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희망학교 양부님 할머니 인터뷰_“일흔 넘어 배운 글씨, 나는 오늘도 기분이 째진다”

2022-05-27



광주희망학교 양부님 할머니가 말하는 배움의 기쁨

광주 문해시인 양부님 할머니 인터뷰





“학교 말항께, 눈물 나올라 그래.” 


‘어떻게 공부를 시작하게 됐냐’라는 첫 질문에 양부님 할머니의 눈시울이 대뜸 붉어졌다. 올해 만으로 76살인 할머니는 4년 전 처음 글씨를 배웠다. 재단법인 광주희망평생교육원이 운영하는 광주희망학교에 다니면서부터다. 

할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학교에 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수업은 9시 30분 시작이지만 8시까지 학교에 도착한다. 평생 못 배운 게 한이었다는 할머니는 학교에 가는 기분을 한 편의 시에 담았다. 시 제목은 ‘기분이 째진다’



기분이 째진다

광주희망평생교육원 양부님



밥 먹고 가방 메고 

마스크 쓰고

열쇠 찾아 자전거 타고

학교에 오니 기분이 째진다 


집에 있으면 운동도 쬐금하고 

엎치락뒤치락 티브이가 내 친구인디

내가 갈 때가 있고

내가 올 때가 있어 기분이 째진다 


요렇게 학교에 와서 

공부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선생님도 만나 기분이 째진다 


나는 시방 지금이 제일 좋다 

나는 오늘도 기분이 째진다




또박또박 손글씨로 쓴 시 아래로 머리에는 안전모를 쓰고, 등에는 책가방을 맨 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림도 할머니 솜씨다. 할머니의 작품은 2021년 광주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했다. 양부님 할머니는 “학교 와서 배워서 이런 것도 쓴다는 것이 눈물에 겹다”고 말했다.

1968년 문을 연 광주희망학교는 광주교육청에서 지정한 초등·중학 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민간 기관이다.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은 18세 이상 성인에게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이다. 초등학교 과정 1~3단계, 중학교 과정 1~3단계를 이수하면 검정고시 없이 각 학력을 취득할 수 있다. 지난 5월 23일 방문한 광주시 북구 누문동 광주희망학교 입구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글을 배우는 것은 힘든 일이나 글을 모르는 괴로움은 평생가는 장애

올해 초등 3단계 과정을 밟고 있는 양부님 할머니에게 “기분 째지는” 배움의 기쁨에 대해 물었다.  






자식들까지 나처럼 까막눈 만들 수 없어서




“나는 부모를 일찍 잃었어요. 동네 사람 말로는 그러더라고요. 아버지가 나 낳아놓고 3일 만에 돌아가셨다고. 엄마도 나 네 살 때 죽어불고. 내 이름 부님이 부자 할 때 부, 선생님 할 때 님인데 누가 지었는지도 모른당께라우. 생일도 모르고 살았어요. 오빠들은 남의 집 살이 가고 아무도 없응께 나는 할머니 집으로 갔어요. 할머니 식구가 12명이에요. 가난했지. 밥도 못 먹고. 밥이 없어.”


전남 화순이 고향인 할머니는 10살이 넘자 서울 창신동으로 가서 이모집 아기 돌보는 일을 하게 된다. 20살이 되던 해, 띠동갑 남자와 결혼한 할머니는 10년 만에 다시 화순으로 돌아간다. 


“고향은 이양인데 춘양에 시집을 보내버렸어. 살다 보니 애들이 하나 둘 생기제. 5남매를 뒀어요. 진짜 너무 가난해요. 도저히 살 수가 없더라고. 내가 까막눈이라 애들은 고등학교(까지)는 가르쳐야겠는디, 농사 지어봤자 나눠 불면 암것도 없어. 고생만 쎄가 빠지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내가 영감 보고 그랬지. 광주로 나가서 그릇이라도 닦아서 애들 가르쳐야겠다고. 내가 못 배워서 한이 된다고.”


농사짓고 살림하던 아내가 집을 나간다고 하자 남편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할머니도 강경했다. 돈이 없어 마을 면서기에게 30만 원을 빌려 광주로 떠났다. 매서웠던 12월, 김장까지 다 해놓고 시골집을 나섰다. 할머니 나이 44살이었다. 


