분을 많이 연구합니다.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기후 위기를 막지 못해 지구 평균 기온이 3~4도까지 올라가면 우리나라 GDP가 20% 가까이 줄어들 거라고 해요.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연구소 분석을 보면 2050년에 우리나라 실질 소득이 약 14% 줄어든다고 하고요.
우리가 기억하는 IMF 외환위기 때 개인 소득이 9% 정도 줄었습니다. IMF는 한 해 죽을 고생하고 끝났지만, 기후 위기는 ‘한 해’로 끝나는 일이 아니에요. 강도도 더 크고, 무엇보다 줄어든 상태가 계속된다는 게 문제입니다.
Q. 박사님 말씀을 듣다 보면, 기후 위기를 ‘환경’이 아니라 ‘가치’와 ‘교육’의 문제로 보고 계신 것 같아요.
맞아요.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살았어요. “원하면 더 만들고, 더 개발하고, 더 소비하면 된다”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제는 “지구의 한계 안에서 지속 가능한가?”를 제일 먼저 묻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된 거예요.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뒤 한 번도 1순위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문제를, 이제 가장 앞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볼게요. 옛날에 작은 배와 허술한 그물로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많이 안 잡혔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배를 크게 만들고, 그물을 촘촘하게 만들자 고기가 잘 잡히고 삶이 부유해졌죠.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다시 바다에 나갔는데, 아무리 그물을 내려도 고기가 안 잡히기 시작한 거예요. 바다에 스스로 채울 수 있는 양보다 우리가 더 많이 빼내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도 “배를 더 크게 만들자, 그물을 더 성능 좋게 만들자”라고 말하는 게 지금 인류가 하는 행동입니다. 과거의 성공 방식을 반복하면 해결된다고 믿는 거예요. 이제는 “저 바다에 고기가 충분히 남아 있나, 계속 잡아도 괜찮나”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이 지구의 유한성이 지속 가능한가를 첫 번째 가치로 삼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게 오늘날 기후 위기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새로운 가치 체계’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옛날에는 인간이 만든 세상이 작고, 지구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인간이 그 안에서 전쟁도 하고, 공장을 지어 오염도 시키고 했지만, 지구가 워낙 크니까 어떻게든 인간 세상을 품어줬어요. 그래서 “지구가 어떻게 될까?”라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였죠.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인간의 세상이 지구보다 더 커져 버렸어요. 여기서부터 위기가 시작됩니다. 자연의 법칙은 물질과 에너지가 순환되게 돼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세요. 에너지와 자원은 한 방향으로 고갈시키고, 온실가스·오염·폐기물은 한 방향으로 쌓기만 합니다. 순환이 아니라 ‘고갈과 누적’의 시스템이죠. 자연의 법칙과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인간이 1년 동안 생산·소비·폐기하기 위해 필요한 지구가 1.8개라고 해요. 투자에 비유하면 우리가 원금을 그대로 두고 이자만 쓰는 게 아니라, 원금까지 까먹으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원금을 계속 까먹으면 어떻게 되죠? 파산이 올 날만 남는 거죠. 그게 바로 우리 아이들, 미래 세대가 맞닥뜨릴 현실입니다. 삶의 거주지 자체가 무너진 상태에서 생존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기성세대의 책임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살아남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Q. 이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려면, 우리 교육과 사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뭘 배워왔습니까? “경쟁에서 이겨라, 남보다 앞서라”라는 말이었죠. 줄 세우기, 등수 매기기 속에서 자라왔고, 지금도 우리 자식이 상위 10% 안에 들어가야 안심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는 위기가 오면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흔들립니다.
코로나19 같은 물리적 한계 상황이 닥쳤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경쟁만 하던 사회는 버티기 어렵습니다. 내 자식이 잘 살기 위해서라도, 교육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네가 1등 해라”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까”를 배워야 합니다.