“30만 원 빌려서 12만 원 주고 방을 일단 얻었어요. 식당 가서 설거지하는데 장갑 세 켤레를 주더라고요. 장갑을 어떻게 한 손에 세 짝을 다 끼냐 내가 물응께, 주인이 그러더라고요. 당신이 그릇 하나만 깨도 일당 값이 더 되는디 안 끼고 쓰겄냐고. 닦으니까 퐁퐁 물이라 엄청 미끄럽더라고요. 속에다 면장갑을 끼고 고무장갑을 끼고 면장갑을 또 끼고. 퐁퐁 물에서 하루 죙일 그릇을 닦아. 손이 겁나 불어. 노가다도 뛰고, 청소도 하러 다니고. 별일을 다 해봤어요. 그렇게 애들 네 명 다 고등학교까지 공부시키고 막내딸은 대학교까지 보냈어요.”



할머니는 지금도 그때 광주에 간 것을 생에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혀도 엄청 대단혀. 치마만 둘러서 여자제, 여자 아니라고 다들 그렸어. 야물다고. 내가 좀 똘똘해(웃음).”


70살 넘도록 글씨를 읽고 쓸 줄 몰랐던 할머니는 “모르니까 남한테 둘리고(속고) 살았던 적이 많다”고 했다. 바가지를 쓴 적도 많다. 못 배운 것은 마음 속 깊은 한으로 남았다. 할머니의 사정을 안 지인이 광주희망학교를 소개해 줬다. 2018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지만 중간에 다리 수술 때문에 1년을 쉬었다. 할머니는 지난해 3월부터 다시 학교를 다니기 시작해 올해 초등 3단계 과정을 밟고 있다. 





‘빈 택시’라고 딱 써진 것을 알겄더라고





지난해 교육부와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발표한 제3차 성인문해능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의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성인이 200만 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7.2%에 비하면 줄어든 수치이지만 여전히 비문해 성인 비율은 4.5%에 달한다. 

글을 읽고 쓸 줄 알게 되면서 할머니에게는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그전에는 택시가 가면 무조건 빈 택시인 줄 알고 손만 들고 있응께 안 태워주더라고요. 바쁜데 성질 나 죽겄어. 그런데 1년을 학교를 다닝께, 아 빈 택시(‘빈 차’)라고 딱 써진 것을 알겄더라고. 빈 택시도 있고, 사람 타면 불이 꺼져 갖고 있고. 그런 것을 읽겄더라고. 그기 보여요. 인자. 이제는 간판도 읽는당께. 영어도 읽어요. ‘LG 전자’ 딱 써졌더랑께. 인자 보여. 내가 우리 딸 보고 ‘그전에는 간판에 영어가 하나도 없었는디 시방은 영어들이 많이 깔렸시랑께’ 이러니까 딸이 ‘엄마가 모릉께 안 보이제, 옛날에도 다 있었어’ 그러더라고(웃음). 영어도 읽고 한글 간판도 다 읽고, 잘은 못 혀도 노상 읽고 댕겨요.”


초등 과정에서는 국어, 영어, 수학을 배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았다. 


“맨날 해도 잊어 부러. 귀에도 안 들어오고 눈에도 안 들어와. 어려서 배우면 쏙쏙 들어가는디 이제 늙어붕께. 늘 반복허고 계속 (학교) 댕겨야 한 자라도 알겠더만. 참 힘들대요. 공부라는 것이. 산수가 제일 힘들어 시방. 통 몰라요. 무슨 보태고 빼고 한다는디. 내가 윤인자 선생님한테 ‘선생님, 나 수학할 때는 안 나와불라요’ 그런 소리도 다 해요(웃음).”


학교 수업은 낮 12시에 끝나지만 집에 가서도 공부는 계속된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서 숙제를 허고 저녁에도 자다가 두 번, 세 번씩 꼭 일어나서 (숙제) 하고 자요. (머리에) 안 들어옹께 그거밖에 할 것이 없어. 선생님한테 책 읽고 숙제했다고 문자 보내고, 영어로 내 이름 대문자 소문자 찾아서 문자 보내고 허면 엄청 힘들어. 티브이가 그전에는 친구였는데 인자는 놀새가 없이 공부를 항께. 일하면서도 ‘숙제를 해야 하는디’ 그 고민이 항시 머릿속을 안 떠나. 시간만 있으면 책을 들다 봐. 치매 올 시간이 없어.”



할머니는 공부한 흔적이 담겨 있는 공책을 보여줬다. 알파벳 쓰기, 책 읽고 따라 쓰기, 받아쓰기와 함께 할머니가 쓴 일기도 있었다. 일기에는 담임 선생님인 윤인자 교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2022년 4월 21일 날씨 맑다 

선생님 저는 도저히 공부가 잘 안 되요. 그러라 못 해도 해봐야지요. 그런데 산수가 잘하지 못하겠어요. 산수가 힘들어요. 나는 언제나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요. 미안합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우에게 목이 타도록 가리쳐주시는데 우리는 힘들게 해도 잘 안 데요. 미안합니다.