역사를 보세요. 어느 나라, 어느 공동체든 큰 위기가 왔을 때, 경쟁해서 줄 세우기로 이겨낸 사례는 없습니다. 다 연대와 협력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경쟁만 가르치고 있어요. 이게 바뀌지 않으면, 기후 위기 같은 장기·복합 위기는 버텨내기 어렵습니다.
Q. 구체적으로 우리 사회는 무엇부터 바꿔야 할까요?
먼저 부모 세대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 아이만 살아남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기후 위기라는 폭풍 속에 인류가 들어왔는데, 누구는 항공모함을 타고 있고, 누구는 조그만 쪽배를 타고 있습니다. 지금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건 열대의 가난한 나라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는 산비탈이나 하천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 쪽방에 홀로 사는 노인들, 폭염 속에서 일당을 벌어야 하는 야외 노동자들입니다. 이분들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적도 없어요.
UN에서는 이걸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라고 부릅니다. 아무 책임도 없는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만드는 구조죠. 결국 이 문제는 소수의 과잉된 욕망과 불평등 구조를 동시에 손대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정의가 없이는 기후 위기 해결도 없다”라고 봅니다.
연대와 협력을 선택하면,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견뎌낼 힘이 생깁니다.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도 찾아낼 수 있고요. 반대로 그런 상황에서조차 줄 세우기와 경쟁을 하면, 사회는 더 빨리, 더 깊게 무너집니다. 내 아이가 잘 살기를 바란다면, 결국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내 아이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Q. 기후 위기는 세대 간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미세먼지는 한 번 배출되면 공기 중에서 길어야 일주일 정도 있다가 사라집니다. 우리 세대가 배출하고 우리 세대가 들이마시고, 우리 세대의 문제로 끝나는 거죠. 미래 세대와는 거의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는 다릅니다. 한 번 나오면 수백 년, 길게는 수천 년 동안 공기 중에 남아요. 우리 세대가 화석연료를 태워서 엄청난 편익을 누렸죠. 그 결과로 나온 온실가스는 사라지지 않고 차곡차곡 누적돼서 미래 세대에게 넘어갑니다. 미래 세대는 화석연료로 누린 편익은 하나도 없는데, 앞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모든 피해를 떠안아야 해요.
우리가 책임지지 않은 부분이 사라지는 게 아닙니다. 그만큼 우리 젊은 세대와 어린 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이 됩니다. 특히 기성세대가 이 책임성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린 것만큼은 내가 책임지겠다”라는 태도가 없으면, 이 문제는 계속 미래로 떠넘겨질 뿐입니다.
Q. 우리나라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지금 우리가 태우는 화석연료는 ‘과거의 햇빛’입니다. 수억 년 전 나무가 광합성으로 저장한 에너지죠. 지구상 모든 화석연료를 합친 에너지양이 태양이 5일 동안 비추는 에너지와 비슷하다고 해요. 반대로 인류가 1년 동안 쓰는 에너지양은 태양이 1시간만 비춰도 충분하고, 전력은 10분이면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인류는 과거의 햇빛이 아니라, 지금 비치는 햇빛을 써야 합니다. 저는 이걸 ‘문명사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만 년 전 채집에서 농업으로 바뀌면서 같은 땅에서 100배 식량을 얻었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50배 에너지를 더 쓰게 됐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기후 불안정이죠. 이제는 화석연료를 캐러 온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시대에서, 자기 집 지붕에서 태양을 수확하는 ‘에너지 농사’의 시대로 가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잠재력은 큽니다. 공공건물 옥상, 주차장, 철도·도로변 등 공공용지가 많아요. 국가가 공공 개발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확충하고 그 이윤을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구조를 만들면, 지역 소멸 문제와 기후 위기를 동시에 완화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신안군이 재생에너지 수익을 주민에게 배분하면서, 군 단위에서 드물게 인구가 늘고 있다는 사례도 있잖아요.