왼쪽: 양부님 할머니 오른쪽 : 윤인자 교사


광주희망학교에서 10년 가까이 문해교육 수업을 해온 윤인자 교사는 “어머님들이 처음에는 일기 써오라고 하면 ‘학교 안 올라요'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수업을 하고 나면 이제 일기도 길게 쓰시고, 자녀분들한테 이모티콘 찾아서 문자도 보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윤 교사는 “초등 1학년, 2학년, 3학년 과정으로 갈수록 축 처져있던 어머님들의 어깨가 점점 올라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게 보인다”고 했다.


 



내 인생을 내가 바까놨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광주희망학교는 몇 차례 학교 문을 닫기도 했지만 지난 한 해 방역 수칙을 지키며 정상적으로 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코로나의 타격은 꽤 컸다. 한미준 교장(광주희망평생교육원 이사장)은 “코로나 이전에는 학생이 200명 정도 됐는데 지금은 절반 정도인 120명 정도로 규모가 줄었다”면서 “학교 건물이 있는 곳이 재개발 구역인데 재개발이 진행되면 옮겨갈 곳도 없는 상황이라 학교를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양부님 할머니는 초등3단계 반장을 맡고 있다. 반에는 35명의 학생이 있다. 할머니는 칠판에 청소 당번 이름을 써놓고, 수업 도중 휴대폰이 울리면 벌금을 받기도 한다. 수업 시작하고 끝날 때 ‘차렷, 경례'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 속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든단다.  


광주희망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연령대는 60대 후반에서 양부님 할머니 같은 70대가 많다. 최고령자는 83세다. 학생들끼리는 서로 “학생”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공부하다 모르는 게 있으면 옆사람한테 물어본다”고 말했다. 


“챙피해도 물어봐야지. 챙피하게 생각하면 안 돼. 모르는 거 있으면 배우고, 아는 거 있으면 가르쳐 주고. 사람 인생이 그럽디다. 상부상조를 해야죠.”


할머니에게 ‘기분이 째진다’ 시를 어떻게 쓰게 됐는지 물었다. 


“아침에 자전거를 싹 타고 달려오면 얼마나 기분이 째진다고. 엄청 좋아요. 어느 날 내가 학교에 들어오면서 그랬어요. 아이고 기분이 째진다고. 화장 허고, 마스크 쓰고, 자전거 타고 오면 기분이 째진다니께 선생님이 ‘오매, 어머니 그거 씁시다’ 그래서 쓴 거여.” 





할머니는 인터뷰 내내 몇 번이나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자식들의 반응은 어떨까. 


“우리 애들은 맨날 학교만 가라 해. 시골 농사 다 내놔뿌고, 엄마 학교나 댕기고 상이나 타고 대학교나 가라고. 나는 내 인생을 내가 바까놨어요. 부모 복을 못 가진 사람은 내가 (복을) 만들어야 돼.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서 내 갈 길을 찾아가야 돼. 나는 내가 만들어가꼬 이라고 호강스럽게 살아.”


내년이면 중학교 과정에 진학하는 할머니. 할머니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었다.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 돌아왔다. 


“나 살아서 고통받고 산 거, 싹 써서 책을 내면 소원이 없어. 너무 서러운 세상을 살아가꼬. 선생님이 받침을 몰라도 일기를 꼭 쓰라고, 세 줄이라도 쓰라고 하는데 쓰다 보면 한 장 두 장도 모재래 버려. 속에서 다 나와뿌니까. 그러다 혼자 뒤지게 울어. 울 때가 많아요. 어려서 부모 없이 고통받고. 말로는 다 헐 수가 없잖아요. 내가 써야제. 눈물 없이는 보도 모덜 사연들을 이제라도 조금이라도 뱉어낼 수 있응께. 그런 걸 쓰다 보면 종이에 눈물이 떨어져.”


인터뷰 사진 촬영을 하며 할머니는 “나 같은 사람을 인터뷰허고, 오늘 호강하네”라며 환하게 웃었다. 안전모를 쓰고 목장갑을 낀 부님 할머니는 전기 자전거를 타고 씩씩하게 집으로 떠났다. 오늘도 숙제하느라 할머니의 하루는 꽤 길 것 같다.






문해교육 현장 교사 인터뷰

한미준 교장

한미준 광주희망학교 교장(광주희망평생교육원 이사장)



- 광주희망학교는 어떻게 시작됐나요?

“1968년 전남 화순에서 청소년 15명을 가르치는 작은 학교로 시작됐어요. 1999년에 이 건물로 옮겨왔고, 누문동에 주간반이 있고 계림동에 야간반이 있었는데 재개발 문제 때문에 계림동 야학은 지난 3월에 정리했어요.”  


- 교사 분들은 주로 어떤 분들이세요?

“대부분 20년 가까이 봉사하신 선생님이 많아요. 이곳에서 검정고시 합격해서 방송통신대학에서 교육학 전공하시고 다시 와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 이사장님은 어떻게 이곳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28살 때 딱 한 달만 고등부 검정고시 영어 수업해달라고 해서 봉사활동하러 왔다가 20년이 지났어요. 그 사이 결혼하고 애도 낳았네요. 처음 왔을 때는 봉사자고 평교사니까 수업만 열심히 하면 됐는데 직함 하나씩 달고 작년부터 이사장을 맡게 되니까 전체를 다 책임져야 하는 게 어렵죠. 특히 올해는 재개발 문제 때문에 규모를 축소를 해야 하나,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이 많아요. 수업만 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 힘든 만큼 보람도 많이 느끼시겠어요.

“저는 청소년들도 가르쳐 봤는데 그 친구들은 원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여기 오신 분들은 배움에 목말라서 오신 분들이고, 하나라도 배우시려고 눈이 반짝반짝해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데 영어가 어렵기는 한데 재밌다고 하세요.”



-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을 꼽자면요?

“지금은 제가 중학 수업을 가르치는데 처음에는 초등 수업에도 많이 들어갔어요. 2~3년 전까지 몇 년간 나오시던 남자분이 계세요. 학교 근처에 숙소를 잡으시고 겨울에만 2~3달 수업 들으시던 분인데요. 인부들을 데리고 조경 일하는 사장님인데 계약서 쓸 일 있으면 팔에 붕대를 감고 가서 본인은 팔이 부러져서 글씨를 못 쓴다고 했대요. 그런데 몇 년간 저희랑 공부를 하더니 어느 날 오셔서 자랑하시더라고요. 드디어 본인이 계약서를 썼다고요. 문해 교육 현장에서 학습자들을 가르치는 게 참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해교육 현장 교사 인터뷰

윤인자 교사



윤인자 광주희망학교 교사(초등 3단계 담임, 교무 담당)



- 어떻게 교사로 일하게 되셨어요?

“처음에는 대학생 봉사활동으로 왔었어요. 그때가 1985년이었는데요. 선배들이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활동하다가 학교 졸업하고 결혼하고 다른 지역에 살다가 2013년에 우연히 광주희망학교에서 자원봉사 선생님 모집한다는 게시물을 보게 됐어요. 여기가 그 광주희망학교인가 했는데 맞더라고요. 그때부터 8년간 자원봉사를 했고, 올해부터는 교무 담당자로도 함께 일하고 있어요.”


- 어르신들 가르치는 일이 어렵지 않으신가요?

“그래서 가르치려고 공부를 시작했어요. 평생교육사 자격증도 따고, 초등, 중등 교육 연수도 받고, 방통대도 다니고, 지금은 대학원도 다니고 있어요. 어머님들이 진짜 질문이 많아요. 저는 어머님들한테 하나를 가르쳐 드려도 제대로 가르쳐 드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제가 공부를 해야 하고요.” 


- 어떨 때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어머님들이 이제까지는 글을 모르니까 남편이 모든 일을 다 해줬는데 지난번에 대통령 선거했을 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선거 공보물을 다 읽고 가서 혼자 찍으셨대요. 재난지원금도 동사무소에서 혼자 신청했고요. 이번에 미디어센터에 견학을 갔는데 어찌나 질문을 많이 하시는지. 다녀와서 감상문도 쓰시고요. 이제는 자기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런 모습을 보면 진짜 보람 있어요. 저는 이 일이 계속 꿈꿔왔던 일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어요.”


 


9월 8일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문해의 날’이다.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매년 9월을 ‘대한민국 문해의 달’로 선포하고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을 개최한다. 올해도 시화전을 앞두고 오는 6월 24일까지 시화전에서 선보일 작품을 공모하고 있다. 공모 주제는 ‘문해, 지금 나는 봄이다’이고, 만 18세 이상 문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습자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자세한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문해, 지금 나는 봄이다' 시화 공모전 자세히 보러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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