데이터센터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력을 많이 쓰는 시설이니,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으로 가야 합니다. 호남처럼 태양광 발전이 넘쳐나는데 송전선 용량 문제로 전기를 다 못 내보내는 곳에 데이터센터를 짓는다면, 생산된 전력을 현장에서 바로 쓰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겠죠. “전문 인력이 안 따라간다”라는 논리는, 원격 업무가 일상이 된 시대와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Q. 박사님의 글쓰기를 보면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독특하게 융합돼 있는데, 어떻게 그런 글쓰기가 가능한가요?
좋은 사회를 어떻게 만들 건지는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이미 우리는 지구의 물질적 유한성을 넘어서는 욕망을 쏟아냈고, 이대로 가면 지속이 불가능하다는 게 자연과학의 진단이죠.
저는 이 둘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회에 대한 고민, 자연에 대한 이해, 그리고 요한 록스트룀 같은 학자들이 제시하는 지구 한계선 개념 등을 제 나름의 틀 속에서 결합해 글을 써왔어요. 처음 책을 냈을 때 “이런 글은 처음 본다”라는 반응이 있었는데, 사회와 자연을 동시에 다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제 독창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이미 좋은 연구와 글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한두 개만 빌려오면 표절이지만, 여러 개를 빌려오면 리서치다.”(웃음) 중요한 건 많이 읽고, 서로 다른 분야의 생각들을 잘 엮어보려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Q. 박사님께 평생학습이란 무엇인가요?
저에게 배운다는 건 레고 블록을 만드는 일이고, 평생학습은 그 레고를 조립하는 일입니다. 레고 블록이 많을수록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블록을 많이 만들어두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에 한두 시간은 책을 꼭 읽습니다. 어떤 책은 3시간 만에 후루룩 넘어가고, 어떤 책은 한 달 내내 붙잡고 있어요. 시집을 읽다가도 “이 문장은 언젠가 쓸 데가 있겠다” 싶으면 따로 모아둡니다. 글을 읽다가 새로운 걸 알게 되면, 아이들이 레고 블록 하나를 만드는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모듈로 만드는 거죠.
처음엔 좋은 문장들을 워드에 일일이 쳐서 넣었는데 너무 느리더라고요. 지금은 복사·붙여넣기 덕분에 훨씬 편해졌습니다. 그렇게 1~2년 모아두고 나니까, 보고서를 쓰거나 짧은 시간에 설득해야 할 때 정말 유용했어요. 나중에 글을 쓸 때는 그 레고들을 색깔과 모양에 맞춰 조립하면 하나의 글이 됩니다. 독자 눈에 잘 들어올 것들을 앞에 배치하고, 더 좋은 블록이 생기면 바꾸고요. 이렇게 레고를 조립하듯 지식을 엮어가는 과정, 그게 제게 평생학습이고, 또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Q. 마지막으로,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 기후 위기는 단순한 환경오염이 아니라 우리 삶의 기반을 통째로 흔드는 문제입니다. 식량, 물, 보건, 생태… 안 걸리는 영역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세대 안에서 끝나지 않아요. 우리 세대가 화석연료를 태워서 누린 편익의 대가를, 다음 세대가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저는 특히 기성세대가 책임성에 대한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덜 책임진 만큼, 우리 아이들과 손주 세대가 그 짐을 더 져야 하거든요. 동시에 이건 소수의 과잉된 욕망이 빚어낸 위기이기도 합니다. 정의 없이, 연대와 협력 없이 이 위기를 풀 수 없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식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혼자 이기는 법이 아니라 함께 견디는 법, 기술을 더 높이는 능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감각입니다. 기후 위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배워라. 다시 연결하라. 다시 함께 살아라.”
레고 블록이 많으면 많을수록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듯, 우리도 매일 조금씩 배우며 ‘지식의 레고’를 쌓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레고들을 조립해, 기후 위기 시대를 함께 헤쳐 나갈 지혜와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선민 선임 에디터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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